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라오디게아 교회

이동원 (서울북노회,성광교회,목사) 2015-12-09 (수) 13:28 8년전 3837  

1. 라오디게아 교회.

요한 계시록의 일곱교회 라오디게아 교회는 칭찬이 없는 교회이다.

라오디게아 교회는 일곱교회에 주시는 말씀 중에 마지막 일곱 번째 교회이다.

 

교회는 건물이 아니고 사람 즉 믿는자라고 할 때 우리에게 나에게 주시는 말씀이다.

 

마지막 교회라고 할 때 우리 신앙 인생 중에서 마지막에 주시는 말씀으로 받아드릴 수도 있겠다.

이것 저것의 모든 것이 막히고 닫히고 암담하고 답답한 상황에서도 우리가 받을 소망의 말씀이다.

 

다음은 칭찬은 없고 책망만 있는 교회에

사랑하시기에 주신 귀하고 중요한 격려의 말씀을 주시기 전의 상황이다.

 

'내가 네 행위를 아노니 네가 차지도 아니하고 더웁지도 아니하도다 네가 차든지 더웁든지 하기를 원하노라

네가 이같이 미지근하여 더웁지도 아니하고 차지도 아니하니 내 입에서 너를 토하여 내치리라/

 

네가 말하기를 나는 부자라 부요하여 부족한 것이 없다 하나 네 곤고한 것과 가련한 것과 가난한 것과 눈먼 것과 벌거벗은 것을 알지 못하도다.' (계3:15-17)

 

2. 이것은 오늘 한국교회에 주시는 말씀이다.

볼지어다 내가 문 밖에 서서 두드리노니,, ( Here I am! I stand at the door and knock.)

 

문밖에 서서 두드리신다고 하셨는데,

 

이것은 믿지 않는 불신자가 아니라 라오디게아 교회에 주시는 말씀이다. 한국 교회에 교회인 우리에게 나에게 주시는 말씀이다. 교인의 마음의 문을 두드리고 계신다는 절절하고 고마우신 모습이다.

 

자신이 교회인지도 모르고 영광스러운 교회를 비판하며 세월을 보내는 인사들도 있다. 신앙 안에서 남을 말하기 전에 자신을 보면 누구나 느끼는 바가 있을 것이다. 가르치는 위치의 분들도 깊은 성경 연구한 것 전달하여 유익을 주는 것 보다 교회 비판하는 것으로 그 임무를 하는 듯한 인사들도 가끔 볼 수 있다. 그 정도는 누구나 아무나 불신자라도 할 수 있다. 교회란 모일 때 뿐이고 흩어지면 자신이 교회인 것을 잊기 쉽다.

 

영광스럽고 존귀한 주님이 피로 사신 교회를 비판하며 보내는 것은 포퓰리즘적이 아닌지 볼 필요가 있다. 그러할시간 있으면 성경 한 구절 더 보고 묵상하고 기도하는 것이 자신과 타인을 위해서 더 바람직할 것이다. 교회는 따로 어디에 있는 것이 아니라 자신이 교회인 것을 알아야 할 것이다.

 

문밖에 두드리신다고 하신 말씀은 불신자가 아니라 교회에 하신 말씀이다.

라오디게아 교회에 하신 말씀이다. 교회인 우리에게 나에게 문을 두드리며 하신 말씀이다.

 

마음 문 열고 말씀을 들으라는 것이다. 세속의 말이나 학설이 아니라 주님의 말씀을 듣고 교통하자는 것이다.

불신자가 아니라 교회 교인인 우리의 나의 문 밖에서 지금 계속 두드리고 계시다는 것을 절감하여야 할 것이다.

 

3. 한국 교회 외면적으로 많은 부요를 가져왔다.

그러나 이제 적지 않은 분들이 교회의 현재와 미래에 크게 긍정적이지는 않은 말을 하는 것을 듣을 수 있다. 인간적으로 어느 정도 사실이고 일리가 있다 할 수 있을 것이다. 그러므로 많은 인간적인 방법을 강구하기도 한다.

 

그러나 예수 그리스도는 진리이시고 그의 말씀이 진리인 것을 안다면 염려 할 것 없다. 진리는 영원하시기 때문이다. 진리가 아니라면 영원할 수도 없고 영원할 필요도 없을 것이다.

 

우리는 우리가 할일을 다하여야 할 것인데 그 진리의 말씀을 가장 정확하게 전달하는 것이다. 성경을 가장 정확하게 번역하여 그것을 읽고 듣고 먹고 마시고 사는 것이다. 우리가 외면적으로 부요하고 화려하여 보일지라도 주님의 말씀을 읽고 듣고 살지 못한다면 내적으로는 가련한 모습이라고 하셨다.

 

일곱교회 중 마지막 일곱 번째 주시는 이 말씀이 오늘 교회인 우리 나에게 주시는 말씀으로 받아야 한다고 본다.

우리는 지금 외적으로 부요하고 부자이고 화려하지만 사실은 내적으로도 그러한지 그렇지 아니하는지, 서머나 교회같이 보기에는 환난과 궁핍인지만 실상은 부요한 자인지 보아야 할 것이다.

 

마지막 그리고 일곱 번째에 라오디게아 교회에 책망과 함께 주시는 이 귀한 말씀이 오늘 한국교회에 주시는 말씀이 아닐까 하는 생각을 갖는다. 겉으로 보기에는 더욱 화려 부요 부자같이 보이지만 경전의 수정번역을 보면 그러한 마음을 갖지 않을 수 없을 것이다.

 

'무릇 내가 사랑하는 자를 책망하여 징계하노니 그러므로 네가 열심을 내라 회개하라./

 

볼지어다 내가 문 밖에 서서 두드리노니 누구든지 내 음성을 듣고 문을 열면

내가 그에게로 들어가 그로 더불어 먹고 그는 나로 더불어 먹으리라.' (계3:19-20)

 

Those whom I love I rebuke and discipline. So be earnest, and repent./

 

Here I am! I stand at the door and knock. If anyone hears my voice and opens the door,

I will come in and eat with him, and he with me.

  

                                                                                 < 성광교회 이동원 목사 드림>

 

 

 

=. meditation.

1. 더 좋은 편을 택하다.

예수님께서는 준비하는 일이 많아 마음이 분주한 마르다에게,

마르다야 마르다야 네가 많은 일로 염려하고 근심하나 그러나 몇 가지만 하든지

혹 한가지만이라도 족하다고 하시면서 주님의 말씀을 듣는 것이 더 좋은 편을 택한 것이라고 하셨다.

 

영적 존재인 사람은 무엇보다도 먼저 주님의 말씀을 듣는 것이 최상의 선택인 것을 알 수 있다.

(눅10:40-42)

10:40 But Martha was distracted by all the preparations that had to be made.,,/

"Martha, Martha," the Lord answered, "you are worried and upset about many things,/

but only one thing is needed. Mary has chosen what is better, and it will not be taken away from her."

 

1. 다음을 보자.

원문을 모르고, 권위 있는 영어 성경도 모른다면,,

다음의 해석을 어떻게 하여야 할지,, 이 부분은 신앙적 신학적으로도 대단히 중요하다고 본다.

 

개정은 이러한 부분 즉 단어가 완전히 틀리거나 오역이거나 꼭 수정할 부분을 수정하여야 하였는데

이러한 부분은 두고 엉뚱한 수정할 필요가 없거나 하지 않아야 할 부분만을 수정한 것은 이제 누구나 알 것이다.

 

(행2:33)

하나님이 오른손으로 예수를 높이시매
그가 약속하신 성령을 아버지께 받아서 너희 보고 듣는 이것을 부어 주셨느니라(개역)
 
하나님이 오른손으로 예수를 높이시매
그가 약속하신 성령을 아버지께 받아서 너희가 보고 듣는 이것을 부어 주셨느니라(개정)
 
Exalted to the right hand of God,
he has received from the Father the promised Holy Spirit and has poured out what you now see and hear.
 
영어 성경과 함께 보았을 때 밑줄 부분을 오른 손으로 번역하여야 하는가 하는 것이다.
'하나님의 우편(보좌)에 오르심'을 말하는 것이 아니겠는가 하는 생각이다. 하나님 우편(보좌)에 오르시매,.
이 부분 전문적으로 더 깊이 연구하여 보아야 할 것이다.
 
* Exalted to the right hand of God,. 이 부분의 영어 해석을 어떻게 번역 할 것인가,, 원문도 모르고 영어 번역도 참고 하지 않는다면 이렇게 될 수가 있다. 예전에는 개역성경은 한문 혼용으로 되었는데,, 완전 한글로 번역이 되었기에 어떤 부분은 동음이의어로 전혀 다른 뜻의 단어로 해석이 가능하기에 순간적으로 큰 답답함이 있었다.
 
간혹 드물지만 영어 성경이 아니라면 단어의 뜻을 알 도리가 없는 경우도 있었다. 문맥으로 보아도 다른 두 뜻이 가능하고 적절하기도 하였다. 그러기에 목회자는 한영성경이 거의 필수가 되어야 하고 평신도님도 성경을 읽기 위해서 영어를 더 배우면 일거양득이 될 것이다. 한편 동양인 한국인에게 서양어는 너무나 어렵다는 것이다. 문화적인 차이까지 있기게 더 어렵다. 그러므로 단 시간에 완벽하게 잘하려고  할 것이 아니고 성경을 정확히 읽기 위해 그리고 매일 읽기 위해 평생 배우고 실천하는 자세이어야 할 것이다.
 
1. 목회자는 믿는 경전의 원어를 볼 수 있다면 좋을 것이나 너무 어렵고 그것만에 매어 달릴 수가 없다면 어떻게 해야 할 것인가, 사실 원어를 읽을 수 있다하여도 다 잘 해석이 되는 것은 아니다. 한국어를 잘하는 초등학생이 고전 명작을 잘 이해하기 어려운 것과 비슷하다.

다행이고 감사한 것은 한국에서 중등 초등 아니 유치부에서도 공부하는 영어로 매우 높이 평가할 수 있게 잘 번역이 되었다는 것이다. 잘 번역된 두어 권의 영어성경은 원어 못지 않게 잘 이해 할 수 있는 부분도 있다. 심지어어떤 부분에는 원어로는 이해하기 힘든 내용도 더 잘 이해할 수 있게 잘 번역된 단어도 있을 수 있다고 본다.

 

그러므로 한국의 목회자는 성경을 잘 읽기 위해서도 영어를 잘해야  할 것이다. 목회자는 인문학 책을 많이 읽기도 하였지만 영어로도 성경을 잘 읽고 해석할 수 있다는 것 그것은 성경을 원어로 읽는 대용으로 필요하다 할 것이다. 그래서 목회자는 지적세계의 수준이 최상급인 것으로 인식이 되고 또 사실 그러하여야 할 것이다. 그것이 세속에서도 인식이 되었으면 한다.

 

1. 오늘 이상스럽게 기독교가 좀 수준이 낮은 면으로 비춰지기도 하는 것 같다. 이것은 기독교의 복음 전파에도 긍정적이지 않다고 본다. 지하철 등에서 사람을 깜짝스럽게 놀라게 하는 것을 보고 우리가 믿는 기독교가 이러한 것인가 할 것이다. 그것은 믿지 않는 사람 뿐 아니라 믿는 사람에게도 그러할 것이다. 얼마나 효과가 있는지 오히려 역효과가 있는 것은 아닌지 지혜롭게 하여야 할 것이다. 누구를 위한 것인지. 믿지 않는 사람들은 이것이 기독교인가 하며 좋은 인상은 전혀 아닌것 같다.

 

(대단히 그렇지만 지하철 등에 전도한다고 사람을 깜짝 놀라게 하고 많은 사람들에게 오히려 거부감을 준다는 전도방법을 보고 기독교가 상당히 낮은 수준으로 알게 하고 오히려 손해를 끼치는 것이 아닌가 많은 사람들이 생각하는 듯하다. 지혜롭게 하여야 할 것이다.)

 

기독교는 대단히 지적인 면이 있다는 것을 오히려 알리는 것이 복음을 받아드리려는 분들에게도 열린 마음이 될 것이다. 교계의 많은 단체가 있다. 기독교인은 기독교 지도자는 최고의 지적 수준인 것이 알려지는 것도 좋다고 본다. 사실 방대하고 지적인 이 책을 자주 들고 다니는 것 만으로도 너무나 지적 자원을 가지고 다니는 것이다. 분주한 준비와 봉사의 많은 일을 하는 것은 좋을 것이다. 그러나 음식 대접준비도 좋지만 말씀을 듣는 마리아를 더 좋은 편을 택하였다 하였듯이 말씀과 함께하는 삶이 우선인 것을 알 수있다.

 

1. 기독교의 경전은 지적 수준이 높은 책인데 원어로 보기는 힘들다 할지라도 잘 번역된 영어 성경과 함께 읽으면 좋을 것이다. 번역은 시간을 두고 많은 탁월한 분들의 포함하여 목회자 지도자 신실한 많은 성도님들의 검증으로 시간을 거쳐 검증 평가 인정되었기에 영어 성경으로 보는 것도 중요하다. 원어를 볼 수 없다 하여도 잘 번역되었기에 원어와 비교하여 별 부족함이 없이 심지어 부분적으로는 더 이해하기 쉽게 정확하게 잘 번역되었다고 하는 평가를 하고 있다.

단기간 영어 발전 보다 일평생 사용하는 것이 주요하다. 영어만 잘한다고 모든 주제의 표현을 잘하거나 하는 것과 다르다. 이것이 기러기 가족이 줄어든 이유도 될 것이다. 영어는 성경을 모국어와 함께 더욱 풍요하게 잘 이해하는데 필요하기에 하는 목적을 가질 수가 있다. 이것은 기대이상의 유익을 줄 것은 명백하다고 본다.

 

앞으로 기독교의 목회자들은 성경해석을 더욱 정확하게 할 수 있다는 점에서 영어를 당연히 잘하여야 한다고 본다. 물론 문법적으로 모국어에 최상이 아니어도 귀히 쓰임 받은 무디도 있기는 하다.

 

1. 구약을 계시 받고 쓰기도 한 모세의 지적으로도 최고의 학문 과정을 거쳤고 특별히 이방인의 사도로 그릇으로 부름 받은 바울은 그 당시 세계어에 능숙하였음은 너무나 당연하였다 할 것이다. 준비 시키고 또한 준비 된 사람을 사용하시는 것을 볼 수 있다.

그래서 세속에서도 기독교의 목회자들은 지도자로서 인문학 뿐 아니라 영어학문에서도 높은 수준급인 것을 알게 된다면 그것도 좋다 할 것이다. 가운에 학위 표시는 별로 중요하지 않다. 권세 있는 말씀의 인식이 중요하다.

 

1. 성경의 교사이기도 하여야 하는 목회자가 원문을 다 잘 읽을 수 없다 하여도 사전을 찾아 볼 수 있다면 되는 것이고 잘 번역된 영어를 같이 보고 참고 할 수 있어야 한다는 것은 당연하여야 한다고도 볼 수 있다.

 

근래에 목회자가 신분과 세상의 영예에 일정 부분 인정을 받고 초대형교회의 외면적 모습만을 본 이유인지 누구나 너무 쉽게 아는 듯 하다. 심지어 신분상승으로 알고 어떤 과시적인 목적으로 목회자가 되어 생각보다 쉽지 않고 어려움을 절감하는 것을 볼 수 있다. 그리고 세상에 어떤 이미지를 주는 데 역할까지 하는 것을 본다.

 

1. 이것은 절대적인 것은 전혀 아니나 앞으로 목회자는 잘 번역 된 영어를 읽을 수 있어야 하는 정도는 기본적으로 되어야 할 것이다.  평신도님들도 성경을 영어로도 읽고 잘 해석한다면 더욱 진정한 교회 성장을 위하여 유익할 것이다. 이것은 진정한 교회성장인 성도님들의 영적 성장과 지적 영적 부요함을 얻을 수 있을 것이다. 그리고  모든 믿는 분들이 평생 가까이하고 그것이 계속 된다면 그 유익은 클 것이다.

 

( 세상 사람들이 기독교인들 또는 기독교 지도자는 최고의 지식인들 그리고 평생을 배우고 연구하는 수준 높은 사람들이라는 인식을 갖게 되는 것에 대하여 생각해 보아야 할 것이다. 영의 양식으로 매일 먹고 마시면 영적 지적 계속 자라는 것은 당연한 것일 것이다. 그것도 평신도 분들도 원어로 아니면 한글과 영어로 같이 보는 수준이 되어야 할 것이다. 이것은 한국에 혁명적 발전이 아닐까 하는 생각이다. 성경의 번역이 한글에 큰 유익을 주었다 하는데 이제 세계의 시대에 성경을 세계어로 모두가 아니면 많은 분들이 평생 함께 볼 수 있다면 이것은 영적 혁명적인 일이 일어날 일이 아닐까 생각해 본다.

 

1.기독교의 평신도 분들도, 영적 생명의 계시의 책이라는 점은 물론이지만, 육십 육권이나 되는 문학 지혜 역사 고전 언어적인 면에서도 최상의 책을 자주 읽는다는 것은 영적으로 뿐 아니라 지적으로 문화적 문학적으로도 높은 수준임을 알아야 할 것이다.

 

교만은 금물이지만 이러한 귀한 자긍심은 자신에게 긍지를 갖게하여 삶이 부요하고 든든하여 질 것이다.

세상에 이러한 육십육권의 방대한 최상의 책을 매일 읽는다면, 또한 일주일에 한번 이상 아니 거의 매일 들고 다닌다는 점에서 최상의 지적세계를 접하고 있다 할 것이다. 물위에만 떠다니는 백조가 백조인 것을 알때 비로서 하늘을 나를 수 있는 것이다.

 

문학 지혜 고전 역사 정치 교육 국방 경제 거의 모든 분야가 포함되어 있는 방대한 책이다. 이 책을 매일 읽고 또는 일 주일에 한번 이상 가지고 다닌다는 점에서, 영적 생명을 얻는 것은 말 할 것도 없지만, 지적으로도 가장 큰 긍지를 가질 수 있는 것은 너무나 당연하다 할 것이다. )

 

1. 성경은 정확하다.

스데반이 예수 그리스도에 관한 설교를 하고 순교 직전에 본 환상이다. 그가 본 것은 하나님이라고 하지 않고 하나님의 영광이라고 하였다. 막약 여기 하나님을 보았다고 하였다면 보좌에 하나님이 두 분 계시는 것이 된다. 성경은 정확하다는 것을 알 수 있다. 사실 그대로 쓰면 정확할 수 밖에 없다. 그러므로 다른 모든 부분의 말씀과 연결하여 보면 정확하다는 것이다.

 

한편 여기에서 우편은 세상 시각의 위치적인 좌편 우편 그 이상이다. 하나님의 영광의 우편인 것이다. 영적세계에서 좌우편은 없다. 그렇다면 무슨 뜻인지 깊이 묵상하면 예수 그리스도를 더욱 깊이 알 수 있다.

(행7:55-56)

But Stephen, full of the Holy Spirit, looked up to heaven and saw the glory of God, and Jesus standing at the right hand of God./ "Look," he said, "I see heaven open and the Son of Man standing at the right hand of God."

 

1. 누구 때문인가,

주님의 전지하심, 전능하심, 그리고 누구에게나 그 주어진 삶에 의미가 있는 것을 소경을 통해 말해주심으로 누구에게나 위로가 된다. 개정은 맹인으로 수정하였는데 무슨 이유인줄 모른다. 갑자기 표준말이 바뀌었는지, 맹인은 사람 전체를 규정하므로 인도주의적인 면에서도 보야야 하는데 지금까지 익숙한 단어를 왜 수정하였는지 잘 모른다.

 

세상에서 이해할 수 없는 상황에 있는 처지에서도 오히려 하나님의 은혜를 크게 체험할 수 있다는 점에서 모든 사람들에게 큰 위로가 없다. 소경이 눈을 뜨게 되는 증거를 통해서 주님의 말씀은 진실 아멘인 것을 알 수 있다. 

 

(요9:1-3)

예수께서 길 가실 때에 날 때부터 소경된 사람을 보신지라./ 제자들이 물어 가로되 랍비여 이 사람이 소경으로 난 것이 뉘 죄로 인함이오니이까 자기오니이까 그 부모오니이까./ 예수께서 대답하시되 이 사람이나 그 부모가 죄를 범한 것이 아니라 그에게서 하나님의 하시는 일을 나타내고자 하심이니라

As he went along, he saw a man blind from birth./ His disciples asked him, "Rabbi, who sinned, this man or his parents, that he was born blind?" / "Neither this man nor his parents sinned," said Jesus, "but this happened so that the work of God might be displayed in his life.

 

1. 인내의 말씀이란.

인내의 말씀이 아니라 인내로 말씀을 지켰다는 뜻이 아니겠는가,

(계3:10)

네가 나의 인내의 말씀을 지켰은즉 내가 또한 너를 지키어 시험의 때를 면하게 하리니 이는 장차 온 세상에 임하여 땅에 거하는 자들을 시험할 때라.(개역)

네가 나의 인내의 말씀을 지켰은즉 내가 또한 너를 지켜 시험의 때를 면하게 하리니 이는 장차 온 세상에 임하여 땅에 거하는 자들을 시험할 때라. (개정)

Since you have kept my command to endure patiently, I will also keep you from the hour of trial that is going to come upon the whole world to test those who live on the earth.

 

1. 말씀을 듣고 인내로 지키면,

성경은 다 연결해서 보면 일치가 된다.
But the seed on good soil stands for those with a noble and good heart,

who hear the word, retain it, and by persevering produce a crop.(눅8:15)

 

1. 내가 문 밖에 서서 두드리노니, ( Here I am! I stand at the door and knock.)

언제부터인가 한국어의 다른 번역 성경을 보기를 별로 원치 않았지만 이 부분을 어떻게 번역 하였나 보았다.

별로 쓰고 싶지 않지만 왜 성경을 있는 그대로 번역하지 쉽게 한다고 필요 이상으로 무엇을 덧 붙이고 하는지 하는 생각이었다. 누구나 알 수 있는 내용을 독자가 유치원생인줄 아는지 그대로 직역하여도 잘 알 수 있는 내용을 구태여 쉽게 설명한다고 덧 붙이는 모습이었다. 그런다면 성경을 전체적으로 볼 때 더 혼돈스럽고 이해하기가 산만할 수 있다. 여기는 이렇게 쉽게 번역하고 저기는 저렇게 쉽게 한다고 덧 붙이고 하면 더 혼돈스럽고 집중이 안 될 수도 있다. 어떤 음식물에 꿀을 많이 발라 놓으면 그것이 꿀맛인지 음식맛인지 아는 것이 쉽지 않을 것이다.

 

누구나 알 수 있는 내용을 구태여 유치부 어린이들을 대상으로 쓴 것 같이 설명을 위한 설명으로 혼돈스럽기까지 한다면,, 여러 번역들이니 이제는 어느 번역이 맞는지 정경의 권위 문제도 있고, 쑥쑥 읽어나가야 하는데 덧 붙이는 설명들이 많다면 오히려 읽는데 효과적이지 않을 수도 있고 , 물론 쉽다면 보면 되겠고 대단히 다행이지만.

사실적읗그대로 번역하며 되는 데 ,, 문장의 내용을 쉽게한다고 가감이 된다면 이것도 문제일 것이고, 성경에 개인의 주관을 넣었다면 이것도 적절하지 않다.

 

한편 같은 내용을 읽는 분들이 다르게 이해 할 수 있게 번역하였다는 것을 보게 되었다. 그러나 강단에서 공식적으로 보는 것이 아니라면 구태여 언급할 것이 아니며 좋은 점도 있다고 본다.

 

(덧 붙이자면 개역성경은 아직까지 가장 잘 번역하였고 검증이 되었다는 것을 알려야 할 것이다. 이것이 감사하고 다행인 일이다.)

 

( 그런데 공인되고 강단용의 경전이 원문도 한국어도 더 부족하게 수정이 되어 신뢰감을 덜 갖으면서도 계속 읽어야 한다면 그 심정이 어떠하겠는가, 그것도 잘 된 최상의 번역을 수정까지 하여, 그리고 그것을 한국교계의 리더분들이 모르고 있다면, 과거에 비하여 오히려 실력이 더 낫다고 볼 수가 전혀 없다고 할 것이다.

믿는자의 문 밖에 서서 두드리시는 주님의 목소리를 생각한다면 성경의 정확한 번역에 큰 열정과 깊은 통감이 있어야 할 것이다.)

 

1. 그럼에도 이 구절은 조금 어려울 내용을  현대인의 성경은 이해하기 쉽게 번역하였다.

다음을 보자.

(사53:8)

그가 곤욕과 심문을 당하고 끌려갔으니 그 세대 중에 누가 생각하기를 그가 산 자의 땅에서 끊어짐은 마땅히 형벌받을 내 백성의 허물을 인함이라 하였으리요. (개역)

 

그는 곤욕과 심문을 당하고 끌려갔으나 그 세대 중에 누가 생각하기를 그가 살아있는 자들의 땅에서 끊어짐은 마땅히 형벌받을 내 백성의 허물 때문이라 하였으리요. (개정)

 

그가 체포되어 심문을 당하고 끌려갔으나 그 세대 사람들 중에 그가 죽임을 당하게 된 것이 자기들의 죄 때문이라고 누가 생각했겠는가 ? (현대인의 성경)

By oppression and judgment he was taken away. And who can speak of his descendants? For he was cut off from the land of the living; for the transgression of my people he was stricken. (niv)

 

1. 요한계시록에 칭찬 만 있는 두 교회는 서머나교회와 빌리델비아교회이다.

서머나교회는 환난과 궁핍의 상황에서 믿음의 부요한 자가 되었기 때문이며

빌라델비아교회는 적은 능력을 가지고도 주님의 말씀을 지키며(yet you have kept my word)

주님의 이름을 배반하지 아니하였기 때문이었다고 하셨다. (,, have not denied my name)

 

라오디게아교회는 칭찬은 없고 책망만 있는 교회이다. 그러나 주님이 사랑하시기에 책망하신다고 하였다.

그러므로 라오디게아교회에 주시는 말씀은 역설적으로 주님이 무엇을 원하시는가를 가장 잘 알 수 있기도 하다.

 

교회교인의 문 밖에 서서 두드리시면서 원하시는 것은 말씀안에서 주님과의 교통임을 알 수 있다.

May the grace of the Lord Jesus Christ, and the love of God,

and the fellowship (communion,communication) of the Holy Spirit be with you all. (고후13:13)                  

                                                                                              

                                                                                                          ( The Lord be with you.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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