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한국기독교장로회총회 ::
 
 
 

종교개혁의 의미

이동원 (서울북노회,성광교회,목사) 2017-07-19 (수) 17:48 6년전 2439  

초대교회사인 사도행전을 보면

기독교의 복음이 사도 바울을 통해 로마로 가는 것을 기록하고 있다. 초기에 극한 핍박을 받은 기독교는 로마의 국교가 된다.

 

그 전까지 로마는 다신교 그리고 황제 숭배의 신앙도 있었던 것으로 보인다. 로마는 대제국으로서 많은 나라와 민족을 식민지로 지배하는 과정에서 의도적으로 이든지 아니든지 다양한 종교들의 영향을 받기도 하고 박해하기도 하고 포용 융합하기도 하였을 것이다.

사실 이방인들의 사고에는 신은 많을수록 좋다고 생각하였을 수 있다.

이러한 문화적 배경에서 기독교는 우상 종교 이방 종교 여신교 등의 영향을 주고 받았을 것으로 보인다. 종교 예식과 직제등도 영향을 어느 정도 받았던 것으로 보인다.

 

이러한 상황에서 기독교가 순수한 기독교로 새롭게 되는 것은 하나님의 바라시는 바일 것이다. 성경과 일치된 말씀 중심의 종교로 새롭게 되어야 할 것이었다. 이것이 종교개혁이라 할 것이고 종교개혁은 이러한 점을 성경 중심으로 새롭게 하였을 것이고 그때까지의 기독교에도 좋은 영향과 자극을 주었을 것이다. 즉 이방종교의 우상숭배적 다신교적 내용과 이방종교의 의식과 제도등  내용과 형식의 혼합적 요소가 섞여있다면 당연히 오직 성경 중심으로 새롭게 되어야 하였다.  

오늘의 기독교는 성경 중심의 기독교로 늘 새롭게 하여야 할 것이다.

신학은 학문적으로도 여왕이라는 말이 있다. 그런데 신학이라는 말의 뜻이 무엇인가, 성경에 대한 학설이라는 말인가, 성경에 학설이라는 말이 적절할까, 성경에는 신학자라는 말이 없다. 이스라엘에도 신학자라는 단어가 없다고 한다. 성경에도 선지자 예언자 제사장 율법학자 서기관이라는 말이 있지만 신학자라는 단어가 없다.

 

신학은 학문의 여왕이라는 말은 성서는 학문의 여왕이라는 말이 적절할 듯 싶다. 성경은 기독교의 경전이라는 의미에서 성경이라고 한다. 그런데 성경을 성서라고도 한다. 일설에 의하면 한문으로 성경이라는 단어를 일본어로 번역하는데 성경이라는 한문 명칭이 있어 성서라고 번역하였다는 설도 있다. 실제 일본어 성경을 보니 한문으로 성서라고 하였다.

 

일반적으로 생각할 때 성경을 믿지 않는 사람들까지 포함해서 좀 더 객관화하여 부르는 명칭으로 볼 수 있겠다. 어쨌든 성경은 믿지 않는 분들을 포함해서 모든 사람들에게 학문의 여왕이라는 말은 적절할 것이다.

이 성경의 내용이 구원과 생명을 주는 계시의 책 이면서도 역사 정치 경제 문학 군사 문화 지혜 등등의 다방면의 광범위한 범위에서 유익을 주기 때문이다.

이 책을 가능하면 어린시절부터 평생읽으면 구원과 영생 뿐 아니라 학문의 여왕이라는 명칭에 맞게 많은 지적 유익을 주고 있다.

이 책은 우리 모국어인 한글로 뿐 아니라 세계어인 영어로 잘 번역이 되었기에 영어로도 읽을 수 있다는 것은 읽는 자들의 행운이라고 하겠다. 지적 학문적으로 뿐 아니라 상상하는 것 이상의 인생의 최대의 유익을 주고 있다.

   

( 우리나라의 기독교 초기 성경 주석을 쓰신 분들은 우리가 기대하는 이상의 실력을 갖추었을 것이라는 것이다.
그 당시 학문을 하는 분들은 우리의 언어와 연관이 깊은 한문을 공부하였고 시대상황을 보면 자연스럽게 한국어를 제외하고도 동양어 2개 국어를 구사할 수 있었다. 더구나 히브리어 헬라어를 공부하였다면 6개 국어를 할 수 있는 분들이다. 그러므로 지금의 신학자들보다 실력이 조금도 부족함이 없었을 것은 분명하다. 그분들 중에 주석서를 쓰신 분들이 개역 성경 번역을 검증 감수하였다는 것이다.)

( 기독교가 로마로 건너가 많은 핍박과 고난의 과정을 지나 로마제국의 국교가 기독교가 되었다. 그 당시 로마제국은 세계와 같다 할 것이다. 그 로마는 다신교가 바탕이었고 기독교의 발전과정에서 황제숭배교 우상교 여신교 등과 의도적이든 의도적이지 않든 섞여지게 되어 혼합적인 종교의 내용과 종교의식이 섞여 있었다. 종교개혁을 해야 할 수밖에 없는 내용들이 담겨져 있었다.

기독교에서의 예식은 구약을 보면 있다고 할 수 있다. 그러나 인간들이 만든 보이는 형상을 볼 때 좀 더 그럴듯하고 보이는 무엇이 필요하다는 심정이 있을 것이다. 금송아지 신상을 만든 인간의 모습을 볼 수 있다.)

   

수평 이동의 숫자를 교회 성장목표로 과도한 경쟁 과시 또는 성경보다 어떤 서구 신학자들의 튀는 학설 유행학설 직 수입 과시 등등에서 성경으로 집중하고 잘 번역 된 성경말씀을 읽는 운동을 하여야 하겠다.

가능하면 세계화 시대에 세계어로도 읽는 훈련을 생활화 하여야 할 것이다. 목회자들은 원어를 다 잘 읽을 수 없다하여도 사전만 찾을 수 있다면 별 문제는 없다고 본다. 아니 충분하다고 본다. 원어 안다고 성경 잘 아는 것도 아니다. 그러나 이왕 공부한 세계어인 영어로 거의 원어 못지않게 잘 번역된 영어성경은 필수적으로 읽을 수는 있다면 좋을 것이다. 더욱 정확한 내용을 알 수 있고 모국어로 읽을 때 느끼지 못한 것을 느끼고 깨달을 수 있다.

 

성경을 읽을 때 오늘의 세계어를 함께 사용하므로 그것은 영력 뿐 아니라 국력이 되어 최근에 일부 정치 지도자 사회 지도자에게서 보듯이 어느 나라에 종속된 사고에 벗어날 수 있다. 어느 나라보다 하나님을 의지하게 되는 것이다. 어떤 집회에서 어떤 외국국기를 의지하는 마음으로 종교인이 든다는 것은 한편으로는 참 가관이라고 볼 수도 있을 것이다. 나라의 지도자들이 어떤 외국의 사고와 사관에 종속된 느낌도 받는다.

옛날에 식민 사관이라는 말이 있었다. 식민지 국을 통치하기 위해서 주입한 것이다. 그런데 피식민지국은 그것도 모르고 자신들이 그 사관을 가지고 있다는 것이다. 한국은 이미 1919년에 오등은 자주 독립국가임을 선언하노라 하였는데 하나님보다 어떤 나라나 의지하는 사고는 자라나는 어린이들이나 청소년들에게도 본이 안된다.

어떤 나라를 무시하자는 것이 아니다. 하나님 앞에 평등 동등하게 우정을 갖는 것이다. 이것도 세계어를 모르면 괜히 기죽고 친구로서 할 말도 못하는 모습도 지도자들에게 보인다. 언어가 소통이 되면 더 자신감을 가질 수 있다. 물론 맹목적으로 그 나라 언어만 한다면 그 나라의 사고방식으로 생각할 수도 있다. 그러므로 외국유학자등이 그 나라 이익의 관점을 같이 말하고 있는 유학파도 적지 않다. 지금 한국인 수준은 대단히 높다는 것이다. 한국의 지도자들 특히 정치 지도자들은 그것을 알아야 한다.

성경을 읽고 잘 안다면, 성경을 모국어와 세계어로 읽고 잘 이해하였다면 세계인과 서로 사랑과 우정과 세계 평화와 번영의 정책을 자신감을 가지고 함께 나아갈 수 있다.

세계인이 가장 많은 보는 책을 잘 안다는 것은 세계인을 잘 이해할 수 있으며 함께 윈윈의 길로 가는 일에 매우 유익하다 할 것이다. 지피지기이면 상대와 대화 공감하며 세계의 공동의 선한 목표로 갈 수 있는 것이다.



 

 =. 묵상 ( meditatiion)

당대의 학자라고도 할 바울, 로마 총독으로 부터도 많은 학문을 한 사람으로 평가받은 바울은
그의 동역자 그리고  믿음의 아들이기도 목회자  디모데에게 서신 내용 이다. 영어 번역 중 equipped  라는 단어가인상적이다.

영적인 부분 목회적인 부분 뿐 아니라 우리의 모든 세상사에  장비를  갖출 수 있게 하는 또한 장비가 되는 책인 것은 분명하다 할 것이다.

(딤후3:14-17)

But as for you, continue in what you have learned and have become convinced of, because you know those from whom you learned it,/

and how from infancy you have known the holy Scriptures, which are able to make you wise for salvation through faith in Christ Jesus./

All Scripture is God-breathed and is useful for teaching, rebuking, correcting and training in righteousness,/

so that the man of God may be thoroughly equipped for every good work.



=. 이론과 실천 ( theory and  practice)

1. 말씀으로 돌아가는 것이 종교개혁 이후 일어난 한 현상이다.
그러므로 마틴 루터는 독일어로 성경을 번역하였던 것이다. 그러므로 믿는 많은 사람들이 성경을 읽으면 하나님의 음성을 듣고 영적 부요함을 누릴수 있으며 날마다 영의 양식을 먹을 수 있는 것이다.

 

그런데 그 성경이 잘 못 번역 되었다면 어떠하겠는가,
성경을 다른 나라 언어로 완벽하게 번역한다는 것은 결코 쉽지 않으나 하나님의 말씀은 일점 일획도 틀림이 없다는 것 그리고 하나님의 말씀은 가감하지 않아야 한다는 것 이 의미를 알고 더욱 완벽하게 번역하여야 할 것이다.

몰론 성경이 어려우니 요약하여 이야기 식으로 전하는 것도 그것을 분명히 알리고 쓴 책이라면 좋다고 본다.

   

그렇다고 성경을 완전히 다 알아야 하는가하며 낙심할 것은 전혀 없다.

성경에서 알아야 하고 고백할 것은

교리인 신앙고백과

실천 할 계명 인데 그것은 십계명으로 요약하여 손수 돌판에 써 주셨고

예수님께서는 그것을 더 요약하여 가장 크고 첫째 되는 계명을 알려 주셨다.

 

그러므로 교리와 계명의 핵심을 아는 것은 한 시간도 안 걸릴 것이다. 더 짧은 시간일수 있다.

이 교리와 계명에 근거해서 성경을 읽고 해석하는 것이고 감동을 받는 것이다. 성경은 이 핵심 교리와 계명이 어긋나는 해석이 있을 수 없다. 성경은 하루아침에 다 이해가 안될 수 있느나 어려운 부분은 건너뛰고, 다음에 더 크게 깨닫고 누릴 수 있다. 경전의 내용이 너무 쉬울 수도 없는 것 아닌가, 가장 쉽고도 가장 어렵고 깊이가 있을 것이다.

 

이 교리와 계명을 근거로 해서 하나님의 말씀을 읽으면서 무한한 은혜를 누릴 수 있는 것이다.

교회의 교리인 신앙고백은 무엇인가: 마16:15-21

교인이 된 성도가 실천하여야 할 계명을 요약하면 무엇인가, 즉 가장 크고 첫 계명은 무엇인가: 막12:28-31

 

1. 성경이 어렵다고들 하는데 번역의 문제도 있다.

다음을 개정 번역으로 보자. 무슨 말일까, 쉽게 알 수 있는 듯 하면서도 읽으면 읽을수록 무슨 말인지 알 수 없다. 한 예를 보자. 주어가 무엇인가 , 목적어가 무엇인가,

(왕하19:20)

아모스의 아들 이사야가 히스기야에게 보내 이르되 이스라엘 하나님 여호와의 말씀이 네가 앗수르 왕 산헤립 때문에 내게 기도하는 것을 내가 들었노라 하셨나이다 (개정)

슨 내용인지 아시겠는가 , 누가 누구를 히스기야에게 보내었다는 것인가, 이사야가 보내었다는 것인가, 이사야를 보내었다는 것인가, 내용을 보면 이사야를 보내었다는 것 인데 , 주어가 누구인가, 목적어는,  알 수 있겠는가,


개역으로 보자.

' 아모스의 아들 이사야가 히스기야에게 기별하여 가로되 이스라엘 하나님 여호와의 말씀이 네가 앗수르 왕 산헤립 까닭에 내게 기도하는 것을 내가 들었노라 하셨나이다.' (개역)

아 이 내용 이었구나,

Then Isaiah son of Amoz sent a message to Hezekiah: "This is what the LORD, the God of Israel, says: I have heard your prayer concerning Sennacherib king of Assyria.

   

개정의 번역자가 이 구절 중에서,, '기별하여'를 보고

흐음 '기별하여' 이 단어가 좀 어렵구먼,, 글쎄 어려울까,, 아무튼 기별하여를 '보내'어로 수정하였던 것이다. 그런데 도대체 이게 무슨 말인가, 초등생도 중등생도 대학생도 인문학 박사도 국문학자도 성경학자도 신학교수도 알 수 없는 구절이 된 것이다. 초등학생이 국어를 열심히 공부하고 이 구절을 읽는면,  갸웃뚱 갸웃뚱,,

혹 고개 운동 두뇌 운동에는 도움이 되려나, 왜 잘 번역한 내용을 수정까지 하여 많은 부분을 이렇게들 하였는지,

 

( 이사야가 히스기야를 보내,, 내용이 이상하다.

누가 누구를 누구에게 보내서 어떻게 하였다는 것인가, 이것은 미스 프린트인가, 글쎄 기별하여 라는 단어가 뭐가 어렵다고 단어 제한으로 수정 번역하였나, 개정 번역을 읽다보면 이러한 종류의 수정이 너무나 많고 많다.)

 

1. 그런데 왕하 20:20의 수도는,

한문을 한글로 그대로 쓴 단어인 듯한데 그래도 내용상 수로라고 하였다면 훨씬 이해가 빠르고 선명하였을 것이다. 물론 히스기야 왕이 국가의 수도를 옮겼다고 볼 독자는 없겠지만, 처음엔 내용상 샘의 펌프 질 하는 수도로 알 사람도 있을 수 있다. 이런 부분을 수로 라는 단어로 수정하였다면 좋았을 것인데 이러한 부분은 대부분 그대로 였던 것이다.

이것도 우리 한국교계가 성경과 실제적 실력 보다 학위 간판 숫자 프로그램 등등의 외형적인 것에 더 관심과 심지어 높인 이유도 전혀 없지는 않을 것이다.

개정 수정의 적지 않은 오류 수정은 그것을 발견하려고 하여 발견한 것이 아니라 읽으면서 내용이 이상하여 개역과 같이 보았던 것이다. 수정까지 하여 내용을,, 그 대책에 관해서는 이미 몇 번 언급하고 역설한바 있다.

       

(왕하20:20) 수도,, 수도 그리고 못

히스기야의 남은 사적과 그 모든 권력과 못과 수도를 만들어 물을 성중으로 인도하여 들인 일은 유다 왕 역대지략에 기록되지 아니하였느냐 (개역)      

히스기야의 남은 사적과 그의 모든 업적과 저수지와 수도를 만들어 물을 성안으로 끌어들인 일은 유다 왕 역대지략에 기록되지 아니하였느냐 (개정)

( 어, 지금 보니 못이 저수지라, 성 안에 큰 저수지를 만들었다는 것인가, 엇 소리가 절로 나온다. 성 안의 못은 실로암 못을 말한다. 그런데 저수지라,, 이건 또 무슨 비약인지,, 원문을 보이 과연 저수지라는 뜻도 있다. 원) 베레카,,못, 저수지 )   내용상 성 밖의 샘의 물을 끌여 드릴 저수지 만들었다는 것이 너무 우스울 정도이다. 그렇다면 샘물 끌여드릴 댐을 만들었다는 것인가, 샘의 물을 끌여드릴 저수지를 만들었다는 것은 너무 비약인 듯하고 ,, 무엇보다 '못'이라는 용어가 맞지 않는다는 것인가,, 무슨 말을 더 해야 할지 할 것이다. 실로암 못이라고 하지 실로암 저수지라고 하는 것은 성경을 읽다가 너무 생뚱맞다고 할까, 이러하다면 더 진도 나가기도, 내용도 오해할 수 있다.

잘 된 번역을 왜 이렇게 수정하였는지, 개정에는 이러한 수정이 너무나 많다는 것이다. 이러한 수정 번역에 연구 논문들이 필요할 정도이다. 한국 교계에 말씀 흥왕의 종교개혁의 때라 아니할 수 없다. 잘 번역된 성경을 택하여 세계어와 함께 읽는 운동이 초등학생들로 부터 노년에 이르기까지 실천되었으면 한다.

As for the other events of Hezekiah's reign, all his achievements and how he made the pool and the tunnel by which he brought water into the city, are they not written in the book of the annals of the kings of Judah? (왕하20:20)



1. 실로암 못
(요 9:7)

기혼  샘의 물을 수로를 만들어 실로암 못으로 끌여들인 것을 알고
신약의 실로암 못에서 어떠한 의미있는 놀라운 일이 일어났는가 보자.


왜 실로암의 뜻이 보냄을 받았다는 뜻일까요,
어쨌든 실로암 못의 물은 성밖의 기혼 샘으로부터 터널을 통하여 보내어져 공급을 받았다는 것이다. 그 실로암의 못이다.

'이르시되 실로암 못에 가서 씻으라 하시니 (실로암은 번역하면 보냄을 받았다는 뜻이라) 이에 가서 씻고 밝은 눈으로 왔더라'
"Go," he told him, "wash in the Pool of Siloam" (this word means Sent). So the man went and washed, and came home seeing.)



1. 종교개혁이라고 할 때

나를 예외로 하고 누구를 개혁하자는 것이 아니라
나 자신의 개혁이라고 할 때 생명의 양식인 말씀으로 찾아가고 달려가서
주님을 만나고 교통하고 성장하여야 하기에 하나님의 말씀 영의 양식인 그 말씀은
정확한 번역 그것은 아무리 강조해도 지나치지 않고 그것이 옳다면 실천해야 할 것이다.

( sola Scriptura, sola Gratia, sola Fide,, sola Christus,  soli Deo Gloria.)

      

세상의 육신의 양식도 건강식 무공해 채소를 얼마나 찾고 있는가,
구원과 영생 그리고 그 풍성함을 주고 아무리 강조해도 지나치지 않는 하나님의 말씀이다.

                                                                                   

                                                                                < 성광교회 이동원 목사 드림>   

                                                                                                                            #  줄 간격


hi
이전글  다음글  목록 글쓰기
츲ҺڻȰ ⵵ ȸ ѱ⵶ȸȸȸ ()ظ ѽŴѵȸ μȸڿȸ ȸ б ѽŴб ûȸȸ ŵȸ ŵȸ ȸÿ ѱ⵶ȸȸͽп