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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무든지 나르 따라 오려거든 5 - 의미와 해석

김석태 (경기노회,필리핀 선교사,목사) 2018-04-03 (화) 05:53 5년전 1562  

 

고 오직 죽은 자를 다시 살리시는 하나님만 의뢰하게하심이라

고후 1:10 그가 이같이 큰 사망에서 우리를 건지셨고 또 건지시리라 또한 이후에라도 건지시기를 그를 의지하여 바라노라

 

그렇다면 사도 바울이 예수님을 믿고 따름으로 얼마나 많고 큰 십자가를 지게 되었는 가 ? 를 알 수가 있다. 그러나 사도 바울은 슬퍼하거나 낙심하지 않았다. 십자가를 십자가로 여기지 않았다. 그 이유가 무엇이었을 가 ? 사도 바울은 말했다.

 

고후 11:28 이 외의 일은 고사하고 오히려 날마다 내 속에 눌리는 일이 있으니 곧 모든 교회를 위하여 염려하는 것이라

고후 11:29 누가 약하면 내가 약하지 아니하며 누가 실족하게 되면 내가 애타하지 않더냐

고후 11:30 내가 부득불 자랑할진대 나의 약한 것을 자랑하리라

 

어떻게 이런 삶을 살수가 있을 가 ? 우리가 생각하기에는 도저히 불가능한 일이다. 그러나 억지로가 아니라, 기쁨과 자원함으로 그렇게 살아 갈수가 있었던 것은 십자가를 대하는 태도가 달랐기 때문이다. 자신의 죄악과 형벌의 십자가는 예수님께서 대신 져 주셨으니, 이미 내가 이 사실을 믿음으로 받아들이는 순간에 십자가에 못을 박은 것이었다.

 

이 후로는 새 사람으로 태어났으니 부활하신 예수님을 따라 새 생명으로 태어났으니, [ 나를 사랑하사 나를 위하여 자기 몸을 버리신 하나님의 아들을 믿는 믿음 안에서 사는 것 ] 이었기 때문이었다. 다시 말해서 십자가 뒤에 것은 잊어버리고 앞에 있는 영광의 십자가를 바라보았기 때문이다.

 

예수님이 나를 위해 지신 십자가는 이제 구원의 십자가이다. 사랑의 십자가이다. 천국 소망의 십자가이다. 영원한 상급의 십자가요, 영광의 십자가였다. 이렇게 십자가가 변하여 진 것이다.

 

옛날 즉, 예수님을 믿기 이전에는 십자가가 치욕의 십자가요, 죽음의 십자가이며, 영벌의 십자가였으나, 예수님을 믿은 이후에는 더한 십자가라 할지라도 기쁨이요, 행복이며, 소망이요, 영광의 십자가가 되었으니, 감사와 찬송함으로 질수 박에 없었던 것이다. 그러기에 사도 바울은 이렇게 고백하였다.

 

고전 15:10 그러나 나의 나 된 것은 하나님의 은혜로 된 것이니 내게 주신 그의 은혜가 헛되지 아니하여 내가 모든 사도보다 더 많이 수고 하였으나 내가 아니요 오직 나와 함께 하신 하나님의 은혜로라

 

교회사 2,000 () 는 이 고백과 산 증인으로 존재 해 온 것이다. 교회가 걸어온 두 안 길을 살펴보라 ! 순교(殉敎) 의 현장이 없는 곳이 없다. 순교란 발판으로 교회는 자리 잡고 부흥하여 온 것이다. 교회는 갈보리 언덕의 십자가의 현장이다.

 

예수님이 지셨던 갈보리 언덕의 십자가에, 믿음으로 자기 십자가를 못박고, 우리에게 지어 주시는 승리와 영광과 사랑 그리고 평화의 십자가를 지게 되었으니, 이것이 내가 지고 가야 할 [ 자기 십자가 ] 라 여겨진다. 신앙의 실패와 성공은 바로 여기에 달여 있다고 본다. 다음의 말씀을 묵상하여 보기 바란다.

 

고후 13:4 그리스도께서 약하심으로 십자가에 못 박히셨으나 오직 하나님의 능력으로 살으셨으니 우리도 저의 안에서 약하나 너희를 향하여 하나님의 능력으로 저와 함께 살리라

6:4 그러므로 우리가 그의 죽으심과 합하여 세례를 받음으로 그와 함께 장사되었나니 이는 아버지의 영광으로 말미암아 그리스도를 죽은 자 가운데서 살리심과 같이 우리로 또한 새 생명 가운데서 행하게 하려 함이니라

6:5 만일 우리가 그의 죽으심을 본받아 연합한 자가 되었으면 또한 그의 부활을 본받아 연합한 자가 되리라

6:6 우리가 알거니와 우리 옛 사람이 예수와 함께 십자가에 못 박힌 것은 죄의 몸이 멸하여 다시는 우리가 죄에게 종노릇하지 아니 하려 함이니

6:7 이는 죽은 자가 죄에서 벗어나 의롭다 하심을 얻었음이니라

그렇다면 나의 십자가는 예수님의 십자가에 함께 못을 박았다는 사실이다. 이 십자가는 져서는 않될 십자가이다. 그 이유는 예수님께서 나를 대신하여 십자가에 목 박히셨기 때문이다. 우리가 져야 할 십자가는 감사의 십자가요, 찬송할 십자가요, 자랑하고 영광스럽게 여겨야 할 십자가인 것이다.

 

왜 일가 ? 예수님께서 이미 나 위하여 십자가에 모진 고통을 받아 주셨기 때문이다. 이 죄악과 형벌의 십자가는 질 이유가 없어 졌기 때문이다. 그렇다고 온전하여 졌다는 말이 아니다. 우리에게는 더더욱 죄가 들어나기 마련이다. 왜냐하면 성도의 흰 세마포인 그리스도로 옷을 입었기 때문에, 옛 날에는 죄로 여기지 않았던 것도 죄로 여겨지기에 죄가 더 많이 들어 나기 마련이다. 그렇다고 죄악에 사로 잡혀 사는 것이 아니다. 더더욱 예수 그리스도에게 사로잡히게 되는 것이다. 나의 죄와 연약함으로 주님께로 더 가까이 나아가게 되고, 주님을 더욱 찾아 부르짖게 되고 주님을 가까이 하게 되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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