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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보다 큰 일도 하리라

이동원 (서울북노회,성광교회,목사) 2014-10-01 (수) 10:21 9년전 5978  
어떤 목회 선배님이 군대 훈련소 시절의 식사 시간에 눈을 감고 간절히 기도하고 나니 밥그릇이 바뀌었다는 것이다. 아니 밥그릇이 바뀌었다든가 밥이 줄었다든가 하였다는 것이다. 그래서 그 후로 부터는 밥그릇을 붙잡고 기도하였다는 것이다. 지금보다 훨씬 더 궁핍하였던 그 시대의 이야기이다. 군대 훈련소에서 식사를 앞에두고 기도하는 자세는 신실한 모습이다.
그런데 이러한 식사의 이동 사건이 있을 경우에는 한 두번은 눈을 뜨고 기도하여도 무방할 듯싶다. 어떠한 일상의 상황에서도 기도하는 것는 신실한 신앙인의 당연한 자세이다.
 
( 창 24:45)
위의 본문은 아브라함의 하인이 그 주인 아브라함의 고향에서 그 아들 이삭의 아내를 선택하기 위하여 행한 과정이다. 우물가에 온 한 젊은 여인이 과연 이삭의 아내감인가 자신으로서는 알 수 없는데 하나님께 묵도하는 즉 묵상 기도하는 장면이다. 이 하인은 그 주인 믿는 자들의 조상 아브라함의 종답게 그도 믿음의 사람인 것을 알 수 있다. 또한 어떠한 일상사에서도 중요한 판단과 결정의 순간에 먼저 잠간 기도하는 그의 모습은 많은 믿는 자에게 교훈을 주는 배울 만한 자세이다. 모든 일상사 또는 인생사의 중요한 일들 앞에 잠깐 묵도 즉 묵상기도하였다는 것이다.
그런데 이 부분을 개정에는 '마음속으로 말하였다였다'고 하였다. 왜 이렇게 수정하였는지 알 수가 없다. 그리고 마음속으로 말하는 모든 것이 기도는 아닌 것이다. 여기에서는 마음으로 생각한 것 그 이상의 기도한 것이다,
 
 그래서 영어 성경에도 prayer(기도)라는 단어를 쓴 것이다.
( 그리고 이 앞 부분은 잘 읽지 않으면 한국어 성경에는 따옴표가 없어 어디까지가 이 여인의 오라버니의 말이고 아브라함의 종의 행동인지 구분하기가 어렵다. 쉽게 해야할 개정은 더 어렵게 하였다. 단어가 더 어려운 것이 아니라 이 내용을 분명히 이해하고 소화하여 알 수 있게 번역하여야 하는데 집중하여 반복하여 숙고하지 않으면 내용을 정확히 이해하기가 그렇게 쉽지 않다.
그러나 묵상기도의 묵도라는 말은 잘 표현한 것이었는데 마음속으로 말하다라는 단어로 수정하여 전체 내용을 더욱 어렵게 하였다. 내용이 앞 부분과 구분하기가 쉽지 않다.
그럼에도 우물가에서 아브라함의 종의 묵도 묵상기도가 내용을 선명하게 하고 교훈을 주는데 과연 수정 번역자 분들이 그 위의 내용을 잘 이해하고 이렇게 번역하였는지 궁금할 정도이다.
묵도 묵상기도 하면 잘 알 수 있는 내용을 왜 마음속으로 말하기를 마치기도 전으로 수정하였는지 이유를 알 수가 없다. 마음속으로 말하는 것은 다 기도라고 할 수는 없는 것이다. 정 수정하려면 마음속으로 기도하기를 마치기도 전에 라고 하였어야 하였다. 아니 묵도라고 하는 것 그대로 두었으면 좋았다.)
 
아브라함 하인의 우물가에서의 묵도는 우리의 삶의 모든 현장에서 어떤 선택과 판단 앞에 자주 묵도 묵상기도를 드리고 하나님의 도움을 구하고 기다리는 것 이것은 모든 교인들이 배울만한 인상적인 모습이다.
 
이것은 모든 성도에게 큰 도전을 준다.
우리의 삶의 현장에서 중요한 결정의 어떤 순간에도 잠시 묵상기도를 해야 하는 것을 배울 수 있다.
 
1. 그런데 왜 이렇게 수정하였는지, (창24:45)
내가 묵도하기를 마치지 못하여,(개역)
내가 마음속으로 말하기를 마치기도 전에, (개정)
"Before I finished praying in my heart, Rebekah came out, with her jar on her shoulder.
She went down to the spring and drew water, and I said to her, 'Please give me a drink.'(창24:45)
 
( 이 장면은 아브라함의 종이 이삭의 아내를 선택하기 위하여 우물가에서 잠시 묵상기도 한 장면이다. 거기서 서서 소리 내어 기도할 수 있는 상황이 아니다. 눈을 감고 하였는지는 모르나 잠시 묵상기도를 한 것이다, 그러므로 개역은 묵도라고 하였다. 우물가에서 짧지만 진지하고 간절한 모습을 본다.
(언젠가 어떤 그룹에서 성경 공부를 하면서 이 구절을 읽고 함께 대단한 도전을 받을 수 있었던 내용인데 , 쉽게 한다고 하면 ' 내가 마음 속으로 기도하기를 마치지' 못하여 라고 번역하였어야 할 것이다.
 
이 주인의 아들의 아내를 선택하는 이 귀중한 일을 위해 우물가에서 짧은 시간에라도 묵상기도를 진지하게 하였다는 것인데, 마음 속으로 말하기를 마치기도 전에,이것은 믿지 않는 사람들도 기도가 아니라도 마음 속으로 생각은 하는 것이다.)
 
2. 이보다 큰 일도 하리니
(요14:12)
이보다 큰 것도 하리니(개역)
그보다 큰 일도 하리니 (개정)
 
주님보다 더 큰 일을 행할 수 있다는 말이 아니라 주님이 행하신 일보다 더 큰 일도 할 수 있다는 엄청난 약속을 주셨다. 왜냐하면 주님께서 그의 보혜사 성령으로 믿는 자 안에 계시고 함께 역사하시기 때문이다.
그러므로 주님이 하신 이러한 일들보다 큰 일을 할 수도 있다는 약속을 해 주셨다.
 
그보다 이면 그를 인칭으로 이해할 수 있는데 그것이 아니고 그가 하신일보다 큰일도 하리라는 것인데 그것은 이제 주님께서 그의 성령으로 오셔서 동일하게 함께 역사하시기 때문이다.
 
( 그도 할 것이요 ,, 그보다 큰 일도 하리니,, 여기에 그라는 단어가 두 번이나 나온다.
그보다 큰 일의 ‘그’가 누구인지 무엇인지,, 누구나 이 그보다를 인칭으로 알기 쉽다. 그렇다면 이것은 절대적으로 틀린 것이다.
이 내용은 예수님께서 지상에서의 마지막 즉 죽으시기 전 날 밤에 제자들에게 하시는 말씀으로 담대함을 주시는 말씀이다. 그 내용은 예수님께서 하신 이러한 일 보다 큰 것도 할 수 있다는 말씀이다. 그것은 예수님께서 십자가에 대속의 죽으심을 죽으시고 예수님께서 육신으로가 아니라 이제 그의 성령으로 오셔서 함께 하시고 역사하시기에 주님의 함께하심으로 주님이 하신 일보다 큰 일도 할 수 있다는 내용으로 큰 용기를 주시는 말씀이다. 그러나 그보다로 하면 인칭으로 알기 쉽고 주님보다 더 큰 일을 할 수 있다는 뜻으로 이해할 수 도 있다. 혹 그렇게 알고 수정 번역하지는 않았을 것이지만 말이다. 이것은 있을 수 없는 일이다. 그런데 왜 이렇게 수정 을 하였는지 수정번역자 외에는 알 수가 없을 것이다.)
 
(요14:12)
(개역)
,, 나를 믿는 자는 나의 하는 일을 저도 할 것이요 또한 이보다 큰 것도 하리니 이는 내가 아버지께로 감이니라.
(개정)
,, 나를 믿는 자는 내가 하는 일을 그도 할 것이요 또한 그보다 큰 일도 하리니 이는 내가 아버지께로 감이라.
 
I tell you the truth, anyone who has faith in me will do what I have been doing. He will do even greater things than these, because I am going to the Father. (14:12)
 
여기서 그보다의  그는 인칭이 아니다. 그런데 인칭으로 오해할 수도 있다, 그렇다면 전혀 다르고 있을 수도 없는 것이다, 주님이 대속의 죽음을 죽으시고 그의 성령으로 오셔서 함께하시기에 이러한 일보다 더 큰 일도 할 수 있다는 것이다. 그러므로 성도는 능력성도가 될 수 있고 목회자는 능력목회를 할 수 있는 것이다, 믿음으로 화합하고 합심하면 그 역사는 상상을 초월한다.
요14:-16:은 예수님께서 지상에서의 마지막 날 전날 밤에 주신 말씀이다. 두려워하는 제자들에게 이제 세상을 떠나가는 것을 말씀하시면서 최대의 선물을 약속하신다, 그리고 이것은 다 이루어졌고 지금도 이제 주님이 하신 일보다 더 큰 일을 할 수 있다고 알 수 있고 믿을 수 있다. 주님이 그의 영으로 오셔서 함께 일하시기 때문이다.그러므로 믿는자는 능력의 성도 능력의 목회자가 될 수 있는 것이다. (요16:7)
  
                                                                               능력 성도 능력 목회를 기대하며
                                                                                       성광교회 이동원 목사드림
 
                                                                                                                                 
=. 자세히 읽어보라. (사34:16)
 
1. '자세히' ,, 개역의 번역을 높이 평가하지 않을 수 없다.
원문에 따로 자세히라는 단어가 없다고 하여도 원문의 '보라'라는 단어에 그 뜻이 들어있다.  '보라'라는 원문의단어에 추적하다 조사하다 즉 가장 진지하게 탐구하여 보라는 뜻이 담겨 있는 것이다. 영어 성경에도 자세히라는 단어가 따로 없다. 그러나 그 단어 자체에 그 뜻이 들어 있다. 원문 역시 그렇다.
 
그러므로  개역은 그 단어의 뜻을 잘 번역한 것이다. 필자는 개역 성경이 잘 번역 되었고 극히 드믈지만 간혹은 영어 성경보다 더 정확하게 번역한 부분도 있는 것을 본다.  이러한 번역의 내용을 보면 성경 전체의 번역 자세를 볼 수 있다. 전적으로 신뢰할 수 있고 또한 사실이 그렇다.
 
성경은 하나님의 감동으로 썼다고 하였다. 그러므로 읽는 자에게 많은 생명역사를 줄 것이다, 그러므로 원어를 볼 수 없다하여도 거의 완벽하게 번역하도록 최선을 다하여야 한다.
신학을 공부하는 중에 고등비평학을 배우기도 하는데 하나의 과정으로 더욱 확고하게 하기 위해서 배우는 것이지 그것이 가장 가치 있다고 할 수 없다. 창조의 세계를 보면 고등수학으로 만드는 것은 고사하고 설계라도 하겠는가, 무한수학이 있다면 그것은 혹 가능할 지 모르겠다. 불가능하다는 것이다. 하나님의 계시의 말씀을 어찌 고등수학 고등과학으로 다 해석이 가능하겠는가,,
 
1. 말씀 그대로 이어야 한다.
( 신4:2, 12:32)
성령의 역사로 성경이 하나님의 말씀을 증명한다. 또한 성경이 성경을 증명한다 . 그 짝이 있다고 하셨다. 사람의 말도 잠시 들어보면 진실인지 아닌지 어느 정도 알 수 있다. 긴 역사에 방대한 내용이 진실이 아니면 자체적으로 드러난다. 그리고 성경의 내용들이 서로 맞지 않을 것이다.
 
성경은 성경 자체가 진실성을 증명한다. 성령의 감동으로 깨닫고 성경 자체가 확증한다. 성경은 서로 연결되어 인용하고 서로를 확증하여주고 증명하여 준다.
이것을 그 짝이 있다는 표현으로 이해한다. 그러므로 어느 한 부분을 잘못 번역하거나 의역하여 버리면 짝이 안 맞을 수 있다. 그러면 전체 이해에 혼돈이 올 수 있는 것이다. 그러므로 자신이 이해 못한다 할지라도 그대로 두어야 할 부분도 있는 것이다. 자기의 주관적 해석이나 입장으로 한 부분을 부족하게 수정하면 오히려 전체와 연결이 안될 수 있다. 성경은 전체가 연결이 되고 인용 증명 확증하기 때문이다. 그러므로 어느 것을 빼면 서로 연결 되어 있기에 결국엔 가죽 아니면 비니루만 남을 것이다.
 
1. 여호와의 책을 자세히 읽어보라.
(사34:16)
너희는 여호와의 책을 자세히 읽어 보라 이것들이 하나도 빠진 것이 없고 하나도 그 짝이 없는 것이 없으리니 이는 여호와의 입이 이를 명하셨고 그의 신이 이것들을 모으셨음이라 (개역)
 
너희는 여호와의 책에서 찾아 읽어 보라 이것들 가운데서 빠진 것이 하나도 없고 제 짝이 없는 것이 없으리니 이는 여호와의 입이 이를 명령하셨고 그의 영이 이것들을 모으셨음이라 (개정)
 
"Search from the book of the LORD, and read: Not one of these shall fail; Not one shall lack her mate. For My mouth has commanded it, and His Spirit has gathered them.(nkj)
 
Look in the scroll of the LORD and read: None of these will be missing, not one will lack her mate. For it is his mouth that has given the order, and his Spirit will gather them together. (niv)
 
Seek from the book of the LORD, and read: Not one of these will be missing; None will lack its mate. For His mouth has commanded, And His Spirit has gathered them. (nasb)
 
Search the book of the Lord, and see what he will do, He will not miss a single detail. Not one of these birds and animails will be missing, and none will lack a mate, For the Lord has promised this. His Spirit will make it all come true. (nlt)
 
* 원, 다라쉬 : 조사하다, 함축적으로 ‘찾다’,  확실히 찾기 위해서 찾다.
                    search, to seek with care, seek, require, to consult, enquire of,
* search : (책 따위)를 자세히 살피다. 을 찾다. 탐색하다. 수색하다, 조사하다(investigate). 정밀조사하다.
  개정의 찾아 읽어보라는 좀 막연한 표현이다. 어느 부분 무엇을 찾아 읽어보라는 것인지 분명치 않다.
다시, 최초 번역도 아닌데 왜 이미 잘 번역된 최상의 번역을 이렇게 수정하였느냐는 것이다.
자세히 읽어보라  더욱 적절하고 선명한 번역이다.
 
(그런데 개정은 왜 자세히 라는 단어를 빼 버렸을까요.
영어 성경에 보면 독자적으로 자세히라는 단어는 있지 않다, 그러나 그 단어에 내용적으로 있다. 원문에도 자세히라는 단어가 따로 있지는 않다. 그러나 원문의 찾아 라는 단어에 자세히가 포함되어 있다.
그러므로 개역성경을 잘 번역하였다고 많은 사람들과 필자는 높이 평가 한 것이다.)
 
(그리고 이 자세히라는 단어는 대단히 마음에 와 닿는 중요한 표현이다. 적지 않는 사람들이 성경의 믿을 수 없는 놀라운 일들 앞에 과연 그러한 일들이 있을 수 있을까 한다. 인간의 이성으로는 믿을 수 없는 일들도 있다. 많은 약속들도 있다.
그런데 성경을 진지하게 탐구하며 읽어 보면 말씀이 말씀을 확증하여 준다. 어떤 놀라운 약속을 인용하고 설명하므로 그 약속을 성경 안에서 입증하고 있다. 또 사실이 이루어졌음을 그 다음의 시대에 이루어진 역사적 사실을 통해서 그 약속을 인용하여 증거하고 있다. 그런데 단어가 어렵다고 또는 개인의 주관으로 단어를 쉽게 한다고 바꾸어 버리거나 내용을 쉽게 한다고 의역을 하는 경우 그 짝이 맞지 않게 될 수도 있다. 가능하면 원문을 그대로 두어야 짝이 딱딱 잘 맞는 것이다.)
 
그래서 성경이 성경를 해석하고 확증하고 그 사실성를 증명한다고 하는 것이다. 물론 성령의 감동을 통해서 그 말씀을 살아있는 말씀으로 생생하게 살아있는 말씀으로 생명력을 감동을 주고 좋은 의미로 우리의 마음과 영혼을 움직이고 동하게 하고 휘 젖기도(stir)하는 것이다.
말씀을 전하는 자와 듣는 자들이 이러한 마음의 자세를갖고 믿음으로 아멘하며 화합(combine) 할 때 생명의 능력역사 있을 수 밖에 없다.
이러므로 수많은 사람들이 성경을 읽고 영혼의 감동을 받고 생명역사가 나타나게 된 것이다.
 
1. 이 보다 큰 일을 하리라 뜻을 알고 믿고 실천하여
능력 성도가 될 수 있는데, 가령 그보다 큰 일을 할 수 있다는 수정 번역을 보고 이것이 이 뜻인가 저 뜻인가, 유리 방황한다면 능력 성도가 되겠는가,, 능력 목회자가 되겠는가,, 혹 그보다에서 '그'를 인칭으로 안다면 얼마나 엉뚱한 해석을 한 것이 되며,, 어떠한 결과도 생길 수 있겠는가, 원문이나 영어 성경을 같이 보면 몰라도 그렇잖으면 다른 해석을 할 수 있게 수정 번역하였다.
교인 한 사람 한 사람의 신앙적 확장과 성장 그것은 영의 양식을 먹고 묵상하고 실천하므로 능력 성도가 될 것이다. 일어나자 마자 일상생할에서 잠 자기 전에 매일 먹고 살아야 할 영생 생명의 말씀이기에 그렇게 중요하다.
(요14:10-15)
I tell you the truth, anyone who has faith in me will do what I have been doing. He will do
even greater things than these, because I am going to the Father.(14:12)
 
1. 이보다 큰 일을 할 수 있는 이유는  '내가 아버지께 감이니라'.
예수님께서 이 땅을 떠나가시기 직전에 내가 떠나가는 것이 실상은 너희에게 유익하다 하시며 그 이유를 말씀하고 있다. 내가 가야 보혜사 성령을 보내실 것이기 때문이라고 하셨다.
그러므로 이제 그의 영으로 믿는 자에게 오셔서 함께 하시기 때문에 우리의 믿음의 분량에 따라 이보다 더 큰 일도 할 수 있다는 것이다.
(요16:7)
But I tell you the truth: It is for your good that I am going away. Unless I go away, the Counselor will not come to you; but if I go, I will send him to you.
 
1. 나는 개역이 개정보다 더 정확한 번역 그리고 즉 더 깊이 있고 문학적으로도 더 뛰어나다고 여러번 언급하였다. 한 예를 들면 개정 번역은 같은 원문의 일관성 있는 같은 단어를 여기 저기 바꾸어 버렸다. 아마 부분적으로 나누어서 수정한 것인지 어찌해서 그렇게 되었는지 모른다. 개역은 놀라울 정도로 일치하고 정확하게 번역하고 있다.
원문 일치 정확성에 깊이 있고 그리고 문학적인 번역의 면에서 더 낫다고 본다. 물론 원문에 일치하지 않는 문학적 수사는 좋지 않다. 먼저 정확성에 문학적인 면에서도 뛰어나면 좋다.
 
                                                                            
=. 실천 (practice).
이러한 글을 쓰는 이유는 다른 것이 아니다. 하나님의 그 말씀의 그 귀함 그리고 말씀을 잘 읽고 전하고 받아
능력 성도 능력 목회를 위해서이다.
 
그간 수정 번역을 보면서 나의 마음의 그 무엇을 여기에 표현하고 싶지는 않다.
목회자는 일년에 수십번 아니 수 백번 이상을 설교하고 수많은 성도님들이 이 기독교 경전인 성경을 읽고 듣고 새 힘을 얻고 생명을 얻고 더 얻고 위로를 받고 능력을 체험하고 또한 그러하여야 할 말씀이다.
 
개역 성경은 많은 과정을 거쳤고 그리고 훌륭한 선배님들이 주석서들을 썼다. 그러므로 이미 감수는 잘 된 것이라고 할 수 있다. 개정성경도 주석서가 나와야 할 것이다. 개역성경의 고어나 그리고 극히 적은 부분의 단어나 문장의 불완전한 부분을 수정하지 말자는 것은 전혀 아니다. 그것은 시대가 지나감에 따라 단어의 뜻이 바뀐다면 더 적절한 단어가 있다면 수정하는 것은 좋다. 그러나 개역을 수정한 개정은 개역에 더욱 못 미친다.
성경 전체를 잘 알지 못하고 번역 일부분 만 쉽게 한다고 수정하므로 그 연결된 부분과 짝이 맞지 않을 수 있고 그리고 문학적 표현에 있어서도 잘 된 번역을 왜 수정하였는지 이해 할 수 없다.
 
1. 이 시점에서 한국 교계 책임 있는 지도자 또는 모든 지도자는 우리의 경전인 성경의 번역을 세밀하게 비교하여 보아야 할 것이다. 이것이 모든 교인들에 대한 책임이다. 필자도 개정이 나오기 전에는 모를 수 밖에 없었는데 계속 보면서 마음 속에 글로 표현하고 싶지 않은 무엇을 느낀 것이다. 많은 교인들은 아무래도 새로 나온 번역판이 더 잘 된 번역으로 알고 있을 것이다. 모든 교계 지도자는 책임감을 느끼고 비교해 보고 책임을 다해야 할 것이다.
 
1. 한국교계가 현재 미래의 숫자적인 성장등에 대하여 우려들을 많이 하고 있다. 이것도 성경과 연결된 한 문제이다. 수평이동의 성장등 외형적인 모습만을 세상의 시각으로 보고 생각하고 실천한 결과는 혹 아니겠는가,
교회는 사람이고 사람인 교인의 믿음과 신앙이 확장되고 성장되는 것에 초점을 맞추었어야 하는데 수평이동의 성장론에 즉 세상 기업이 하는 서로 경쟁적 모양을 교회가 배웠다고 할 것은 아니겠는가, 그러니 이러한 이유 때문에도 모두가 피곤하고 힘들다. 교회 와서도 빈자리가 있다고 낙심천만 한다면, 교회에 나와서 오히려 낙심하면 되겠는가, 우리 모두가 개인의 신앙의 확장과 성장이 아니라 수평의 이동의 성장을 바라고 부르짖고 있는 것은 아닌가, 그렇다면 어느 교회인가는 줄어들어야 가능하지 않겠는가, 주님이 무엇을 원하시고 기뻐하시겠는가.
 
또 최고의 숫자의 자리에서 밀려날까 불안하고 전전긍긍한다면 이것은 무엇을 하고 있는 것 인가,
무엇을 위하여 종을 치고 있는 것인가, 왜 이렇게 되었는가. 목회자와 많은 교회가 안타깝게 부르짖기를 자신의 신앙의 확장과 성장은 온데 간데 없고 이왕 믿는 교인들 많이 채워주시기만을 바란다면 이것은 가장 바람직한 모습인가, 차고 넘치고 있음에도 많은 믿는 분들이 대부분 무엇을 위하여 전략과 프로그램들을 시행하는 것인가. 혹 수평이동이 아닌가,
 
오늘의 한국 교회는 교계는 연합단체들은 여러 방법론 그리고 반복적 비판이나 정치권 줄서서 감투 한 자리 얻으려는 것 보다 말씀 앞에 배우는 일에 최선을 다해야 한다. 모두가 자기 선 자리에서 최선을 다하여야 할 것이다. 목회자의 이름을 가지고 정치권의 한편에 동조한 후 한 자리 얻는 것을 보면 우리를 슬프게 하고 기독교계에 손해를 끼치게 된다. 그 분야에서도 넘치는데 기독교가 거기까지 가서 자리 차지할 필요도 없다.
교계는 그 무엇보다 생명 주는 말씀으로 찾아가는 것을 변함없이 우선 하여야 할 것이다.
 
1. 교회의 미래에 대해서 보고 우려하고 긍정적이지 않은 말들을 듣는다, 여러 가지 인간적 판단과 우려을 하고 이것 저것을 하여야 한다고 한다. 교회가 세상의 기업인가, 진리에 대하여 확증을 못하는가,.
진리는 영원하다. 복음의 진리는 영원하다. 복음을 진리라고 믿지 않는가, 복음이 진리가 아니라면 확장과 성장될 이유가 있는가. 예수 그리스도 그리고 그의 말씀이 진리라고 믿는다면 그대로 믿고 사는 것이다. 진리는 영원하므로 마침내 흥왕하는 것이다.
그러므로 그 복음의 생명의 양식이 그렇게 중요한 것이다. 그러므로 성경의 그 계시의 말씀이 중요한 것이다. 그러므로 성경의 그 계시의 말씀을 정확이 잘 번역하여야 하는 것이다. 물론 다른 나라 말로 번역한다는 것 하물며 경전을 다른 나라 말로 그 원본을 완전하게 번역한다는 것은 거의 불가능하다고 할 수도 있을 것이다.
 
1.기독교의 중요한 이 경전은 교회 밖에서 누가 해주지 않는다. 그리고 교계는 책임감도 있다. 이 일에 한국교회가 집중하고 나아가면 더 풍요한 삶이 될 수 있을 것이다. 각 교단의 신학교에서 학위논문으로 몇 분들이 이 부분을 가장 진지하고 열심있게 고찰 하는 분들이 있으면 말씀이 흥왕하고 생명력 넘치는 심령의 영적 부흥이 기회가 될 수 도 있을 것이다. 
 
1. 기독교를 조직적으로 비판하는 세력이 있다면 거기에 동조하지 말아야 한다. 듣든지 아니듣든지 말씀대로 전하여야 한다. 기복 신앙에 대해서 일부 잘난 자칭 지식인이 비판하니 덩 달아서, 세상이 비판하니 기독교 안에서도 그 상에 숟가락을 같이 얹어놓고 비판 할 것이 아니다. 기복신앙 비판하니 덩달아 그것을 말하면 지식인의 반열에 드는 줄 알고 같이 비판한다. 성경에 가득차고 약속한 복의 약속을 그들의 성경에는 없다는 말 인가, 이것도 성경을 잘 모르니 그렇게 말하는 것이다.
 
1. 성경을 모르는 세상의 일부가 비판하면 교회를 해하려교 하는 일부 세상의 소리인줄도 모르고 덩달아서 비판하는 일도 삼가야 할 것이다. 세상이 멋 모르고 교회를 자신의 자로 비판하니 교계가 교회와 목회자의 권리를 제한하는 법을 일부 교단이 만들기도 하였다. 성경적이지도 않은 이것을 시대상이었다고 변명하고 합리화 할지도 모른다. 그러나 후세에 웃음거리는 되지 않을 지 모르겠다. 어떤 기독교 단체는 그것이 옳은 줄 알고 각 교단에 공문을 보내 부추기는 현상도 있었다. 그것이 올바른 일이고 할일인가, 그러한 일 하기보다는 무엇보다 교계 연합 단체나 기관들은 말씀과 예배 사랑을 실천하는 일 그것을 잘 갖추기 위해 무엇보다 성경의 번역에 가장 관심을 가졌어야 할 것 이었다. 세상 밖에서 누가 교회에 들어와서 이 일을 하겠는가,
  
1. 이제 여러 세상 문명의 이기 아래 또는 프로그램등의 여러가지 보다 기독교인들은 말씀을 읽고 또 읽고 믿음으로 받아드려 그 생명의 말씀과 함께 개인과 가정 온 세상에 생수의 강과 같이 흘러 가도록 하여야 할 것이다.
세상에서 기독교를 해하기 위하여 세상적인 시각과 판단으로 비판하는 것에 동조하지 말아야 할 것이다.
기독교를 의도적으로 해하려는 어떤 세력이 있는 것이 아닌가도 보아야 할 것이다 . 그들이 자생적으로 그러하든지 어찌하든지 그러하다, 그렇지 않으면 왜 그렇게 기독교를 해하는 말들이 많은가 그들의 소리를 듣고 동조하거나 부화뇌동 한다면 참으로 어리석은 모습이다, 
 
1. 개정성경의 주석이 나와야 할 것이다. 그 때에야 개역 번역이 얼마나 잘 되었는가를 알 수 있지 않을까 한다.
이미 개역 주석은 검증되고 유익을 주고 있다. 개정을 개역과 비교하여 보며 더욱 더 완벽하고 귀한 번역을 위해 교계가 합심하여 이 일을 하여야 할 것이다. 진지하게 보면 누구나 공통적으로 느끼는 바가 있지 않을까 한다.
 
최선을 다해 개역과 개정을 비교하며 겸허히 주석서를 쓰는 노력을 한국교회가 열심을 다하는 중에,, 이것은 결과적으로 말씀이 한국교회에 흥왕하는 기회도 될 것이다. 개역의 훌륭한 몇 주석이 있다는 것은 개역은 이미 어느 정도 검증이 잘 되었다고 볼 수 있다. 개정의 번역에 주석서를 쓸 만한 분이 계신지 모르겠지만 써야 하고 특히 수정된 부분은 주석서를 써야 할 것이다. 개역과 비교하며 개정주석서를 쓰면, 뭔가 깨달을 것이 있을 것으로 보며, 한국교회에 말씀이 흥왕하는 기회가 될 수 있다는 것이다.
합력해서 한국 교회에 큰 유익되도록 하는 전기가(turning point) 되면 좋을 것이다.
 
세상에 참으로 많은 일들이 있으나 몇 가지만 하든지 마리아와 같이 다른 무엇보다 먼저 우선 말씀을 더 좋은 편을 택하였다는 교훈을 보며 한국교회 연합단체 기관 교계가 더 좋은 편을 택해야 할 것이다, 그 다음은 주님이 하실 것이다,
                                                                                                                         ( - ING )

hi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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