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한국기독교장로회총회 ::
 
 
 

한국 초대교회사 와 사경회

이동원 (서울북노회,성광교회,목사) 2018-02-20 (화) 07:35 6년전 1885  

교회사가들의 기록에 의하면

1. 1907년 부흥운동의 직접적인 동기는 1907년 정월에 장대현교회에서 열렸던 사경회에서 성령의 불길이 떨어짐으로 비롯되었다고 한다. 이 사경회는 정월 6일부터 시작되어 열흘 동안 계속된 사경회로 주로 성경공부를 하였고 저녁에는 전도집회로 모였다고 한다.

 

1907년의 한국교회의 대 부흥운동은 지금까지 이기적 동기나 애국적 동기에 의해 기독교 신앙을 받아들였던 사람들이 비로서 기독교 진리에 접하게 되고 거듭나는 체험을 하게 되었다고 한다. 한국에서 기독교회가 토착교회로 자리 잡은데 기여하였다고 평하고 있다.

( 그런데 이 이전에 1903,4년에 원산에서의 강력한 성령의 역사를 기록하고 있다.)

 

여기에서 몇 가지를  교훈을 얻는다면,

 

1). 어느 곳에 복음이 처음 전하여진 곳에서는 성령의 강력하고 놀라운 역사를 자주 볼 수 있는데 한국초대교회사에서도 그러하였다는 것이다

 

2). 이러한 성령의 역사가 일어난 곳은 교회에서 사경회를 여는 곳에서 였다는 것이다. 즉 말씀이 전파되는 곳에서 그 역사가 있었다는 것이다. 초대교회에 부흥회는 말씀을 배우고 전하는 성경공부가 있는 사경회 였다는 것이.

말씀이 선포되는 곳에 역사가 있었던 것을 알 수 있다.

 

3). 그 당시 한국의 시대적 상황은 답답하고 암울하였던 시대이다. 190511월 일제의 을사늑약을 강압적으로 선포하는 등의 상황이었다. 이러한 신앙적 체험과 확고한 것은 하나님의 한국인에게 주시는 고난 속에서 주시는 특별한 은혜가 아니었겠는가, 그리고 앞으로를 준비시키는 것은 아니었겠는가, 연구 고찰 검토해 볼 필요가 있다.

 

( 한국의 초대교회에서의 집회는 사경회라 부르는 주로 성경공부였다는 것이다.언젠가부터 심령부흥회 이름은 좋으나, 부흥회라는 이름으로 주로 간증을 하다보면 과시 자랑으로 흐를 수 있다는 것이다. 그러한 점에서 한국의 초대교회의 부흥집회는 성경사경회로 성경 공부 중심이었다는 것은 우리가 다시 배워야 할 것이다. 한편 한국에 몇 십 년 전에는 부흥회 중 좀 더 자주 기적적으로 병이 치유되는 장면을 목격하였다는 것을 말한 분들이 많다.)

 

4). 한국의 초대교회는 근래 십 수년 이상의 유행이 되고 목적인 된 지교회 성장론이 없었다는 것이다. 더구나 수평이동의 교회성장론은 더욱 없었던 것이다. 각교회의 성장론보다 민족에게 복음을 그리고 성경공부를 통해 교인과 목회자의 성장론이라고 할 수 있을 것이다.

초대교회는 사경부흥회 특별사경회로 주로 성경공부를 위하여 열었다는 것이다. 그곳에 성령의 강력한 역사 말씀 있는 곳에 성령의 강력한 역사가 있었던 것이다.

 

5). 한국의 초대교회에는 이 민족의 복음화 열망이 있고 열심을 다하였다는 것이다. 이왕 믿는 교인들 우리교회 내 교회 채우는 내 교회로만 교회성장 과시 자랑 등등의 개념 자체는 찾아보기 힘들다는 것이다. 이 점을 오늘의 한국교계는 크게 자성하여야 할 것이다. 교인의 신앙성장보다 내 교회로 교인이동의 교인 수 성장에 모든 교회가 최대목적을 두고 올인하는 시기의 성경번역의 결과는 지금 어떠하였는가 보자. 아래 두어 군데 예를 볼 것이다.

1. 1907년 대 부흥의 운동이 열기가 식어가는 즈음에 우리민족의 불안과 좌절 낙담해 하는 시대적 상황에서 교회는 복음을 전해야겠다는 사명으로 백만명 구령운동( The Million Souls for christ) 의 부흥운동을 재개하였다는 것이다. 그 당시 기독교 인구가 불과 몇 만명도 안 되었는데 백만명 구령운동을 한 것이다. 그 당시로서는 인간적으로 실현 불가능하다고 보았을 것이다. 그러나 그 후 언젠가 기독교인이 백 만명이 이상의 천 만명 라고 하지 않았는가, 이렇게 그 당시에는 이십 만 명의 심령을 그리스도에게 백 만명 구령운동을실천한 것이다.

 

1. 그 당시에 선교사들의 교파도 있었는데 한국에서는 교파까지도 초월하여 한 기독교교단으로 하자는 의견도 있었느나 본국관의 관계 때문에 한 교단으로 할 수는 없었다는 것이다. 그럼에도 내용적으로는 교파를 초월하여 예수 이름을 전하며 예수 믿고 복음 받고 하나님의 자녀백성 되게 하는 것이 목표였던 것이다.

요즈음과 사람이 교파자랑이나 교파성장도 없었고 믿는 사람들 내교회로 오게 하여 교회성장론 자랑 과시 방법론도 없었다. 오직 한반도 동포를 예수 그리스도에게도, 예수 그리스도를 한반도 동포에게 라는 주님이 기뻐하시는 목표가 있었던 것이다.



1. 요즈음같이 한교회가 초대형 교회되는 목적등은 그 당시에는 그러한 개념자체가 없었다. 모든 목회자와 평신도 교인이 한반도 동포의 복음을 전하고 받는 것이 목표였고 세계교회사에 놀라운 결과를 갖게 한 것이다.

이러한 주님의 은혜를 몇 교회 스타목회자가 자기 교회로 오게하는데 성공하여 안팎으로 자랑한다는 것은 뼈아픈 반성이 필요할 것이다. 그리고 그러한 겉모습만 보고 목회자가 무슨 큰 권력이나 가지고 있는 듯하게 알려 졌지만 대부분의 교회 목회자는 전혀 그러한 군위와 힘이 없다. 심지어 교인들 눈치보기에 전전긍긍하며 살얼음판 걷는 심정으로 사는 경우가 많다고 한다. 밖에서 본 것과 젆려 다른데 적그리스도 세력과 교회훼파세력이 되는대로 악플을 달며 선전하여 목회자가 큰 권력이나 힘을 가지고 있는 것으로 잘못 알고 있다. 교회 체계가 그것과 거리가 너무 멀다.

 

1.  사람이 지도자가 높여지다가 허물이 발견되고 침소봉대되어 비행기타듯 높이 올라갔다가 갑자기 하강 심지어낙상하여 본인과 교계가 내상 외상을 입었다는 것이다.

여기에 적그리스도 세력 교회훼파려는 무신론으로 세뇌세력 정부기관의 알바세력까지 합세한 듯 하여 기독교를 비방하고 훼파하고 핍박의 암약을 하고 있었던 것이다. 근래까지 득정 대상을 그렇게 비방한 이러한 세력의 글들이 정권이 바뀐 후 거의 완전히 사라지게 된 것을 보면 지난 정부의 알바 댓글 팀의 작용인 것을 알 수 있다.

지금도 기독교에 대하여서는 일부 그 세력이 있는 듯하다. 일반의 선량한 시민들은 특별히 반기독교 무신론으로 세뇌되었거나 일당의 돈을 받고 하는 세력이 아니라면 무슨 이유로 특정종교를 그렇게 즉시 즉시 악플달며 비방하지는 않을 것이다.

종교나 성직자 칭호를 반복적을 비틀어 쓰는 사람도 그들이 비록 믿지 않거나 종교를 가지 믿지 않는다 해도 선량한 국민들은 아닐 것이다. 종교의 경외심 심지어 두려움 때문에 일반 보통의 시민들은 거의 없을 것이다. 이것을 교계가 모르고 일반의 선량한 시민들이나 국민들의 여론인 것으로 알았던 것이다. 그리고 심지어는 놀랍게도 이러한 악플들에 교계 안에 사람들 심지어 리더들까지 개혁적인사인 듯 하며 세뇌되어 동조하고 있는 것이 아닌가 보아야 할 것이다.

성경보다 일반 여론 아닌 적그리스도나 기독교 훼파세력의 영향을 받아 어떤 교단에서는 이상한 법까지 만드는 일이 있던 것이다.

그러나 보니 정작 자신들이 보고 있는 정경은 어떻게 수정이 되었는지도 아는지 모르는지 교계 안에서 언급이 없다는 것이다.

        

1. 우리의 선배 목회자 성도님들 열심이었다.

한국의 초대교회는 성경공부의 사경회였지 특정교회 숫자 성장론과 외형의 무엇을 과시 자랑 등등이 없었다.

요즈음시대 상황에서 보니 인기 있다고 너도 나도 갑자기 목회자 되어 스타노릇하려는 인상도 있고 시대상황에 맞지 않는 모습도 간혹 본다. 인기 있다고 또는 신분 세탁을 위해 한 두번의 신기한 영적 체험으로 준비없이 갑자기 목회자가 되어 몇 십 년 전의 반말 비슷한 매너 없는 모습으로 부흥회사람들을 인도하는 만담가를 흉내 내는 듯한 모습을 보고 우리도 아연하였다. 이 시대에는 목회자는 좀 더 매너 있는 모습이어야 할 것이다.그리고 그들이 뒤늦게 목회자가 되었다면 먼저 성경을 좀 더 알고 성경의 복음의 말씀을 전하는 것이어야 할 것이었다.

 

1. 이 시대에 다시 성경 사경회, 가능하면 한영성경 공부를 시도할 수도 있을 것, 영어는 원어를 읽은 대신에 그리고 세계시민에게 복음을 전할 수도 있는 세계어이기에, 거기에 생명의 하나님의 말씀을 공부하고 선포되는 곳에 성령의 역사가 함께 하실 것이다. 한국의 초대교회사가 그것을 보여준다. 우리의 성경 공부는 오히려 갈수록 진보된 것인가 보야야 할 것이다.

한글 한문 혼용 성경을 보는가, 관주성경이 많이 있는가, 어떤 번역성경은 주석서가 한권이라도 있는가, 잘 번역이 되었다면 왜 주석서가 없겠는가, 검증이 잘 되어 한국 교계에 내어 놓았다고 할 수 있는가, 적어도 주석서로 검증된 후 공인된 성경이어야 했다. 아니라면 뒤늦게라도 주석서는 있어야 할 것이었다.

그렇지 않다면 성경은 잘 모르는 학설 학위자의 부족한 번역을 보기 쉽다. 그러한 경전은 성도님들에게 지도자의 사명을 다한 것이겠는가, 교계의 책임자 리더들이 교회 성도님들에게 의무를 책임을 충분하게 다한 것인가 보아야 할 것이다.

                                                                                            ( - ing)


hi
이전글  다음글  목록 글쓰기
츲ҺڻȰ ⵵ ȸ ѱ⵶ȸȸȸ ()ظ ѽŴѵȸ μȸڿȸ ȸ б ѽŴб ûȸȸ ŵȸ ŵȸ ȸÿ ѱ⵶ȸȸͽп