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만유 위에 ,, 만유 가운데 계시다. 그리고 ,

이동원 (서울북노회,성광교회,목사) 2014-08-20 (수) 11:41 9년전 3732  
1. 만유 위에 ,, 만유 가운데 계시다. 그리고 ,
 
1. 성경을 기록한 사람들을 보면 놀랍다.
 
어떤 분은 문명의 발상지라고 하는 곳의 왕자적 위치에서 최고의 학문과 전술을 배우고 하루아침에 양을 치는 양치기의 삶을 살았고 그 후 수백 만명의 백성을 인도하였다. 인류역사상 이러한 경력을 가진 사람은 아마 없을 듯하다. 그의 자서전이 있었다면 많은 사람들이 읽고 배우고 각 분야에서 활용하고 성공을 위해 실천해 보려고 하였을 것이다. 그러나 그는 자서전 보다 비교할 수 없는 계시의 책들을 기록하였다.
 
어떤 이는 목동에서 왕이 되었다. 여러 번 죽음의 과정을 겪으며 왕이 되었다. 자수성가라고 할 수 있는가 신수성가라고 할 수 있는가. 물론 여기에서 말하는 신수성가는 기계적으로 모든 것을 하나님이 하셨다는 것이 아니라 그와 함께 하셔서 합력하여 이루셨다는 뜻이다, 인간을 기계로 사용하지 않으셨다. 그 자신 자수성가라는 말을 완전부정할 것이다, 그가 쓴 그러한 내용의 기록이 있다.
 
하나님으로부터 전무후무한 지혜를 약속받은 지혜자를 통해 주신 글이 있다.
그 외의 사람들의 글이 있는데 대학자 선견자 명철자라고 세상 사람들도 칭할 수 있는 비범한 사람들을 통하여 기록하였다. 또한 기준을 어디에 두느냐 하는 것이지만 평범한 보통의 사람들도 있다. 그러나 혹자가 말하기를 성경을 기록한 사람들이 학문적 수준이 높지는 않다라고 말하는 것은 일부분만 맞다.
 
신약의 기록자들도 대부분 직접보고 듣고 경험하고 이론과 실천으로 배운 사람들이다. 혹 직접 듣고 주목하지 못하였다고 하드래도 부활하신 주님으로부터 직접부름 받아 배우고 훈련받았다, 그 후 주신 내용을 기록한 것이다. 잘 준비시켜 갖추게 하시고 갖추어진 사람들을 통하여 쓰게 하신 것을 조금만 고찰하여 보아도 할 수 있다.
 
그들의 배움 경력 이력 지혜 체험등등이 가히 놀랍다. 그럼에도 자기의 무엇을 쓴 것이 아니라 계시의 말씀을 그리고 그들이 목도한 역사의 증거를 기록한 것이라는 것이다. 그러므로 성경은 지식 신앙 경험 견문등등이 넓게 성장하면 할수록 더 새롭게 보이는 것이다. 같은 말씀도 상황과 형편 수준 신앙성장에 따라서 새롭게 들리는 것이다. 즉 고전 명작도 경험과 견문등 어느 수준이 되어야 더 잘 이해하고 공감할 수 있는 것과 비슷한 점도 있다.
 
지금은 서구의 문화 문명이 앞선 것으로 알고 거기서 배우기도 하는데 서구에서 일반 인문학 계통의 학자 지식인들이 기독교를 비평하는 경우가 종종 있는 것을 보는데 거의 대부분이 성경을 잘 몰랐다고 본다. 단지 그 사회의 신앙적 분위기 또는 몇 번 읽어보고 다 아는 듯이 말하는 것으로 본다. 왜냐하면 자기 분야에서 두각을 나타내려면 그 분야 공부에 전념하였기 때문에 실제로는 성경을 잘 모르는 것이다. 성경을 집중적으로 읽지 않고 전문적으로 잘 알지 못하고 단지 기독교 그 문화에서 안다고 착각하는 것으로 본다.  이러한 정도에서 학문적 우월로 보고 그들을 따르고 인용하고 새로운 그 무엇을 배운 것으로 안다면 그렇게 잘 하는 것이라고 할 수는 없다.
 
그래 서구의 학자나 소위 저명인사가 기독교를 비평하면 대단한 것을 배운 것으로 알고 그것을 탁월한 학설로 알고 인용하는 것을 종종 볼 수 있다. 학문적 어떤 사대사주의가 아닌가 숙고하여 보아야 할 것이다. 지금은 외국사람의 어떤 글만 인용하는 그러한 때가 지났다고 본다. 정보화시대이다. 동서양의 인문학자들이라도 자기 분야의 전문가 이면서 성경까지 전문가가 되는 것은 나무에서 물고기 찾는 것 만큼 어렵다고 할 것이다. 사람은 다 한계가 있기 때문이다. 홀로 이것 저것 다 아는 사람은 극히 드믈다,
 
(서구에서 약간 저명한 무신론자적인 사람들이 기독교에 비평적인 언급한 것을 보고 크게 무게를 둘 것이 아니라는 것을 알았다. 한 때 그 때에는 우리보다 그들이 실력이 나은 줄로만 알았다,
소시적에는( in my early days) 나도 잘 몰랐기에 그렇게 유명한 분이 말하는 내용이니 종교에 대해서도 , 기독교도 성경도 잘 알고 말하는 것으로, 일단 받아들일 수 있지 않겠나 하였지만 그것이 아니었다. 인용하는 내용을 보니 그러하였다. 사람의 역량은 다 비슷한데 누군들 어떻게 모든 분야를 다 알겠느냐 하면 이해할 수 있을 것이다. 그래도 간혹은 단지 그 유명세에 굴복하기도 한다.
종교 기독교에 대하여선 소위 배웠다는 사람들도 겸손한 모습이어야 유한한 인생의 정직한 모습일 것이다. 물론 좀 비평적이고 튀는 말을 해야  어찌됐든 단시간에 유명해지는 점은 있다. 이러한 현상은 동서양의 어떤 영역에도 그리고 학문의 세계 종교계에도 없다고는 볼 수 없다. 그래서, 오도되지 않고 그래도 좀 더 유익을 얻도록 현인들은 먼저 잘 검증된 고전을 읽으라고 하기도 하는 것이었다.)
 
기독교 문화 또는 기독교가 국교이기도 하면 단지 그 분위기와 영향에서 성경을 다 잘 안다고 착각할 수 있다.
그러나 그들도 다 똑같은 사람이기에 자기 분야에 집중하여 인정을 받을 만 하다면 방대한 성서에 대하여는 집중할 수는 없었을 것이기에 성경을 다 잘 안다고 볼 수 없다는 것을 알고 받아들여야 할 것이다. 한편 그들의 언어 즉 영어를 유창하게 하여 듣고 말하고 디스커션의 과정을 충분히 가져야 하는 데 이 부분에서 동양인은 대부분 어느정도 언어소통의 한계가 있을 수도 있을 것이다.
 
그리이스를 방문하였을 때 의외로 그리고 놀랍게도 말씀 중심적 보다도 기독교적 여러 형상들을 유달리 중요시하는 분위기를 보고 여러 가지 느낀 바가 있다. 이것은 내가 생각했던 것과는 완전 달랐다. 이것은 무엇인가를 배울 수 있게 하였다. 이것이 바람직 하다고 생각하지 않았지만 역설적으로 얻은 바가 있었던 것이다,
신약성경은 희랍어 즉 그리이스어로 쓰여졌는데 그 본산지에서 그 본거지에서 ,,. 사실 그곳 방문 전에 어떤 중요한 무엇인가를 배우고 보기 위해서 였는데 아주 크게는 아니지만 가벼운 Impulse를 받았다. ( 이것을 어떤 충격이라고 하기엔 좀 과한 표현이고 의외의 놀라움이라고 표현하기도 그렇지만 그런 어떤 종류의 것이다. feel wonder, question, strange, marvel, marvelous,.그러나 나의 정신적인 판단과 견문을 넓게 하는데 중요한 그 무엇을 배운 것이다. )
 
하나님의 말씀에 대한 무엇인가를 더욱 확고하게 하기 위한 나의 열정도 있었던 그 시기에 신약성경을 그들의 언어로 쓴 그곳에 무엇인가를 깊게 찾는 기회로 생각하고 탐방 관찰 해 보려는 마음이 있었다. 이곳에서 출발할 즈음에 그것을 생각하고 있었다. 그런데 의외였던 것이다. 종교적 형상들이 많았다. 과거의 전통문화와 주위의 영향들이 있었겠고 그리고 시각적으로 보게 하는 긍정적 이유도 있겠지만 나로서는 상당히 의외라고 생각하였다.
신약성서를 원문으로 정확히 보기 위하여 심지어 밤을 세우며 헬라어를 공부하여 그 원어의 뜻을 정확히 알려 노력도 할 것인데 막상 그 언어를 모국어로 쓰는 그곳에서 오히려 보이는 신앙적 형상 중심의 문화를 보면 당연히 의아하게 생각할 수 있으며 역설적으로 무엇인가를 크게 배우고 느끼는 바가 클 수 밖에 없을 것이다.
 
 
<말씀묵상, 엡4:6)
 
하나님도 하나이시니 곧 만유의 아버지시라
만유 위에 계시고 만유를 통일하시고 만유 가운데 계시도다. (엡4:6)
 
1. 목회 초기의 어느 즈음에 주중에 구약의 처음 부터 강해하기로 하고 시작하였다. 그것은 성경의 앞부분이었고 또 신약은 어느정도 잘 아는 것으로 생각하였기 때문이다.
 
나 자신에게도 배우고 얻은 바가 많았고 그때까지 많이 읽지 않았던 역사서를 준비할 때에도 새롭게 많은 것을 배우고 깨달았다. 어떤 때는 여한이 없다 할 정도로 새로운 배움과 감동을 받았다. 지금까지 몰랐던 이렇게 귀한 내용들이 성경에 있었구나 하였다.이러한 내용이 세상의 어떤 그 무엇이라면 많은 노력으로 어렵게 배우고 깨달은 것을 쉽게 말하기도 아까울 것이라고 생각할 때도 있었다.
 
언젠가 엡4:6절을 읽었다.
여러 번 읽은 말씀이다. 다시 읽다가 그런데 여기 통일이라는 뜻이 무엇을 말하지, 왜 갑자기 통일이라는 단어가 여기 이 구절에서 쓰였지,, 좀 생각하는 중에 영어성경을 보았다 through,, 아 그렇구나.
 
만유를 관통하시다.
( 학문을 많이 한 사람의 표현이다. 학문적 철학적 표현이라고도 볼 수 있다. 바울의 서신을 보면 많은 학문을 한 사람 만이 표현할 수 있는 단어들을 자주 본다. 많고 긴 내용을 간단하게 표현하다. 과연 이 한 가지 점에서도 예수님께서 이스라엘과 임금들과 이방인들의 사도로 부르실 만한 그릇임을 알 수 있다. 
my chosen instrument to carry my name. / a chosen vessel of Mine .)
 
이 구절은 여러 번 읽었고 들은 어느 정도 익숙한 말씀이다.
그런데 여기에 이 구절에 통일이라는 말이 무엇이지 왜 갑자기 통일이라는 말이 나오지 하는 생각과 함께 영어 성경을 보았다. through all.
 
아, 만유를 통과하시는 하나님.
아,,. 만유를 관통하시는 하나님,
 
이것은 성서에서의 간결하면서도 깊은 표현임을 알 수 있다. 많은 학문을 한 사람의 철학적 표현같기도 하다. 짧은 문장이지만 대단히 깊고 많은 내용이 함축된 표현인 것을 알 수 있다. 얼마나 큰 힘이 되는 말씀인가,
 
하나님은 하나님의 말씀은 온 우주 위에 우주 안에 특별히 믿는 사람들의 심령 안에 계시지만
 
그 하나님은 온 우주를 관통하신다는 것이다. 다른 말로 흐르신다는 것이다,
그 하나님의 말씀은 온 우주를 흐르시고 믿는 자의 몸 안에 관통하시고 흐르시는 것이다.
 
하나님은 만유를 관통하신다고 하셨다.
그의 말씀으로 흐르시는 것이다. 그의 생명의 성령과 함께 우리 안에 흐르는 것이다.
우리의 심령을 관통하며 육체를 사지백체 오장육부 관절과 골수를 관통하는 것이다.
우리의 영 혼 마음에 흐르고 육체의 사지백체 오장육부 혈관과 세포에 흐르는 것이다.
 
이것은 강하게 갑자기 느낄 수 도 있고 거의 느끼지 못할 수도 있다.
그러기에 진지하게 쎈시티브하게 보아야 한다. 외적으로 보이는 것은 잘 알 수 있지만 내적으로 나타나는 것도 쎈시티브 하게 잘 보아야 한다. 예를 들면 비의 물은 소나기에서 잘 볼 수 있지만 공기 속에도 물은 있는 것이다. 그러나 누구나 공기를 공기 속의 물을 보기는 쉽지 않다.
 
( 간혹 예배 중 기도 중 말씀을 듣는 중에 전류 같은 것이갑자기 강하게 머리 끝에서 발끝으로 몸에 흐르며 어떤 무엇이 치료되었다는 간증을 직간접으로 누구나 한 두 번 이상은 들었을 것이다. 예를들면 그것이다. 바로 그러한 경험을 통해서 잘 알 수 있다. 그러나 그렇게 누구나 알 수 있게 볼 수 있게 나타나지 않아도 그 말씀대로 지금도 관통하고 흐르는 것이다. 외적으로 쉽게 볼 수도 있고 잘 볼 수도 느낄 수도 없는 경우도 있을 것이다.
 
내적으로도 관통하고 흐르는 것은 물론이다. 그러므로 자신의 내적 상태를 잘 주의 깊게 관찰하여 보면 자기 자신이 알 수 있을 것이다. 하나님이 말씀으로 그의 성령으로 관통하고 흐르고 계심을 알 수 있을 것이다.
물론 믿음의 마음의 문을 열어야 가능하다. 댐의 수문을 막으면 물이 흐를 수 없다. 혹 홍수 범람으로 둑 넘어 흘러넘치는 수는 있을지 모르나 흐를 수 가 없다. 영적 세계도 마찬가지이다.
 
2. 예수님이 제자들을 가르치실 때
산위에서 풍랑의 바다에서 아름다운 자연 속에서 가르치셨음은 의미 깊을 뿐 아니라 우리 예수님은 참 멋지게 가르치신 분이심을 알 수 있다.
갈릴리호수 아름다운 들판 산 공중의 새 들의 백합 포도나무 과실 다 하나님이 창조하시고 먹이시고 입히시고 운영 경영하시다. 그 곳에서 그렇게 가르치시고 교육하시고 훈련시키셨다.
자연도 하나님이 창조하셨기에 자연을 믿음의 눈으로 보면 영적 교훈과 증거로 가득차서 잘 배울 수 있다.
 
(오늘의 교육도 자연에서 사람들 관계에서 실천적으로 배워 영적 교훈 배우며 함께 사랑하며 살아가는 교육이 되어야 할 것이다. 입시와 시험과 부귀 영화 소유 출세 등등의 목적을 향한 극한 생존 경쟁 교육은 사람이 사랑하며 살아가는데 바람직한 것인가 고찰해 보아야 할 것이다. 이 땅에서의 생은 제한되어 있기도 한데 그렇다.)
 
하나님은 만유 위에 계시고 만유를 관통하시고(through) 만유 가운데 계시다고 하였다,
through, 이것이 중요하다. 만유를 관통하신다는 것이다. 하나님은 만유 위에 계시다. 전능한 초월자로 계신다.
만유 안에 계신다. 시간과 공간 안에 계신다. 믿는 사람 안에 계실 수 있고 계신다. 또한 만유를 관통하신다.
  
그 하나님의 말씀으로  그 능력으로 믿는자에게  관통하심은 감각적으로 크게 느끼게 나타나기도 하고 자신은 깨닫지 못해도 관통하고 흐르는 것이다. 관통하고 흐르는 것을 본인이 깨닫지 못할 수 있다. 관통하고 흐르고 있음에도 모를 수 있다. 대부분 조용하게 흐르기 때문이다. 사무엘을 세번이나 부르셨는데 엘리 제사장이 부른 줄 알고 부를 때마다 엘리 제사장에게 달려갔다.)
 
자연의 강에서 조용하게 흐르는 물은 정지하고 있는 것 같이 보인다. 잘 보아야 흐는 것을 알 수 있다.
영적세계에도 마찬가지이다.
 
                                                                                      < 성광교회 이동원 목사 드림>
 
 
=. meditation.
1. 만유를 관통하시다.
(엡4:6.)
one God and Father of all, who is above all, and through all, and in you all./
one God and Father of all, who is over all and through all and in all.
 
1. 주님이 주신 말씀들이 영이요 생명이시다,
(요6:63)
The Spirit gives life; the flesh counts for nothing. The words I have spoken to you are spirit and they are life.
 
1. 성령을 비유적으로 어떻게 표현하셨는가 보자.
(요7:37-39)
On the last and greatest day of the Feast, Jesus stood and said in a loud voice, "If anyone is thirsty, let him come to me and drink./ Whoever believes in me, as the Scripture has said, streams of living water will flow from within him."/ By this he meant the Spirit, whom those who believed in him were later to receive. Up to that time the Spirit had not been given, since Jesus had not yet been glorified.
 
1. 가능하면 다음을 찾아보자.
말씀을 받을 때,
(살전2:13)
And we also thank God continually because, when you received the word of God, which you heard from us, you accepted it not as the word of men, but as it actually is, the word of God, which is at work in you who believe.
 
1. 말씀과 화합 일치 될 때,. ( combine , being mixed)
혼과 영과 및 관절과 골수를 찔러 쪼개기까지 하며 , 마음의 생각과 뜻을 감찰하시는 ,.
(히4:2 ,13)
For we also have had the gospel preached to us, just as they did; but the message they heard was of no value to them, because those who heard did not combine it with faith.(4:2)
For indeed the gospel was preached to us as well as to them; but the word which they heard did not profit them, not being mixed with faith in those who heard it.(4:2)
 
For the word of God is living and active. Sharper than any double-edged sword, it penetrates even to dividing soul and spirit, joints and marrow; it judges the thoughts and attitudes of the heart.(히4:12)
 
1.사랑하는 라오디아교회에게 이 복되고 귀한 말씀을 주셨다.
라오디게아 교회는 칭찬은 없고 책망만 있다, 책망도 사랑하시기 때문이다. 사랑하여 주시는 말씀인 것이다.  교회는 건물이 아니라 사람이다. 교회당 건물에게 주시는 말씀이 아니라 교인인 사람에게 주시는 말씀이다. 그렇다면 교인인 나에게 주시는 말씀인 것이다.
오늘 나에게 주시는 말씀이다. 
(계3:19-20)
Those whom I love I rebuke and discipline. So be earnest, and repent /
 
Here I am! I stand at the door and knock.
If anyone hears my voice and opens the door, I will come in and eat with him, and he with me.
 
                                                                                  < The grace of the Lord be with you. 

hi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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