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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교에서의 진보와 보수

이동원 (서울북노회,성광교회,목사) 2017-10-31 (화) 07:23 6년전 2049  

종교 기독교에서 진보와 보수는

그 단어가 어떤 뜻으로 사용하는 것인가에 따라 다르겠지만  윈칙적으로 세속적으로 사용하는 의미의 진보 보수로 구분이 적절치 않고 말씀에 절대적으로 근거하는 근본주의적 자세가 당연하다 할 것이다.

 

기독교 단체에 어떤 기관이 있었다. 역사 깊은 이 단체는 주로 정치이슈에 대하여 정당의 하부 구조에서 일하는 모습이지 국민의 신뢰와 지지를 받는 것은 아닌 듯하다. 한편 소위 보수 단체의 연합체도 역시 세속의 소위 보수쪽의 대변인 역할을 하는 듯하다.

이러하니 성경 말씀 보다 다른 세속의 일에 관심을 더 갖다보니 교계가 성경을 새로 출간하였는데 어떠한 모습으로 출간 하였는지는도 모르는 듯 하다.

1. 최근에 반기독교 단체의 고백을 보는데 교계가 반기독교 단체의 프레임에 걸린 것이 아닌가 보아야 할 것이다.

종교인 과세의 문제에 대하여 적지 않은 대형교회 포함하여는 이미 세금을 내고 있는 경우도 있다는 것이다. 그리고 대형교회를 비판하지만 많은 사회 봉사를 오른 손의 하는 것을 왼손이 모르게 하고 있는 것이다. 대형교회는 예수님 보다 숫자 건물 등의 자만이 문제이지 대형교회당이 있는 것은 필요한 점이 있다. 수평이동의 숫자 건물 과시자랑 교만등 우상화가 문제이지 대형교회의 역할이 있을 것이다. 어떤 경우 한번에 좀 더 많은 교인들이 모일 공간도 필요성이 있을 것이다. 그것이 목적이 되고 우상화 되는 것이 문제일 것이다. 모든 교회는 주님이 자기 피로 세우신 교회인 것을 알아야 할 것이다.



그런데 한국교회가 미자립 교회가 많고 많다는 보고가 있는데 국가의 지원을 받는다면 하나님을 의지하는 것 보다 국가를 더 의지하는 결과를 가져올 수도 있는 것이다
. 교회가 하나님을 의지하여야 하는데 국가의 지원이나 보조나 바라보고 의지 하는 결과가 바람직하는 것이냐 하는 것이다. 그 외에도 국가가 교회의 재정을 사찰하고 관여하는 결과를 가져올 수도 있고 국가에 종속된 체계를 만든다면 언젠가 그것을 종교통제의 수단으로 악용할 수도 있을 것이다. 어떤 교회들은 국가 기관의 영향아래 들어가고 어떤 교회들은 보조나 바라보고 있는 프레임에 들어가는 것일 수도 있다. 최근 반기독교 단체에서 이러한 것을 이슈화 해서 기독교 비판의 여론을 조성하고 그 프레임에 걸리게 한 것을 알 수 있었다. 일반적으로 언뜻 생각하면 그 여론이 더 타당하고 그럴듯 해 보일 수도 있기 때문이다. 그러나 그것은 교회를 잘 알지 못하는 세속적인 시각에서 단순논리이다.

교회가 하나님 절대의지 하나님 절대 중심 그리고 자발적인 서로사랑 이웃사랑의 전심전력이 국가 또는 어떤 정권의 통제 아래 있게 되는 결과를 가져오지 않을지도 검토하여야 할 것이다. 어떤 정권 권력은 충분히 그럴 가능성이 있다.

 

1. 서구의 어떤 곳에서는 교회의 목회를 그 자녀가 3,4대 계속하는 목회자가 존경을 받고 3,4대 계속하는 아름다운 교회로 평판 받는 이야기도 들은 적이 있다. 한국의 경우 대형교회를 중심하다보니 비판의 대상이 되는 듯하다. 그럼에도 이것도 반기독교 운동의 어떤 비판의 프레임에 걸린 듯하다.

 

구약에서 아론의 아들들이 대대로 제사장 직을 감당하라고 하셨다. 그렇지 않았다면 하나님의 구원사 중에 제사장 직이 무슨 명예 권력 직인 줄 알고 참여하고 선출하다가 분명 문제가 생겼을 수도 있다. 고라와 그 무리들의 행동을 참고해 볼 수가 있다.

오늘의 현실과 비교해 보아도 알 수 있다. 이 시대에도 어떤 세력이 남의 교회당 앞에까지 가서 시비를 거는데 우스운 이야기 **나운 모습으로 비취일 수도 있다. 자신들이 섬기는 교회나 잘 할 일이지 남의 교회당 앞에까지 가서 행하는 일들이 세속적 시각으로 보아도 매너 있는 일일까 할 것이다. 일부 청년들까지 동원하는데 과연 이들이 성경을 잘 알기나 하는 것인지 성경보다 누구의 선동에 따라 하는 것은 아닌지 반성하여야 할 것이다. 성경으로 돌아가 성경을 보라는 것이다. 그 시간 있으면 성경을 읽으며 좀 더 유익한 행동을 하여야 할 것이다. 그리고 결과적으로 반기독교 단체가 기독교 비판 여론을 주도하는 프레임인 줄도 모르고 여기에 편승하여 동조하는 것이 아닌가이다.

 

몇 년전 소위 기독교 진보적인 단체에서 각 교단에다 어떤 교회의 권리 의무를 제한하는 법을 권하기도 하는 코미디 같은 일을 행하였다. 세계 교회사에 없을 해외 토픽감 같은 일을 잘하는 일인 줄 아는 것이다. 성경적이지도 않고 교회의 권리와 의무를 목회자의 권리를 제한하는 법을 만들게 한 것이다. 그것은 월권적이고 성경보다 세상의 포퓰리즘에 합승한 것이라 할 것이다.  이것은 결과적으로 세속의 반기독교 단체의 프레임에 걸려 행동 한 것이라 할 수 있을 것이다. 성경적이지 않기 때문이다.

 

1. 한편 부모의 직업은 그 자녀들이 어깨 너머로 배워 유익이 있다는 학설이 있다.

학교 교육이전에 이미 부모로 부터 자연스럽게 배우는 것이다. 구약에서의 아론의 자녀들이 대대로 제사장 직을 수행하도록 명하셨는데 실제적으로도 생각해 보면 제사장 교육을 어디서 받는 것이냐 하는 것이다, 그 부모로부터 실제 교육을 배운 것이다. 일본에서는 주로 부모의 직업을 잇는 문화가 강한 듯하다. 장인정신이라고 할까 하는 것이다.

기독교는 철저하게 성경적이어야 하는데 성경은 등한히 하고 세상 여론 그것도 성경을 알지 못하고 반기독교적인 단체의 이슈화에 같이 춤추는 한심한 일을 하고 있는 것이다. 아주 민감한 이슈에 대하여서도 성경에 근거하여 할 말을 못하고 일부 진보단체의 아니 진정한 진보라고도 할 수 없는 진보를 사칭하는 듯한 단체의 이슈에 영합하는 것이다. 이것은 기독교 단체가 성경을 등한히 하고 잘 알지 못하니 세상의 포퓰리즘 세상의 풍조나 심지어 기독교를 박해하기위한 조직의 이론에 덩달아 따라가기도 한 것이다.

 

1. 이러한 경우도 있었다.

기독교에서 어떤 진보적인 활동을 하다가 어느 순간에는 소위 보수적인 정권에 참여하여 무엇을 누리는 경우이다. 이것은 정치계에서도 보는데 진보적 민주 투사가 그 명예를 가지고 진보를 비판하며 어느 날 갑자기 보수적인 무엇을 누리는 것이다. 이것은 자신이 극단적인 진보적인 그룹에서 활동을 하다가 그 이념의 한계 그리고 사람들에게 실망을 하고 이제 보수적인 입장을 취하며 무엇을 얻는 것이다.

또한 진보적인 입장을 취하는 종교인들 중에는 그의 성장과정에서 좀 극단적인 보수적 신앙을 가진 분들이 외국의 유학을 하고 돌아와서 좀 더 극단적인 진보주의적인 입장으로 가는 것을 볼 수 있다. 극단적인 진보주의적인 종교인들 중에는 그의 신앙생활 중에 극단적인 보수주의적 환경에서 성장한분들이 적지 않은 것을 본다. 그것은 극단적인 보수주의의 역작용인 것이다.

그러나 종교는 경전을 잘 해석하는 전제아래서 절대적으로 믿는 근본주의적 신앙이 바람직할 것이다.성경에 대한 근본주의적이고 절대적인 믿음이 아니면 차지도 뜨겁지도 않는 믿는 것도 아니고 안 믿는 것도 아닌 신앙인이 될 수 있다.

( 어린 시절에 들은,, 어떤 보수적인 교회의 성도님이 야외예배를 드리러 가서 신발 한짝을 잃버렸다는 것이다. 그 분은 안식일 개념의 주일로 생각하여 아무 물건도 살 수 없다는 어떤 전통을 지키기 위해 한 쪽은 맨발로 집에까지 왔다는 것이다. 이러한 신앙이 보수적인 또한 근본주의적 신앙은 아닐 것이다. 말씀에 굳게 서지만 어떤 보수적인 전통에 얽매일 필요는 없을 것이다. 형식적인 면에서는 좀 더 자유스럽고 개방적인 것도 선교에 유익이 된다면 좀 더 자유롭게 할 수 있다. 세상에서 드리는 제사때문에 교회에 나올 수 없다는 경우도 적지 않다. 기독교적인 예식이 필요하지만 필요하다면 좀 더 포용적이고 개방적인 자세도 필요하다고 본다. 형식적면에서 너무 엄격한 무엇때문에 교회당 문턱을 넘지 못하게 된다면 지혜로운 적용이 필요할 것이다.)


1. 루터의 종교개혁은 성경으로 돌아가는 것이다. 그것이 진정한 개혁인 것이다.

세상풍조 따라가는 것이 진보가 아니며 있을 수 없다. 종교가 세속의 프레임에 걸리거나 포퓰리즘에 따라가고 앞장서는 것은 옳지 않다. 그리고 종교개혁자 누구를 높이거나 우상화하는 것은 종교개혁 정신과는 전혀 다른 모습이다. 그것은 개혁해야할 또 하나의 대상이다. 소위 종교개혁자의 이름을 잊어야 한다. 그 내용이 성경적이면 그것을 실천하여야 한다. 성경을 가장 귀하게 여긴다면 개정된 성경을 보고 가슴을 쳐야 할 것이다. 그리고 크게 반성하여야 하는데 종교개혁자나 부각하고 그를 향한 행사를 한다는 것은 엉뚱한 방향으로 가고 있는 것이다.

루터는 꼭 따진다면 진보주의 보다 보수주의 아니 근본주의 라고할 수 있다. 성경에 근본을 둔 철저한 근본주의이기에 개혁의 도구가 될 수 있었던 것이다. 루터는 성경을 독일어로 번역을 하기도 하였다. 성경을 모르고 진보니 하고 부르짖는다면 참으로 허무맹랑한 모습이 될 수도 있다.

1. 최근 가관이라고 할 것은 종교개혁 몇 주년을 맞이하며 교회개혁 운운하며 선언하는 집단이다.

왜냐하면 교회는 바로 믿는 자기 자신인 것이다. 믿는 자기 자신이 교회이다. 개혁이 되어야 한다면 먼저 교회인 자신이 개혁되어야 하고 자신에게 외쳐야 할 선언을 자신을 제외하고 다른 사람들에게 외치는 것은 좀 우스운 일이다. 그러므로 소크라테스는 너 자신을 알라 하기도 한 것이다. 자신을 보면 누구나 자신이 먼저 영적으로 더욱 개혁과 성장 되어야 함을 깨달을 수 있다. 교회인 교인은 진정한 의미의 개혁인 영적 부요함을 향하여 가야 할 것이다.

 

개혁은 성경에 근거하여 자기의 개혁 그리고 필요하다면 안에서의 제도의 개혁, 총회회의 내용 교회의 제도 , 총대의 선출 , 등등 성경중심의 목회자가 말씀과 기도에 전무하도록 교회의 성도님들에게 말씀의 양식을 잘 전달하고 영의 양식을 먹고 잘 성장할 수 있도록 자체적으로 할 일이 오히려 많다. 이러한 목적에 맞추어서 나아가야 할 것이다. 성경에 근거하여 발전적으로 나아가는 것이 진보적이라면 기독교인은 가장 보수적 근본주의적이어야 경전에 근거하여 진보적으로 나아갈 수 있다.

쉬운 예를들어  말하면 루터는 가장 보수적 근본주의적이었기에 가장 진보적인 실천을 할 수 있었다 할 것이다.

1. 총회 모임의 마지막에 정족수 (quorum) 미달하였다는 것이다. 그것은 회의보다 사랑하는 교회를 더 사랑하는 모습을 볼 수도 있는 것이다. 내 양을 치라는 목회자로서 사명감과 책임감을 다하는 모습이다. 주말이기에 내가 아니면 누가 지키리하며 일찍 교회를 향해 하산하는 것은 섬기는 성도님들을 향한 식지 않은 뜨거운 열정이 담겨 있는 것이다.

이러한 목회자의 교회를 향한 열심은 교인들의 시각에서 볼 때 자신들의 목회자로서 신뢰와 존경을 받을 것이다. 총회의 회의보다 성도님들을 위한 주일준비 열심 헌신 열정 등등의 모습에 더 높이 평가할 부분이 많은 것이다. 물론 어느 쪽에서 보는가에 따라 다를 수 있다. 그렇다면 회의 내용 제도등을 개선하는 것도 좋다. 회의를 좀 더 짧게 소수로 시간 내용 방법 장소 그리고 이 일을 하는 총대는 순환적으로 임무를 맡기는 것 등이다. 기회가 있으면 이 부분을 다시 논해 볼 수 있다.

 

 

=. 묵상 ( meditation)

1. 진보 신학이라는 것이 있는가

세속사회가 아닌 종교계에서 진보가 무엇을 말하는지. 누군가 진보 진보 하면서 진보신학을 말하는 것을 보았다. 진보신학이라는 것이 있다면 무엇인지 무엇을 말하는지를 먼저 규정하여야 할 것이다. 목회자가 계속 영적으로 성장하고 발전케 하는 노력을 말한다면 수긍이 갈 것이다. 신앙인과 목회자는 계속 영적으로 발전해 나아가야 할 것이다. 성경에서의 진보를 보자.

(빌1:25)

내가 살 것과 너희 믿음의 진보와 기쁨을 위하여 너희 무리와 함께 거할 이것을 확실히 아노니

And being confident of this, I know that I shall remain and continue with you all for your progress and joy of faith,(nkj)

Convinced of this, I know that I will remain, and I will continue with all of you for your progress and joy in the faith,( niv)




(딤전4:15)

이 모든 일에 전심 전력하여 너의 진보를 모든 사람에게 나타나게 하라

Be diligent in these matters; give yourself wholly to them, so that everyone may see your progress.(niv)

Meditate on these things; give yourself entirely to them, that your progress may be evident to all.(nkj)

                                                                                                                 

                                                                                < 성광교회 이동원 목사 드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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