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방언 기도는 이렇게

김석태 (경기노회,필리핀 선교사,목사) 2017-10-06 (금) 16:51 14일전 99  

 

제목 : 방언의 기도는 이렇게

 

교제는 평생을 목회자로서, 선교사로 삶을 살아 왔다 말 할 수가 있겠지만, 오늘에 이르러 나의 인생 뒤 안 길을 되돌아 보면, 참으로 부끄럽기 그지 없는 모습일 뿐이다. 그러기에 이 곳에 글을 올릴 수 없는 자라는 것을 인정하고 고백 하면서도 또다시 필을 들게 된 것은 동역자 여러분들에게 조금이나마 도움이 될가 에서이다. 그러기에 먼저 이해와 용서를 구하며 나의 경험을 참고로 삼아 읽어 주었으면 한다.

 

나는 본 홈페이지에 2012. 12. 02. 일에 [ 방언의 기도에 대하여 ] 란 제목으로 글을 올린 바가 있다. 그러나 나 자신이 방언 기도로 어떻게 힘을 얻고 있고, 얼마나 유익한 기도인지에 대하여 말 한 적이 없다. 그래서 방언 기도를 나는 어떻게 하여 큰 힘이 되고 있는 지에 대하여 나의 체험담을 이야기 해 보고 져 한다.

 

방언 기도에 대한 서론적인 글은 본 홈페이지 [ 말씀과 우리 ] 란 항목에서, 제목 [바언 기도에 대하여 ]를 읽어 주었으면 한다. 그러나 간단히 요약하여 말 한다면 아래와 같다.

 

1. 방언은 성령의 9 가지 은사 중에 하나이다.

 

고린도 전서 12 : 4 ~ 12 절의 말씀.

 

고전 12:10 어떤 이에게는 능력 행함을, 어떤 이에게는 예언함을, 어떤 이에게는 영들 분별함을, 다른 이에게는 각종 방언 말함을, 어떤 이에게 는 방언들 통역함을 주시나니

 

2. 방언에 대하여 부정적인 의미.

 

고전 14:6 그런즉 형제들아 내가 너희에게 나아가서 방언을 말하고 계시나 지식이나 예언이나 가르치는 것이나 말하지 아니하면 너희에게 무엇이 유익하리요

고전 14:9 이와 같이 너희도 혀로서 알아 듣기 쉬운 말을 하지 아니하면 그 말하는 것을 어찌 알리요 이는 허공에다 말하는 것이라

 

고전 14:13 그러므로 방언을 말하는 자는 통역하기를 기도할지니

고전 14:14 내가 만일 방언으로 기도하면나의 영이 기도하거니와 나의 마음은 열매를 맺히지 못하리라

고전 14:19 그러나 교회에서 네가 남을 가르치기 위하여 깨달은 마음으로 다섯 마디 말을 하는 것이 일만 마디 방언으로 말하는 것보다 나으니라

 

고전 14:22 그러므로 방언은 믿는 자들을 위하지 않고 믿지 아니하는 자들을 위하는 표적이나 예언은 믿지 아니하는 자들을 위하지 않고 믿는 자들을 위함이니

고전 14:23 그러므로 온 교회가 함께 모여 다 방언으로 말하면 무식한 자들이나 믿지 아니하는 자들이 들어와서 너희를 미쳤다 하지 아니하겠느냐

 

나 역시 위의 말씀을 근거로 해서 방언의 은사에 대하여 오래동안 관심을 접어 두었다. 그러나 오랜 세월 후에 방언의 은사에 대하여 다시 살펴 본 결과 방언의 필연성을 발견하게 되었다. 이는 바로 사도 바울이 역시 방언의 소중성을 밝힌 것이다. 아래의 말씀을 살펴 보았으면한다

 

고전 14:18 내가 너희 모든 사람보다 방언을 더 말하므로 하나님께 감사하노라

고전 14:39 그런즉 내 형제들아 예언하기를 사모하며 방언 말하기를 금하지 말라

고전 14:40 모든 것을 적당하게 하고 질서대로 하라

 

사도 바울은 방언의 무익성을 주장 한 것이 아니다. 사도 바울은 자신이 [ 다른 모든 사람보다 방언을 더 말하므로 하나님께 감사하노라 ] 하였다. 그리고 연 이어서 강조하여 말하기를 방언 말하기를 금하지 말라고 엄명하고 있다.

 

그래서 나는 오랜 세월 후에 방언 기도를 하려 하였다. 나는 너무 오랜 세월이 지났기에 방언이 사라 진 줄을 알았다. 그러나 하나님은 그 방언의 은사를 거두지 않으셨다. 기도 중에 방언을 하게 되니 그대로 되었다. 참으로 감사했다.

 

3. 방언 기도의 필연성

 

기도는 나의 욕구나 욕망와 자신의 생각에 맞추어 하는 것이 아니란 사실을 우리는 다 잘 알고 있다. 기도는 하나님과의 대화하는 것으로 하나님의 뜻에 맞추어 하는 기도라야 한다는 사실을 부정 할 성도는 없다고 본다. 하나님의 지식, 하나님의 뜻, 하나님의 소원 등에 맞도록 기도를 해야 한다는 것이다.

 

그러기에 주님께서는 기도하는 법에 대하여 말씀하여 주셨으니 바로 주님의 가르쳐 주신 기도문이다. 그러므로 주님의 가르쳐 주신 기도문은 모든 성도가 다 암기하며 신앙생활을 해 가고 있다. 기도의 줄기가 잡혀지지 않아 횡설 수설하고, 중언부언 하며 방황하는 기도를 하게 될 때 주님의 가르쳐 주신 기도문을 암송하여 기도의 힘을 얻기도 한다.

 

예수님은 기도에 대하여 많은 말씀을 해 주신 것을 복음서에서 발견 할 수가 있다. 또한 잘못된 기도가 어떤 기도인지도 말씀하여 주셨으니, 외식한 바리세인과 세리의 기도를 비교하여 들여 주시면서 잘못된 기도를 지적하여 주신 것을 알수 있다.

 

오늘 우리는 어떠한 가 ? 바리세인의 기도를 지탄 하면서도 여전히 내가 그 범주를 벗어나지 못하고 기도한다는 사실이다. 특별히 대표 기도를 할 때 하나님께 기도하기보다, 눈 앞에 앉아 있는 사람 즉 대중을 의식하고 그들이 듣고 호감을 살수 있도록 기도하는 것이다. 기도를 하나님께 한다면서 실제 중심으로는 사람을 향하여 하는 것이다.

 

기도는 영혼의 호흡이라 한다. 호흡은 사람에게 매우 중요하다. 호흡이 끊어지면 시체가 되는 것이고, 호흡이 불균형을 이루게 되면 사경에 처해 있다는 위급한 신호로 받아 들인다. 그렇다면 기도가 정지 되거나, 불균형을 이루는 기도 되었을 때 나의 영혼의 실상을 보여 주는 모습이 아닐 가 ?

 

방언은 영혼의 기도 생활을 위해서 주신 은사라고 본다. 방언은 성령의 은사 중에 하나로서 기도를 위한 은사라고 본다. 성경은 말씀하고 있다. 성령은 우리의 연약함을 도우시는 보혜사로서 무엇을 특별히 도와주실 가 ? 기도하는 일이다.

 

8:24 우리가 소망으로 구원을 얻었으매 보이는 소망이 소망이 아니니 보는 것을 누가 바라리요

8:25 만일 우리가 보지 못하는 것을 바라면 참음으로 기다릴찌니라

8:26 이와 같이 성령도 우리 연약함을 도우시나니 우리가 마땅히 빌 바를 알지 못하나 오직 성령이 말할 수 없는 탄식으로 우리를 위하여 친히 간구하시느니라

8:27 마음을 감찰하시는 이가 성령의 생각을 아시나니 이는 성령이 하나님의 뜻대로 성도를 위하여 간구하심이니라

 

우리는 분명 기도를 올바르게 잘 드릴 것으로 자신 만만 할지 모른다. 그러나 사실 우리는 마땅히 빌바를 알지 못한다. 그러기에 우리의 기도를 들으시는 성령님은 말할 수 없는 탄식을 할 정도이다. 이런 기도를 하나님께 상달케 할 수가 없다. 그러므로 성령님은 우리의 기도를 수정하여 하나님의 뜻을 따라 대신 기도를 해 주신다는 것이다.

 

이렇게 우리를 위하여 기도하여 주시는 성령님께서 올바른 기도를 할수 있도록 하나님의 언어를 주시고 계시는 데, 이것이 바로 방언이다. 마가 다락방의 처음 교회가 시작 되었을 때 120 명의 성도가 모여 기도하게 되었다. 이때 방언의 은사가 임한 것이다.

 

왜 이때 방언의 은사가 임했을 가 ? 그들은 지금 두려워 문을 걸어 잠그고 있는 상태였다. 그들은 죽음에 쫒기고 있는 형편이었다. 만일 발견되거나 잡히게 되면 죽음을 면치 못한다는 사실을 직감하고 있다. 그 죽음과 고통은 얼마나 심각한지 ? 예수님의 죽으심을 생각하여 보면 잘 알 수가 있다.

 

이러한 환경에서 그들의 울부짖었던 기도는 무슨 기도였을 가 ? 한번 상상 해 보라 ! 하나님께서 들을 수 없는 기도였음이 분명 했을 것이다. ( 이때 120 문도의 기도 내용과 모습은 여러분 상상에 맡기겠다. ) 그래서 성령께서 취하신 일이 방언을 주신 일이다.

 

방언의 기도를 하게 되었을 때 놀라운 일이 벌어졌다. 두려워 걸어 잠갔던 문을 열고 세상으로 나아갔다. 창과 칼을 들고 자신의 목숨을 노리는 사람을 찾아가 복음을 전하였다. 회개하고 복음을 믿으라는 것이다. 이들의 활기찬 발걸음을 세상은 감당하지 못하였다.

 

만일 방언의 은사를 받지 못하였다면 어떻게 되었을 가 ? 어쩌면 걸어 잠긴 방안에서 나오지 못하였을 것이다. 방언은 하나님과 대화하는 언어로서 기도요, 기도는 곧 하나님의 능력이 되는 것이다. 그렇다면 방언의 은사는 성도에게 필연적인 은사라고 여겨진다.

 

4. 방언 기도의 거부감

 

나는 방언의 은사를 받고 거부감을 물리치지 못하였다. 사실 다른 사람들이 방언을 받고 기뻐하는 모습이 너무 부러웠다. 사실 방어의 은사가 무엇인지 알지도 못하는 가운데 호기심에서 방언의 은사를 받기를 원하였을 뿐이다.

 

그러기에 하나님께서는 나에게 방언의 은사를 주셨지만, 깨닫지도 못하고 방치 해 버렸다. 20 여년 만에 이 사실을 알고 방언으로 기도하게 되었지만 그 기쁨은 잠시였다. 일주일도 못가서 나는 방언의 은사를 져 버리듯이 하였다.

 

그 이유는 방언으로 일 주일 간 기도하다 보니, 내가 무슨 기도를 하였는 지 알 길이 없었다. 방언 기도만 하고 일어서니 너무 허무하였다. 내가 그 무엇에 홀린 느낌만 들 정도였다. 그리고 성경 말씀을 보니 알아듣지 못하는 일만 마디의 방언보다 알아듣는 다섯 마디의 우리 말보다 못하다는 말씀이 눈에 띄었다. 그래서 나는 그 방언을 그만 두었다.

 

5. 방언 기도에 대한 재 인식

 

그런데 얼마를 지나고 나서 나는 방언은 성령의 9 가지 은사 중에 하나란 말씀이 눈에 들어 왔다. 은사는 하나님의 선물이란 말씀인데, 하나님의 선물 9 가지 중에 하나에 속한 선물이 방언이라면, 이 방언의 은사가 얼마나 값지고 소중 할 것인 가 ?

 

성령님께서 나누어 주신 선물을 이렇게 값어치 없이 여기는 것이 정상일가 ? 나는 아니라고 여겨졌다. 그래서 방언의 은사에 대하여 다시 묵상의 시간을 가지게 되었다. 이때 새로운 사실을 발견하게 된 것이다.

 

고전 12:4 은사는 여러 가지나 성령은 같고

고전 12:5 직임은 여러 가지나 주는 같으며

고전 12:6 또 역사는 여러 가지나 모든 것을 모든 사람 가운데서 역사하시는 하나님은 같으니

고전 12:7 각 사람에게 성령의 나타남을 주심은 유익하게 하려 하심이라

 

고전 12:8 어떤 이에게는 성령으로 말미암아 지혜의 말씀을, 어떤 이에게는 같은 성령을 따라 지식의 말씀을,

고전 12:9 다른 이에게는 같은 성령으로 믿음을, 어떤 이에게는 한 성령으로 병 고치는 은사를,

고전 12:10 어떤 이에게는 능력 행함을, 어떤 이에게는 예언함을, 어떤 이에게는 영들 분별함을, 다른 이에게는 각종 방언 말함을, 어떤 이에게 는 방언들 통역함을 주시나니

고전 12:11 이 모든 일은 같은 한 성령이 행 하사 그 뜻대로 각 사람에게 나눠 주시느니라

 

사도 바울이 방언 일만 마디를 우리가 알아듣는 다섯 마디보다 못하다는 뜻이 아니었다는 사실이다. 사도 바울은 방언의 중요성에 대하여 이렇게 기록하여 놓았다.

 

고전 14:18 내가 너희 모든 사람보다 방언을 더 말하므로 하나님께 감사하노라

고전 14:39 그런즉 내 형제들아 예언하기를 사모하며 방언 말하기를 금하지 말라

 

사도 바울은 그 누구보다도 다른 모든 사람들보다 방언을 더 많이 말하였다는 것이다. 이것을 하나님께 감사 했다는 것이다. 그리고 이어 하는 말이 방언 말하기를 금하지 말라는 말씀이다. 그렇다면 방언의 은사가 얼마나 소중하고 값진 은사인가를 알아야 할 것이다.

 

6. 방언 기도의 새로운 도전 영과 마음으로 함께

 

나는 다시 방언의 기도를 시작하였다. 그렇지만, 얼마 않가서 또 다시 시험의 벽에 부딪치고 말았다. 나도 알지 못하는 기도를 언제까지 이렇게 해야만 하는 것일 가 ? 내가 해야 할 기도를 하지 못하고, 나 자신 역시 알지 못하는 기도를 해놓고 일어서야 만 하나 ? 고민 중에 고민이었다.

 

그런데 어느 날 새벽에 기도실에서 기도하던 중에 한 생각이 떠 올랐다. 이는 입으로는 방언 기도를 하고, 내 생각과 마음으로는 내가 하고 싶은 기도를 하자는 것이었다. 그래서 나는 입으로는 방언을 하면서 내 마음와 생각으로는 내가 하고 싶은 기도를 나의 마음의 언어로 하는 것이었다.

 

그러나 이 일은 쉽자 않았다. 두 가지 모두가 다 되지를 않았다. 방언도, 생각과 마음도 집중되지 않았다. 참으로 횡설수설하는 기도였다. 그러니 기도하고 일어서면 허탈감 뿐이었다. 그렇다고 중단하지 않았다. 성령님께 도움을 구하면서 계속하였다. 속으로는 생각과 마음을 하나로 집중시켜 내가 아는 기도를 드렸고, 입으로는 무슨 말인지 모르지만 방언으로 하였다.

 

다시 말해서 입술의 방언 기도는 성령님께서 아실 지니 내가 알려고 할 필요는 없고, 성령님께 맡길 뿐이었다. 이렇게 기도하기를 시작한지 약 3 개월 정도가 지속 되었을 때 정리가 되었다. 방언과 내 마음, 생각이 일치되는 감도와 느낌을 받게 된 것이다.

 

예를 들면 내가 한국 사람이지만, 영어로 말 할 때 내 자신은 한국 말로 하는 것과 같았다. [ I love you ] 라고 말을 하게 될 때, 나는 자동적으로 [ 나는 당신을 사랑합니다. ] 라고 속으로 말을 하는 것과 같았다. 이 때로 부터 기도의 힘을 얻게 되었다.

 

우리 말로 만 기도를 하였을 때는 다른 사람을 의식하게 되어 기도가 잘 되지 않았다. 특별히 통성 기도를 하게 되면 옆 사람을 의식하여 기도가 잘 되지 않았는 데, 방언으로 하자 자유함을 누리게 되었다. 또한 기도를 얼마동안 하게 되면 실증감이 생겨 얼마 하지 못하고 일어서게 되는 데 여기에서도 해방감을 갖게 되었다.

 

기도의 시간을 얽지로가 아니라, 얼마든 지 실증가미 없이 할 수가 있었다. 또한 우리 말로 기도를 하였을 때는 짧게 드렸는 데도 일어서면서 내가 무슨 기도를 드렸는 지 잊어 버릴 뿐만 아니라, 기억도 하지 않게 되는 데, 방언의 기도를 하고 나면, 긴 시간 기도를 하였을지라도 내가 기도한 기도 제목이 다 기억 되는 것이다.

 

우리 말로 기도를 하게 되면 기도하면서 그 다음에 내가 무슨 기도를 드려야 할 가 ? 얽지로 쥐어 짜는 기도를 드리게 되었는 데, 방언의 기도를 드리게 되자 기도의 제목이 내 마음 깊은 데서 계속 떠 오르게 되었다. 기도의 밑천이 떨어져 염려가 되지 않았다.

 

어떻게 수많은 내용을 다 열거 할 수가 있을 가 ? 알고 보니 사도 바울 역시 이 과정을 겪지 않았나 하는 생각도 들었다. 여기에 대하여 해답을 주는 말씀이 있다.

 

고전 14:14 내가 만일 방언으로 기도하면 나의 영이 기도하거니와 나의 마음은 열매를 맺히지 못하리라

고전 14:15 그러면 어떻게 할꼬 ? 내가 영으로 기도하고 또 마음으로 기도하며 내가 영으로 찬미하고 또 마음으로 찬미하리라

고전 14:16 그렇지 아니하면 네가 영으로 축복할 때에 무식한 처지에 있는 자가 네가 무슨 말을 하는지 알지 못하고 네 감사에 어찌 아멘 하리요

 

방언기도는 영으로 기도하게 되지만 자신의 마음의 기도는 열매를 맺지 못한다는 것이다. 그래서 사도 바울은 영과 마음으로 함께 기도하고 찬송하였고, 우리도 그렇게 하라고 말씀하고 있다. 다시 말해서 영으로는 방언으로 기도를 하고 나 자신은 마음으로 기도하라는 말이다.

 

7. 방언의 기도에 주의 할 점

 

방언은 언제나 어디서든지 할 수가 있다. 방언으로 기도하고 찬송도 할 수 있다. 그렇지만 통변의 은사를 받지 않고 예언의 은사를 받은 자가 없는 상황에서 방언을 하게 될 때는 사람들이 알아 듣지 못하여 비난을 하기 마련이다. 비난의 대상이 되는 것은 바람직하지 못한 행위이다. 이는 전도의 문을 막는 결과를 가져 올 뿐이다.

 

그러기에 방언을 하려면 통변의 은사를 받은 자가 있을 때 통변을 시켜 방언을 하라는 것이다. 또한 방언의 은사를 받게 되면, 잘못하면 혼란에 빠지기가 쉬운 것이다. 고린도 교회가 한 예가 된다. 성령의 주시는 방언의 은사는 자기 기분이나, 자랑과 우월감으로 사용해서는 않된다는 것이다. 그러기에 방언의 은사를 받았다면 반드시 질서를 지켜 하라는 것이다.

 

고전 14:40 모든 것을 적당하게 하고 질서대로 하라

 

우리가 명심 할 말씀이다. 부족한 글이지만, 잘 이해하여 기도 생활에 도움이 되었으면 한다. 우리가 기도해야 할 이때에 기도의 힘을 잃지 않을 뿐 더러, 성령의 도우심으로 내가 해야 할 기도의 제목을 바로 알아서 성령님과 함께 기도하는 시간을 가졌으면 한다.

2017. 10. 06.

김석태 선교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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