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베드로의 역사관

이동원 (서울북노회,성광교회,목사) 2015-11-11 (수) 13:10 8년전 2972  

1. 베드로의 역사관은 기독교의 역사관이다.

베드로의 역사관은 기독교 역사관이다. 이것은 아무도 부인 할 수 없다.

예수님의 제자인 베드로의 역사관을 부인한다면 기독교의 역사관을 부인 하는 것일 것이다.

많은 기독교인들이 아니 모든 기독교인들이 이러한 역사관을 이미 가지고 있었지만 이 베드로의 이 분명한 선언을 미쳐 생각치 못하고 지나칠 수 있다.

 

그러나 누구나 아브라함에게 약속하신 천하만민이 그의 씨를 통하여 복을 받으리라는 구원의 언약을 이루어 가는 것을 알고 있다. 그리고 믿고 있다. 그러나 이 베드로의 선언과 별개로 성경을 통해서 이미 배우고 알고 믿고 있는 것이다. 나의 경우도 그러하였다.

 

그럼에도 이 표적을 통해서 즉 이 명맥한 증거를 통해서

베드로가 그것을 설명하고 선언하므로 우리의 신앙은 더욱 큰 격려가 되는 것이다.

 

이 표적이 언제 어디에서 누구에 의해서 어떻게 일어난 것인가를 묵상해 보자.

한 사람의 육신적인 장애가 낫게 되는 그 이상의 영적 의미가 있다면, 그 의미를 찾는 것이 중요하다.

 

베드로는 이 표적의 사건을 통해서 그 의미를 모든 유대인들에게 분명히 선언하므로 

기독교인 이라면 그 누구도 이 역사관을 부인 할 수 없고 받아들이고 나아가야 하는 것이다.

 

' 베드로가 가로되 은과 금은 내게 없거니와 내게 있는 것으로 네게 주노니

곧 나사렛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걸으라 하고 / 오른손을 잡아 일으키니 발과 발목이 곧 힘을 얻고 / 

뛰어 서서 걸으며 그들과 함께 성전으로 들어가면서 걷기도 하고 뛰기도 하며 하나님을 찬미하니 (행3:6)

 

2. 이 표적을 통해서 그 의미를 역설하다.

이러한 구원역사의 성취는 물론 세속의 역사와 섞여서 이루어졌다. 그리고 이스라엘이 하나님의 택함을 받고 그 역할을 하였지만 하나님께서 이스라엘을 큰 제국 만드시겠다고 하신 것이 아니라 천하만민의 복받을 도구로 사용하신 것이다. 그래도 세속의 영향을 받아서 언젠가 메시야갸 오시면 세계의 최고 강대제국이 될 수 있다고 기대했을 수 있으나 하나님의 계획은 그것이 아니었다.

 

어느 나라 즉 이스라엘을 세속적인 큰 대제국 만들어주시겠다는 것이 아니라 그 민족을 이루고 그 씨로 말미암아 천하 만민이 복을 받게 하시겠다는 것이고 그 약속이 예수 그리스도로 오셔서 완성하셨고, 이제 예수 그리스도의 성령이 오셔서 이 나면서부터 앉은 장애자가 일어나 걷고 뛰고 하나님을 찬미하는 것 이것이 그 언약이 성취되고 계속 진행되어 가고 있는 표적 (miraculous sign) 이라는 것이다.

( 행3:25)

And you are heirs of the prophets and of the covenant God made with your fathers.

He said to Abraham, 'Through your offspring all peoples on earth will be blessed.'

 

사십여 세 된 나면서 부터 걷지 못한 사람이 걷고 뛰고 찬양하는 이 사건이 아브라함에게 약속하신 천하 만민이 네 씨를 통해서 복을 받으리라는 것이 예수 그리스도로 완성이 되고 지금 계속 되고 있다는 것을 선언하고 있다.

                                                                 

                                                                                         < 성광교회 이동원 목사 드림>

 

 

 

=. meditation.

다음에서 베드로의 역사관을 볼 수 있다.

이것은 표적이었다. 베드로는 이 역사적 사실의 기적을 통해서 어떤 의미를 깨닫고 선언하였는가,

베드로가 누구인가를 알고 어떤 사건 후에 이 말을 하였는지를 알고 읽으면 신앙의 큰 유익이 되며 감명적이다.

(행3:18)

But this is how God fulfilled what he had foretold through all the prophets, saying that his Christ would suffer.

 

(행3:20-25)

and that he may send the Christ, who has been appointed for you--even Jesus./ He must remain in heaven until the time comes for God to restore everything, as he promised long ago through his holy prophets./

 

For Moses said, 'The Lord your God will raise up for you a prophet like me from among your own people; you must listen to everything he tells you./ Anyone who does not listen to him will be completely cut off from among his people.'/ "Indeed, all the prophets from Samuel on, as many as have spoken, have foretold these days./

And you are heirs of the prophets and of the covenant God made with your fathers. He said to Abraham, 'Through your offspring all peoples on earth will be blessed.'

                                                                                                                                                               

1. 베드로가 이 사건의 의미를 선언하기 전의 표적이다. 매일 규례대로 하는 기도회에 참여과정에서 일어났다.

(행3:1-12)                                                                             

One day Peter and John were going up to the temple at the time of prayer--at three in the afternoon./

 

Then Peter said, "Silver or gold I do not have, but what I have I give you. In the name of Jesus Christ of Nazareth, walk."/ Taking him by the right hand, he helped him up, and instantly the man's feet and ankles became strong./ He jumped to his feet and began to walk. Then he went with them into the temple courts, walking and jumping, (leaping) and praising God.(3:1,6-8)

 

1. 베드로는 놀라워하는 백성들에게 이 기적을 왜 놀랍게 여기고 왜 우리를 주목하느냐고 한다.

이 표적의 의미를 묵상하여 보자.

(행3:12,16)

When Peter saw this, he said to them: "Men of Israel,

why does this surprise you?

Why do you stare at us as if by our own power or godliness we had made this man walk?

 

By faith in the name of Jesus, this man whom you see and know was made strong.

It is Jesus' name and the faith that comes through him that has given this complete healing to him, as you can all see.(3:16)

 

1. 오늘 우리에게 이 표적에 대하여 질문한다면,

(행4:9-10)

If we are being called to account today for an act of kindness shown to a cripple and are asked how he was healed,/ then know this, you and all the people of Israel: It is by the name of Jesus Christ of Nazareth, whom you crucified but whom God raised from the dead, that this man stands before you healed.

 

 

=. 베드로 그는 누구인가,

이 귀중한 선언을 한 베드로는 누구인가,

그를 전적으로 신뢰할 수 있어야 그의 말을 받아들이고 믿고 우리의 삶에서 풍성한 신앙생활를 할 수 있다.

 

예수님의 제자 베드로 그는,

변화산 사건의 장면을 체험하고, 물위를 걷기도 하고  세상에  물 위를 걸은 사람이 누가 있겠는가, 예수님을 보호하기 위해 잡으로 온 제사장 말고의 귀를 쳐버리기도 하고, 한 순간적의 두려움에 예수님을 세 번이나 부인한그러나 바로 그 후  닭이 울었을 때 통곡한 인간적인 지극히 인간적인 제자이다. 베드로의 신앙고백은 오늘 우리 교회의 신앙 고백이다. 그는 갈릴리 바다에서 부활하신 예수님께 내 양을 치라는 말씀은 세 번이나 반복하여 들었다. 그의 일생에 죽은 다비다를 살리는 특별한 능력을 주의 이름으로 하기도 하였다. 복음서에 더 많은 내용을 볼 수 있다.

(행3:22,24-25)

For Moses said, 'The Lord your God will raise up for you a prophet like me from among your own people; you must listen to everything he tells you.

 

"Indeed, all the prophets from Samuel on, as many as have spoken, have foretold these days./

And you are heirs of the prophets and of the covenant God made with your fathers. He said to Abraham, 'Through your offspring all peoples on earth will be blessed.'

 

1. 공관복음서 중 마가복음을 좀 더 간결하고 강력한 문장으로 전달되었다고 평가한다.

나는 그것을 마가의 신앙과 문학적인 이유도 있지만 베드로의 영향이 컸다고 확신한다. 마가가 베드로의 헬라어 통역관 이었다면 어떤 면에서는 베드로보다 더 베드로를 잘 알 수 있다 할 것이다. 그리고 베드로다운 신앙 간증 생생한 많은 실제 증거들 간증들을 누구보다도 생생하고 자세하게 들었을 것이다. 복음서에서 베드로의 모습을 보면 그의 행동적이고 열렬한 성격 신앙적 캐릭터 등을 잘 알 수 있다.

  

그 영향을 받았을 것은 너무나 당연하였다. 가끔은 통역을 하면서도 베드로의 간증과 증거를 듣고 마가의 가슴은 뛰었을 것이며 신앙의 영적 혈관의 피가 끓었을 것이다. 아니 그것은 한 두 번이 아니었을 것이다. 개인적으로 통역을 위하여 긴밀한 이야기를 할때도 두 주먹 불끈 쥐며 힘이 샘솟듯 솟았을 것이다. 물위를 걸은 장면을 담담히 듣겠는가, 담담하게 통역하겠는가, 변화산 사건의 장면을 통역할 때 어떠한 모습이겠는가, 우리 자신을 거기에 대입하여 본다면 알 수 있을 것이다. 과연 그 내용들을 기계적으로만 통역할 수가 있었겠는가.

 

자신이 예수님을 세 번이나 부인하였다는 가슴 아픈 이야기를 들었을 때 무감각하게 들었겠는가,, 어쩌면 그 말을 하면서 베드로는 자신의 연약함의 그 모습을 회상하며 마가와 함께 부등켜안고 울었을지도 모른다. 연약함 연민 동정심 죄송함 그리움 등등이 섞여서 함께 울었을지 모른다. 그가 예수님과 함께하였던 것을 알았다면 그 누구라도  깊은 애환을 함께 할 것이다. 그리고 이제 현실의 어려움이나 감사할 일을 겪으며 더욱 그러할 수 있다.(벧전5:13)

( 부활의 소식을 듣고 사도들이 허탄한듯 하여 믿지 아니하였으나 베드로와 요한은 그 무덤으로 달려갔다. 이러한 모습을 통해서도 그의 인간상 캐릭터를 잘 알 수 있다.)

 

2. 베드로의 역사관은 기독교 역사관인 것이다.

이 베드로인 것이다. 어떠한 말도 누가 했느냐 하는 것도 중요하다. 믿을 만한 사람이 한 것인가. 베드로의 간증을 고백을 부인한다면 기독교를 부인한다고 하여도 과연이 아닐 것이다. 예수님의 열두 제자 그리고 그러한 최초의 성령의 임재를 체험한 베드로의 고백을 믿지 않는다면 어떻게 기독교인이라고 할 수 있겠는가,

 

그는 그 시대에 학문적으로 최고의 세속 학부를 마스터 하지 않았지만 그래서 신약의 많은 글은 그의 글이 아니고 베드로 전 후서를 볼 수 있다. 내용은 짧지만 강력한 내용을 볼 수 있고 그의 변화산 체험을 간증하였다. 이 한 사건만 알고 이해한다고 하여도 기독교의 핵심은 다 알았다고 해도 과언이 아닐 것이다. 그 사실적인 장면에 기독교의 모든 것이 실제적으로 압축하여 표현되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라는 것이다. 그는 그 체험을 하였고 거기서도 베드로답게 예수님께 대답하였다. 아니 요청을 하였다. 공포와 황홀함 놀람의 두려움의 그 장면에서도 예수님께 여기가 좋아오니 하고 요청하였다는 것이다. 별로 꾸밈없이 있는 그대로 뭐 이거 저거 계산하지 않고 시원스럽게 살아가는 사람스타일이라고 할까 하는 면이 있다. 이 베드로의 역사관을 볼 수 있다는 것이다.

 

3. 베드로의 기독교 역사관은 가장 신뢰 할 수 있다. 아니 가장 신뢰할 수 밖에 없다고도 할 것이다.

이것은 간결하면서도 어떤 기독교 역사가들이 많은 학구적인 노력의 결과물일 수 있는 고백을 한 마디로 한 것이다.

그러할만한 최고의 신뢰를 갖기에 충분한 제자였다. 예수님께서 직접 듣고 보고 배우고 목격하고 경험한 예수님의 제자였던 것이다. 그는 제자들 중 리더라는 것을 알 수 있다. 제자들도 그들 중 누가 높으냐를 가지고 노상 토론을 하는 장면이 있기에 여기에 새삼 리더라는 말을 쓰고 싶지 않지만 그의 말의 더 큰 신뢰성을 위하여 언급하는 것이다.

(They came to Capernaum. When he was in the house, he asked them, "What were you arguing about on the road?" /But they kept quiet because on the way they had argued about who was the greatest. 막9:33-34)

 

4. 아브라함에게 약속하신 약속이 예수 그리스도를 통해서 완성이 되었고 성령으로 오셔서 그의 일을 계속하시는 것 이것이 천하 만민이 복을 받게 하시는 아브라함의 약속이 지금 계속 성취되고 있다는 것이다.성전 미문에 앉아있는 나면서 부터 걷지 못하는 사람이 예수 이름으로 일어나 걷고 뛰고 찬양하는 모습을 보고 그 표적의 의미를 말하고 있다.

 

하나님께서 아브라함에게 약속하신 땅위의 모든 족속이 너의 씨로 말미암아 복을 받으리라는 언약이 지금 성취되고 있다고 선언하고 있는 것이다.

 

하나님의 언약은 어느나라를 세상의 큰 대제국 만들어주시겠다는 것이 아니라 그의 민족을 이루시고 그의 씨로 말미암아 천하만민이 복을 받게 하시겠다는 약속이 지금 이루어지고 있다는 것이다.

 

베드로의 이 역사관은 많은 믿는 분들이 그렇게 알고 있다. 그런데 베드로가 이 표적을 통하여 이렇게 담대하게 선언 간증하고 있는 것이다. 베드로의 역사관은 곧 기독교의 역사관이라 할 것이다. 그의 선언은 예수 그리스도의 제자로서의 신분 그리고 이 되어진 놀라운 일을 통하여 누구나 믿지 않을 수 없다.

 

( 베드로의 신앙고백은 교회의 신앙고백이고, 물 위를 걷기도 하고 사람을 고치기도 살리기도 하였다. 변화산 광경을 직접 목도 한 제자이기도 하다. 예수님을 세 번이나 부인한 후 심히 통곡한 인간적인 연약성도 보인 사람이다. 내 양을 치라는 명령을 세 번이나 받았다. 베드로의 고백과 말은 그가 어떠한 신분과 경험을 하였는가를 알고 본다면 더욱 실감할 수 있을 것이다.)

 

( * 이 베드로의 역사관을 묵상하는 가운데 역사교과서 문제가 각각 다른 주장으로 분열의 모습을 보이고 있다. 한편 계속 보는 가운데 적절치 않는 비 전문가가 전문가 노릇을 하는 말을 듣기도 한다. 그러나 이러한 상황을 보고 베드로의 역사관이라는 주제를 쓴 것이 전혀 아니다. 그런데 전혀 원치 않게 그 문제를 언급하게 되었다. )

 

( 이 주제를 대단히 진지하게 묵상하는 중이었는데 지금 세속의 역사 교과서 문제로 나라가 의견의 분열이 있다. 왜 일을 이러한 방향으로 가게 하는지 어이가 없다 할까 하는 것이다. 자기식으로 나홀로만 애국자라고 하는 것은 아닌지 언제부터 그렇게 저마다 자기식으로 자기만이 나라를 위하여라고 하는 것인지. 그럴때마다 왜 그렇게 애국심들이 많다면 고위직에는 국방의 의무를 지나가는 인사들이 훨씬 더 많은 것은 의아하다 할 것이다.)

 

5. 역사교육의 목표는 과거의 사실을 통해 지혜와 교훈을 얻고 반성도 하며 배려 포용력 판단력을 기르며 현재를 더 가치있게 그리고 더 나은 미래를 열어가는 것이 목적일 것이다.

 

조금 더 세계 지도자로 포용력과 배려 판단력 지혜를 얻기 위해서는 상대방이 자국의 입장에서 심지어 자국중심의 편파적인 내용까지라도 알고 일리가 있다하며 정반합이라할까 하는 것으로 더 높은 단계로 나아가는 것이다.

상대방 입장의 이해는 아 그쪽에서 보면 그렇게 볼 수 도 있겠고 그것도 일리가 있겠구나. 알프스 산이 이곳에서 보면 동쪽이지만 건너편에서 보면 서쪽이듯이, 동서남북 쪽이 보는 위치에 따라서 다 맞는 것이다. 상대방을 이해 배려하고 그 입장에서 본 것을 수용하고 더 지혜로운 윈윈의 판단을 하며 세계인이 함께 살아가는 것이다.

 

6. 자기 중심의 과도한 기술은 우물안의 사고에 갇히기 쉽고 자기 민족이 최고라고 배웠는데 좀 더 잘 알게 되었을 때, 한번 외국 사람들을 만나고 한번 외국을 방문하고 배운 역사가 틀렸구나 하였을 때, 배운 다른 것까지 부정 불신 할 수도 있는 것이다. 대립 또는 적대하였던 나라가 상대의 나라 또는 국민을 너무 부정적으로 기술하는 것도 결국은 자국에 손해 인 것을 알아야 한다. 그것이 자기 우물안에서만 살 때는 가능한 자기 만족일 뿐 일 것이다.

 

7. 지금의 시대는 씨족 부족 민족주의 사관을 가지고 역사를 기술하는 것 이상의 세계인의 시각을 가지고 기술하여 세계가 함께 하는 세계시민 세계 지도자를 키우는 것이다. 이러한 점에서도 획일화 된 한권의 책으로 가능하다 할 수 있겠는가 보아야 할 것이다.

 

8. 나는 기독교적인 역사관을 가지고 있다. 이것은 물론 신앙적인 역사관이기도 하다. 그러나 학문적인 역사관으로서 부족함이 없다고 본다. 한편 다른 세속적인 다양한 시각으로 쓴 책도 있어야 한다고 본다. 그래야 다양성 속에서 더욱 확실하게 증명할 수 있기 때문이다. 좀 더 다른 것을 배운다는 것이 사실은 더 유익한 면이 있다. 중세를 보라. 중세의 서구의 역사를 보면 교훈을 얻을 수 있을 것이다.

 

물론 사실인 아닌 것에 근거한 유해한 내용은 걸러내야 할 것이다. 무지몽매하거나 악의적인 내용도 없게 검증해야 할 것이다. 혹 들어 있다해도 금방 그것이 진실이 아닌 것이 들어나기도 하겠지만, 그렇다면 전체의 사실적인 내용까지 불신될 수 있다. 그러므로 검증자도 책임이 막중하다 할 것이다. 한편 학문하는 사람들은 학문적인 입장에서 진위를 평가할 것이다.

 

9. 왜 국제적인 어떤 이 분야 학회에서까지 여기에 언급하는 것이 의아하기도 하였는데 한편 더불어 함께 사는 글로벌 시대에 당연하다고 볼 수 있다. 그들의 세계시민으로서의 사명감을 가진 충고를 선의로 받아들이며 경청하여야 할 것이다. 

 

오늘은 세계인이 함께 살아가는 시대이다. 우물안에 개구리식의 제한된 사고를 갖게 하는 것은 이제 가능하지도 않을 뿐 아니라 유익하지도 않을 것이다. 지금은 지식적으로도 자유개방된 세상이 되었다. 막을 수도 막을 필요도 없다.

 

10. 모든 인생들은 모든 삶을 다 살아 볼 수 없었기에 지나간 역사를 통하여 간접적인 경험과 지식을 배우며 역사를 보며 오늘 가장 현명한 삶을 살고  미래를 희망할 수 있을 것이다.

 

톨스토이의 전쟁과 평화에서의 역사 철학적인 질문에서 보듯이 세속적인 사관은 각각 다르게 가지고 볼 수 있다.

   

종교적인 역사관은 학문적이기도 하지만 초월적이고 계시적 신앙적인 하나의 역사관이지만 세속적인 역사관은 다양 할 수 밖에 없을 것이다. 그럼에도 다른 사관으로 보는 관점을 서로 존중하고 이해하며 오늘의 현명한 판단의 객관적 경험적 사실이 될 것이다.

 

지나간 역사들을 배우며 오늘을 반성하기도 하며 지혜를 얻고 다른 관점으로 보는 상대에 대한 이해와 다른 견해를 공부하며 배려하는 것을 배우면서 정반합의 과정을 거치며 분별력을 갖고 바른 판단을 하여 고귀한 인생을 가장 가치 있게 살아갈 수 있는 지식을 배우는 것이라 할 것이다.    

 

나는 그 가장 완전한 내용은 세속적 역사 안에 있으면서도 계시적이고 초월적이고 역사적인 성경을 통해서이고 그것을 이루어주신 예수 그리스도임을 분명히 밝히는 바이다.

 

그것은 학문적으로 연구하고 탐구하여도 찾을 수 있다고 본다. 또한 역사를 통해서 볼 수 있다고 믿는다. 그러기에 세속의 에릭 프롬의 진리는 가장  오래 타는 촛불이라는 말과 내촌감삼의 역사는 복음의 대서특필이라는 말을 인용하는 이유이다. 그것은 그들에게 배운 것이라기 보다는 이십 대 때에 많고 많은 독서를 통하여 찾은 결론인데 같은 말을 하는 내용을 보고 그렇게 공감한 것이다.

 

즉 진리는 영원하고 그 진리는 예수 그리스도 그리고 그의 말씀인 것을 찾은 것이고 믿는 바이고 모두가 믿을 수 있다는 것이라는 것을 확고하게 갖고 있는 것이다.

                                                                                                       ( God bless you.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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