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말씀 묵상 (3-7 ) - 바울서신

이동원 (서울북노회,성광교회,목사) 2017-11-08 (수) 08:55 6년전 1832  

말씀묵상  - 바울서신 중에서

1. 성경의 바울 서신은 좀 어려운 부분이 많다.

그것은 바울의 학문의 넓이가 깊이 그리고 교만할 수도 있는 많은 영적 은혜를 체험하였기 때문일 것이다. 그 정도가 아니면 그의 글을 이해하기가 쉽지만은 않을 것이다. 그러므로 바울 서신의 번역이 쉽지 않았던 것 같다.

      

또한 혹자는 예수의 복음과 바울의 복음이 다르다고 말하는 사람도 있었는데 너무나 얼토당토 하지 않은 말이다.

예수그리스도께서 바울을 특별하게 불러 이스라엘 자손과 임금들과 특별히 이방인에게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을 전하기 위한 도구로 삼으셨다. 예수 그리스도께서 그의 성령으로 부르시고 맡기셨고 그의 이방인 목회 사역에 성령의 역사를 자고할 만큼 많이 볼수 있는데 무슨 말을 하는 것인지 모르겠다. 심지어 어떤 학자는 바울이 극단적인 민족주의자라고 하는 역시 얼토당토 않은 말을 하는 사람도 있다. 이방인의 사도로서 이방인에게 모든 것을 다해 복음을 전하는 바울이 극단적인 민족주의라는 말은 어디에 근거한 것인가. 차라리 세계주의자 라고 하면 맞다. 9:1-5 보고 그러한 모양인데 그것이 아니다. 오히려 이방인의 사도로서 헌신적인 열심을 다하면서도 자기의 조국인 이스라엘에 대해서도 뜨거운 열정 가지고 있었음을 알 수 있다. 행9:15-16,11:33.

       

예수님께서 직접 불러서 이방인의 사도 즉 이방인과 임금들과 이스라엘의 자손들의 사도로 세웠다는 것도 알고는 말할 수 없는 말이다. 그가 혹 교수든 학자일지라도 성경을 너무나 모르지 않고는 할 수 없는 말이다. 그 당시 이스라엘인에게 이방인에게  복음을 전한다는 것은 누구도 상상할 수 없는 말이다. 그러한 주장은  성경을 모르고 신학학설이나 듣고 사람들의 지적교만 일 것이다. 예수 그리스도라는 말은 예수가 그리스도라는 뜻이다. 사도 바울은 이방인에게 예수가 그리스도 이신 것을 전하는 그릇으로 특별한 상황의 과정에서 부름 받은 것이다.

그러므로 예수 그리스도의 복음과 바울의 복음이 다르다는 가치 없는 주장은 조금 아는체 하거나 성경을 모르거나 하는 것이다. 예수 그리스도로 부터 아나니아를 통해 이방인 선교의 사명을 받고 그 사명을 열심으로 감당하는 사도가 세계주의자라고 하면 몰라도 어떻게 극한 민족주의자라고 하겠는가, 이것은 삼척동자도 수긍이 안된다고 할 주장이다.이러한 주장은 바울의 신앙 학문 영적 체험 깊이에 못 따르는 사람이 하는 아는 체 하거나 모르거나 같은 급으로 보이려는 지적교만의 모습 일 것이다. 성경을 모르고 어설픈 학설들의 노예가 된 사람들이나 할 말이다. 9장을 자세히 읽어보고 성령행전이라고도 하는 초대교회사 사도행전에서의 함께 하신 예수의 영 성령의 역사를 보고 읽었다면 그러한 학설은 있을 수 없다.  

만약 성경을 잘 모르는 교수가 성경을 잘 모르는 신학도들에게 이렇게 가르쳤다면 평생 그러한 인식을 가지고 그 바탕에서 성경을 볼 수도 있을 것이다. 바울을 국수적인 민족주의자니 하는 설도 이방인을 위한 열심의 사도가 무슨 편협한 민족주의자 이었겠는가, 언어도단이다.

그럼에도 신약 성경 중에서 바울 서신의 번역이 좀 더 불명확하다. 잘 번역하였다면 그 깊이와 넓이 높이를 잘 이해하고 은혜 받았을 것인데 한번 부정확하게 번역한 후 , 바울서신은 그대로 인 듯 하다. 쉬운 번역을 번역을 위한 번역으로 더 장황하게 번역한 부분이 많다. 지적교만이 보이기 까지 한다. 내가 외국에서 명문대 학설을 배웠으니 하는 모습이거나 성경을 아직 전체적으로 깊이 잘 모르는 신학지식에 있어서 박학한 조교에게 .번역을 시켰는가 할 때가 있었다.

다음의 바울서신 몇 부분을 보자.

 

1. 1:7

1:7 로마에 있어 하나님의 사랑하심을 입고 성도로 부르심을 입은 모든 자에게 하나님 우리 아버지와 주 예수 그리스도로 좇아 은혜와 평강이 있기를 원하노라

1:7 To all in Rome who are loved by God and called to be saints: Grace and peace to you from God our Father and from the Lord Jesus Christ.

        

은혜 너무 귀해 돈으로 살수 없을 만큼 귀하기에 거저주시는 자연 은혜 공기 태양 빛 등등 다 거저 주시는 것이었다. 구원의 은혜도 거저 주신 하나님의 선물이다.

평강은 여러번 언급하였다. 모든 좋은 단어가 다 들어가 있다고 하여도 과언이 아니다. 구약에서 그리스도의 오심을 통하여 평강을 주심을 알 수 있고 ( 53) 얘수님께서는 죽으시기 전날 에 내 평안을 주시겠다고 반복 강조 약속하셨다. 과연 예수님께서는 부활하신 후 문을 닫아 잠그고 두려워하고 있는 제자들에게 평강이 있을 지어다 두 번이나 명하셨고 여드레 후 다시 오셔서 평강이 있을지어다 명하셨다. 오늘 우리에게도 주시는 말씀이다.

 

2. 1:23

1:23 교회는 그의 몸이니 만물 안에서 만물을 충만케 하시는 자의 충만이니라

1:23 which is his body, the fullness of him who fills everything in every way. 

예수 그리스도는 교회 안에서 여러 가지 방법으로 무수한 방법으로 필요한 모든 것을 채우신다는 것이다. 교회에 주신 감격적이고 감동적인 놀라운 말씀이다. 과연 교회가 이러한 풍부함이 있는 것인가, 이러한 점에서도 영광스러운 교회라는 말은 타당하다.

 

3. 4:6

바울과 같은 학문의 넓이와 깊이 영적체험이 없으면 표현하기 힘든 문장이라 할 정도이다. 바울만이 표현할 수 있는 표현이라는 생각이 들 정도이다. 이 구절에서 통일이라는 번역은 오해하지 쉽다. 아니 번역이 적절한 번역이라 할 수 없을 것이다.여기에서 통일이라는 뜻은 관통이라는 만물을 관통하여 흐른다는 뜻을 알아야할 것이다.만유가 분단된 것도 아닌데 통일하시다는 말씀이 무슨 듯일까, 좀 더 부정확한 번역을 가지고, 아니 정확한 번역이 아닌 단어를 가지고 몇 시간 또는 밤새워 씨름한다면 바람직하다 하지 못할 것이다.

4:6 하나님도 하나이시니 곧 만유의 아버지시라 만유 위에 계시고 만유를 통일하시고 만유 가운데 계시도다

4:6 one God and Father of all, who is over all and through all and in all.

        

4. 하나님의 본체이신 예수님

(빌2:6)

복음서에서 이러한 문체는 찾아보기 쉽지 않다. 사도 바울의 사도 바울적인 표현이다 학문의 깊이와 영적 깊이와 높이가 없으면 표현할 수 없는 표현이다. 요한복음 1:1 절의 말씀이 곧 하나님이라는

2:6 그는 근본 하나님의 본체시나 하나님과 동등됨을 취할 것으로 여기지 아니하시고

(1:1)

태초에 말씀이 계시니라 이 말씀이 하나님과 함께 계셨으니 이 말씀은 곧 하나님이시니라 

 

5. 사람의 모양으로 나타나사

역시 요한복음의 말씀이 육신이 되셨다는 내용과 같은 뜻이라 할 것이다.

1:14 절의 말씀이 육신이 되셨다는 내용의 바울적인 표현이라 할 것이다.

(요1:14)

말씀이 육신이 되어 우리 가운데 거하시매 우리가 그 영광을 보니 아버지의 독생자의 영광이요 은혜와 진리가 충만하더라

The Word became flesh and made his dwelling among us. We have seen his glory, the glory of the One and Only, who came from the Father, full of grace and truth.

 

6. 모든 입으로 예수 그리스도를 주라 시인한다면,

(2:10)

2:10 하늘에 있는 자들과 땅에 있는 자들과 땅 아래 있는 자들로 모든 무릎을 예수의 이름에 꿇게 하시고

2:10 that at the name of Jesus every knee should bow, in heaven and on earth and under the earth,

    

여기에서 주는 무슨 뜻이겠는가, 구약에서 여호와 하나님을 주라고 표현하였다. 물론 주인을 주라고 그리로 높은 사람을 높여서 부르는 경우도 있다. 여기에서는 내용상 주는 하나님을 뜻한다. 그렇다면 드디어 예수 그리스도를 하나님이라고 시인하여 하나님 아버지께 영광을 돌리게 되었다는 것이다.

예수님의 부활을 의심하였던 제자 도마가 예수님의 못 자국 창 자국을 보고 드디어 예수님을 나의 주 나의 하나님이라고 시인하였던 것이다. 그리고 이러한 선언은 하나님이 육신이 되어 오신 하나님께 영광을 돌리는 것이다.

        

7. 1:29

1:29 이를 위하여 나도 내 속에서 능력으로 역사하시는 이의 역사를 따라 힘을 다하여 수고하노라

1:29 To this end I labor, struggling with all his energy, which so powerfully works in me.

      

로마에서 쓴 옥중 서신은 로마서보다 뒤에 쓰였다. 로마로 가는 지중해 아드리아 바다에서의 14일 동안 해와 별도이 보이지 않고 살 가망성이 전무한 유라굴라 광풍을 겪은 후 쓴 서신이다. 그러므로 로마서를 쓴 이후 사람이 절대적으로 살 수 없는 극한 상황을 겪은 후에 썼다는 것이다. 로마서 이후 살 가망성이 전무한 곳에서 하나님의 은혜와 능력을 더 체험한 후에 썼다는 점이다. 그러한 옥중서신 네 편인 에베소서 빌립보서 골로새서 빌레몬서는 이러한 영적 극한 대 훈련 이후에 썼다는 점을 알고 읽으면 더 격려가 될 것이다.

이 하나님이 외적인 상황에서 뿐 아니라 내적인 즉 내 안에서 역사한다는 것이다. 영어성경에서 energy 단어를 유의하여 보자.

( 옥중 서신인 에베소서 빌립보서 골로새서 빌레몬서등은 깊이가 있는 책이다. 이 서신서들은 격찬하는 로마서를 쓴 후 로마를 가는 과정에서 거의 형언할 수 없는 놀랍고 오묘한 신앙적 체험을 더 겪은 후에 쓴 서신서라는 점을 알고 읽으면 더욱 유익할 것이다. 또한 알아야 할 것은 사도 바울은 많은 학문을 한 사람이고 , 영적은혜를 자칫 자고 교만할 수도 있을 정도로 크고 많이 받았다는 것이다. 그러한 체험을 한 사람 만이 좀 더 잘 이해할 수 있을 것이다.

어떤 책을 번역할 때에는 저자와 같은 정도의 수준과 경험과 이해와 공감이 있어야 좀 더 정확이 번역할 수 있는 것이다. 이러한 점에서도 바울 서신의 번역은 신중을 기하여 이해하고 번역하는 노력이 있어야 했을 것이다.)

    

                                                                           < 성광교회 이동원 목사 드림>                                                                                                  ( ing)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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