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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교회사에서 가장 잘한 일은

이동원 (서울북노회,성광교회,목사) 2017-05-30 (화) 08:11 6년전 1660  

한국교회사에서 가장 잘한 일은 무엇일까,

사람마다 평가가 다를 수도 있을 것이다. 그러나 한국교회사에서 잘 한일은 한글 성경 번역, 적어도 공동 1위에는 누구나 동의 할 것이다.

 

영적 영원한 생명과 구원을 주는 것은 말할 것도 없고 문화적 문학적 한국사회에 끼친 유익은 말로 다 표현을 하지 못할 것이다. 이것은 따로 논문을 써도 부족할 정도일 것이다.

 

그런데 그 한글 성경이 지금은 한글로 완성된 것이 아니고 옛글로 쓰여진 것을 볼 수 있다. 또한 한문과 혼용으로 쓰여진 책이 근래까지 사용되었다. 그리고 어느 날 한글 전용으로 개정이 되었다. 그러므로 한자어를 한글로 쓰게 되어 간혹 아무리 보아도 이것이 무슨 뜻인가 하는 경우도 전혀 없지 않다. 다른 뜻의 두 동음의 단어가 문장에 있을 때 도저히 알 수가 없는 경우도 있다. 이 경우 영어성경과 함께 본다면 쉽게 구분할 수 있을 것이다.

 

그런데 그러한 고어체 성경을 시대에 따라 조금씩 수정하면서 현재의 개역성경을 우리가 볼 수 있게 되었다. 조금 씩 수정 때마다 더욱 완벽하게 보완한 것으로 보인다.

 

개역성경은 많은 사람이 잘 번역이 되었다고 평가 또는 극찬한다. 좀 어려운 단어들이 있으나 보면 볼수록 정확하고 깊은 내용을 분명하게 잘 번역한 최상의 번역임을 알 수 있다.

 

그런데 부분적 수정의 그 과정에서 그래도 가장 잘 수정하지 못한 경우도 있는냐고 평가한다면 근래에 나온 개정판이라 하겠다. 한국교회사에서 가장 잘한 일을 꼽는다면 한글 성경 번역 한글한문 혼용성경 번역 그리고 지금의 개정을 제외하고 그 동안의 부분적 보완 수정판이라 할 것이다. 그렇다면 현재의 개정판에 대해서는 다시 언급을 하고 싶지 않다. 이미 몇 번의 언급을 하였지만 한국교회사에서 가장 ,, 일 중의 하나가 아닐까 평가할 것이다. 한번 많은 부분을 잘못 수정을 하였다면 그 번역판을 가지고 다시 어떻게 하기가 매우 어렵게 되었다.

개정판 번역의 자세와 문제점에 대해서는 여러번 언급을 하였다. 나도 어떻게 해야 할지 답을 찾을 수가 없을 정도이다.

금년을 종교  개혁 몇백 년이라고 하는데 성경번역에 대하여 좀 더 관심을 가져야 할 것이다. 그리고 좋은 방향으로 대책을 강구하여야 할 것이다. 종교개혁 내용이 말씀 중심 말씀으로 돌아가자는 것 아닌가, 어떤 외적 학위 수평적 이동 성장 과시 자랑 전시효과적인 다양한 프로그램등등 보다 말씀으로 돌아가 말씀이 왕성 흥왕 그리고 신앙의 장성 성장에 관심을 갖도록 하여야 할 것이다. 수평이동의 숫자를 중심으로 하는 성장이 아니라 성도의 성장인데 그 성장은 영의 양식을 먹고 적용하는, 운동 소화 단련 발전 성장, 것 아니겠는가,

 

한국의 성경 번역본들 중에 어떤 문제점을 이미 언급하였다. 그래도 어떤 쉬운 번역본들은 유익이 되었다. 그런데 언젠가 이름 그대로 쉬운 성경이라는 번역본이 나왔다. 어린이들 초신자들이 선호할 수 있게 만들었다는 것이다. 그 때 읽어보았는데 생략이 좀 있어서 좀 문제가 있겠다 하는 생각을 하였다. 그러나 정확한 번역이 아니면 안보는 것이 낫겠고 참고할 수는 있지만 잘 번역된 영어성경을 보기에 그 쉬운 번역본을 보는 경우는 거의 없다. 정확도가 떨어지니 안보는 것이 낫다고 생각하기 때문이다.

 

그럼에도 단지 간혹 몇 번 참고를 하였는데 쉽고 내용을 이해하기 쉽게 잘 번역하였다는 평가를 할 수 있을 것 같다. 간혹 극 소수이지만 문자적으로 생략 부분이 있는 것을 보았다. 그러므로 쉬운 성경을 한번도 통독은 하지 않았고 하려고 하지 않는다.

 

그러나 초신자나 성경이 어려워서 읽기 힘들다는 분들과 어린이들에게는 이 쉬운성경을 추천하고 싶기도 하다. 그래도 쉬운 성경들 중에는 쉬운성경이 가장 잘 번역 되었다고 보기 때문이다. 이 쉬운 성경을 보완할 부분이 있다면 좀 더 보완하고 개역성경도 보완할 부분이 있다면 보완하면 좋다고 본다.

앞으로 개역 성경은 좀 더 문자적으로 가장 정확한 경전이므로 성경을 깊이 묵상하려는 분들과 공적이고 강단용으로, 쉬운 성경은 어린이 초신자 그리고 개역성경이 어렵다는 분 누구나 많이 볼 수 있는 성경으로 자리잡게 하는 것이다.

 

한편 영어 성경을 자주 보아서 그러한지는 모르나 우리 한글 성경으로 읽을 때 느끼지 못하는 새로운 맛이 있다. 다른 언어니까 그러하기도 하겠지만 영어의 문장의 구조가 그러한가 하는 생각도 해본다. 영어는 한국어와 문자의 단어의 배열순서가 다르다. 먼저 결론을 내리고 그 결론에 덧붙여 가는 언어의 문장 구조이다. 그래서 그러한지 무엇인가 딱딱 순서적으로 맞아 떨어지는 느낌이라 할까, 즉 결론 내리고 그것에 대한 설명으로 이어지는 언어 구조이어서 인지 한글성경으로 읽을 때와 다른 새로운 맛이 난다.

그리고 한글 성경으로 읽을 때 미처 깨닫지 못하는 부분도 새롭게 깨닫게 되는 경우가 있다. 물론 영어가 한글보다 더 뛰어나다는 것은 전혀아니다. 영어로 읽다가 잘 번역된 한글 성경으로 읽으면 영어성경에서 깨닫고 느끼지 못한 새로운 맛을 느낄 수도 있을 것이다.

 

엉어성경이 단어들이 비교적 쉽다고 말하는 분들도 있다. 그런데 그것이 좋은 것이다. 말과 글을 쉽게 쓸 수 있다면 좋은 것이다. 어려운 말을 하여 상대가 못 알아듣는다면 말하는 의미가 없다. 성경이 풍부하고 깊이 있는 모든 내용을 어렵지 않은 단어로 쉽게 표현한 것이라면 더욱 최상이라 할 것이다. 또한 많은 부분 사실이 그러하다. 서구의 많은 사람들이 성경을 읽고 명작을 쓴 것을 알고 있다. 아니 모든 부분에 그 영향력은 말로 다할 수 없을 것이다.

종교개혁 몇 백년을 기념한다면 개역성경 번역 연구 그리고 한영성경에 관한 관심과 읽는 일을 권장 확장하는 기회기 되어야 할 것이다.


그리고 개역 성경이 어렵다지만 언젠가부터 하단에 주석등 자세히 설명 해설해 놓은 성경들이 이미 많이 출간 되었는데 대단히 높이 평가할 만 할 일이다. 한영성경도 하단에 단어장과 숙어 해설이 있고 참 잘 되어있어 수고한 분들의 숨은 노력이 있었다는 것을 알 수 있다. 교회사에 여러분야에 이렇게 수고한 분들이 많았다는 것이다.

                                                                                             < 성광교회 이동원 목사>

                                                                                          

=. 예를 들어보자. (example, instance)

개정의 문제점을 보자 ,, 번역의 몇 부분을 보면 번역자의 수준 그리고 신앙 사상 신학 심지어 교양등까지 알 수 있다. 좀더 쉽게  번역했다는 어떤 시편번역을 보면, 번역자의 개인적 시적감상과 의역적 수식과 무엇이 들어있는 것도 보일 정도이다. 이것은 전혀 적절하지 않다. 이것은 성경을 번역한 번역자의 가감의 글을 읽게 되는 것이다. 쉬운 요약과 의역이 있다고 미리 말하지 않는다면 그것은 더욱 적절치 않다.

이미 시리즈로 그 개정 구절의 적절치 않는 수정을 지적하였지만 두어 군데 예를 보자.

 

1. 한문의 소자의 뜻은 아들이라는 뜻이 있고 어린자의 뜻이 있는 것이다.

그런데 개정은 이 두 경우를 다 작은 자로 수정하였다.

(마9:2)
침상에 누운 중풍병자를 사람들이 데리고 오거늘
예수께서 저희의 믿음을 보시고
중풍병자에게 이르시되 소자야 안심하라 네 죄 사함을 받았느니라.' (개역)

 

(개정)
침상에 누운 중풍병자를 사람들이 데리고 오거늘 예수께서 그들의 믿음을 보시고 중풍병자에게 이르시되 작은 자야 안심하라 네 죄 사함을 받았느니라. (개정)

Some men brought to him a paralytic, lying on a mat. When Jesus saw their faith, he said to the paralytic, "Take heart, son; your sins are forgiven." (마9:2)

 

개역의 '소자'(son) 라는 단어가 개정에서는 '작은 자' ( these little one)로 전혀 다른 뜻으로 수정되다.
 

 

아들아,
예수님께서는 네 사람이 들어 데리고 온 중풍병자를 ' 아들아' 라고 부르신 것이다.
원어나 영어 성경에도 작은 자라는 뜻이 없고 아들(테크논, son) 이다. 이 부름의 명칭을 통해서 예수님이 누구이신가 도 알 수 있다. 즉 예수님이 누구이시기에 그를 아들아 라고 부르시는가를 묵상해 볼 수 있다.

본문에서  개정번역은 '소'자를 쉽게 한다고 '작은' 자라고 수정하여 전혀 엉뚱한 단어로 바꾸어 버린 것이다. 내용에도 맞지 않고 원어의 단어에도 그러한 뜻이 없다. 그리고 작은 자란 무엇을 말하는가, 나이가 어린 자를 말하는가,  물론 본문은 그 뜻이 아니라 아들이라는 뜻이다.

네 사람에 의해서 실려 온 이 중풍 병자에게

아들아 라고 부르는 그 부름의 칭호를 통해서

예수님이 누구이신가 어떠한 분이신가를 감동적으로 알 수 있다.

 
( 본문 마9:2, 막2:5의 소자(son) 와 마18:6,10,14. 막9:42의 소자( these little ones)는 원문에서 전혀 다른 단어이다. 그런데 개정은 다른 단어인데 다 '작은 자'라 수정하였다. 아들이라는 뜻의 단어를 작은 자 로 번역, 수정까지 하여 어이없는 번역이 된 것이다.)


1. 넓이와 너비

(3:18-19)

(개역)

3:18 능히 모든 성도와 함께 지식에 넘치는 그리스도의 사랑을 알아

3:19 그 넓이와 길이와 높이와 깊이가 어떠함을 깨달아 하나님의 모든 충만하신 것으로 너희에게 충만하게 하시기를 구하노라 (개역)

 

(개정)

,, 알고

3:19 너비와 길이와 높이와 깊이가 어떠함을 깨달아 하나님의 모든 충만하신 것으로 너희에게 충만하게 하시기를 구하노라

3:18 may have power, together with all the saints, to grasp how wide and long and high and deep is the love of Christ,

3:19 and to know this love that surpasses knowledge--that you may be filled to the measure of all the fullness of God.

 

읽을 때마다 깊은 내용을 경솔하게 수정,, 아니 이 단어는 또 왜 수정하였지 하는 부분도 많다. 지금 다시 보고 있지만 ,, 넓이를 왜 너비로 수정하였지,, 다시 보면서 하도 궁금하여서 넓이와 너비를 국어 사전으로 찾아보았다. 넓이가 더 맞을 듯하다. 그런데 왜 이 부분을 수정하였는지 희한한 일이다. 부족한 실력에 과시 자랑 하는 것인지. 개역 번역 팀들보다 실력있다고 없는 실력에 티내려고 하는 것이었는지.

 

일반적으로 넓이를 쓰는데,,

사전을 보니 너비가로의 길이를 나타내는 우리 말,, 이라고 한다.

그렇다면 그 다음 나오는 단어 길이와 중복이 되는 말이다. 똑 같은 단어라면 내용의 번역이 잘 못된 것이다. ( 3:19)

기가 막히고 희한한 일이다. 다시 말하지만 개정의 개정 보면 볼수록 기이한 일이다.

개정 수정팀은 너비를 가로로 보고 길이를 세로 본 것인가,,

 

국어사전을 보자.

넓이: 일정한 평면에 걸쳐있는 공간이나 범위의 크기,

너비: 평면이나 넓은 물체의 가로로 건너지른 거리

 

원문을 보자: 플라토스,, 넓이. breadth, width.

 

우리가 그리스도의 사랑은 태평양보다 넓고 우주보다 넓고,, 이렇게 쓰는 것이다.

그 넓이를 말하는 것인데 ,, 너비는 어디에서 날아와 무슨 뜻인고,, 가로를 말한다면 그 다음 단어가 세로가 아니라 '길이' 이다. 너비가 넓이를 뜻하는 것이라면 수정할 이유가 없다. 누가 무슨 뜻으로 넓이를 너비로 수정하였는지,, 이렇게 개정하여 한국교계에 내어놓은 것이다.

런데 또 이 구절에서는 왜 '알아'를 '알고' 로 수정하였는지,, 이렇게 불필요한 부분을 수정한 것은 '체'하는 모습일 뿐이다.



1. ' 증언' 보다 '증거'가 맞다.

개정 번역을 읽다보면 선호하는 단어도 알게 되는데 개역의 '증거'를 개정은 대부분 '증언'으로 수정하였다는 것이다. 증언이라는 단어를 선호하고 있다. 그런데 하나님께서 기적 표적으로 보여주시는 것을 개역의 번역대로 '증거'라고 해야 맞다. 증언은 사람이 말하는 것 , 언어로 증거하는 것을 말한다.

그런데 하나님께서 행하신 기적 표적을 통해 하나님이 증언하셨다는 수정이 여러군데 아니 대부분인 것을 보았다. 개인이 좋아하는 단어 또는 개인의 신학적 입장을 반영할 것이 아니라 정확한 번역을 해야 했다. 그런데 잘 번역된 부분을 수정까지 해서,, 원어의 뜻  그리고 내용에서 '증거'가 맞다. 다음을 보자.

(마16:20 )

제자들이 나가 두루 전파할새 주께서 함께 역사하사 그 따르는 표적으로 말씀을 확실히 증거하시니라.

Then the disciples went out and preached everywhere, and the Lord worked with them and confirmed his word by the signs that accompanied it.

(증거: 원,, 베바이오오,, 확증하다, 확고하게 하다.confirm , establish, stablish, to make firm, make sure)

(히2:4)

하나님도 표적들과 기사들과 여러 가지 능력과 및 자기 뜻을 따라 성령의 나눠 주신 것으로써 저희와 함께 증거하셨느니라.

God also testified to it by signs, wonders and various miracles, and gifts of the Holy Spirit distributed according to his will.

(증거,, 원) 쉬네피말튀레오,, . to testify together, also bear witness, at attest together with, to join in bearing witness, to unite in adding testimony.

1. 바울 서신이 어려운 부분이 있다. 그것은 바울이 영적 신비한 체험을 특별히 많이 하였기에 그리고 학문의 공부를 많이 한 사람이기 때문이기도 할 것이다. 그러나 그는 그것을 자랑하지 않고 쉽게 쓰려고 하였다. 깊은 체험과 깊은 학문의 내용이 그의 글에서 나타나기도 한다. 깊은 영적 체험과 많이 공부한 사람이 아니고는 표현하기 힘든 문장들도 있다.(,, 2:6-7, 4:6 , 고후12:1-11)

 

1. 영광스러운 기업의 풍성함,,

다음 구절을 영어성경과 함께 보면 그 의미가 더 쉽고 깊고 풍성하게 알 수 있다.

(1:18)

너희 마음 눈을 밝히사 그의 부르심의 소망이 무엇이며 성도 안에서 그 기업의 영광의 풍성이 무엇이며

I pray also that the eyes of your heart may be enlightened in order that you may know the hope to which he has called you, the riches of his glorious inheritance in the saints,

 

개역성경에 기업의 영광의 풍성함이라고 번역하였는데 이것은 어려운 내용이 아니라 번역의 문제라 하겠다. 영광스러운 기업의 풍성함 이라고 하면 누구나 알 수 있고 은혜스러운 말씀인데 기업의 영광의 풍성함이라고 하면 이것이 무슨 말인가, 성경이란 이렇게 어려운 것인가, 물론 경전이기에 어려운 부분이 많이 있을 수 밝에 없다. 하늘의 신비한 모든 내용을 어떻게 다 쉽게 말할 수 있겠는가,

그러기에 경전이라고 하지 않는가, 성서라고도 하는데 한문 성경을 일본말로 번역하는 과정에서 왔다는 설이 있다.

그러나 이 부분은 번역을 잘 하였다면 쉽고 풍성한 은혜의 내용이다. 개정은 이러한 부분을 수정하였다면 좋았을 것을 이러한 부분은 거의 손도 대지 않았고 불필요한 부분만 수정하였고 잘 번역된 깊은 내용들을 수정한 것이다. 이러한데도 이른바 한국의 저명한 신학자들 누구도 공적으로 보는 개정번역에 대해서 언급이 거의 없다는 것이다.

 

1. 다음을 보자.

교회를 열열히 살기 등등하여 지속적으로 핍박한 바울이 교회가 무엇이지를 알고 교회를 높혔다. 에베소 서신서에 특히 교회를 강조하였다. 다음부분을 영어성경으로 보면 그 의미가 쉽게 들어오며 교회의 충만함에 대하여 더 잘 알 수 있다.

(1:23)

교회는 그의 몸이니 만물 안에서 만물을 충만케 하시는 자의 충만이니라

which is his body, the fullness of him who fills everything in every way.

                                                                                                                    ( - ing)  # 줄 간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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