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갈보리 산상의 세 십자가

김석태 (경기노회,필리핀 선교사,목사) 2018-03-19 (월) 18:58 6년전 2080  

 

제목 : 갈보리 산위의 세 십자가

본문 : 누가복음 23 : 39 ~ 43

   

지금 우리는 고난 주일과 부활 주일을 앞에 두고 있다. 기독교인 이라면 십자가를 기억하지 않을 수 없다. 십자가가 없는 사람은 결코 기독교인이라 말 할 수가 없다. 십자가는 용서 할 수 없는 극악한 죄수를 사형에 처하게 될 때 형기로 사용되어 왔던 것이다. 그러기에 십자가는 인간 세상에서 가장 두렵고, 저주스러운 상징이 되기도 한 것이다.

그러나 예수 그리스도를 통하여 이 십자는 두려운 존재나 저주의 상징이 아니었다. 십자가처럼 소중하고 영광스러운 상징은 없는 것이 되었다. 그 이유가 무엇일가 ? 죄의 그림자도 없으신 예수님께서 죄인된 우리 인간을 위하여 십자가를 져 주셨기 때문이다.

그러기에 해마다 고난 주간을 맞이하게 되면 십자가를 깊이 묵상을 하게 되고, 십자가에 대한 찬송과 찬양이 이 온 땅을 진동시키게 되는 것이다. 십자가는 영광의 상징이요, 십자가는 최선의 상징으로서 교회, 세계 적십자의 상징과 병원 등 인간의 생명을 위해 돕는 기관 및 자선 사업의 기관을 십자가로 표현 하고 있는 것이다.

그렇지만, 아쉬운 점은 우리가 십자가를 어떻게 이해하고 있는 가 ? 십자가와 나와 어떤 관계를 이루고 있는 가 ? 에 대하여 확실한 대답을 갖지 못하고 있다는 점이다. 우리 한번 나 자신과 십자가의 관계를 깊이 묵상해 보았으면 한다.

주님은 말씀 하셨다.

10:38 또 자기 십자가를 지고 나를 좇지 않는 자도 내게 합당치 아니하니라

16:24 이에 예수께서 제자들에게 이르시되 아무든지 나를 따라 오려거든 자기를 부인하고 자기 십자가를 지고 나를 좇을 것이니라

8:34 무리와 제자들을 불러 이르시되 아무든지 나를 따라 오려거든 자기를 부인하고 자기 십자가를 지고 나를 좇을 것이니라

14:27 누구든지 자기 십자가를 지고 나를 좇지 않는 자도 능히 나의 제자가 되지 못하리라

 

나는 갈보리 산상의 세 십자가를 생각하며, 나 나름의 신앙을 정리 해 보았으면 한다. 세 십자가는 바로 주님을 중심한 두 강도의 십자가와 예수님께서 지신 십자가를 말 하고 있다. 여기에서 몇 가지를 논 해 보고 져 한다.

 

첫째는 인간은 누구나 동일하다는 사실이다.

 

갈보리 언덕의 두 강도와 십자가 아래에 둘러 진치고 있는 사람을 위시하여, 예루살렘 성안에 포진하고 있는 유대 지도자들, 제사장들, 해롯 대왕과 빌라도 총독 등 모두가 동일한 존재임을 알수가 있다. 이들 중에는 의인 한 사람이 없고, 모두가 죄 아래 있는 자로서 동일하다는 것이다. 알고 보면 모두가 두 강도와 같이 십자가의 사형을 집행 받아야 할 사람이란 사실이다.

 

물론 신분과, 권세와, 누림이 다 달랐다. 빌라도 총독과 해롯 대왕, 대 제사장들, 내로라 하는 모든 사람들의 모습을 우리는 한 눈으로 읽어 볼 수가 있다. 죄가 없는 예수님을 잘 알고 있으면서도, 모든 사람이 일심동체가 되어 살인강도는 놓아 주고, 예수님은 십자가에 못 박게 하는 모습을 보게 된다. 여기에서 모든 사람은 스스로가 살인강도보다 더 큰 죄인임을 선포하는 일이었다.

 

심지어는 자기 죄로 인하여 십자가에 달린 두 강도 역시 차이가 없었다. 예수님을 향하여 희롱하고 악을 도모하는 것이었다. 성경 말씀을 상고하여 보자 !

 

27:38 이 때에 예수와 함께 강도 둘이 십자가에 못 박히니 하나는 우편에 하나는 좌편에 있더라

27:39 지나가는 자들은 자기 머리를 흔들며 예수를 모욕하여

27:40 가로되 성전을 헐고 사흘에 짓는 자여 네가 만일 하나님의 아들이어든 자기를 구원하고 십자가에서 내려오라 하며

27:41 그와 같이 대제사장들과 서기관들과 장로들과 함께 희롱하여 가로되

27:42 저가 남은 구원하였으되 자기는 구원할 수 없도다 저가 이스라엘의 왕이로다 지금 십자가에서 내려올지어다 그러면 우리가 믿겠노라

27:43 저가 하나님을 신뢰하니 하나님이 저를 기뻐하시면 이제 구원하실지라 제 말이 나는 하나님의 아들이라 하였도다 하며

27:44 함께 십자가에 못 박힌 강도들도 이와 같이 욕하더라

 

거룩한 옷을 입고 있는 자들이나, 십자가에 달린 두 행악자 모두가 하나가 되어 있는 모습들이다. 사람이 보기에는 차이가 있을지 모르나, 하나님께서 보실 때는 모두가 동일한 죄인일 뿐이었다. 말하는 것도, 행동 하는 일 모두가 동일한 사람들임을 보여 주고 있다.

그렇다면, 2000 여년이 지난 오늘은 어떠할 가 ? 별로 다를 바가 없다고 본다. 단지 차이가 있다면, 우편의 강도가 있다는 것이다.

 

둘째는 좌편의 강도다.

좌편의 강도는 바로 이 지구상의 총 망라한 인생을 상징하는 대표적인 인물임을 보여 주고 있는 것이다. 인생은 누구나 동일하다. 태어나는 모습이 동일하다. 누구나 동일하게 빈손들고 태어났다. 몸에 실 오라기 하나 걸치고 오지 않았다. 알몸으로 온 것이다.

살아가는 것도 동일하다. 빈부의 차이는 있지만, 누구나가 땅을 밟고 살고, 땅에서 나는 식물과 열매를 먹고 산다. 인생은 누구나 자신의 살고 죽는 것을 맘대로 못한다. 자신의 죽음을 알고 살아가는 사람이 없다. 언제, 어디서, 어떻게 죽게 된다는 것을 모르고 살아 갈 뿐이다.

인간은 누구나 죄인으로 살아간다는 사실이다. 우리가 하루 하루를 살아가면서, 인생 뒤안 길을 되돌아보면, 실수와 허물과 죄악의 흔적뿐이다. 언행과 심사를 깨끗한 양심의 눈으로 살펴보자 ! 얼마나 추악한 모습의 죄인인지를 쉽게 파악 할 수가 있다. 만일 이 사실이 전혀 보이지 않는다면 자신이 의롭고 거룩해서 일가 ? 아니라고 본다. 자신의 지각의 눈이 멀은 소경의 눈이기 때문이라 생각한다.

알고 보면, 인생은 사형 선고받은 인생으로 살고 있을 뿐이다. 우편 강도와 좌편의 강도의 모습이리라. 그러기에 결국 인생은 죄 값으로 죽게 되어 있는 것이다. 죽음은 바로 죄 값인 것이다. 갈보리 산상에 주름 잡고 있던 사람들을 보라 ! 오늘 그들 중에서 단 한 살이라도 찾아 볼수 있는 가 ? 죄 값으로 죽고 단 한 사람도 찾을 길이 없다.

그렇게 큰 소리치고 자신 만만 하였던 사람들이 50 년을 더 살지 못하고 다 죽고 말았다. 아마 어떤 사람은 1 년도 더 못 살고 죽었을 것이다. 우리는 좌편의 강도처럼 아무 생각없이 죄악만 일삼고 살다가 인생을 마칠 것인가 ? 죄악을 일삼고 살아가면서도 자신의 의로움과 거룩함을 주장하며 살아가는 것이 현명하다고 생각 할 것인가 ?

좌편의 행악자는 강도질을 하고 살인을 하여, 그 죄 값으로 십자가에 죽어 가면서도, 모든 사람들과 함께 어울려 의인되신 예수님을 향하여 욕하고 저주하였던 것처럼, 그런 인생을 살아 가는 인생은 아닌 지 ? 자신을 되 돌아 보았으면 한다.

27:38 이 때에 예수와 함께 강도 둘이 십자가에 못 박히니 하나는 우편에 하나는 좌편에 있더라

27:39 지나가는 자들은 자기 머리를 흔들며 예수를 모욕하여

27:40 가로되 성전을 헐고 사흘에 짓는 자여 네가 만일 하나님의 아들이어든 자기를 구원하고 십자가에서 내려오라 하며

27:41 그와 같이 대제사장들과 서기관들과 장로들과 함께 희롱하여 가로되

27:42 저가 남은 구원하였으되 자기는 구원할 수 없도다 저가 이스라엘의 왕이로다 지금 십자가에서 내려올지어다 그러면 우리가 믿겠노라

27:43 저가 하나님을 신뢰하니 하나님이 저를 기뻐하시면 이제 구원하실지라 제 말이 나는 하나님의 아들이라 하였도다 하며

27:44 함께 십자가에 못 박힌 강도들도 이와 같이 욕하더라

 

셋째는 우편의 강도이다.

우편의 강도는 십자가에 달리기 까지 좌편의 강도와 다를 바가 전혀 없는 사람이었다. 지난 날의 삶과 생활이 똑 같았다. 인생철학도 같았고, 인생 목표도 똑 같았다. 살인자와 강도로서 똑 같이 죽음의 십자가에 매 달렸다. 십자가에 달려서도 두 행악자는 그의 행실이 똑 같았다.

 

자기 머리를 흔들며 예수를 모욕하였다. [ 성전을 헐고 사흘에 짓는 자여 네가 만일 하나님의 아들이어든 자기를 구원하고 십자가에서 내려오라 ] 대제사장들과 서기관들과 장로들과 함께 희롱하여 말했다. [ 저가 남은 구원하였으되 자기는 구원할 수 없도다 저가 이스라엘의 왕이로다 지금 십자가에서 내려올지어다 그러면 우리가 믿겠노라. 제 말이 나는 하나님의 아들이라 하였도다. ] 하며 십자가에 못 박힌 예수님을 향하여 욕하였다.

그렇지만, 우편 강도는 이 모습에서 달라졌다. 죽어가는 마당이었지만, 자신의 동업자였던 좌편의 강도는 변함 없이 예수님을 비방 하고 욕하였으나, 우편의 있던 강도는 변하여 새 사람이 된 것이다. 예수님은 더 처참하게 고통을 받으셨다.

머리에는 가시관, 양손과 양발에는 대 못이 박혔고, 가슴은 창 자욱에, 온 몸은 매로 맞은 흔적 뿐이었다. 또한 십자가 아래에는 예수님을 비웃고 조소하는 소리가 빗발이 쳤고, 욕설과 저주의 음성이 봇물을 이루었다.

그러나 주님은 말없이 그 고난을 다 참고 견디시었다. 온 몸은 피로서 물들였으나, 주님의 얼굴 모습은 사랑과 자비의 모습만 비출 따름이었다. 이때 우편의 강도는 감동이 되었다. 사람들은 예수님을 향하여 네가 하나님의 아들이냐 ? 그렇다면 뛰어 내려 와 보라 ! 우편의 강도는 영문도 모르고, 사람들의 비난의 소리에 같이 응수 하였으나, 점점 시간이 흘러감에 따라 예수님은 진짜 하나님의 아들이시란 확신이 생기게 되었습니다.

우편의 강도는 좌편의 강도를 꾸짖어 말했다. [ 네가 동일한 정죄를 받고서도 하나님을 두려워 아니하느냐 ? 우리는 우리의 행한 일에 상당한 보응을 받는 것이니 이에 당연하거니와, 이 사람의 행한 것은 옳지 않은 것이 없느니라. ] 하고 예수님을 향하여 말을 했다.

[ 예수여 당신의 나라에 임하실 때에 나를 생각하소서. ] 이때였다. 예수님은 우편의 강도의 말이 그치기도 전에 이렇게 말씀하여 주셨다. [ 내가 진실로 네게 이르노니 오늘 네가 나와 함께 낙원에 있으리라. ]

우편의 강도는 한 순간에 변화를 받았다. 죽어가는 마당에서 예수님을 자신의 마음에 영접하였다. 그리고 주님의 이름을 부르게 되었다. 이때 구원을 받게 된 것이다.

2:21 누구든지 주의 이름을 부르는 자는 구원을 얻으리라 하였느니라

인간은 누구나 두 강도와 같이 예수님 곁에 있는 것이다. 온 세계 만인이 한 태양의 빛과 열기를 받고 살 듯이, 또한 온 세계 만인이 한 태양 아래 있듯이 인간은 누구나 다 하나님의 은혜아래 있을 뿐이다. 하나님께서 창조하여 주신 땅을 밟고 살고, 하나님께서 언제나 공급해 주시는 열매와 만물을 머금고 살아가듯이 인간은 모두가 하나님의 은혜와 축복을 머금고 살아 가고 있는 것이다.

다만 깨닫는 자와 깨닫지 못하는 자가 있을 뿐이다. 믿는 자와 믿지 않는 자로 구별되어 살아 갈 뿐이다. 인간에게는 좌우편의 강도와 같이 우편의 강도가 될 것인가 ? 좌편의 강도가 될 것인가 ? 하는 과제가 주어질 뿐이다.

23:39 달린 행악자 중 하나는 비방하여 가로되 네가 그리스도가 아니냐 너와 우리를 구원하라 하되

23:40 하나는 그 사람을 꾸짖어 가로되 네가 동일한 정죄를 받고서도 하나님을 두려워 아니하느냐

23:41 우리는 우리의 행한 일에 상당한 보응을 받는 것이니 이에 당연하거니와 이 사람의 행한 것은 옳지 않은 것이 없느니라 하고

23:42 가로되 예수여 당신의 나라에 임하실 때에 나를 생각하소서 하니

23:43 예수께서 이르시되 내가 진실로 네게 이르노니 오늘 네가 나와 함께 낙원에 있으리라 하시니라

 

 

 

 

 

 

 

 

 


hi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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