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생명의 크라운 ( the crown of life)

이동원 (서울북노회,성광교회,목사) 2014-05-28 (수) 12:04 9년전 2785  
< 묵상, 계2:10>
 
1. 죽도록 충성하라는 의미는,
이 말씀은 죽도록 즉 지치고 기진맥진할 정도로 충성하라는 것, 이것이 주님이 사랑하시는 교회에 성도들에게 주시는 말씀인가, 밤낮으로 수고하고 노력하여 심신이 피곤하여 아무일도 더 할 수 없을 정도로, 거의 죽을 정도로 충성하라는 것, 이것이 과연 주님이 바라시는 것일까.
지금 네가 충성하지만 그 정도로는 안 돼 약간의 충성으로는 너무 빈약하고 거의 죽도록, 입술이 부르트고 손발이 닳고 허리가 휘어지도록 거의 죽을 몸이 되도록 충성하라는, 또한 몸이 쇠약해 질 정도로 골병들 정도로 충성하라는 것일까,, 그 전후의 상황과 문맥 그리고 내용을 잘 보면 그러한 뜻이 아님을 알 수 있다.
 
교회에 모든 성도에게 주시는 격려의 말씀은,
죽음의 상황 죽음 같은 지점 죽음의 포인에서조차도 ( even to the point of death)
주님께 신실하라는 것이다. 주님을 신뢰하라는 것이다. 주님과 그 약속의 말씀을 신뢰하라는 것이다.
 
그러면 생명의 면류관을 주리라는 것이다. 현재를 통해서 미래를 알 수 있다. 
(사도 바울과 실라는 감옥 속에서 죽을 지경이었다. 많이 얻어터지고 심신이 죽음 같은 상황이었다해도 그 시점 그 지점에서 감사 찬양 기도하므로 죽음 같은 시점에서 생명의 역사가 나타난 일이 실제적으로 있었다. )
 
2. 하나님의 구원역사 과정에서도 시련들이 있었다.(신7:17-19, 29:1-3)
이적과 기사와 강한 손과 편 팔 뿐 아니라 큰 시험들이 (the great trials)  있었다는 것이다
그들의 눈으로 본 것은 이적과 큰 기사 뿐 아니라 그 큰 시험들 (those great trials)도 있었다.
하나님이 함께 하시고 인도하신 그 구원사의 과정에도 큰 시험이 있었다는 것이다. 우리의 신앙 여정에도 여러 가지의 시련 환난들이 원든 원치 않든 있다. 어떤 때에는 죽음 같은 시련들을 과거 뿐 아니라 오늘 날도 그리고 미래도 겪을 수도 있을 것이다. 그러한 죽음의 지점에서도 주님을 신뢰하고 신실하게 믿음을 지키며 나아가라는 것이다. 그러면 이 큰 시련들은 큰 신앙의 위인을(such a great person) 만들기도 하는 것이다. 그리고 생명의 크라운을 쓸 수 있는 것이다.
 
3. 우리에게 준비 된 크라운( the crown of life)
주님께서 죽음같은 상황 속에서도 주님을 신뢰하고 신실한 자들에게 생명의 면류관을 주리라고 약속하셨다.
이 면류관은 자기가 디자인하여 만들어 쓰거나 사서 쓰는 것이 아니라 주님께서 만들어 씌워 주시는 것이다.
이것은 내가 찾아다니며 만들어 쓴 세상의 어떤 감투모자들 보다 비교할 수 없이 귀하고 영예롭고 영원하다.
주님이 준비해 주신 크라운,, 그 분의 속성은 신실하시고 변치않으신 분이시기에 그의 약속은 믿을 수 있다.
사도 바울은 이것을 알고 믿었기에 이미 영원한 부르심을 받기전에 승리의 개가를 부르며 노래하였다.
 
'내가 선한 싸움을 싸우고 나의 달려갈 길을 마치고 믿음을 지켰으니
이제 후로는 나를 위하여 의의 면류관이 예비되었으므로 주 곧 의로우신 재판장이 그 날에 내게 주실 것이니
내게만 아니라 주의 나타나심을 사모하는 모든 자에게니라.' (딤후4:7-8)
 
 
                                                                                       < 성광교회 이동원목사 드림>
 
 
=. 신앙 여정에서.
신앙의 여정에서 만나는 것들이 많다.
시련들은 신앙의 여정에도 있는 것이며 성장과 생명의 면류관을 받을 과정도 될 수 있다는 것을 알 수 있다.
 
1. 하나님의 구원사 중에 시련들이 있었다.
하나님의 택한 백성과 함께 하나님의 구원사를 진행하는 가운데는 이적과 기사 강한 손과 편팔 뿐 아니라 이것들에 어깨동무하며 함께하는 시련들이 있었다.
그것도 작은 이 아니라 큰 시련(great trials, good )들이라고 하였다. 어찌 하나님과 함께하는 하나님의 구원역사 행진에 두렵고 무서운 시련들이 있었다는 것인가. 그러나 원치 않는다 하여도 큰 시련들이 있었다. 그런데 큰 시련은 큰 신앙인을 만드는 과정에 있어 신앙의 성장의 기회가 되고 큰 신앙인 (great person of faith)을 만드는 요소가 될 수 있었다. 어쨌든,
믿음의 선조들이 하나님의 구원사의 역사에서 보았던 것들 중에는, 큰 시련들이(great trials) 있었다는 사실이다.
 
(신7:17-19)
 You may say to yourselves, "These nations are stronger than we are. How can we drive them out?"/
But do not be afraid of them; remember well what the LORD your God did to Pharaoh and to all Egypt./
You saw with your own eyes the great trials, the miraculous signs and wonders, the mighty hand and outstretched arm, with which the LORD your God brought you out. The LORD your God will do the same to all the peoples you now fear.
 
(신29:1-3)
These are the terms of the covenant the LORD commanded Moses to make with the Israelites in Moab, in addition to the covenant he had made with them at Horeb./
Moses summoned all the Israelites and said to them: Your eyes have seen all that the LORD did in Egypt to Pharaoh, to all his officials and to all his land./
With your own eyes you saw those great trials, those miraculous signs and great wonders)
 
1. 주님이 준비하신 크라운
사도 바울은 주님의 영원한 부르심을 예측하고 의의 면류관이 예비되었다고 하며 다음과 같이 승리의 노래를 부르고 있다. 자기가 만들어 쓰는 것이 아니라 주님이 준비하여 씌워주시는 면류관이다. 우리는 죽음 같은 순간들에서도 신실하게 믿음을 지키며 달려가므로 생명의, 의의 면류관을 쓸 수 있어야 할 것이다.
(딤후 4:6-8)
For I am already being poured out like a drink offering, and the time has come for my departure./
I have fought the good fight, I have finished the race, I have kept the faith./
Now there is in store for me the crown of righteousness, which the Lord, the righteous Judge, will award to me on that day--and not only to me, but also to all who have longed for his appearing.
 
( 개정은 같은 원문을 웬지 계2:10에서 관으로 바꾸었고 딤후 4:8에서는 면류관 그대로이다.
계시록 역시 개역판이 더 적절하다고 본다.개정을 보고 한국교계의 현주소의 모습을 보여주는 것 아닌가
그리고 우리 교계가 자성하여야 하지 않은가 라는 말은 이미 말했다.글로 직접하고 뉘앙스로도 어쩔수 없이 여러번 말하였다. 성경 번역은 밖에서 누가 와서 해주는 것이 아니고, 우리의 책임이다 , 영광스러운 의무와 책임이다,, 교계가 하여야 하는 참으로 영예로운 크라운 받을 수 있는 엄숙하고 복된 기회였다고 본다.)
 
( 개정은 우리에게 익숙한 생명의 '면류관'을 생명의 '관'으로 바꾸었다. 참 못 말리는 양반들이라고 하면 너무 지나친 표현일까요. 더 어렵고 의미 전달이 부정확할 수 있다.
수정하려면 계2:10을, 어떠한 환난 시련의 죽음 같은 상황에서도 주님을 신뢰하고 인내하므로 생명의 면류관을 받을 수 있다는 뜻으로 번역을 할 수 있었다.)
 
1. 극한 상황에서도,
이 말씀은 교회인 우리에게 나에게 간곡하게 강조하고 보배로운 상을 약속하시며 주신 말씀이다.
죽음의 지점에서 믿음을 지키며 신앙의 승리를 하면 둘째 죽음이 없다는 말씀의 기이한 일치에 놀랍다.
(계 2:10,11)
Do not be afraid of what you are about to suffer. I tell you, the devil will put some of you in prison to test you, and you will suffer persecution for ten days. Be faithful, even to the point of death, and I will give you the crown of life./
He who has an ear, let him hear what the Spirit says to the churches. He who overcomes will not be hurt at all by the second death.
 
* '충성' 이라는 말은 동양권에서 사용되는 말인 것으로 생각한다. 그렇다면 여기에서 충성이라는 뜻은,
   (원:피스토스 /신실한, 믿는, 신뢰하는, 확신하는, 진실한 faithful , believe, confiding, trusting)
 
* 면류관:(원, 스텝하노스)
문자적으로 혹은 상징적으로‘ 면류관’ 화관 (영예의 상징, 영광의 상징)
a crown, mark of royal or (in general) exalted rank,  the eternal blessedness which will be given as a
prize to the genuine servants of God and Christ: 
                                                                                                             

hi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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