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거룩한 사람들

전대환 (경북노회,한울교회,목사) 2014-08-31 (일) 17:16 9년전 3293  

거룩한 사람들


■ 성서 본문

그 날이 오면, 주님께서 돋게 하신 싹이
아름다워지고 영화롭게 될 것이며,
이스라엘 안에 살아 남은 사람들에게는,
그 땅의 열매가 자랑거리가 되고 영광이 될 것이다.
3또한 그 때에는, 시온에 남아 있는 사람들,
예루살렘에 머물러 있는 사람들,
곧 예루살렘에 살아 있다고 명단에 기록된 사람들은
모두 ‘거룩하다’고 일컬어질 것이다.

<이사야서 4:2-3>

■ 들어가는 이야기

오늘이 8월의 마지막 날이니까 올해도 벌써 3분의 2가 지나갔습니다. 뜨거운 여름 동안 어려운 여건 속에서도 땀 흘리며 애쓰신 여러분 모두에게, 성령님께서 신선하고 맑은 기운을 듬뿍 내려주시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복하며 기원합니다. 우리 민족뿐만 아니라 세계적으로도 가장 많이 알려져 있는 우리 노래가 ‘아리랑’이지요. 이 노래의 결론은 “나를 버리고 가시는 임은 십리도 못 가서 발병 난다!”입니다. 사람에게 이별이란 무서운 것입니다. 그냥 헤어지는 것도 아픔이지만, 만일 상대가 나를 배신하고 떠나간다면, 그것은 아픔 가운데서도 견딜 수 없는 아픔입니다. 이런 아픔을 예수님도 겪었고, 바울도 겪었고, 오늘 우리도 겪고 있습니다.

■ 비뚤어진 세대

예수님께서 5천 명을 먹이셨던 일을 기억하실 겁니다. 광야에서, 배고파하는 사람들을 5천 명이나 배불리 먹이셨으니, 아마도 그때 여론조사를 했더라면 지지율이 99%는 나왔을 겁니다. 이때 사람들이 이렇게 예수님을 칭송했습니다. “이분은 참으로 세상에 오시기로 된 그 예언자이다”(요한복음서 6:14). 그래서 사람들이 예수님을 모셔다가 왕으로 삼으려고까지 했습니다(요한복음서 6:15). 그러나 예수님은 환호하는 사람들이 부담스러웠습니다. 우리 같으면 공치사 듣기를 기뻐했겠지만, 예수님은 그렇지 않았습니다. 오히려 혼자 산으로 물러가셨습니다. 다음날, 예수님이 없어진 것을 알고, 사람들이 다시 예수님을 찾았습니다. 배를 타고 몰려다니다가 겨우 예수님을 찾아내었습니다. 예수님께서 그들에게 말씀하셨습니다. “너희가 나를 찾는 것은 표징을 보았기 때문이 아니라, 빵을 먹고 배가 불렀기 때문이다. 너희는 썩어 없어질 양식을 얻으려고 일하지 말고, 영생에 이르도록 남아 있을 양식을 얻으려고 일하여라”(요한복음서 6:26-27). 예수님께서 사람들에게 주시고 싶었던 것은 ‘썩어 없어질 양식’이 아니라, ‘생명의 양식’이었습니다. 그런데 사람들은 ‘생명의 양식’에는 별로 관심이 없습니다. 우선 먹고 배부를 수 있는 ‘육의 양식’만 좋아했습니다. 그러니 얼마나 갑갑하셨겠습니까? 그래서 다시 설명을 해주셨습니다. ‘여러분들은 어제 빵을 먹었지요? 그러나 그것은 썩어 없어질 것입니다. 이제부터는 생명의 빵, 곧 내 살을 먹고 내 피를 마셔야 합니다.’ 이때부터 사람들이 헷갈리기 시작했습니다. 기적을 펑펑 베풀어서, 배도 부르게 해주고, 왕이 되어서 경제도 살려주면 좋겠는데 엉뚱한 말씀만 계속 하시니, 짜증이 난 겁니다. 예수님께서, ‘이제는 내 살을 먹고 내 피를 마셔야 한다’고 하신 것은, 예수님과 한 몸이 되어, 예수님처럼 살아라, 이 말입니다.

■ 떠나는 사람들

예나 지금이나 대중의 요구는 등 따시고 배부른 것입니다. 어떻게 살아야 할 것인가, 정의가 무엇인가, 진리가 무엇인가, 이런 것에는 별로 관심이 없습니다. 예수님 옆에 구름떼처럼 몰려들었던 사람들도 마찬가지였습니다. 사람들이야 그렇다고 치더라도, 문제는 제자들까지 그랬다는 것입니다. 6장 60절에 보면 제자들이 이렇게 수군거렸다고 했습니다. “이 말씀이 이렇게 어려우니 누가 알아들을 수 있겠는가?” 그냥 먹을 거나 주고, 재미있는 이야기나 해주면 좋은데, 왜 그런 골 아픈 이야기만 하시느냐, 이런 불만이었습니다. 예수님에 대한 지지율이 곤두박질 쳤습니다. 주변에 있던 사람들이 다 떠나갔습니다. 제자 열두 명만 남았습니다. 예수님께서 그들에게 말씀하셨습니다. “너희까지도 떠나가려 하느냐?”(요한복음서 6:67). 오죽 답답하셨으면 예수님께서 이런 말씀까지 하셨겠습니까? 다행히 베드로가 대답했습니다. “주님, 우리가 누구에게로 가겠습니까? 선생님께는 영생의 말씀이 있습니다”(요한복음서 6:68-69). ‘쓰면 뱉고 달면 삼킨다!’ 하지요. 예수님께 몰려들었던 사람들이 그랬습니다. 먹을 것 줄 때는 좋아하다가, 생명을 이야기하고, 도리를 이야기하자 미련 없이 떠나가 버렸습니다. 더 이상 얻어먹을 것이 없다는 것이겠지요. 여기에 예수님의 고뇌가 있습니다. 예수님의 복음을 전하려고 불철주야 애썼던 바울도 이런 고독을 맛보았습니다. 사도 바울이 말년에는 로마에서 감금되어 살았습니다. 이때 사랑하는 제자 디모데에게 편지를 씁니다. 용건을 말한 다음, 디모데후서 마지막 부분에 이런 말을 합니다. “그대는 속히 나에게로 오십시오. 데마는 이 세상을 사랑해서 나를 버리고 데살로니가로 가고, 그레스게는 갈라디아로 가고, 디도는 달마디아로 가고, 누가만 나와 함께 있습니다.”

■ 끝까지 남기

데마라고 하는 사람은 바울이 잘 나갈 때, 바울과 함께 다니며 선교를 했던 사람입니다. 누가, 마가 등과 함께 바울의 측근에 속했던 사람이었습니다. 그런데 바울이 늙고, 병들고, 갇힌 신세가 되자, “이 세상을 사랑해서” 바울을 버리고 떠나버렸습니다. ‘나를 버리고 가신 임’이 되었습니다. 주님의 일을 위해서 한평생 몸 바쳤던 바울이 말년이 이랬습니다. 다 떠나고 누가만 남았습니다. 이 누가가 누구입니까? 예수님의 일생인 누가복음을 기록했고, 그 예수님의 복음이 전파되는 과정인 사도행전을 기록한 사람입니다. 모두들 다 떠났지만, 홀로 끝까지 바울 곁에 남아서 위대한 역작을 남겼습니다. 정말 대단한 분입니다. 이사야가 살던 시대도 망가질 대로 망가져 있었습니다. 이사야의 한탄이 5:8에 나옵니다. “너희가, 더 차지할 곳이 없을 때까지, 집에 집을 더하고, 밭에 밭을 늘려 나가, 땅 한가운데서 홀로 살려고 하였으니, 너희에게 재앙이 닥친다!” 부자들이 이렇게 타락해 있는데, 일반 백성들도 그런 부조리를 고칠 생각은 하지 않고 그들의 장단에 춤을 추면서 떡고물이나 떨어지기를 바라고 있습니다. 그러나 세상이 이렇게 썩어문드러져도 그 가운데서 그루터기가 되는 몇 사람은 남아 있을 것이라고 말합니다. 그 사람들이 정의가 강물처럼 흐르는 새 시대를 열게 될 것입니다. 4:3입니다. “또한 그 때에는, 시온에 남아 있는 사람들, 예루살렘에 머물러 있는 사람들, 곧 예루살렘에 살아 있다고 명단에 기록된 사람들은 모두 ‘거룩하다’고 일컬어질 것이다.” 살아남은 사람들, 곧 생존자 명단에 오른 사람들이 ‘거룩하다’고 일컬어질 것이라는 말씀입니다.

■ 맺는 이야기

더 얻어먹을 것이 없다고 생각하고 사람들이 떠났을 때, 끝까지 예수님 곁에 남은 ‘생존자’는 열두 제자였습니다. 바울이 늙고 쇠약해져서 같이 일하던 사람들은 다 떠났을 때 끝까지 바울 곁에 남은 ‘생존자’는 누가와 디모데와 마가였습니다. 예수님의 이름을 부르는 사람이라고 해서 다 예수님의 제자는 아닙니다. 교회에 다닌다고 해서 다 신앙인은 아닙니다. 우리나라의 수백만 교인 가운데서 ‘빵을 얻어먹으러’ 모인 사람 말고, 예수의 도를 따르려는 사람은 몇 사람 안 됩니다. 진정한 신앙인은 끝까지 살아남아서 예수님의 뜻을 전파하고 세상에 펼치는 사람입니다. 저와 여러분은 악의 세력과 타협하지 않고 끝까지 살아남아서 예수님을 지켜드리는 ‘거룩한 성도’들이 되시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간절히 바랍니다.

(※ 2014.8.31 구미 한울교회 주일예배 말씀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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