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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동원 목사의 요한신학 7

이동원 (서울북노회,성광교회,목사) 2014-10-15 (수) 13:31 9년전 4424  
1.
예수님께서는 중요한 어떤 곳에 세 제자만을 데리고 가셨다. 베드로 야고보 요한이다.
예수님께서 특별히 세 제자만 더 사랑하셨다고 할 수는 없다. 그렇다면 왜 세 제자만을 데리고 가셨을까, 변화산에의 놀랍고 장엄하고 황홀하고 신비한 사건, 달리다 굼 즉 죽은 소녀를 소녀야 일어나라 라고 말씀하시므로 살아나게 하실 때 세 제자를 데리고 가셨다.
 
그런데 이러한 내용을 전한다 해도 이성적으로 믿기 쉽지않은 기적들이다. 한 사람이 그것을 보고 증언한다고 하여도 믿기가 쉽지 않을 기적이다. 그것을 증언하여도 착각이나 환상을 보았다고 할 수 있을 것이다. 그러나 그것의 증언자가 있으면 누구나 확실히 믿을 수 있다. 두 세 사람의 증언을 통하여 확실하고 분명한 사실을 누구나 믿을 수 있다. (벧후1:16-17)
예수님께서 열 두 제자 중 세 제자만 더 사랑하셨다고 볼 수 없고 요한에게 복음서를 쓰게 하기 위해 특별한 부분까지 보여주시고 세 사람이 같이 보았으므로 그것을 증언한다면 두 증인이 있는 것이다. 믿을 수 없을 놀라운 사건에도 두 세 사람의 증언자가 있음으로 누구나 믿을 수 있다. 구약에서도 한 사람의 말을 두 세 사람의 증인을 통하여 그 사실성을 확실하게 인정하게 하셨다.
 
2.
요한은 육신으로 오신 말씀을 직접 보고 듣고 만지고 그의 하신 일을 주목하고 훈련 받았고 성령으로 오신 주님 안에 살고 목회하였고 그 계시의 말씀을 보고 듣고 주님의 명령에 따라 기록하였다. 그러므로 요한이 전한 내용과 다른 그 어떤 것이 있다면 그것은 일고의 가치가 있을 수 없다.
 
그가 예수님의 사랑하시는 제자, 그가 가장 특별한 장면을 베드로 야고보과 함께 목격하였다는 점, 세례요한의 제자로서 있었다는 점, 예수님의 모친을 모셨다는 점, 밧모섬에서 교회에 대한 계시와 장차 될 일을 예수 그리스도의 성령으로 받았다는 점 이러한 그의 경력이 더 이상의 신학자가 있을 수 없을 만큼 가장 잘 준비 되었다.
그리고 교회관을 주님으로 부터 직접 계시 받았다는 것, 또한  목회를 하였다는 점에서 ,, 누구도 이보다 잘 준비되고 잘 갖출 수는 없을 것이다. 이러한 내용을 보면 주님이 준비시켰다고 확신하지 않을 수 없다. 그러므로 그가 쓴 요한복음과 일치하지 않은 이론이나 신학이 있다면 그것을 신뢰할 수가 없다고 하겠다.
 
3.
요한복음과 요한계시록 중 어느 책을 먼저 기록하였을까 관심을 가졌다. 요한복음과 같이 심오하고 깊이 있는 책은 요한이 복음서를 쓰기 위한 많은 것을 잘 갖추었지만 밧모섬에서의 주님의 성령의 계시를 보고 들은 후 성령의 감동으로 쓰지 않았을까 하는 생각을 갖는다. 물론 요한복음을 쓴 후 밧모섬에서의 그 놀라운 계시를 보고 들었다하여도 성경 이해에 문제가 있는 것은 아니다. 그러나 주님께서 밧모섬의 그 놀라운 계시를 보여주시고 더 잘 갖추게 하신 후 결론적으로 성령의 감동으로 요한복음서를 쓰게 하지 않았을까 확신하고 있다.
 
요한복음과 요한서신 요한계시록은 성경 중 가장 나중에 기록 되었다는 것은 이미 말하였다. 모든 성경의 결론과 같이 말이다. 또한 그러한 내용이다. 요한복음 쉽고도 심오하다고 하고 사실이 그렇다. 문장과 내용이 쉽다.
요한복음이 쉽다는 점에서 영어를 공부하려는 사람에게도 먼저 요한복음을 읽으라고 한다는 것이다. 한편 영적 의미와 내용은 측량할 수 없이 깊고 심오하다.
 
4.
가령 예를 들면 요1:1-3절의 내용을 보아도 세상의 어떠한 책이 이러한 내용으로 시작한 책이 있겠는가. 요한은 밧모섬에서 주님의 계시와 보여주심을 다 보고 알파와 오메가 처음과 나중이 되시는 예수님 그리고 그 말씀으로 자신에게 나타나심을 보고 이 놀라운 말씀을 쓸 수 있었을 것이라는 확신을 가져 본다.
그러므로 밧모섬에서의 계시의 내용까지 다 보고 듣고 이 책을 쓰지 않았겠는가 하는 것이다. 혹 요한복음을 먼저 썼다 하여도 밧모섬에서의 체험 후에 쓰지 않았겠는가 하는 생각을 갖는다, 물론 요한복음을 쓴 후 밧모섬에서의 그 신비한 체험을 하였다고 하여도 내용 이해에 크게 문제 있는 것은 아니다.
 
요한복음에 일곱 표적 기록 일곱 번의 자기 선언이 있다. 그런데 요한계시록에는 일곱이라는 숫자가 많이 나온다. 일곱이라는 숫자는 그 숫자 이상의 완전이라는 의미가 있다. 예를 들면 일곱교회는 숫자적 일곱교회 이상의 완전의 뜻으로 시대와 장소를 초월한 전 교회에게 주시는 말씀들임을 알 수 있다. 모든 교회 교인들에게 주시는 계시의 말씀이다. 한편 요한은 요한복음에서, 예수님의 하나님 만이 하실 수 있는 일곱 번의 표적과 하나님 만이 선언하실 수 있는 일곱 번의 선언을 기록하였다.
 
5.
요한이 예수님의 모친을 모시라는 부탁을 받고 예수님의 모친을 모셨고 그 누구도 듣지 못한 예수님에 관한 귀한 내용 신비한 내용을 들었을 것이다. 그 증언의 내용이 요한복음에 다 녹아 있을 것임은 말 할 것도 없다. 예수님의 육신의 모친으로부터 다른 말을 들었다면 예수님은 하나님의 아들 그리스도를 믿는데 회의를 가질 수도 있었을 것이다. 그러나 요한이 복음서에 구태여 기록하지 않는 확실한 증거들을 놀라워하며 들었을 것이다. 그러므로 예수 그 분은 하나님이 육신으로 오신 하나님의 아들 그리스도라고 증거하는 증거를 쓸 수가 있었던 것이다. 예수님께서 이렇게 준비시킨 것이다.
 
6.
요한계시록에 이 계시의 말씀을 읽는 자, 듣는 자, 마음에 지키는 자가 복 있다고 하셨다. 계2,3장의 교회에 주시는 말씀 교회시대 이후 4장부터는 문자 그대로 장차 될 일이다. 이해하기가 매우 어려운 부분이 있으나 큰 문제는 아니라고 본다. 교회에 주시는 말씀을 잘 읽고 듣고 마음에 지키면 그 모든 상과 보상의 약속을 받을 수 있을 것이다. 올림픽에 금메달에 대략적으로 알 뿐 그 자세한 것을 모른다고 하여도 금메달 받을 사람에게 모른다고 그 무게와 모양과 내용이 달라지지 않을 것이다. 모른다고 다른 메달을 주지는 않는다. 일등하는 것이 중요하다. 신앙의 일등은 한 사람으로 제한되어 있는 것이 아니다. 모두가 금메달을 탈 수도 있다. 믿는 모두가 의의 생명의 면류관을 받을 수도 있다.
( 올림픽 금메달을 무게 모양 가격 색깔 크기 등 정확히 아는 사람에게 주는 것이 아니라 일등한 사람에게 주는 것과 같다. 일등하면 금메달 모양을 잘 몰라도 약속대로 준다. 그런데 천국에서는 일등이 한 사람 이상의 수많은 성도들이 일등이 될 수 있다, 수 많은 사람들이 공동 일등하여 약속하신 면류관을 쓸 수 있다. 교회에 주신 예언의 말씀들을 읽고 듣고 지키는 자에게 주심을 알 수 있다.)
 
7.
예수님께서 육신으로 계실 때 이러한 교회에 대하여 자세한 말씀을 하시지 않는 이유는 아직 교회도 탄생하지 않았는데 이 말씀을 하셨다면 사람들은 제자들마저도 이해하지 못하고 너무 어려웠을 것이고 실감나지 않았을 것이다. 교회 탄생 이전에는 교회라는 모습을 전혀 알 수 없었기 때문이다.
죽으심과 부활 승천 그 후 성령으로 강림하여 교회가 탄생되었기 때문이다. 제자들은 교회 탄생은 고사하고 부활의 소식을 들었을 때에도 허탄한 듯하여 믿지를 못하였다. 교회 탄생은 그 이후인데 예수님이 살아나심도 부활하신 예수님을 만나기 전에는 믿지 못하겠다 하는 제자도 있는데 교회에 대하여 말씀하시면 무슨 말씀을 하시는 것인가 하였을 것이며 잘 이해하지 못하였을 것이며 혼란스러운 마음이었을 것이다. 교회 이전의 부활을 말씀하였을 때에도 죽은 자 가운데 살아나는 것이 무엇일까 하였을 정도이었다. (막9:9-10)
 
8.
그러므로 교회가 탄생한 후 즉 약속대로 성령으로 오셔서 교회를 세우신 후 교회에게 말씀하신 것이다. 그러므로 예수님께서 부활하신 후 성령으로 교회를 탄생케 한 후 이제 드디어성령이 교회에게 말씀하신 말을 들으라고 하셨다. 교회가 탄생되기도 전에 계2,3장의 교회에게 주시는 말씀을 하셨다면 제자들에게 너무 어려웠을 것이다, 그 때에는 교회라는 말 자체도 교회가 무엇일까 하며 이해하기 어렸웠을 것이다. 그 이전까지 교회가 없었기 때문이다. 예수님이 육신으로가 아니라 하나님의 보좌에 오르신 이후 그의 성령으로 오셔서 말씀하신 것이다.
 
9.
예수님이 육신으로 계실 때 귀 있는 자는 들으라는 말씀을 마지막 부분에사용하셨다. 그러나 이제 그의 성령으로 오셔서 교회들에게 귀 있는 자는 들으라고 하신다. 그러므로 계2:-3:은 모든 교회인 성도들이 교인들이 자주 읽어야 할 말씀이다. 그리고 진지하게 듣고 지켜야 할 것이다. 
(요한계시록에 '~같다' 라는 표현이 많이 나온다, 하늘적 내용을 세상적 단어로 표현의 한계를 느끼며 표현한다. 예수님께서 천국비유를 말씀하실 때 '~같다' 라는 표현을 많이 쓰셨다. 지상의 언어로 완전하게 다 표현 할 수 없고 우리가 현재에 완전하게 이해 할 수도 없음을 알 수 있다.)
 
10.
또한 예수님이 죽으심으로 모든 것이 끝난다면 나는 세상을 떠나나 너희는 나의 정신과 교훈을 중심으로 단체를 만들고 내 뜻을 계승하라고 미리 하실 수도 있었을 것이다.
그러나 예수님은 부활 후 성령으로 오셔서 교회를 탄생케하고 그 때 말씀하신 것이 더 적절하고 효과적이고 충분하기에 복음서에서는 교회를 세우시겠다는 중요한 말씀과 교회의 권세 등을 말씀하시고 교회의 모임 중에 함께 계시겠다는 약속하만을 하셨다.
육신의 죽으심으로 모든 것이 끝난다면 그 때 제자들에게 또는 요한에게 계시록의 교회에 주신 말씀을 하셨을 것이다. 그러나 그의 성령으로 오셔서 교회를 세울 실 것과 그의 육신이 아니라 그의 영으로 계속 함께 하시는 것을 아시기에 감당하기 어려운 더 자세한 내용을 미리 말씀하시지 않으심을 알 수 있다.
 
교회가 탄생하지 않았다면 그 약속은 무산 된 것이었겠으나 교회가 탄생하였기에 이제 사도 요한을 통해서 전 교회에 주시는 것이다. 교회가 얼마나 놀라운 내용이 가득 찬 것인가와 어떠하여야 하며 또한 칭찬과 격려 사랑의 책망 위로 큰 상이 있다는 것들을 일곱교회에 보내는 형식으로 전 교회에 주셨다.
 
11.
요한의 이러한 경력을 가지고 예수를 하나님의 아들 그리스도 영생을 전하였는데 혹 다른 내용을 누가 전한다면 그것은 믿을 것이 못되고 받아드릴 것이 못된다. 예수님을 직접 보지도 못하고 듣지도 못하고 주목하지도 만지지도 못한 어떠한 사람들의 주장과 설들이 요한의 전하는 내용과 다른 것이라면 전혀 믿을 것이 못된다. 그러나요한의 증거는 사실이고 참되다.
왜냐하면 그는 예수님을 직접 목격하였고 들었고 경험하였기 때문이다. 또 부활 후 두 번이나 나타나신 그곳에 있었고 세번째 나타나셔 베드로에게 내 양을 치라는 사명을 주실 때도 같이 들었다. 공중에서가 아니라 구체적으로 디베랴 바다의 배 안에서 물고기 잡고 있었던 때의 일이다. 그 때는 모두들 심적으로 약간 공황 상태라고 할 수 있는 때이다. 
 
( 한편 바울은 예수님이 육신으로 계실 때 만나지 못하였고 듣지 못하였고 주목하지 못하였다. 교회를 박해하다가 주의 성령으로 부름 받아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을 전하였다. 예수 그리스도께서 육신으로 계실 때 직접 만나지 못하였다는 점에서 모든 이방인들과 동일하다. 그 바울을 통해서 이스라엘 뿐 아니라 이방인에게 주의 이름을 전하는 도구로 사용하셨다. 평신도의 간증이 평신도가 더 귀를 기울여 더 잘 들으려고 할 수도 있다는 점과 비슷하다. 예수님을 육신으로 만나지 못하고 보지 못하고 듣지 못했다는 점에서 바울과 이방인들과 같다. 이 바울을 사용해 그의 이름을 전하게도 하셨다. 바울의 서신이 신약성경의 약 절반을 차지한다는 점에 주목한다.
유대인 뿐 아니라 이방인을 향한 주님의 열심과 관심을 볼 수 있지 않겠는가,)
 
12.
초대교회로 돌아가자는 말이 있다. 초대의 어느교회를 말하는지 모르겠으나 불완전한 사람들이 모이는 곳이므로 초대교회에도 불완전한 모습들도 있다. 더욱 중요한 것은 예수님께서 초대교회 시대에 요한을 통해 주신 일곱교회의 교회관을 보고 배워야 할 것이다.
초대교회도 사람들이 모인 곳이기에 모든 교회와 교인들이 다 완벽할 수는 없고 심지어 실망스러운 모습도 있을 것이다. 우리가 진정 배울 것은 예수님께서 그의 성령으로 교회들에게 주신 말씀들을 읽고 듣고 마음에 지키는 것이다. 그러한 사람들이 복이 있다고 하였다. 
모든 교인들은 일곱교회에 주시는 계시의 말씀들이 오늘 나에게 주시는 말씀으로 받으면 승리의 신앙 생활을 할 수 있을 것이다,
 
                                                                                         < 성광교회 이동원 목사 드림>
 
 
 
=. meditation.
1. 요한복음을 쓴 목적
(요20:30-31)
Jesus did many other miraculous signs in the presence of his disciples, which are not recorded in this book./
But these are written that you may believe that Jesus is the Christ, the Son of God, and that by believing you may have life in his name.
 
2. 예수님의 제자 중 실증주의자인 도마의 고백을 본다.
요한은 도마의 실증 후의 고백을 통해서 우리에게 증거한다. 이것은 요한이 요한복음을 쓴 목적이기도 하다.
(요20:27-29)
Then he said to Thomas, "Put your finger here; see my hands. Reach out your hand and put it into my side. Stop doubting and believe."/ Thomas said to him, "My Lord and my God!" / Then Jesus told him, "Because you have seen me, you have believed; blessed are those who have not seen and yet have believed."
 
3. 요한이 쓴 계시록은 주님이 기록하라고 친히 명하셨다.
(계1:19)
"Write, therefore, what you have seen, what is now and what will take place later.
 
4. 카이로스
하나님의 만남의 시간은 항상 가까이 있다는 것이다, 하나님은 시공을 초월하여 항상 지금 여기에 가까이 계시므로 말씀을 읽고 듣고 지킴으로 하나님을 만날 수 있는 기회의 때이다. 가장 의미 있고 가치 있는 감동의 시간이다. 주님의 예언의 말씀을 읽고 듣고 지킬 때 가능하다. 주님과 만나는 영원한 감동의 시간이 지금 여기에 있는 것이다. 성도는 연대기적 시대와 달력의 크로노스의 시간 안에서 또한 카이로스의 때를 사는 것이다.
 
말씀을 읽고 듣고 마음에 지키는 시간이다.
영원하신 분께 교통하는 시간 예배드리는 시간은 카이로스의 시간인 것이다,
그러므로 성도는 크로노스의 시간안에서 카이로스의 시간을 살아야 하고 사는 것이다.
카이로스의 시간은 가장 가치 있고 감동이 있는 현재이고 항상 있을 수 있으며 영원이다.
 
그러므로 계1:3절의 '때'는 카이로스라는 단어를 쓰고 있다.
그러므로 카이로스의 시간을 사는 사람들에게 나이는 숫자 넘버에 불과하다.
주님과 함께 감동의 스텝 맞추어 동행하며 영원한 청춘으로 살 수 있는 것이다.
이 예언의 말씀을 읽고 듣고 그 가운데 있는 것을 지키는 자는 복이 있다고 하셨다, 
( 계1:3)
Blessed is the one who reads the words of this prophecy, and blessed are those who hear it and take to heart what is written in it, because the time is near.
 
* 카이로스: ‘기회’, ‘적당한 때’, 항상, (평안한, 적당한)시기, / 가장 의미 있고 가치 있는 시간.
time , opportunity , due time, always , the right time, to what time brings, the state of the times, the things, and events of time
(헬라어로 시간이라는 단어는 크로노스와 카이로스가 있다, 크로노스는 우리가 보통 사용하는 연대기적 시간을 말하고 카이로스는 흘러가는 연대기적 시간 중에 의미 있는 가치 있는 특별한 시간을 말한다. 현재의 시간을 초월한 영원한 시간이라고도 할 수 있다. )
 
5. 아멘 주 예수여 오시옵소서
모든 성도는 아멘 주 예수여 오시옵소서 하여야 할 것이다.
주님은 계속 오고계시는 분이시다. 언제나 마음 문 열고 믿음으로 받아들여야 할 것이다.
주 예수의 은혜가 모든 자에게 있을지어다의 주는 하나님을 부르는 칭호이다. 이것은 의미 깊다.
구원자로 오신 하나님의 칭호이다. 성도에게 가장 중요한 내용이다. 주님의 영과 말씀으로 오시옵소서
 
다음은 성경의 마지막 책 마지막 장 마지막 구절이다.
주 예수의 은혜가 모든 자들에게 있을지어다. 아멘.
(계22:20-21)
He who testifies to these things says, " Yes, I am coming soon." Amen. Come, Lord Jesus./
The grace of the Lord Jesus be with God's people. Amen./
                                    
 
=. 현장과 실천 ( context and practice)
교회 성도는 교회에 주신 말씀을 읽고 듣고 마음에 지키므로 복 있는자가 되어야 할 것이다.
모든 교인은 교회인 나에게 주시는 이 말씀을 읽고 듣고 지키어 복 된자가 되어야 할 것이다.
 
1. 때가 가까움이라. (계1:3)
때가 가까움이라의 ‘때’는 카이로스이다. 그렇다면 가까움 역시 시간과 공간을 초월한 가까움이다. 즉 이 때는 여기 지금의 가까움이다, 일 이분 후 십분 후 내일의 시간과 지리적 거리의 가까움이 아니라 바로 여기 지금이다. 주님을 만나는 여기 지금의 때이다. 현재의 호흡과 같은 가까움이다. 이 때는 영원하신 주님의 예언의 말씀을 읽고 듣고 지키는 때이다. 그렇다면 말씀을 듣고 읽고 마음에 지키는 것은 생명력 있는 영원의 시간 가장 의미 있고 가치 있는 카이로스의 시간을 사는 것이며 주님과 가장 가까이 있음을 알 수있다.
 
1. 요한계시록은 요한의 사상이 아니라 요한에게 주신 주님의 계시의 말씀이다. 계시록 전체에서 일곱교회를 통해서 우리가 측량도 이해하기도 힘든 상들로 가득한 것을 알 수 있다. 우리가 요한계시록의 모든 내용을 자세히 이해를 못해도 큰 문제 있는 것은 아니다. 지금의 신앙생활이 중요하다. 그것은 계2:-3:에 있다. 그러면 약속대로 주실 것이다.
그러므로 교회에 주신 말씀을 읽고 듣고 마음에 지키는 것이 중요하다. 교회에게 즉 나에게 주신 1-3장까지의 말씀은 짧은 시간에도 자주 반복하여 읽을 수 있다.
 
1. 계 4장 이후는 매우 어려운 내용이 많은데 이해 한 만큼 감동 받은 만큼 알면 된다고 본다. 잘 이해를 못해도 큰 문제가 아닌 것이라면 그것도 은혜이다. 그 부분의 모든 것을 자신만이 다 아는 것 같이 하는 것은 겸손치 못하다. 요한 자신도 정확하고 이해할 수 있게 표현할 말이 없기에 마치,, 무엇과 같다, 같다고 표현하였을 정도이다. 물론 현세에도 많고 큰 응답을 약속하셨고 그대로 주셨고 주신다고 하였다. 그러므로 지금부터 영원까지라고 하였다.
계시록은 장차 될 일 까지 보여주셔서 그림으로 보는 것 같이 알 수 있게 해 주셨다. 즉 현미경이 아니라 망원경으로 보는 것이라고 할 수 있다. 어렵다고 그 내용을 계시로 보여주지 않았다면 어찌할 뻔하였는가, 그러나 요한계시록 4장부터는 누구도 자신이 완벽하게 해석한다고 할 수도 없을 것이다. 지금으로서는 장차 되어질 일이기에 누구도 완전하게 다 알 수 없다고 본다. 본 것을 설명하기도 쉽지 않을 정도이다.
After this I looked, and there before me was a door standing open in heaven. And the voice I had first heard speaking to me like a trumpet said, "Come up here, and I will show you what must take place after this." (4:1)
 
1. 교회에 주신 내용 중에는,(계2:-3:)
1). 처음 사랑을 회복하라고 하였다.
 나를 향한 하나님의 사랑을 기억하고 네가 나를 사랑하느냐는 물음에 응답해야 할 것이다.
 우리를 향한 하나님의 사랑을 알고 맺은 언약의 처음사랑을 회복하고 실천하라는 것이다.
 
2). 믿음을 지키라고 하셨다, 환난과 궁핍의 성도에게 실상은 부요한 자라고 하였다.  누구나 겪을 수 있는 상황에 믿음으로 승리하므로 책망 없는 교회로 실상은 부요한 자로고 칭찬하였다. 그에 대한 상의 약속은 역시 크고 놀랍다, 이것은 성도에게 큰 위로와 격려가 된다. 세상에서 환난과 궁핍을( tribulation. poverty)  겪지 않을 사람은 없기 때문이다, 서머나 교회는 실상은 믿음의 부요자라고 칭찬하셨다, 칭찬만 있고 책망이 없는 교회중 하나이다. (계2:9)
 
3). 성경에서 우상 숭배하지 말라는 것을 십계명과 역사서 뿐 아니라 요한계시록의 교회에 주신 말씀 중에서도 강조하신다. 이것을 크게 강조하심을 새삼 알게 되는데, 왜 그렇게 자주 반복하시며 엄중히 경고하셨을까, 
이것은 그의 백성에 대한 뜨거운 사랑의 다른 표현이다. 언약관계에서 그 큰 은혜를 누릴 수 있게 하시기 위해서이다. 그러므로 크게 감사하며 지켜야 할 일이다.
 
( 십계명에서, 이스라엘 역사서에서, 교회에 주시는 말씀 중에서 사람이 만든 우상들을 섬기고 예배하는 것을 가장 크게 경고하시고 있다. 그것은 하나님의 백성을 사랑하시고 그 사랑의 언약안에서 은혜를 주시고자 하는 하나님의 사랑의 다른 표현임을 가슴 깊이 간직하며 우리에 대한 그 사랑을 감격할 것이다.
그러므로 지금도 예수 그리스도에 대한 신앙고백 즉 교리는 조금도 타협이 없어야 함을 교회에게 주시는 말씀에서도 읽을 수 있다. 그러므로 진리가 아닌 것에 타협하는 주의나 이론이나 학설의 신앙태도는 조금도 용납하지 않으심을 알 수 있다. 이것 역시 교회 교인을 그렇게도 사랑하시기 때문이다.
 
십계명은 세상의 규율적 수칙 이상의 사랑의 언약인 것이다. 우상숭배를 금하는 것은 일방적인 엄한규율로만 아는 것은 둔센스라고 할 것이다. 우리에 대한 가장 큰 사랑의 표현이다.
내가 너를 얼마나 사랑하는 줄 아느냐, 너 역시 나를 사랑하여야 한다는 주님의 절절한 마음이 담겨있다. 그 언약 안에는 큰 은혜가 약속되어 있다. 언약을 깨면 전혀 다르다. 완전 다르다. 그것도 알아야 할 것이다. 그것은 각자 찾아 볼 수 있다.)
 
1. 내가 너를 사랑함 같이 네가 나를 사랑하느냐는 물음에 응답해야 할 것이다.
기독교 교리에 대한 절대적인 신앙의 고백과 서로 사랑하라는 계명은 구분하여 실천하여야 할 것이다. 신앙고백의 교리를 혼합하고 서로 사랑하라는 것은 전혀 아니다.  이것은 교회에 주시는 말씀에서도 우리가 생각한 것 보다 훨씬 엄중하다는 것을 알 수 있다.
또한 구약을 인용하시므로 구약과 신약과 교회시대 그리고 영원까지 동일하신 하나님이 역사하심을 알 수 있다.
 
"For God so loved the world that he gave his one and only Son (his only begotten Son),
 that whoever believes in him shall not perish but have eternal life. (요3:16)
"A new command I give you: Love one another. As I have loved you, so you must love one another. (요13:34)
 
                                                                                                      < God bless you.

hi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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