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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교계와 라오디게아 교회의 교훈

이동원 (서울북노회,성광교회,목사) 2017-12-11 (월) 07:32 6년전 1725  

한국교계와 라오디게아 교회의 교훈

한국교회는 짧은 시간에 세계가 놀랑 정도의 복음 전파와 외형적인 부흥이 있었다. 세계사적 교회사적 연구 과제라고 할 수 있을 것이다. 이러한 부흥에 힘입어 한국에 외형적 숫자적 세계 최대교회들이 숫자적 대형교회들이 한국에 대부분 있는 것으로 알고 있다.

 

소위 이러한 대형교회들은 전도의 결과라기 보다는 이왕에 믿는 교인들을 그 교회들로 인도하는 데 성공적이었다고 할 수 있다. 믿지 않는 사람들을 전도한 결실에 큰 공헌을 역할을 했다고 하기는 분명하지 않을 것이다. 이러 저러한 이유로 수평이동의 성공적 이었다는 점에서 긍정적인 평가를 받기만 하기는 그러하다.

 

교회성장론이라는 것은 교인 성장론과 즉 교인인 사람의 성장론과 다르기에 그것이 기업의 목적과 행태와 비슷하다고 할 것이다. 기업은 국가에 국민에 공헌하는 것도 있지만 타 기업과 경쟁의 성공에 필사의 노력을 하여야 할 것이다. 이러한 모습이 교계에 있었고 교회 성장론은 이것과 비슷한 점이 있다는 점에서 바람직하지 않은 면이 있다.

 

주일이 되면 교인들의 편의를 위해서 차량을 운영하는 것은 필요하기도 유익하기도 하겠지만 대형교회들이 차량을 도시의 구석 구석을 누비며 교인을 자신의 교회로 오게하는 경우가 대부분이다. 이것은 교인들을 위한 당연한 것이기도 하지만 세상에서 필사의 경쟁을 하는 문어발식 경영 필사의 경쟁등등의 기업의 모습도 보인다. 어쩌면 많이 보이고 기업에서 그 전략을 배운 듯이 보일 수도 있을 것이다. 사실 한국의 부흥 성장은 특정 유명인들 유명교회보다도 무명의 많은 분들과 한국의 상황 등이 이유이고 무엇보다도 하나님의 은혜라 할 것이다. 대형교회는 그 교인들을 표현이 그러하지만 자신들의 교회로 유치하는데 성공하였다고 할 것이다. 이것은 대형교회만 그러한 것이 아니라 대 도시의 많은 교회가 예수 믿고 교회에 다니는 것보다 대부분의 경우 우리교회 나오게 하는데 가장 주력하였다면 이것은 우리 모두 자성하고 뼈아픈 반성을 지금이라도 하여야 할 것이다.

 

대형교회들이 있기에 결과적으로 어떤 법이 어떤 교단들에서 만들어진 것으로 보이고 일부 교계단체가 그것을 부추기고 권고의 공문을 보내는 참으로 세계교회사의 코메디같은 일이 한국에 있었다는 것이다. 그것은 교회에서 어떤 대상을 제한하는 법을 만든 것이다. 이것은 보기에 따라서는 특정 대상자들을 제한하고 자기들이 그 대형교회에 갈 기회가 많기를 기대하는 것이기도 하는데 그것은 위선적이고 위법적인 것이다. 내용적으로 자신들이 그 대형교회에 갈 기회가 있기를 바라는 마음도 없지 않았으리라. 그래 결과적으로 누군가는 법적으로 원천 봉쇄하는 법을 만든 것이다. 이것을 세속의 매스컴에서도 언급하는데 교회의 내용과 체계를 모르기 때문에 그러한 것이다.

한 때 그러한 여론을 만들었는데 그것은 결과적으로 또는 실제로 적그리스도의 무엇에 빠진 것이 아닌가 보라는 것이었다. 교계 또는 교회 안에서 절차적으로 은혜스럽게 하도록 하여야 할 일이 왜 세상에서 부정적으로 보고 거기에 동조하는 세력도 있는가 하는 것이다.

교회가 복된 소식 기쁜 소식을 전하고 세상에 희망을 주고 서로 사랑하는 윈윈의 세상을 한국과 세계에 실천하고 하나님의 은혜를 감사하고 예배하며 감사와 감격의 복된 삶을 살아가야 하는데,, 교회 경쟁 숫자 목적 자랑 일년 이년에 수평 이동의 결과로 교인 몇 명 성장 이것으로 스타탄생 메스컴 광고 등등 하다가

예수 그리스도의 은혜 , 교회 안에서와 예수 그리스도 안에서 충만하고 풍성한 은혜 , 치료의 역사, 예배의 감격과 말씀 안에서 성령의 충만한 은혜 이루 열거할 수도 말도 다 표현할 수도 없는 교회의 은혜의 내용의 언어와 역사 그 능력 대신에 적그리스도의 교회 핍박 훼파 계획을 비방에 물들어 같이 동조하고 그들의 프레임에 갇혀있는 것이 아닌가 뼈저리게 통절히 자성하여야 할 것이다.

 

이것이 오늘 요한계시록의 일곱 교회를 통해 우리에게 주시는 말씀이 아닌가 보아야 할 것이다. 일곱 교회에 칭찬과 책망이 있다. 물론 칭찬만 있는 교회도 있고 책망만 있는 교회도 있다. 이것은 모든 교회가 완전하지는 않다는 것이다. 사람들이 모인 곳이고 서로 다양한 환경과 형편 성품 성향 개성이 다른 사람들 세대 차이 등등 과거나 현재나 미래나 완벽한 모습은 아닐 수도 있다. 칭찬 받을 일도 있고 책망 받을 일도 있을 것이다. 그럼에도 주님은 교회를 사랑하시는 것이다.

 

라오디게아 교회는 칭찬이 없는 교회이다. 책망만 있는 교회이다. 그래도 주님은 그 교회를 사랑하셨다는 것이다. 교회를 사랑하셨기 때문에 책망한 것이다. 칭찬 받을 일은 없고 책망받을 일만 있는 주님이 사랑하는 라오디게아 교회에 주신 내용은 모든 교인에게 큰 격려와 위로가 된다. 결과적으로 칭찬 받을 일이 없는 라오디게아 교회 때문에 우리는 이 귀한 생명의 말씀을 들을 수 있다는 점에서는 역설적으로 칭찬 받을 일이 없는 라오디게아 교회에 감사할 수 있다.

( 오늘의 한국 교계를 보면 세계에서 초대형 대형 교회들이 많은 한국 교회들을 보면 라오디게아 교회의 모습을 한국교회에서 볼 수 있다고 할 것이다. 그러므로 한국의 초대형 대형의 교회가 꼭 책망을 받을 교회라고 말하는 것을 전혀 아니다. 결코 아니다. 그렇게 평가한다면 교만이 될 수도 있다. 단지 그러한 모습이 좀 더 보인다는 것일 뿐이다. 이 일곱교회에 주시는 말씀은 교인 개개인에게 주시는 말씀이다. 교회는 숫자 건물이 아니라 사람이기 때문이다.)

 

어떤 성도님이 이 계시록의 교회들에게 주시는 계시의 말씀을 읽을 때 특히 라오디게아 교회에 주시는 말씀이 자신에게 주시는 말씀 같다는 것이다. 근래에 하는 말이었지만 이미 십 수년 전에도 라오디게아 교회에 주시는 말씀이 자신에게 주시는 말씀 같았다는 것이다. 그것은 성경을 통해서 주님이 주시는 말씀인 것이다. 그렇다면 사랑해서 주시는 격려의 말씀을 들어야 할 것이다.

일곱 교회 중에 라오디게아 교회의 모습은 외형적으로 세계사에 없을 부흥을 주신 한국교계와 비슷한 부분이 있으며 반성할 부분이 있다 할 것이다.

 

 

=. 묵상 ( meditation )

일곱 교회 중에 마지막에 사랑하는 라오디게아 교회에 주시는 계시의 말씀

칭찬이 없는 라오디게아 교회를 통해서 주시는 말씀은 우리들에게 나에게 격려와 위로를 주시는 것이다.

 

1.

( 계3:14 -22)

라오디게아 교회의 사자에게 편지하기를

아멘이시요 충성되고 참된 증인이시요 하나님의 창조의 근본이신 이가 가라사대 /

내가 네 행위를 아노니 네가 차지도 아니하고 더웁지도 아니하도다 네가 차든지 더웁든지 하기를 원하노라/

네가 이같이 미지근하여 더웁지도 아니하고 차지도 아니하니 내 입에서 너를 토하여 내치리라/

 

1.

 

'네가 말하기를 나는 부자라 부요하여 부족한 것이 없다 하나 네 곤고한 것과 가련한 것과 가난한 것과 눈먼 것과 벌거벗은 것을 알지 못하도다 / 내가 너를 권하노니 내게서 불로 연단한 금을 사서 부요하게 하고 흰 옷을 사서 입어 벌거벗은 수치를 보이지 않게 하고 안약을 사서 눈에 발라 보게 하라.' (3:17-18)

( 한국의 교계는 외형적으로 볼 때 나는 부자라 부요하여 부족한 것이 없다하니 라는 라오디게아 교회에 주시는 말씀과 흡사 비슷한 점이 있다 할 것이다. 교인 숫자로 볼 때 세계 십 위권 안의 교회가 대부분 한국교회라는 것이다. 이십위 권도 그러할 것이다. 교인이 수평이동으로 그렇게 된 것이라 할 수 있다. 그리고 얼마전까지 교회를 대형화하는 것이 목적이 되었고 수단이 되었다고 하여도 과언이 아니다.

외형적으로 교인수 건물 시설 재정 프로그램 등등 부자라 부요한 것이 없다는 라오디게아 교회의 주장과 흡사하다.

그러나 실상은 곤고하고 가련하고 가난하고 눈 먼것을 알지 못하고 있다고 책망하였다. 외형적으로 한국의 대형교회들과 비슷한 면이 많다. 한국의 대형교회가 지금  영적으로 꼭 그렇다는 것이라거나 아니라는 것이 아니다. 대형교회들의 외형적인 면에서 그러하다는 것이다. 왜 한국교계가 대형교회를 지향하고 추구하였는지 성찰이 필요할 때이다. 계시록의 일곱교회 중 칭찬이 없는 라오디게아는 외형적으로 풍부하였는 것을 알 수 있다.

외면적으로 부요하고 부족한 것이 없는 교회 일수록 더 겸손하고 주님 만을, 재정 숫자 프로그램 시설 목회자보다

주님 만을 높이는 교회가 되어야 할 것이다. 외형적으로 부족함이 없는 대형교회는 참 더 조심스러울 수 밖에 없다. )

( 다시, 그건 그렇고, 최근에 어떤 교단에서는 목회자 청빙 대상을 원천적으로 제한한 법을 만들었는데 그것은 위헌적이고 위선적이고 위법적인 이상한 법을 만들었다. 그것도 대형교회를 의식하고 만든 듯 하다. 그러한 법을 만든 것도 보기에 따라서는 어떤 대상을 제한 시키고 자신들은 그 대형교회 갈 수 있는 길을 열어 놓은 위선적이고 초법적인 법을 교회법이라고 만들어 놓았다. 그것을 어떤 교단에서 교회법이라고 만든 것은 교회사에 창피하고 부끄러운 일이다. 주님의 몸된 교회와 목회자의 권리를 어떤 법으로 제한 해 버린 것이다. 교계가 성경을 모르는 세속의 일부 여론 또는 교회를 훼파하려는 적그리스도 세력의 프레임에 기만당한 것으로도 볼 수 있다.)


1. 주님은 라오디게아 교회를 사랑하셨다.

원문을 보면 주님이 말씀하시기를 ,,

내가 교회인 너를 얼마나 사랑하는 줄 아느냐 하는 감동적인 물음이다.


많은 교회들을 부족함과 허물등이 있거나 많을 것이다. 그럼에도 주님은 그의 몸된 교회를 사랑하셨다는 것이다.

칭찬 받을 것이 한 개도 없는 교회도 주님은 사랑하셨고 사랑하신다는 것이다. 라오디게아 교회는 한 개의 칭찬도 하지 않으시고 책망만을 하셨지만 ,, 내가 너희를 얼마나 사랑하는 것을 아느냐 하신 것이다.

이것은 우리, 나에게 주시는 감동적인 말씀이다. 교회는 건물이 아니라 믿는 '사람'인 바로 우리 나 이기 때문이다.


' 무릇 내가 사랑하는 자를 책망하여 징계하노니 그러므로 네가 열심을 내라 회개하라/

볼지어다 내가 문 밖에 서서 두드리노니 누구든지 내 음성을 듣고 문을 열면 내가 그에게로 들어가 그로 더불어 먹고 그는 나로 더불어 먹으리라 /


이기는 그에게는 내가 내 보좌에 함께 앉게 하여 주기를 내가 이기고 아버지 보좌에 함께 앉은 것과 같이 하리라/

귀 있는 자는 성령이 교회들에게 하시는 말씀을 들을지어다.

 

*

 

계3:14 "To the angel of the church in Laodicea write: These are the words of the Amen, the faithful and true witness, the ruler of God's creation.

3:15 I know your deeds, that you are neither cold nor hot. I wish you were either one or the other!

3:16 So, because you are lukewarm--neither hot nor cold--I am about to spit you out of my mouth.

3:17 You say, 'I am rich; I have acquired wealth and do not need a thing.' But you do not realize that you are wretched, pitiful, poor, blind and naked.

3:18 I counsel you to buy from me gold refined in the fire, so you can become rich; and white clothes to wear, so you can cover your shameful nakedness; and salve to put on your eyes, so you can see.

3:19 Those whom I love I rebuke and discipline. So be earnest, and repent.

3:20 Here I am! I stand at the door and knock. If anyone hears my voice and opens the door, I will come in and eat with him, and he with me.

3:21 To him who overcomes, I will give the right to sit with me on my throne, just as I overcame and sat down with my Father on his throne.

3:22 He who has an ear, let him hear what the Spirit says to the churches."

                                                                                                              ( - ing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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