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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서, 너도 이와 같이 하여라!”

전대환 (경북노회,한울교회,목사) 2014-08-10 (일) 15:08 9년전 3273  

“가서, 너도 이와 같이 하여라!”


■ 성서 본문

너는 이 세 사람 가운데서 누가 강도 만난 사람에게 이웃이 되어 주었다고 생각하느냐?” 그가 대답하였다. “자비를 베푼 사람입니다.” 예수께서 그에게 말씀하셨다. “가서, 너도 이와 같이 하여라.”

<누가복음서 10:36-37>

■ 들어가는 이야기

요 며칠 날씨가 한여름 안의 가을 같습니다. 사람이야 시원해서 좋지만, 곡식들이 자라는 데 방해는 안 됐으면 좋겠습니다. 어쨌든 우리 하나님께서, 한여름을 나는 곡식들과 함께, 저와 여러분도 잘 지켜주시기를 우리 주님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간절히 바랍니다. 오늘은 한반도 평화통일주일입니다. 1989년 모스크바에서 열린 세계교회협의회 중앙위원회에서 그렇게 정했고, 지난해 부산에서 열린 세계교회협의회 총회에서 이를 다시 확인했습니다. 그래서 올해는 세계 각 나라에서 오늘을 한반도 평화통일주일로 지키는 교회들이 많을 것입니다. 오늘 드리는 말씀은 한국기독교교회협의회가 제공한 자료집에 들어 있는 내용입니다.

■ 미움

창세기에 보면 맨 처음에 천지창조 이야기가 나오고, 그 다음에 바로 ‘살인사건’ 이야기가 나옵니다. 그것도 형이 친동생을 죽인 친족살해사건입니다. 이것은 인류의 역사의 시작이 ‘싸움’이었다는 것을 말해줍니다. 살육과 전쟁의 역사는 지금 이 시각까지도 계속되고 있습니다. 오늘날 세계에서 가장 위험한 화약고는 중동과 한반도입니다. 뉴스를 보셔서 아시겠지만, 지금 이스라엘 사람들이 팔레스타인 가자지역을 공격해서 엄청난 인명피해가 생겼지요. 이스라엘과 팔레스타인의 충돌은 단순히 두 민족 간의 대립이 아닙니다. 그 배후는 서구 기독교세력과 중동의 이슬람세력입니다. 이 두 세력이 제대로 부딪친다면 세계대전으로 확대될 수도 있습니다. 우리나라에서도 휴전선을 가운데 두고 남과 북이 맞서고 있지요. 여기에도 배후가 있습니다. 북의 뒤에는 대륙세력인 중국과 러시아가 있고, 남의 뒤에는 해양세력인 미국과 일본이 있습니다. 이 긴장감 또한 만만치 않습니다. 언제 큰 전쟁으로 확대될지 모릅니다. 그런데 이 두 지역의 공통점은, 이렇게 원수처럼 살아온 사람들이지만 본래는 한 형제였다는 것입니다. 팔레스타인과 이스라엘은 각각 아브라함의 배다른 형제 이스마엘과 이삭의 후예들입니다. 남과 북은 모두 단군의 후예들입니다. 팔레스타인과 이스라엘은 문화적 배경은 비슷하지만 종교가 다르고 말이 다릅니다. 그러나 남과 북은 말도 같고 문화도 같습니다. 그들은 이천년 만에 다시 만나 다투게 되었지만, 우리는 5천년을 같이 지내오다가 다투기 시작한지 불과 70여년밖에 안 됐습니다.

■ 끊어짐

유 아무개 집사님이란 분이 있습니다. 일제강점기 때 먹고 살기가 너무 어려워서 일본으로 건너갔다가 해방이 된 뒤에 돌아왔습니다. 일터를 따라서 둘째 누나는 당진에 자리를 잡았고 나머지 가족들은 평양에서 살게 되었습니다. 그리고 한국전쟁이 터졌습니다. 그때 집사님은 13살이었습니다. 대동강 옆 개천에서 동무들과 놀고 있을 때, 총을 멘 군인들이 다가왔습니다. 국군 간호장교인 여군대위 하나와 카빈총을 든 남자 사병 서넛이었습니다. 여장교가, 너희 집이 어디냐고 물어 보는데, 자세히 보니 당진에 살던 둘째 누이였습니다. 당시 인민군 간호장교 소좌였던 셋째 누이는 인민군과 함께 후퇴하지 못하고 집에 숨어 있었습니다. 둘째 누이를 본 어머니는 인민군 누이를 장롱과 벽 사이 좁은 틈에 숨겼습니다. 어머니는 딸이 와서 반갑기도 했지만 한편 불안했던 것입니다. 서로 반가워하며 인사하던 중에, 숨어 있던 인민군 누이가 위험을 느끼고 뛰쳐나와서 국군 누이를 향해 권총을 겨눴습니다. 국군 누이 뒤에 서 있던 호위병들도 총을 겨누었습니다. 일촉즉발의 상황이었습니다. 형제들은 울면서 둘의 바짓가랑이를 잡고 말렸고, 어머니는 왜들 그러느냐고 통곡을 하면서, 절대 방아쇠 당기지 마라, 너희 중 한명이라도 죽으면 안 된다, 당장 총을 내려놓아라, 하며 말렸습니다. 이게 딱 우리 민족의 아픔이고 현실입니다. 한참 뒤, 국군 누이가 호위병들에게 총을 내려놓으라고 명령했고, 인민군 누이도 총을 내려놓았습니다. 부모님들의 중재로, 그날 일은 없었던 걸로 하고, 인민군 누이를 치마저고리 차림 그대로 쪽문으로 달아나게 했습니다. 그리고 나머지 식구들은 1.4후퇴 떼 남으로 내려왔습니다. 이때부터 이 집은 이산가족이 되었습니다. 한 어머니 몸에서 태어나 한 지붕 아래서 자란 자매가 어머니와 동생들과 이웃들 앞에서 서로 총을 겨누는 그런 나라에 우리가 살고 있습니다.

■ 이어짐

예수님 당시 이스라엘에서도, 남쪽의 유대사람들과 북쪽의 사마리아 사람들이 서로 원수처럼 여기며 살았습니다. 예수님께서 유대인 율법선생에게 해주신 선한 사마리아 사람 이야기가 그 내용입니다. 어떤 사람이 예루살렘에서 여리고로 내려가다가 강도들을 만났습니다. 강도들은 가진 것을 모조리 빼앗고 마구 두들겨서 반쯤 죽여 놓고 갔습니다. 마침 한 제사장이 그 길을 지나다가 그 사람을 봤지만 피해서 지나갔습니다. 얼마 뒤에 레위사람도 그냥 가버렸습니다. 그런데 어떤 사마리아 사람이 길을 가다가 그를 보고는, 즉시 상처에 기름과 포도주를 붓고 싸매어 주고는 자기 나귀에 태워 여관으로 데려가서 간호해 주었습니다. 제사장과 레위사람은 왜 죽어가는 사람을 보고 그냥 갔을까요? 율법에는 제사장이 피를 만져서는 안 된다고 했으니까, 난 바쁘니까, 사람들이 기다리니까… 등등의 핑계를 댈 수 있었을 것입니다. 오늘날 우리도 세상 곳곳에서 살려달라고 외치는 소리를 듣고 있습니다. 그 소리를 외면한 결과, 얼마나 많은 생명들이 죽었습니까? 뒤집어지는 배 안에서 애타게 죽어갔을 어린 학생들, 선임병들의 학대를 받으면서 이를 물고 죽어갔을 병사들, 무자비한 폭격을 맞아 영문도 모르고 죽어갔을 팔레스타인 민간인들…, 살려달라고, 살려달라고, 그들이 얼마나 간절하게 부르짖었겠습니까? 사마리아 사람은 유대인이 길가에 쓰러져 있는 것을 보고, 고놈 참 쌤통이다, 하면서 지나갔을 법도 했지만, 그렇게 하지 않았습니다. 평소에 자기들을 개처럼 취급하던 유대인이었지만, 돈이고 위험이고 따지지 않고 달려가서 그를 살렸습니다. 예수님은 율법선생에게 말씀하셨습니다. “가서, 너도 이와 같이 하여라!” 미운 놈, 고운 놈 가리지 말고 일단 사람부터 살려라, 이겁니다. 살인으로부터 시작된 인류 역사, 형제간임에도 불구하고 서로 충을 겨누며 살아야 하는 기막힌 현실, 이 문제를 바로잡기 위해서 필요한 것이 바로 사마리아 사람의 마음가짐입니다.

■ 맺는 이야기

남과 북은 원수가 아니라 원래부터 형제였고 지금도 형제입니다. 그런데 우리가 왜 서로 미워해야 합니까? 북한은 지금 정치, 경제적으로 매우 어렵습니다. 그런데도 그 사람들은, 굶어죽어도 자존심은 버리지 않겠다고 합니다. 남북관계를 풀어내는 데는 다른 거 필요 없습니다. 그들의 자존심을 세워주면 됩니다. 그게 뭐가 어렵습니까? 그러면 그걸 누가 해야 합니까? 형제인 우리가 해야지요. 묻지도 따지지도 말고 먼저 손을 내밀어서 잡아주라는 것이 하나님의 가르침입니다. 오늘 평화통일주일을 맞이해서, 우리가 남과 북, 북과 남의 평화통일을 위해서 더욱 간절하게 기도하며 그 일에 앞장설 수 있게 되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기원합니다.

(※ 2014.8.10 구미 한울교회 주일예배 말씀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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