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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라를 생각하며 8- 교육, 방송개혁

이동원 (서울북노회,성광교회,목사) 2017-06-14 (수) 09:55 6년전 1648  

1. 대학 시험의 영어 과목을 상대 평가보다 절대 평가로 한다는 보도를 보았다.

공부의 평가들도 절대평가로 한다는 보도가 있는 것 같다. 이것도 역시 발전적으로 본다.

 

영어를 배우며 읽고 쓰고 말하고 들을 수 있어 자신의 의사 표시를 할 수 있는 것이 목적이어야 한다. 그런데 변별력 목적으로 점수의 순서로 석차를 매기기위해 시험을 치르게 하다보니 미국학생이 보아도 어렵게 시험 문제를 내는 것이었다. 그러다 보니 실제 실용적인 언어 사용이 어렵고 시험을 위한 공부가 되어 실제적으로는 적용하는 발전이 없다. 그리고 불필요한 경쟁을 위한 경쟁의 교육을 할 수 밖에 없는 것이다.

내가 말하고 듣고 쓰고 읽고 들을 수 있고 그것을 활용하여 점점 발전시켜 나아가야 한다. 그런데 시험점수의 변별력을 위한 목적으로 하므로 미국의 학생들도 어렵다고 한다는 것이다. 아마 그들은 우리의 모국어가 고향 떠나 타향에 와서 고상이 많다고 할지도 모른다.

가장 기본적인 것을 배운 후 말하고 듣고 쓰고 읽고를 반복 사용해야 하는 것이다. 공부를 위한 공부 시험을 위한 공부보다 활용하는 것이 목적이다.

최근 학생들의 모든 평가를 절대평가로 바꾼다면 이것은 긍정적인 면이 있다고 본다. 서로가 경쟁의 대상이 되어, 심지어 지금도 적의 책 페이지는 넘어가고 있다며 밤 세워 공부했다는 전설, 사람마다 다 다른 장점들이 있을 것인데 어떤 기준으로만 평가하고 등수 매기는 것, 공부의 목적이 사람들 자신과 남을 위해 봉사하기 위해서가 한 목적일 것인데, 무엇을 위해 하고 있는지 생각하며 나아가야 할 것이다.

물론 과학분야 등의 특수학교는 필요할 것이다. 그러한 분야는 특별히 인재를 키워야 하지 않을까 하다.

 

1. 그런데 한국의 학교의 현실을 보면 공부를 하겠다는데 그리고 학비를 내고 공부를 하겠다는데 그것을 막는 꼴이 되어 버렸다. 학교의 입학은 쉽게 해서 누구나 공부하기를 원하면 어렵지 않게 입학하여 공부할 수 있는 제도로 나아가야 할 것이다.

가능하면 입학은 쉽게 해야 한다. 입시 경쟁을 줄이고 원하면 누구나 공부할 수 있게 하여야 한다. 단지 졸업은 실력을 갖추게 할 것이다. 혹 졸업을 못하면 수료증을 주면 될 것이다. 졸업장과 수료증의 차이가 없도록 하여야 한다. 졸업생이나 수료생이나 차별이 없고 그 실력에 따라 취직도 할 수 있어야 한다. 학교의 학점 평가로 사람을 전인적으로 평가하기는 한계가 있기 때문이다. 일반적으로 저마다 자기 장점이 있고 사람을 찾는 곳의 평가기준도 다 다를 수 있을 것이다.

 

사실 명문대 졸업 즉 학교성적과 일하는데 성적은 반드시 일치하지도 않을 것이고,, 사람의 평가를 어떤 시험으로 판단하기는 적절하지 않을 수도 있다. 즉 우수한 학점을 따고 졸업장을 받는 학생이나 학점에 못 미치어 학점을 못 따는 경우에  그 성적에 따라 사람의 모든 실력을 평가하는 기준에 일치한다고 할 수 없다.

입학 문을 넓게 해서 누구나 웬만 하면 입학하고 졸업은 학점을 기준으로 하여 졸업장을 주고 학점에 못 미쳐서 점수가 못 나오면 수료증을 받고 그 다음 어떤 시험에는 졸업장 받은 사람이나 수료증 받은 사람이나 똑같은 자격을 주고 그 회사나 거기의 기준에 맞게 사람을 뽑으면 된다. 수료증만 받아도 전혀 문제가 안 되게 하는 것이다. 단지 그 전공의 교수로 나갈 학생에게는 그것이 큰 참고가 더 될 수도 있을 것이다.

 

즉 취직 시험에 졸업생이나 수료증에 시험자격에 차별을 두지 말고 그 회사의 원하는 실력을 볼 수 있게 하면 될 것이다.

덧붙여, 정부와 교육부는 고등학교까지 의무교육 그리고 대학등록금은 반값이하로 줄이는 정책은 재정적으로 부담이 있겠지만  결국은 나라와 국민들에게 큰 유익이 될 것으로 보인다.

덧붙여,, 지나고 보면 대부분의 경우 다 자기 분야는 잘하고 전문가이고 댜른 분야는 잘 모른다는 것이다. 이것은 유학파 고시 수석파 명문대파 등등도 예외가 아니다. 자기 전문분야를 잘 안다는 것은 다른 모든 분야를 잘 안다는 것과 다르다. 그 만큼 더 잘 모를 수 있다. 그러므로 사람을 어떤 기준으로 획일적으로 판단하는 것은 매우 적절하지 않을 수 있다는 것이다.

1. 방송개혁,

내친 김에 방송에 대해서도 논한다면

요즈음 그리고 앞으로 변화도 예상 되지만 그 동안 종편의 정치평론이랍시고 국민 평균수준 이하의 평론들로 국민에게 스트레스만 많이 주었다. 그래 이제 거의 티브이를 시청하지 않을 것이다. 우리국민의 의식 문화 예술의 수준에 맞게 개편 편성하여 방송을 국민에게 돌려주어야 하겠다.

언젠가 ebs의 영어프로에서 어느 여성 강사가 교양 사상 철학의 내용의 문장들을 강의하는데 상당히 인상적이었다. 우리나라에 실력있는 인재들이 많구나 하였다. 외국어의 강의도 강의지만 그 내용이 교양 명언 사상 등 좋은 내용을 소개하며 가르치는 것이었다. 내용이 깊이가 있기에 약간 어렵다고 할 수도 있지만 품성있는 강사의 방송의 교육 수준을 높여주는 내용들이었다. 그것을 배우는 학생들에게 어학 뿐 아니라 좋은 내용과 강사의 품성까지 전달 되는 호감가는 재원이었다.

그런데 강의가 좀 어려운 점이 있어서 시청율 때문인지

인재로 보고 어디에서 픽업하여 갔는지 모르지만 프로그램 개편때 그 프로는 없어졌다.

상당한 재원으로 그 고상한 내용을 어떤 사명감을 가지고 힘써 가르치려는 모습이었다. 조금 어려운 사상 교양 철학 내용이어서 시청율 때문인지 모르나 단정하고 진지한 모습에 끌리는 면이 있는 인재구나 하였는데 어느 날 그 프로가 사라졌다. 방송의 품격까지 높여줄 수 있는 프로였는데 아쉬었다.

 

한국의 문화 예술도 수준이 높은 데 한국의 대부분의 종편들이 제작하기가 쉬어서인지 정치평론이 많고 스트레스를 많이 주었다고 할수 있다. 평균수준이하에 편향되어 국민에게 스트레스 많이 주었다 할 것이다. 그야말로 그나물 그밥에 미주알 고주알 하며 주로 유력한 지난 대선 후보 비하하며 종편의 순회강사로 시간을 보내는 방송이었다. 그런데 평론가들은 대부분 박사학위가 많고 교수 앞에 무슨 칭호를 붙은 교수와 박사 풍년인데 판단과 내용은 국민 평균 이상이라 할 수 없으며, 어쩌다 보면그 평론들이 가관이어서 국민에게 스트레스를 주는 경우가 많았을 것이다.

그러므로 방송을 보았다가는 스트레스만 받기에 거의 시청하지 않은 것으로 알고있다. 이제 국민의 수준에 맞게 방송을 편성 제작하여 방송을 시청자에게 돌려주자 라는 구호에 맞게 볼 수 있는 방송이 되어야 할 것이다. 지금은 거의 안보는 것 같고 일부 정치 평론들을 통해서 더욱 스트레스를 주는 경우만 많을 것이다. 좀 더 수준있는 문화 예술 교양의 방송으로 프로그램을 개선해야 할 것이다.

우리 나라에 실력 있는 인재들이 충분히 많이 있다고 본다.

새로운 교육 부총리와 문체부 장관 후보에 대해 국민 기대가 있을 것이다.

 

방송을 잘 활용하면 국민에게 교육 문화 예술 등 많은 유익을 줄 수 있을 것이다. 방송이 국민에게 스트레스를 주는 것이 아니라 국민을 위한  방송이 되어야 할 것이다. 물론 몇 프로그램은 많은 공헌을 하고 있다는것을 국민이 평가하고 있을 것이다.

                                                                                        

                                                                                                    ( -ing)   # 줄 간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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