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쉐마 코리아 ( Hear, O Korea)4 - 교회와 국가의 세계어 마을 (방)

이동원 (서울북노회,성광교회,목사) 2017-11-27 (월) 08:23 15일전 262  

1. 이제 우리는 지구촌 마을의 세계시민으로 살아야 할 시대에 살고 있다.

그렇다면 세계어는 선택이 아니라 필수이다. 그런데 세계어가 영어라고 한다면 그것은 지금 초등학교 심지어 유치부부터 배우고 있다. 그런데 이러한 언어는 일평생 사용하는 것이 중요하다. 모든 교육은 현장에서 실천하고 사용하기 위해서 배우는 것이다. 그런데 얼만 전까지만 하드래도 영어라는 언어는 공부를 위하 공부 입시를 위한 공부의 개념으로 접근하였다. 또한 얼마 전까지 어학을 배우기 위하여 조기 유학이 붐을 이루어 기러기 아빠라는 이산 가족을 양산하였다.

( 한국에서 많은 목회자들에게 설교학의 멘토로 삼는 목회자께서 설교학을 강의 하였다. 그런데 그 분의 강의 중에 한국의 좋은 수필집을 많이 읽으라는 것이었다. 한국 말을 한국 말의 표현을 잘해야 한다는 것이다. 그러면서 이제 새삼 영어는 배울 필요가 없다는 것이다. 한국 말을 잘하는 것이 중요하다면 이제 새삼 무슨 영어를 배우느냐고 하신 것이다. 부분적으로 맞을 것이다. 그런데 한편 설교의 전달을 너무 기교적으로 보는 면도 있을 듯 하다.

목회자 설교자가 영어를 해야 하는 이유는 , 설교자는 당연히 원문을 볼 수 있어야 된다고 할 수 있는데 새삼 원어를 배운다는 것은 대부분에게 너무나 많은 노력과 수고와 시간이 들어 현실적으로 쉽지 않기 때문이다. 그러나 잘 번역된 영어 성경은 거의 원어 못지 않게 정확하고 뜻을 잘 전달한다는 것이다. 그리고 원어는 단어를 사전으로 찾을 수 있을 정도면 된다고 본다.

그런데 영어는 세계어로서 이미 오랫동안 대부분 많은 시간과 비용을 투자하여 배웠다는 것이다. 그런데 성경을 읽는데 한영을 같이 읽으면 기대 이상의 유익이 된다. 성경의 단어와 내용의 정확성을 보충해 주고 더해주는 것이다.그러므로 목회자는 물론 평신도 분들에게도 말할 수 없이 유익하고 또한 이것이 세계시민으로서 어쩌면 필수 과정이라고 해도 과언이 아닐 것이라는 것이다. 언어는 사용해야 하는 것이다. 그러므로 교회 성도님들의 영적 유익과 나라의 국민으로서 세계시민으로 살아가는데 유익함이 일치하다는 것이기에 이렇게 이 연사 반복적으로 역설하는 것이다.)

그러기에 세계어 사용의 기회를 위해서 이미 비무장 지대에 세계 평화도시를 만들어 세계평화 대학을 세우고 세계어를 공용어로 사용하는 내용을 역설한 바 있다. 쉽지 않은 듯하다. 이것은 소위 강대국의 협조 아니 윤허가 필요할 지경이다. 그러므로 이것은 국가가 추진하는데 한계가 있다면  남북이 맞닿아 있는 지방 자치단체가 정부와 같이 협조하여 추진하는 방안도 있다고 생각하였다. 앞으로 이러한 비젼을 가진 경기도지사가 실천하였으면 하는 기대감도 가지고 있다.

 

한편 지방마다 지역마다 세계어 사용하는 공간을 두어야 하는데 이것을 교회 안에 둔다는 것이다. 교회의 경전인 성경은 최고의 영어 교육을 위한 택스트이기도 하다. 서양의 문화는 기독교 문화 성경에 근거한 문화이다. 서양을 지피지기하여 진정한 백전 백승인 윈윈을 할 수 있는 서로 사랑을 실천하기 위해서도 필요하다.

 

그리고 진정한 언어 소통은 외국에 가서 배우면 되는 줄 알고 조기 유학을 보내었겠지만 거의 유익이 없거나 심지어 부작용과 문제점이 많았을 것이다.

 

언어의 소통은 자기가 표현하고자 하는 컨텐츠가 있어야 한다. 모국어로도 자기가 말하고자 하는 신념 철학 논리의 정리된 생각이 없다면 무슨 말을 할수 있다는 말인가, 이것을 모르고 외국에 나가서 회화를 배우면 정치 경제 사회 문학 철학을 논할 수 있는 것으로 착각을 한 것이다. 모국어로도 표현 할 수 있는 내용이  없는 데, 그러한 정리된 개념이 생각에 머리에 없는데 어떤 내용이 외국어 언어로 표현되어 나올 리가 없는 것이다.

먼저 말하고자 하는 어떤 내용의  정리된 개념이 필요하고 그 다음 언어가 되어 나오는 것이다. 기계적인 생활 언어는 예외일 수 있으나 그것은 그것 뿐인 표현의 한계가 있을 것이다.

 

그래 세계 평화 시민으로서 세계어를 공용어로 사용하기 위한 곳으로 한국의 비무장 지대에 세겨 평화 도시를 이미 역설 하였는 바 한편으로는 교회마다 세계어 마을()을 두는 것이다.

 

신학교에서 신학을 졸업하는 분들은 성경연구를 위해 원어를 알아야 할 것이다. 신학도 목회자가 경전의 원어를 모른다면 생각해 보면 좀 그러하다. 몇 번 반복하지만 잘 번역된 영어성경은 원어의 역할을 충분히 한다는 것이다. 원어는 사전을 찾을 수 있으면 되고 필요하면 즉시 사전을 찾아보면 되는 것이다.

한편 성경보다 무슨 서양의 신학 학설을 배우기도 하였는데 돌이켜보면 왜 그러한 학설을 꼭 배워야 하는가 할 것이다. 왜나햐면 심지어 무익한 학설도 있는 것이다. 특별히 배워야 할 별 내용도 아닌데 촌놈 겁주는 학설 같은 것 말이다. 그것이 무슨 대단한 내용인 줄 알고 어설프게 배우고 가르치고 대단한 것인줄 알기도 하였던 것이다. 이제는 왜 서구신학교로 유학을 가야하는지 성찰해 보아야 할 것이다. 서구신학자가 성경을 보는 안목이 뛰어나다는 것인가, 언어가 부족하지 왜 같은 수준인데 성경 내용을 학설을 그들에게 가서 배워야 하는 것인지, 이제는 어쩌면 한국에 세계의 모든 좋은 기독교 서적은 다 번역되어 있을 것이고 한국의 목회자들의 독서력은 오히려 서구인보다 앞서지 않을까 하기도 하다. 남북의 분단 대치등 좀 더 절박한 상황이기 때문이다.

 

기본적으로 원어를 공부해야 하는데 현실적으로 쉽지 않다는 것이다. 영어 성경은 역사와 전통 그리고 검증이 되었기에 원어와 별 부족함이 없다고 본다. 또 원어만 잘하면 되는 것도 아니다. 가령 신약 성경이 헬라어로 사용되었는데 헬라인 즉 그리스인이 성경을 원어로 볼 수 있기에 다 가장 성경을 열심히 읽고 배우고 생동감있는 큰 신앙을 가진 것도 아니다. 그리이스를 잠시 방문하여 보았는데 성경을 읽는 말씀 중심 분위기보다 어떤 예식 의식이 중심인 것을 보고 약간 의아하고 놀랐다. 신학도들이 원어 배우기위해 얼마나 노력을 하는데 그들은 성경을 모국어인 원어로 읽을 수 있는데 그러하다는 것이다. 원어는 필요하면 그 때 사전을 찾아볼 수 있으면 된다고 할 것이다.

 

세계어인 영어로 잘 번역된 영어 성경으로 읽으면 되는 것이다. 그리고 신학교는 성경배우고 가르치는 교사를 목회자를 키우는 곳이다. 물론 인문학과 실천신학을 배우는 것도 필수적이어야 할 것이다.

그런데 신학교에서 가르치려면 주로 서구에 가서 신학을 배우고 학위를 취득하여야 하는 것을 알았는데 그것은 예날에 그러했어야 되는지 모르지만 지금은 지금 생각하면 그것은 장려할 이유가 있을까 한다. 거기 가서 언어 소통도 어렵고 토론도 않되는 데 무엇을 배울 수 있는가 하는 것이고 한국에세 신학교 대학원 과정까지 배웠다면 서구에서 더 이상 무엇을 배운다는 것인가, 좀 과장해서 말하면 좀 아리송한 학설이나 배우고 오히려 혼돈스럽게 되어 한국에 가르친다면 오히려 어려운 언어로 가르치게 될 수 있는 것이다. 문화적 혼돈과 중간지대의 언어가 되었을 가능성이 있을 수도 있다.

그 대표적인 예로 지금의 가장 잘 번역된 많은 검증과 보완까지 거쳐서 완성된 개역성경을 개정한 개정성경이 어떠한지 보면 알수 있을 것이다. 그간 서구에 신학교 학위을 취득하고 오면 교계의 모두가 자신들보다 상당한 실력이 있는 것으로 알고 우러러 보고 그 분들에게 맡겼는데 어떻게 개정하였는가, 개정한 본인들은 잘 개정되었다고 아시는지 그것이 궁금하기도 할 정도이다, 그런데 교계의 목회자 저명신학자 분들도 그것을 모르고 잘 번역된 것으로 아는 것이 지금의 한국교계의 리더 분들의 모습이다. 그것은 외국에가서도 성경을 더욱 깊게 넓게 연구한 것이 아니라 무슨 검증도 덜 된 학설이나 어설프게 배우고 오기 때문일 것이다. 왜 성경 배우러 외국까지 가야 하는가 하는 것을 이제 누구나 인식할 때가 되었다. 그들의 문화를 배우고 여러 견문을 넓히기 위하여는 필요하다. 그러나 외국의 소위 명문대학을 졸업하였기에 엘리트요 신학적인 실력이 있고 성경의 실력이 있다는 것은 이제 촌스러운 신화적인 이야기일 것이다. 혹 엘리트라는 인식은 맞을지 모른다.

 

성경 연구를 위해서 신학도가 유학을 가려면 이스라엘에 가서 역사 문화 전통 지리등 성경이 기록된 곳의 역사와 배경 문화 등을 배우는 것이 진즉 필요했던 것이다. 이것을 모르고 서구에 유학을 가서 심지어 그때 그때 변하는 유행학설이나 어설프게 배운다면 정리안된 어려운 소리로 가르칠 수 있는 것이다. 단지 외국 명문 학위를 가졌다는 막연한 우월의식의 신학적 교만이나 지적 사치나 가질 수 있는 것이다. 외국인 교수와의 토론하는 지적소통도 한계가 있을 것이다. 그렇게 배웠다면 가르치는 교사도 어렵게 가르칠 수 있고 듣는 학도들도 참 어렵게 배우는 면이 있다. 신학이란 원래 이렇게 어려운 것인가 하며 말이다. 지적인면 뿐아니라 생동감 생명력 감동 위로 격려 가득해야 할 곳이 신학교일 것이다. 외국의 어떤 신학교는 이것과 거리가 너무나 먼 듯 한데 막연한 학문적 교만만 가질 수 있다.

누구를 낮추려고 하는 것이 전혀 아닌데 아주 옛날 시대에 미국의 신학교에 유학을 가서 그 어려운 시기에 학비를 벌기 위해 열심히 접시를 닦으며 학문을 하였다는 전설적인 이야기를 들었는데 언어 소통 신학공부 등등이 쉬웠겠는가, 그리고 소통이 어려운데 무엇을 새삼 더 유익하게 배울 수 있었겠는가 할 것이다. 아마 한국에서 알고 배운 것 이상 더 무엇을 배울수 있을까 하는 면이 있고 오히려 학문적 혼돈도 있었지 않았을까 추측할 수 있다. 오히려 그들이 우리에게 배워야 할 부분은 없었는가도 논할 수도 있을 것이다.

 

1. 우리의 한국의 인생 선배님들은 시대적 상황에서 한국어를 포함하여 3개국어를 하시는 분이 많았다. 한국에는 한문 서당이 있어서 어렸을 때부터 한문을 공부하였고 대부분 어느정도 필력을 가지고 있었다. 지금은 한문 서당도 없고 한문을 거의 대부분 잘 모른다. 그렇다면 우리의 선배님들보다 오히려 어학 학문이 뒤떨어져 있다는 말도 맞는다. 물론 지금은 영어를 많이 공부하고 투자하는데 사용할 곳이 없이 공부를 위한 입시를 위한 공부가 되었다는 것이다. 한국은 영어를 그렇게 배우게 하였으면 사용할 곳을 배운 것을 실천할 곳을 마련해 주어야 한다. 그렇게 투자하여 배우게 하고 다 나 몰라라 하는 형국이다.

공부한 것 배운 것을 사용하고 실천할 곳이 없다면 그런 학문을 무엇때문에 무엇을 위하여 하여야 한다는 것인가. 그런데 세계어는 세계 시민으로서 앞으로는 더욱 더 필요하다.

 

교회는 성경을 더 잘 배우기 위해, 영적 성장을 위해, 거의 원어급으로 배우기 위해, 영어 성경 읽기 필요하다. 필수는 아니라 할지라도 선택으로 필요하다. 현실적으로 평신도 분들도 한문 혼용의 성경도 아닌 한글의 성경을 가지고는 문자의 뜻을 이해하기가 어려울 수 있다. 이것은 앞으로도 그러할 것이다. 그러니 성경이 어렵다고 하고, 쉽게 번역한다고 번역하면 또 내용 전달에 문제가 많다. 평신도 분들에게 필수는 아니어도 선택으로 한영성경을 보는 것이 필요하다. 그런데 한국에서 6년 이상 10면 내외 무엇을 위해 영어를 배우고 어디에 사용하고 사용할 곳이 있는가, 성경을 배우기 위해서 영의 양식을 먹고 영적 성장을 위해서 영어 성경을 같이 보는 것은 필수는 아니어도 선택과목은 되어야 할 것이다. 지금은 한문으로도 읽지 않기 때문에 더욱 그러하다.

세계어 영어는 국가적으로도 필수는 아니어도 선택으로 배우고 활용하고 사용하게 하는 것이 필요한다. 세계시민으로서 국가 자원 세계의 시민으로서의 국가의 선한 경쟁력인 윈윈을 위해서도 필요하다.

 

앞으로 세계언어로 성경을 배우고 활용하는 것은

교회에서 필수는 아니어도 가능하면 배워야 할 과목이라 할 것이다.

국가에서도 필수는 아니어도 세계시민으로서 가능하면 배우고 활용할 수 있게 하는 것이다.

 

교회에 필요하고 국가에 필요하다는 점이 일치한다. 그리고 절실하다는 점에서도 일치한다.그렇다면 교회와 국가에서 협력하며 실천방안을 찾아야 할 것이다.

다시, 이것은 교회에서 신앙성장이 크게 도움이 되고

국가에서 세계 시민으로서 지피지기 하여 세계가 평화 번영의 길로 가는 일에 역할을 하게하는 윈윈의 국가 경쟁력을 위해서 필요하다. 절실히 필요하다. 교회와 국가가 협력방안을 찾아 실천하면 교회에도 국가 번영 발전에도 크게 유익할 것이다. 그렇다면 실천만이 남았다.

 

( 신학교를 졸업하는 학도들은 성경 연구를 위해서 실력으로 영어성경을 잘 읽을 수 있고 해석할 수 있는 실력을 갖추거나 그 기본은 충분히 되어야 할 것이다. 그리고 그것이 세상에서도 알려져 영어를 배우기 위해서는 신학교를 졸업한 분에게 배울 수 있다는 것이 인식되는 것도 좋다고 본다. 이것은 성경연구를 위해서 필요하기 때문이다.)

 

                                                                                  < 성광교회 이동원 목사 드림>

 

 

=. 묵상 (meditation)

 

1. 쉐마 이스라엘은 지금도 이스라엘 교육의 핵심이라고 한다.

이스라엘의 교육의 결과는 어떠한지 세계가 안다면 놀라운 일이다. 여기에 그 명령이 있다.

(6:4-9)

6:4 이스라엘아 들으라 우리 하나님 여호와는 오직 하나인 여호와시니

6:5 너는 마음을 다하고 성품을 다하고 힘을 다하여 네 하나님 여호와를 사랑하라

6:6 오늘날 내가 네게 명하는 이 말씀을 너는 마음에 새기고

6:7 네 자녀에게 부지런히 가르치며 집에 앉았을 때에든지 길에 행할 때에든지 누웠을 때에든지 일어날 때에든지 이 말씀을 강론할 것이며

 

6:8 너는 또 그것을 네 손목에 매어 기호를 삼으며 네 미간에 붙여 표를 삼고

6:9 또 네 집 문설주와 바깥 문에 기록할지니라

 

6:4 Hear, O Israel: The LORD our God, the LORD is one.

6:5 Love the LORD your God with all your heart and with all your soul and with all your strength.

6:6 These commandments that I give you today are to be upon your hearts.

6:7 Impress them on your children. Talk about them when you sit at home and when you walk along the road, when you lie down and when you get up.

6:8 Tie them as symbols on your hands and bind them on your foreheads.

6:9 Write them on the doorframes of your houses and on your gates.

 

1. 이스라엘의 광야 40년 신앙훈련 동안에 가르친 내용은 무엇인가,

(8:1-4)

8:1 내가 오늘날 명하는 모든 명령을 너희는 지켜 행하라 그리하면 너희가 살고 번성하고 여호와께서 너희의 열조에게 맹세하신 땅에 들어가서 그것을 얻으리라

 

8:2 네 하나님 여호와께서 이 사십 년 동안에 너로 광야의 길을 걷게 하신 것을 기억하라 이는 너를 낮추시며 너를 시험하사 네 마음이 어떠한지 그 명령을 지키는지 아니 지키는지 알려 하심이라

8:3 너를 낮추시며 너로 주리게 하시며 또 너도 알지 못하며 네 열조도 알지 못하던 만나를 네게 먹이신 것은 사람이 떡으로만 사는 것이 아니요 여호와의 입에서 나오는 모든 말씀으로 사는 줄을 너로 알게 하려 하심이니라

8:4 이 사십 년 동안에 네 의복이 해어지지 아니하였고 네 발이 부릍지 아니하였느니라

 

신8:1 Be careful to follow every command I am giving you today, so that you may live and increase and may enter and possess the land that the LORD promised on oath to your forefathers.

 

8:2 Remember how the LORD your God led you all the way in the desert these forty years, to humble you and to test you in order to know what was in your heart, whether or not you would keep his commands.

8:3 He humbled you, causing you to hunger and then feeding you with manna, which neither you nor your fathers had known, to teach you that man does not live on bread alone but on every word that comes from the mouth of the LORD.

8:4 Your clothes did not wear out and your feet did not swell during these forty years.

 

1. 이스라엘, 남왕국 이스라엘이 바벨론 포로에서 돌아와서 한 것은 무엇이었는가,

그들이 예배를 드리는 예루살렘 성전 재건과 율법을 가르치는 것이었다. 이스라엘이 바벨론 포로시절을 겪으며 가장 뼈저리고 반성하고 깊게 깨닫고 느낀 결과이다. 학사이고 제사장인 에스라는 성전 재건과 함께 율법을 이스라엘에게 가르치는 일에 열심과 헌신을 다했다는 기록을 볼 수 있다.

 

에스라는,

유대교에서 칭송받는 3대 율법학자 에스라(Ezra) 힐렐(Hillel) 가말이엘(Gamaliel) 중의 한 사람이라고 한다. 그가 얼마나 율법연구와 가르치는 것에 전심전력하였는가를 알 수 있다.)

에스라7:10,,

7:10 에스라가 여호와의 율법을 연구하여 준행하며 율례와 규례를 이스라엘에게 가르치기로 결심하였었더라

 

7:11 여호와의 계명의 말씀과 이스라엘에게 주신 율례의 학사인 학사 겸 제사장 에스라에게 아닥사스다 왕이 내린 조서 초본은 아래와 같으니라

7:12 모든 왕의 왕 아닥사스다는 하늘의 하나님의 율법에 완전한 학사 겸 제사장 에스라에게

7:13 조서하노니 우리 나라에 있는 이스라엘 백성과 저희 제사장들과 레위 사람들 중에 예루살렘으로 올라갈 뜻이 있는 자는 누구든지 너와 함께 갈지어다

 

7:10 For Ezra had devoted himself to the study and observance of the Law of the LORD, and to teaching its decrees and laws in Israel.

7:10 For Ezra had set his heart to study the law of the LORD, and to practice [it,] and to teach [His] statutes and ordinances in Israel.(nas)


7:11 This is a copy of the letter King Artaxerxes had given to Ezra the priest and teacher, a man learned in matters concerning the commands and decrees of the LORD for Israel:

7:12 Artaxerxes, king of kings, To Ezra the priest, a teacher of the Law of the God of heaven: Greetings.

7:13 Now I decree that any of the Israelites in my kingdom, including priests and Levites, who wish to go to Jerusalem with you, may go.

( 유대교에서 칭송받는 3대 율법학자는 에스라(Ezra) 힐렐(Hillel) 가말리엘(Gamaliel) 라고 한다. 바울은 가말리엘 문하에서 배웠다고 하였다. 신약성경에 율법학자 가말리엘에 대한 기록이 있는데 그의 판단은 현명한 것임을 알 수 있다. 5:33-41)

행5:34

바리새인 가말리엘은 교법사로 모든 백성에게 존경을 받는 자라 공회 중에 일어나 명하사 사도들을 잠깐 밖에 나가게 하고


5:35 말하되 이스라엘 사람들아 너희가 이 사람들에게 대하여 어떻게 하려는 것을 조심하라

5:36 이전에 드다가 일어나 스스로 자랑하매 사람이 약 사백이나 따르더니 그가 죽임을 당하매 좇던 사람이 다 흩어져 없어졌고

5:37 그 후 호적할 때에 갈릴리 유다가 일어나 백성을 꾀어 좇게 하다가 그도 망한즉 좇던 사람이 다 흩어졌느니라

 

5:38 이제 내가 너희에게 말하노니 이 사람들을 상관 말고 버려 두라 이 사상과 소행이 사람에게로서 났으면 무너질 것이요

5:39 만일 하나님께로서 났으면 너희가 저희를 무너뜨릴 수 없겠고 도리어 하나님을 대적하는 자가 될까 하노라 하니

5:40 저희가 옳게 여겨 사도들을 불러들여 채찍질하며 예수의 이름으로 말하는 것을 금하고 놓으니

5:41 사도들은 그 이름을 위하여 능욕받는 일에 합당한 자로 여기심을 기뻐하면서 공회 앞을 떠나니라

 

5:34 But a Pharisee named Gamaliel, a teacher of the law, who was honored by all the people, stood up in the Sanhedrin and ordered that the men be put outside for a little while.

5:35 Then he addressed them: "Men of Israel, consider carefully what you intend to do to these men.

5:36 Some time ago Theudas appeared, claiming to be somebody, and about four hundred men rallied to him. He was killed, all his followers were dispersed, and it all came to nothing.

5:37 After him, Judas the Galilean appeared in the days of the census and led a band of people in revolt. He too was killed, and all his followers were scattered.

 

5:38 Therefore, in the present case I advise you: Leave these men alone! Let them go! For if their purpose or activity is of human origin, it will fail.

5:39 But if it is from God, you will not be able to stop these men; you will only find yourselves fighting against God."

5:40 His speech persuaded them. They called the apostles in and had them flogged. Then they ordered them not to speak in the name of Jesus, and let them go.

5:41 The apostles left the Sanhedrin, rejoicing because they had been counted worthy of suffering disgrace for the Name.

 

1. 예수님의 사역은 가르치는 것이 핵심 내용 중의 하나이었다.

예수님께서는 가르치시고 강 훈련시키신 것을 알 수 있다. 티칭 프리칭 힐링이었다.

4:23

4:23 예수께서 온 갈릴리에 두루 다니사 저희 회당에서 가르치시며 천국 복음을 전파하시며 백성 중에 모든 병과 모든 약한 것을 고치시니

 

4:23 Jesus went throughout Galilee, teaching in their synagogues, preaching the good news of the kingdom, and healing every disease and sickness among the people.

 

1. 지상 마지막 분부 마태복음 마지막 장 절에서도 가르치라고 명하신다.

( 한편 본분에서 아버지와 아들과 성령의 이름으로 세례를 주라고 명하셨는데 사도행전에 보면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세례를 준다. 그러므로 아버지와 아들과 성령의 이름은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과 동일함을 알 수 있다.

28:18-20

28:18 예수께서 나아와 일러 가라사대 하늘과 땅의 모든 권세를 내게 주셨으니

28:19 그러므로 너희는 가서 모든 족속으로 제자를 삼아 아버지와 아들과 성령의 이름으로 세례를 주고

 

28:20 내가 너희에게 분부한 모든 것을 가르쳐 지키게 하라 볼지어다 내가 세상 끝날까지 너희와 항상 함께 있으리라 하시니라

 

28:18 Then Jesus came to them and said, "All authority in heaven and on earth has been given to me.

28:19 Therefore go and make disciples of all nations, baptizing them in the name of the Father and of the Son and of the Holy Spirit,

 

28:20 and teaching them to obey everything I have commanded you. And surely I am with you always, to the very end of the age."

(* 지키다, 원,, 테레오,  지키다 (손실이나 해로부터, 정확히는 시선을 계속 둠으로써, 주의하다, 굳게 붙잡다 (보호상, 유지하다) keep , reserve , observe, watch , preserve , keeper, hold fast,, to watch over, guard.

 

1. 바울도 목회자가 성경 교육의 가르치는 중요성을 믿음의 아들이고 동역자인 디모데에게 권하고 있다.

딤후 3:15 -17

또 네가 어려서부터 성경을 알았나니 성경은 능히 너로 하여금 그리스도 예수 안에 있는 믿음으로 말미암아 구원에 이르는 지혜가 있게 하느니라 /

3:16 모든 성경은 하나님의 감동으로 된 것으로 교훈과 책망과 바르게 함과 의로 교육하기에 유익하니/

3:17 이는 하나님의 사람으로 온전케 하며 모든 선한 일을 행하기에 온전케 하려 함이니라

 

3:15 and how from infancy you have known the holy Scriptures, which are able to make you wise for salvation through faith in Christ Jesus.

3:16 All Scripture is God-breathed and is useful for teaching, rebuking, correcting and training in righteousness,

3:17 so that the man of God may be thoroughly equipped for every good work.

 


=. 부록 ( appendix)

교회에 영어 마을() 이 있다면

1. 신앙 유익 - 지금의 세대는 대부분 세계어로 영어를 열심히 공부하였다.

2. 세계 시민 의식 좀 삭막하게 말한다면 국가 경쟁력 향상에 도움이 될 것이다.

 

엊그제 갓 난 아이였는데 벌써 초등 육학년 된 학생이 갓난 아이를 보고 말했다는 것이다.

너는 좋겠다,과외 공부를 하지 않아도 되니 하였다는 것이다.

이제 벌써 과외 공부에 얼마나 시달리는지 알 수 있다. 그 과정 중에 영어과외가 주요자리를 차지하였을 것이다. 또 다 과외를 받으니 거기 참여하지 않으면 친구가 없다는 이야기도 있다.

최근 영어 과목의 절대평가제는 참 잘 된 것으로 본다. 어느 정도 기본을 잘 배우고 활용하면 되는 것인데 공부를 위한 공부 시험을 위한 입시를 위한 어학공부가 되어 실제로 말하고 듣고 읽고 쓰고 하는 것과는 동떨어진 공부를 하는 면이 있다.

언어는 모국어든 외국어든 계속 사용해야 하는 것이다. 국어을 사용하면서 배우는 것과 마찬가지이다. 국어도 평생 사용하면서 발전하고 언어를 잊지 않는 것이다. 국어도 사용하지 않으면 발전하지 않고 오히려 퇴보할 것이다.

 

신앙적인 면에서 국가 경쟁력의 면에서 세계어를 배우고 활용해야 하는 것이다. 특히 영어를 세계어 또는 세계어 중의 하나라고 할 때 영어를 계속 사용해야 하는 것이다. 영어 성경은 세계인의 또는 서구인의 문화의 많은 것을 알 수 있을 것이다. 서로의 윈윈을 위한 지피지기의 이해를 위해서도 성경의 영어는 최상 최고급이라 할 것이다. 그러한 점에서도 영어를 계속 사용하여야 하는데 그것은 교회에서 신앙을 위해서 국가 경쟁을 위해서도 접하는 기회가 될 수 있는 것이다. 렇다면 세계인으로서 신앙성장과 세계 언어의 사용을 위해서도 필요한 것을 교회에서 활용하는 방법을 찾는 것이다. 이를테면 영어마을이라는 이름아래 성경을 영어로 공부하고 토론하고 대화하는 마을을 교회마다 만드는 것은 어떠할까 하는 것이다.

목회자는 모두 영어교사 성경교사가 될 정도가 되어야 하다는 것이다. 모든 목회자는 영어교사 자격을 내용적으로 갖게 하는 것이다. 세상에서도 목회자는 영어성경을 잘 가르칠 수 있는 자격으로 인식할 정도가 되도록 말이다.

 

실제로 한국어 성경을 보다가 어떤 단어가 전혀 다른 두 가지 뜻이 있는데 어느 뜻을 대입하여도 맞는 경우 과연 어느 뜻인가, 참 답답할 때가 있었다. 가령 예를 들면 성경의 구절에서 모자라는 단어가 있다고 하자. 머리에 쓰는 모자도 있고 어머니와 아들의 모자도 있다. 그런데 어느 뜻을 적용하여도 문장에서 문맥에서 뜻이 잘 통한다. 그렇다면 어느 뜻인가 도저히 알 수 없다. 한문을 사용하였다면 알 수 있는데 한문을 한글로 표기하였기 때문이다. 그런데 옆에 영어성경을 같이 보았다면 금방 알 수 있다. 이러한 점에서도 영어성경을 같이 보는 것이 필요하다. 어느 목회자 분이 성경의 조각목을 오랫동안 나무의 종류가 아니라 조각 조각 낸 나무로 알았다던가 하였다. 그 어느 단어의 뜻으로도 문장이 잘 통하였기 때문이었다.

목회자가 원어를 잘 보면 쉬운데 이것은 대부분 쉽지 않을 것이다. 사전을 찾을 수 있을 정도면 된다고 본다. 잘 번역된 역사 깊은 영어성경을 같이 보면 거의 부족함이 없다고 본다. 어떤 경우 잘 번역된 번역어가 원어를 직접 읽는 것 보다 의미의 이해가 쉬울 때도 있을 것이다. 잘 번역되었고 오랜 동안 검증이 되었기 때문이다.

 

그리하여 그렇다면 교회에서는 기본적으로 더 효과적인 성경공부를 위해서도 영어 공부라기 보다 영어로 소통하는 마을(가능하면 큰 )을 만들어 사용하는 것이다. 카페같은 대화할 수 있는 분위기도 좋겠다. 그래서 교회에서는 교회에 가면 당연히 영어 프리 토킹 성경 토론을 하고 그것이 세상에 알려지는 것도 좋다고 본다. 교회에가면 성경을 영어로 토킹 할 수 있는 곳으로 인식되는 것이다.

이스라엘은 어렸을 때는 주입식 교육일지라도 청소년 어느 시기부터는 질문과 대답의 토론 중심의 교육을 한다는 이야기를 들었다. 한국에서는 무슨 질문을 할 때 망설이고 하는데 이스라엘 교육생들은 끊임없이 질문하고 대답하는 방법의 교육과정이라는 것이다. 이스라엘에서 어떤 가이드가 우리 한국에서는 어떤 질문을 하면 아 그것도 몰라, 또는 내가 질문을 하면 누가 무식하다고 하지 않을까 하는 그러한 분위기가 전혀 아니라는 것이다. 이러한 교육방법과 분위기가 필요하다. 어느 분야의 박사학위를 가졌어도 자기 전문분야에서이지 다른 분야는 다 잘 모르는 것은 당연하기도 하는 것이다.

한신대학교에서 총장님 또는 신학교 학장님들은 이 점을 참고하여 신학을 졸업하고 출발할 때 목회자가 되면 세계시민의 성경 박사로 나아가기 위해서도 영어 성경의 육십 육권 중 한 권 정도는 자유롭게 영어로 읽고 가르칠 수 있게 도움을 주는 것이 어떠할까 한다. 그리고 내 개인 견해이지만 교회에서 영어를 공부로서가 아니라 성경을 거의 본토 발음으로 읽고 가르칠 수 있을 정도는 기본적으로 갖고 졸업할 수 있게 하는 것이다그렇다면 세계시민의 성경교사로서 세계인으로서 사고를 가지고 대화할 수 있는 역할을 좀 더 갖추게 되는 것이다. 언어는 사용하지 않으면 모국어라도 잊을 수 있고 발전 대신 퇴보 될 것인데 하물며 외국어는 어떠하랴. 신앙의 성장과 세계시민으로서 서로의 소통을 위해 성경은 가히 최상 최고급인 것일 것은 영문학자들도 다 인정하고 있는 것으로 알고 있다.

언어는 공부개념 이상의 소통 교통 개념으로 보아야 한다. 소통의 도구이기에 계속 소통하며 사용하여야 한다.

교회마다 세계어 마을인 영어 마을(아주 큰 방) 두기위해 지자체의 동 구 시 담당자들과 협의하며 만드는 방안을 없는가 생각해 보아야 할 것이다. 막연하고 거창하게 세계시민이라고 할 것이 아니라 리 동 구 시와 연합하여 각 마을 세계어를 함께 사용할 수 있고 사용하는 것이다. 이것이 교회에서는 신앙을 위한 것이요 국가적으로는 세계시민과 호흡하고 교통할 수 있는 실용적 방법중에 하나일 것이다. 지금의 중장년 세대들은 영어를 적어도 대략 6, 10년 이상은 배웠을 것이다.)

 

( 한편 근래 총장 한분이 그렇게 할 수 있는 일이 많고 권한이 막강한가 온갖 많은 것을 요구하고 기대하기도 한다. 총장 한 사람이 그렇게 권한이 크고 많은지 의아할 정도이다. 총장 홀로 할수 있는 듯이 요구하면서 또한 민주화를 요구하기도 한다. 어느 장단에 춤추어야할까 고민이 있을 듯 하다. 어느 정도는 시스템에 의해서 돌아가는 것으로 아는데, 그렇게 많은 일을 민주화된 시스템에서 홀로 할 수 없는 요구사항이 많을 것인데, 민주화를 말하며 총장에게 다할 수 있는 듯이 요구하면 상충의 모순일 것이다.

언제 부터 많이 들은 학내 민주화라는 것도 무엇을 말하는지 모른다. 시스템 조직체계가 질서있게 돌아가는 것으로 아는데 여기에 너무나 당연하기도 한 민주화라는 단어까지 요구하니 총장이 모든 것을 마음대로 할 수 있는 전권가진 것도 아닐 것인데 말이다.

이것은 교회에도 요구하는데 글쎄 말은 그럴 듯한데 실상은 교회에 전권가진 권력자도 없을 것인데 왜 그러한 단어를 너도 나도 사용하고, 그 뜻이 무엇인지도 저마다 다를 것이다. 교회에서도 목회자가 전권을 가진 신화같은 이야기가 사실화되어 알려진 것도 오래이다. 이것은 사실 교회에서 거의 드문 일이다. 목회자가 마음대로 할 수 있는 경우는 거의 없을 것인데 그것이 누군가에 의해 세상에 전해지고 사실화된 신화같은 이야기이다. 민주화라는 단어는 목회 초기에도 왜 그 단어를 교단 일부 지도급 인사가 그렇게 많이 쓰는지 교회에서 그 말의 뜻이 무엇을 뜻하는지 성경의 어떤 내용을 근거해 민주화라고 하는지 그 말의 적용이 어디에 맞는지 한번 대 토론회를 연다면 연사로 참여하고 싶을 정도 이었다.

교회에 성경에서 얼마나 감동 격려 위로 생명을 주는 귀하고 많은 용어가 있는데 왜 세속에서 쓰는 용어가 신앙인 안에서 그렇게 자주 많이 만병통치약의 구호같이 자주 남발할 정도로 쓰는지도 검토해 볼 일이다. 세속의 정치제도의 한 바람직한 용어가 왜 일부 신앙인들의 절대적인 구호로 많이 쓰는지, 그리고 그 단어를 쓰면서도 해석을 저마다 달리하는 경우가 많을 것이다. )

( 친애하는 총장님 신학장님,특히 친애하는 총장님께는 요구사항이 너무 많아 어깨가 무거워 무너질 듯한데, 여기에 또 참고 사항을 전하니 좀 미안한 감 있지만 참고하시고, 아령 열심히 하시고, 팔굽혀 펴기 가능하면 자주 틈틈이 하시고, 기도 열심히 하시며 참고 반영하시기를, 같이 기도하며 마음의 힘을 보태오니 반영하시기 바라오며, 함께 기도해 봅시다. )

 

오늘의 주제의 요점은

영어 마을을 교회에서도 두어 신앙의 유익과 세계시민으로서 호흡을 같이하는데 유익하다.

이것을 국가경쟁력이라고도 할 수 있는데 국가경쟁력이라는 단어가 너무 긴장감을 주기도 하여 세계시민의 서로 호흡이라고 하였다.

국가의 지방 기관 부서와 교회의 세계어 계속 사용하는 방안을 시행하는 방법을 찾아보자.

신학교에서는 너무 거창하고 추상적인 구호보다는 이러한 실제적인 교육을 할 수 있는 실력을 갖출 수 있도록 하였으면 한다.

  

( * 이런 꿈 같은 생각을 해 본다.

지금의 교인들이 교인은 교인이로되 교회는 안나가는 교인이 상당하다는 말이 있다.

그리고 교인들이 이제 주로 대형교회로 몰려간다고 한다. 여러가지 시설이 잘 되어있고 인적자원 풍부하고 등등 때문일 것이다. 충분히 이해하고 당연하다고 생각한다. 교인 숫자가 적은 교회들은 듣는 바에 의하면 삼백명 교인 이하는 적은 교회라고 한다는 것이다. 초대 다락방 교회 기준으로 보면 오히려 너무 엄청 큰 교회인데 표현이 잘못 되었다. 그리고 표현이 좀 그러하지만 앞으로는 자체 운영이 어려울 수 있다고도 한다. 이 현실에서 교회는 크게 두가지 방법이 있을 수 있을 것이다.

1. 철저하게 말씀만을 중심으로 하는 말씀과 기도와 찬송 중심의 교회이다.

그것은 목회철학이기도하고 다른 무엇을 할 수 있는 여력이 없기 때문이기도 하다. 그러나 이것은 가장 성경적이기도 하고 초대교회의 모습이다. 초대교회는 어떤 큰 건물도 없었고 다락방 같은데서 모일 수 밖에 없었을 것이다. 그러나 그 후 중세시대의 거대하고 웅장한 건물에서 볼 수 없는 가장 열심 순수한 신앙이었을 것이다.

미국의 예를 들면 맥아더 목사님이 목회한 은혜교회가 그 예일 것이다. 소위 작은 교회라 할 수 없지만, 그 교회는 다른 무슨 프로그램없이 강해설교 오직 말씀 중심의 교회이다. 한국에도 방대한 그 분의 주석 주해서가 나온 것을 보았다. 바람직한 교회상의 하나라 할 수 있을 것이다.1. 교회당을 복합건물로 지어서 활용한다는 것이다.

복합건물의 교회당은 의외로 적지 않은 목사님들이 긍정적으로 생각한 것을 보았다. 표현이 좀 그러하지만 적은 교회로서 교회운영과 나아가서는 교회가 할 일을 할 수 있게 하는 목적도 있겠다. 그리고 교인들에게 재정적인 과도한 부담을 지우지 않은 점도 있다는 것이다.

사실 도시에서 크고 작은 예배당에 일 주일에 몇 번 사용만 하는 것이다. 그것에 대해서도 누구나 고려해 볼 만할 것이다. 그러므로 본당과 교육관을 제외하고 여러가지로 활용한다는 것이다.

그러한 공간을 가져 영어 마을()의 공간을 확보하여 영어 성경 읽기와 성경에 대해서 또는 세상의 문제에 대해서 영어로 디스커션 하는 마을(, ) 이다. 어린이 청소년 장년 누구나 차를 마시면서 성경에 근거하여 영어로 여러 현안 주제들에 대화하고 토론 디스커션 프리토킹하는 것이다.

한편 지자체에서 영어마을에 시설등에 재정을 투자헸지만 전시 효과 이상의 효과가 별로 없었던 듯 하다. 그런데 교회당 건물의 어떤 홀에서 이러한 세계어 프리토킹을 한다는 것이다. 여러가지 한계점이 있겠지만 지자체와 협력하여 실험해 보면 어떠할까 하는 생각이다. 이것이 잘 되면 자연히 전국적으로 확산될 것이다.

이것은 교회는 신앙을 위해서 필요적절하여 권장할 만 일이고,  

이것은 또한 나라를위해서 좋다. 국민들은 세계를 향해서 세계시민이 되는 언어자격을 습득하고  사용 활용하여 국가경쟁력도 향상시킬 수 있다. 그래 시범적으로 해서 잘 되면 전국적으로 많은 교회에서 실행할 수 있을 것이다. 이러한 꿈 같은 일을 꿈꾸어 보고 있지만 가능할지 모르겠다. 그러나 한번 꿈꾸어 보고는 있는 것이다. 이제 생각해보면 꿈 자체도 좋다고 본다. 그것이 현실에서 이루어지든 이루어지지 않든 마음으로 꿈꾸는 것은 마음에는 이루어진것이라면 반은 이루어진 것이라 할 수 있기 때문이다. 나머지 반은 어떻게 될지 모르겠지만 꿈꾸어 보는 것이다.)

                                                                                                                   ( - ing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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