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무신론자의 신념의 근거는 무엇인가,

이동원 (서울북노회,성광교회,목사) 2018-02-07 (수) 08:56 6년전 3023  

과연 신은 존재하는가,

보이지 않는 신을 존재한다고 할 수 있는가,

신이 보이지도 않는데 어떻게 존재한다고 할 수 있는가.

신은 단지 사람들의 어떤 목적에 따라 사람들이 만든 관념에 불과하다고 주장할 수 있다.

무신론자들의 그러한 논리의 근거는 굳건한가, 신은 존재하지 않는다고 신념의 근거는 확고할 만 한가, 반석같이 든든할 수 있는가,

 

그렇다면 이 우주는 이 세상은 도대체 어떻게 생겨난 것인가, 저절로 된 것인가, 우연이 만들어져서 운영되고 있는 것인가,

이 아름답고 완벽하고 정밀하게 만들어진 세계는 우연의 산물이고 저절로 돌아가고 운영되고 있는 것인가,

태양과 지구의 거리가 좀 더 가까웠다면 사람들은 이 세상의 모든 생물은 존재할 수 없었을 것이다, 좀 더 거리가 멀었다고 하여도 그러할 것이다, 누가 정밀하게 그 거리를 유지하고 운영하게 하였을까 우연일까, 이 모든 것이 저절로 되고 우연일까,

우연히 만들어지고 우연히 그리고 저절로 되어진 것일까, 이 대자연의 규칙적인 운영과 정밀함과 아름다움 세상이 저절로 우연히 되어진 것일까, 이 대자연의 아름다음 완벽함 정밀함이 과연 우연이라고 할 수 있을까,

지구는 23.5도 기울어서 누구가는 기 모습의 지구본을 보고 불량품이라고 하였다는데 지구의 모든 생물들이 살게하는 그 23.5도 기울음도 우연일까,

누가 보아도 이 세상에서 특별한 존재인 사람이 우연히 존재하게 되어 살다가 가는 것일까,

그렇다면 인생들의 삶의 의미는 무엇일까 그렇게 우연히 생겨난 존재의 삶의 의미는 무엇일까,

이 우주의 생성 운영 이 세상의 대 자연의 생성과 경영이 창조자 없이 저절로 우연히 생겨나서 지금까지 계속 돌아가는 것일까, 이성을 가진 사람이라면 이것에 대하여 그렇다고 자신 있게 대답할 사람은 없을 것이다.

우연이 생성되고 우연히 돌아가고 사람들도 우연히 이 지구에 존재하고 살아간다는 것인가.

그것이 과연 가능할까, 그리고 그렇다면 인생의 존재와 삶의 의미는 어디에서 찾을 수 있을까,

인생의 창조가 아니라면 우연이거나 진화라는 것인가,

누군가 진화론을 말하여 그것을 합리화하려고 제법 과학적인 근거를 말하기도 하였다. 그런데 그것이 사실이라면 지금도 진화는 계속되어야 하는 것이 아닌가, 사람이 그 무엇에서 계속 진화되었다면 지금도 어떤 밀림의 숲에서 계속 사람으로 진화되었다고 나에게도 시민권을 주민등록증을 달라고 하여야 하는 것이어야 하는 것 아닌가, 왜 그 어느 때만 진화되어야 하겠는가, 그러한 이론도 받아드릴 것이 아니다.

과연 창조주가 계시는가, 그리고 창조주가 계시다고 하여도 우리의 생과 무관하다면 우리에게 무슨 상관이 있다는 것인가. 창조주는 창조주이시고 우리 인생은 우리 인생으로 따로 따로 살아가야 하는 것인가, 창조주가 설혹 계신다 해도 우리의 인생의 삶에 상관이 없는 창조주라면 우리에게 무슨 의미가 있을까,

 

창조주 하나님이 계신다는 것도 믿을 수 없고 안 계신다는 것도 생각해 보면 볼수록 이성을 가진 사람에게는 받아들이기가 쉽지 않다. 그리고 창조주 하나님이 계신다해도 나의 삶에 도움이 되지 않고 특히 육신의 죽음 이후의 약속이 없다면 무슨 의미가 있을까,

여기에 도피할 수 있는 곳이 불가지론자 일 것이다. 하나님이 존재하신다고 하여도 나의 삶과 내세와 관계가 없다면 의미가 없을 것이다.

신의 존재와 무신론 이것을 절대적으로 주장하는 것은 어려운 관념에서 불가지론으로 사는 것이 차라리 낫다고도 하는 주장을 하는 사람들이 있을 것이다.

사람들은 보이지 않은 신을 존재한다고 하는 것 그리고 그것을 부정하자니 그것도 쉽지가 않을 것 그러하니 사람들은 불가지론에 의지하여 사는 사람들도 있을 것이다.

        

그런데 살아계신 창조주 하나님은 이러한 인생들의 모습을 모르셨겠는가, 그래서 연약하고 유한한 인생들에게 많은 증거와 방편을 주셨다.

이스라엘 백성들에게 십계명 돌판에 사랑의 언약의 십계명과 성막의 설계도를 주셨는데 그성막의 지성소의 언약궤에 존재하시는 여호와 하나님의 역사의 증거물을 두어 대대로 전하게 하셨다.

그 증거물의 하나가 만나 항아리이다.

그것은 인생들의 역사 속에서 가장 어려운 사람 살기 힘든 곳에서 먹고 살게 하셨고 그 증거물을 법궤 언약궤 증거궤 안에 보관하여 대대로 증거물을 삼으라고 하신 것이다.

 

 

1. 무신론자의 신념의 근거는 ,,

신이 안보이기 때문이라는 것이다.

이것이 무신론자의 확고한 근거라면 너무나 빈약하고 취약하다. 모래 위에 세운 신념이라할 수 있다.

공기가 보이는가, 바람이 보이는가, 보이는 물질과 세계만 존재한다는 사상은 너무나 무지하다 할 수 있다.

과학적이라 할 수 없기 때문인가, 신이 과학으로 증명된다면 신이 과학안에 있다는 것인가, 신이 과학을 초월하지 못한다면 신이라고 할 수 있는가, 신이 과학에 갇혀있고 종속되어 있다면 신이라고 할 수 있는가, 신이 과학을 만들고 과학을 초월하지  못한다면 어찌 전능한 신이라 할 수 있는가, 창조주가 과학안에 존재 한다면 이 우주를 창조할 수 있었겠는가, 씨가 땅속에서 새싻이 나오는 것을 과학으로 설명할 수 있는가, 과학으로 생명을 창조할 수 있는가, 과학으로 우주를 설계하고 운영할 수 있는가,

신이 영이시므로 볼 수가 없다. 그리고 신이 계속 보이는 존재라면 신이라고 할 수가 있을까, 그럼에도 그것을 아시고 말씀이 육신이 되셨다는 것이다.하나님을 보여 주시기 까지 한 것이다.

 

과학적으로 증명할 수 없다는 것일 것이다. 그런데 신이 과학적으로 증명되어 과학안에 존재한다면 신이라고 할 수 있을까, 과학을 초월해 있을 수 밖에 없는 것이고 초월해계셔야 신 일 수가 있는 것이다.

무신론자들은

하나님의 존재를 부인하는 것인지,

하나님의 역사를 부인하는 것인지를 분명하게 구별하여 의문점을 표시하여야 답을 찾을 수 있을 것이다.

 

하나님의 존재를 부인하는 것인지

하나님의 계시의 말씀을 부인하는 것인지.

 

하나님의 살아계심을 부인하는 것인지

종교의 기독교의 교리를 부인하는 것인지

즉 하나님이 육신이 되어 오셨다는 것, 그의 성령으로 믿는 안에 거하시고 함께 하시고 영원한 생명과 부활 내세등의 약속을 부인하는 것인지 먼저하여 구별하여 그 탐구의 여행을 하여야 할 것이다.

 

도스토옙스키는 가장 철저한 무신론자는 가장 철저한 유신론에 가장 근접해 있다고 하였다.

가장 철저한 무신론자는 이제 곧 가장 철저하게 신의 존재를 찾을 수 있다는 것이다. 무신론자가 되려면 가장 확고한 무신론자가 되기 위하여 그 확실한 불변의 근거 증거를 찾기 위해 노력한다면 오히려 가장 확고하게 신의 존재를 찾을 수 있을 것이기 때문이다. 잘 알려진 명작 벤허도 사실은 그 작가가 예수 그리스도를 부정하고 신앙의 사람들을 그 무지몽매한 신앙에서 건져 내겠다는 목적으로 가장 철저하게 역사 고증을 찾다가 예수님은 나의 주 나의 하나님 하였다는 것이다. 그 작가의 원래의 목적과 달리 그 목적과 반대로 예수를 증거하고 전하는 작품으로 쓰여지게 되었다는 것은 잘 알려진 사실이다.

인생에서 이왕 무신론자가 되려면 가장 확실하고 변치않고 믿을 만한 반석같은 증거를 찾으려 한다면 그 찾는 과정에서 오히려 하나님을 찾고 만날 수 있을 것으로 본다. 예수님의 부활을 믿지 못했던 의심 많은 도마와 같이 나의 주 나의 하나님하고 외칠 수 밖에 없을 것이다. 진리이기 때문이다.

 

 


=.  질문과 답 (Q & A)

성경 안의 사람들도 아무런 이성적 판단없이 아무런 증거 없이 그렇게 쉽게 믿은 것은 아닌 것을 알 수 있다.

지금 우리 세상 인생들과 똑 같다. 심지어 예수님의 제자로 보고 듣고 훈련받은 사람들도 그러했다. 예수님의 제자 빌립은 하나님을 한번 보여주시면 만족하겠다고 하였고, 예수님의 제자 도마는 동료 제자들이 예수님의 부활을 증거하여도 결코 믿지 못하였다고 하였다. 그리고 보고 믿는 것이었다.

오늘의 수 많은 믿음의 사람들도 적게 많게 이 검증의 과정을 크게 작게 겪으며 믿음이 사람이 된 것이다. 그럼에도 지금도 역시 자주 잊고 두려워하고 염려하고 넘어지기도 하고 실족하여 미끄러지기도 하며 살아가기 쉬운 것이다. 그러므로 하나님께서는 이미 그것을 아시고 구약에서 여러 방편과 방법을 두시기까지 하신 것이다. 그리고 육신을 입고 예수 이름으로 오신 것이다.

1. 하나님께서는 구약에서 어떠한 방법들을 명하시어 그 신앙을 지키게 하셨는가,

 

1. 신약에서도 이러한 질문과 의문을 찾을 수 있다. 빌립과 도마는 아직도 많은 사람들이 가지고 있을 수 있는 질문과 의문을 표시했다고 한 결과가 되었다.

예수님의 제자들에게도 이러하나 못브을 볼 수 있다. 예수님은 무엇이라고 대답하셨는가, 어떻게 증거해 주셨는가,

(요14:1-11)

 

(요20:24-31)

 

                                                                                                 ( - ing)  


hi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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