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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독교와 한국 문화

이동원 (서울북노회,성광교회,목사) 2018-06-11 (월) 21:47 5년전 3533  

1. 기독교의 복음이 전파되는 곳에 그곳의 문화 때문에 기독교를 받아들이기 어려울 수가 있다.

어떤 분이 교회에 다니고 싶은데 우리는 제사를 드리기 때문이 교회를 다닐 수가 없다는 하소연을 들은 듯 하다.

언젠가 어떤 자매가 무엇을 복사해 가는데 그것이 무엇인가 보니 일년의 조상 제사일 인 것이다. 대략 십 여회가 있는 것 같다. 제사 드리는 일을 준비하는 것에 대단히 힘들겠다는 생각을 하였다. 더구나 예수 믿는 자매가 그러한 가정에 들어가서 우상숭배라고도 생각하면서 그것을 준비하여야 한다면 얼마나 힘들고 어찌해야 할 것인가 하는 생각을 하였다. 나는 예수 믿으니 제사 준비도 안하고 엎드려 절하며 제사드릴 수 없다고 한다면 어떻게 되겠는가, 편 하루 아침에 그들이 그들의 방식으로 제사 드리는 것은 포기하는 것은 또한 쉽지 않을 것이다. 물론 그 제사를 드디어 기독교식으로 드리게 하는 경우도 간혹은 있다.

 

사실은 기독교가 제사 종교라고 하여도 과언이 아니다. 구약의 레위기 한권 전체는 하나님의 명하시는 제사에 관하여 기록하였다. 예배라고도 하지만 기독교가 제사 종교인 것이다. 그들의 제사도 사실은 신께 제사를 드리고 조상의 은덕을 기리며 이 제사를 통해 후손 자녀들이 잘되고 복 받게 하자는 것 아니겠는가,

기독교도 다른 것이 아니라 그 내용이라는 것이다. 조상을 주신 창조주 하나님께 감사하고 조상의 은덕을 기리고 우리의 가정과 자손들이 다 복 받고 잘되기를 바라며 제사를 드리는 것이다. 기독교도 그러한 목적으로 제사를 예배를 드리는 것이다.



단지 기독교에서 조상의 기일에 제사 드리는 방법이 구체적으로 있는 것은 아니다
. 그럼에도 우리도 예배의 형식으로 예배를 제사를 드리는 것이다. 세상의 제사는 절차와 내용이 상당한 것으로 알고 있고 절을 하는 것으로 알고 있다. 영정과 풍성한 음식을 차려놓고 거기에 절하는 것으로 알고 있다. 이 부분이 우상 숭배라는 것이다.

기독교도 자연과 조상을 주신 창조주 하나님께 감사하며 조상의 은덕을 기억하며 이 은혜를 주신 하나님께 오늘의 우리의 가정과 후손에게 계속하여 은혜와 복을 주시기를 기원하는 것이다. 그렇다면 세상방식으로 그 절차를 가지고 드리지만 기독교에서도 그 내용을 기독교 식으로 제사를 드리는 것을 안다면 세상 사람들도 긍정적 호감을 가지고 볼 것이다.



아, 기독교가 무조건 제사를 거부하는 것이 아니구나 기독교의 제사도 우리가 바라는 내용과 일치하는 면이 있구나 할 것이다
. 제사의 형식의 문제인데 너무나 과도하게만 하여 오히려 큰 부담이 되게 하지 않고 기독교식으로 제사를 드리는 것도 좋겠구나 할 수 있으면 좋을 것이다.

우리 기독교는 형식이나 의식이 좀 간결하거나 성대하지 않아 정성이 부족하다고 할 수 있을지 모른다. 그러므로 그 내용에 기독교식으로의 제사 양식의 형식을 좀 더 갖추는 예식이 필요할 수 있을 것이다. 아무래도 사람이기에 내용도 중요하지만 보이는 형식이 부족하다면 정성이 부족한 것으로 보일 수 있고 좀 허전해 보일 수 있다.


그러므로 기독교식 제사 예배 형식을 형편에 따라 드릴 수 있게 두 세 가지로 형식을 잘 갖추는 제사 예배예식이 있는 것은 좋을 것이다. , 기독교식으로 하니 좀 더 간결하지만 정성과 내용이 잘 담긴 예식이구나 하며 거부감이 덜하고 나아가서는 형식도 더 선호할 수 있을 것이다. 우리 기독교는 모든 형식이 간소 또는 약소할 수 있는데 이 점을 유의하여 기독교 형식으로 제사를 드리는 그 형식도 좋다 할 때 내용도 알게 되고 유익이 될 것이다.

시대가 바뀌어가는 요즈음 그리고 안 믿는 분들의 제사의 형식등을 잘 모르나 이것은 예수 믿는 분들과 안 믿는 분들의 제사드리는 방법의 차이, 아니 기독교는 제사 드리는 것을 금지하는 것으로 인식할 수 있다. 누가 제사드리는 것을 반대할 것인가, 제사가 예배라면 예배를 많이 많이 드리는 것은 어느 신앙인들이 반대할 것인가, 어떤 부분의 형식이 문제인데 그 형식에 담은 내용은 안 믿는 세상 제사 드리는 분들의 마음과 크게 다르지 않다고 본다.

기독교적 예식의 형식을 소홀하게 보이지 않게 제사 의식을 호감있게 받아드릴 수 있게 적절한 제사 절기 명절의 특별한 예식서를 더욱 잘 만들고 전통화 해야 할 것이다. 기독교는 제사 종교라는 것을 알게 해야 할 것이다. 이것은 복음을 받아드리고 교회 생활을 할 수 있는데 중요할 것이다. 우리는 제사 때문에 교회에 갈 수 없어요 라는 말이 나오지 않게 하면 좋을 것이다.

교회에서 가정사의 즁요한 인륜대사의 행사와 절기에 예배형식을 감동있게 잘 갖추며 진행하면 그것은 평생에 인상적으로 남고 전도에도 도움이 될 것이다. 인생 가정사의 대사를 위한 간결하면서도 의미 있는 형식을 잘 갖춘 예식은 기독교 토착화에 더할 수 없이 유익할 것이다. 지금 시대에 전도하기도 힘들다고 하는데 자연스럽게 복음을 마음으로  받아들이는 더욱이 감동적으로 받아드릴 수 있는 귀중한 기회일 것이다. 교회경쟁으로 무의미한 에너지 낭비할 것이 아니라 이러한 일에 좀 더 최선을 다해야 할 것이다. 신학교에서 별 의미 없는 서구유행 학설 남발보다 한국 가정의 절기 예배를 한 학기 연구 하여 적용하게 하는 것은 한국문화에서 반드시 필요할 것이다.
 

1. 한국의 초대교회부터 전통적으로 술을 금하는 정책을 취하었다.

어떤 기록에 의하면 그 당시 술을 무절제하게 마시는 세상 분위기 때문이기도 하였다는 것이다. 술 때문에 나라 망할 것 같다는 것이다. 술을 마시면 술이 사람을 마신다 할 정도가 마시게 되는 문화 때문인 이유도 있었을 것이다. 또한 술과 함께 따르는 그 문화가 술 자체보다도 더 고려의 대상이 되기도 하였을 것이다,

한국에서 직장을 다니면서 회식을 하는데 기독교인이라고 술을 입에도 안 대면 너무 따로 논다고 할 것이고 마시면 또 마신다고 하는 것이라면 어찌해야 할까 하는 것이다. 군대에서 가끔 회식을 할 때에도 그러할 때가 있을 것이다. 아주 더운 지역의 나라들에서 종교적인 이유로 술을 금하는 나라들도 있다. 종교적인 이유도 있지만 그렇게 무더운 나라에서 술을 자유롭게 많이 마시다 보면 사람들의 삶이 더위와 함께 많이 크게 흐트러질 수 있을 것을 추측할 수 있다. 구약 성경의 노아의 경우에서도 볼 수 있다. 세상의 의인이라고 하는 노아는 포도 농사를 짓고 과실 주라고 할 수 있는 포도주를 너무 많이 마셔 취한 내용이 나온다. 아주 추운 나라에서는 너무 춥기에 추위를 견디기 위해서 독한 술을 자주 마시고 그것에 중독이 되는 경우도 적지 않은 기사를 보았다.

국가적 행사에서 친교적으로 술을 마시는데 그것을 삼간다면 그 때에도 분위기에 어울리지 않을 수 있다. 물론 트럼프 대통령은 종교적인 이유는 아닌 것 같지만 술은 한 모금도 안 마시는지 못마시는지 하다는 것이다. 그 대신 그의 콜라 사랑은 유명하다. 이것을 볼 때 어떤 잔치자리에서 술 대신 쥬스나 다른 음로수를 마시는 것도 자연스럽게 인정하는 분위기라면 좋을 것이다.

근래에 소련 지금은 러시아의 푸틴의 이력을 보니 종교란에 정교회인 것을 보고 약간 놀랐다. 그리이스 정교회 인 것이다. 오쏘독스 처치는 기독교회 정통교회 라는 뜻이다. 그리이스 정교회와 같은 파인 러시아 정교회는 러시아가 공산화하기 이전에 한 때 러시아의 국교일 정도 였을 것이다. 공산주의는 무신론으로 아는데 푸틴 대통령이 정교회 인 것을 보고 약간 놀란 것이다.


그리이스에서 어떤 스승 제자 인듯한 사람이 오랜 만에 만난 듯이 서로 반갑게 허그를 하고 쥬스가 아니고 와인인 듯한 그 무엇을 앞에 두고 진지하게 담소를 하는 것을 보았다. 쥬스인지 술인지 모르나 즐거운 대화를 위한 도구로 놓고 이야기를 하는 것이었다. 그들이 거기에서 그러한 자세로 술을 마신다는 것이 무슨 허물이거나 신앙적인 문제가 되는 분위기는 아니었다.  


1. 한국의 역사에서 어떤 시기에 어떤 이유 혹 나라의 주권을 잃어가고 세상에 희망이 없는 상황에서 술로 달래고 하다보면 사람이 술을 마시는 것이 아니라 술이 사람을 마시는 경우가 되었을 것이다. 만약 이러한 분위기였다면 국가적으로는 몰라도 종교적으로 술을 금하는 정책을 추구하는 것은 바람직하였을 것이다.



한편 한국 사람들은 조용한 선비의 나라 라는 말도 있고 말을 타고 광활한 초원을 달려야 하는 기마민족적인 사람들이 남북으로 갇혀 대륙 해양 가는 길이 막혀 섬 아닌 섬으로 살다보니 그러할 수 있는 기질이 형성되었는지 모른다. 한국인은 같은 반도 이탈리아인의 기질과 너무 흡사하다는 말도 있다. 또 직장과 삶에서 오는 너무 큰 스트레스 때문에 술 주량이 늘어나는 경우도 있는지 모른다. 그 외에 한국 사회에서 술 문화는 누구나 어느정도 알 것이다. 특히 한국에서는 주량을 자랑으로 말하는 경우도 흔하다. 마치 그것이 나름대로 자랑인 듯한 문화이었다.



한국 사회에서는 꼭 억지로 마시게 하고 많이 마시게 하는 등등의 문화가 있다. 언젠가 대학 신입생 파티에서 술을 많이 마시게해 사고가 난 경우도 있었다. 한국의 술 문화는 약간 특별나다고 할 수 있다. 이러한 여러 문제등은 한국 문화에서 살아가면서 사회생활을 하면 많이 겪을 것으로 본다. 신앙인으로서는 약간의 갈등도 겪을 수 있을 것이다. 그리고 어떻게 해야 하는 갈등 각자의 각개약진의 처신을 할 것인데 어느 경우도 좀 그러할 수 있을 것이다.

그런데 성경의 가나의 혼인 잔치의 내용에서 포도주는 영어로는 와인이라고 되어있다. 바울이 디모데에게 위가 좋지 않으니 포도주를 조금씩 마시라고 권하였다.

신앙적으로 술을 마시면 안된다고 생각한다면 그러한 생각을 가지고 사회생활 중 어떤 모임에서 마신 후 혹 꺼림측한 생각을 갖는다면 마시는 자체보다 그러한 마음이 신앙적으로 더 손상을 가져오지 않을까 할 수도 있다.

이러한 글을 쓰는 것은 교회를 다니고 싶어도 제사 때문에 다닐 수가 없다. 또한 직장의 환경적으로 술을 가끔 마셔야 되는데 그러한 이유때문에 교회에 다닐 수 없다한다면 어떻게 하라고 하여야 하겠는가.

기독교의 신앙을 전하는데 한국의 문화의 문제들에 충돌하여야 한다면 너무나 엄격하게 하는 것도 좋지만 좀 더 자유롭게 하는 것도 생각해 보아야 것이다.



1. 구약성경의 바사 페르시아 제국에서의 모르드개는 유대인의 신앙으로 모두가 대부분 하만이 말을 타고 지나가면 절을 하는데 절하는 것을 거부하였다. 이 일 때문에 모르드게와 유대인 전체가 큰 참화를 당할 뻔 하였다. 결과적으로 그것이 신앙의 승리가 되었지만 페르시아에 있는 유대인 모두가 죽임을 당할 뻔 하였다. 모르드게가 최상의 지혜로운 태도였는가 생각해 볼 수도 있을 것이다. 그 당시 많은 신앙의 유대인들이 다 절하지 않은 것은 아닐 것이다. 마음은 구태여 절하고 싶지 않지만 권력 앞에 절을 하였을 것이다. 유권력자 앞에 엎드려 절을하면서도 신앙으로가 아닌 권력 앞에 또는 그 시대의 문화로 생각하고 엎드린 사람들도 많을 것이다. 그들이 신앙이 없다거나 우상숭배라고 정죄할 것인가, 그것은 아닐 것이다.



한국 문화에서 기독교를 전하는데 어떤 대립의 문제는 철저할 수도 있고 근본적인 문제가 아니면 좀 넓게 받아드리는 것도 필요하다고 본다. 혹 이러한 문화적인 차이의 어떤 문제 때문에 교회에 나올 수 없다고 하는 사람이 많은지는 몰라도 있다고 본다. 사실 어떤 종파에서는 세상적인 제사도 어느 정도 이해 수용하는 자세를 갖게되는 것이 간단하지가 않았다. 그러한 기준 때문에 순교자가 적지 않게 생겼던 과정을 겪은 것으로 안다. 그러한 이후 우상 숭배보다 문화적인 차이로 보기로 한 것으로 알려져 있다.


이러한 갈등의 문제가 없으면 편할 것이다. 그러나 있다면 다른 면의 애로와 문제점을 보면서 넓게 보고 넓게 받아드리는 것도 지혜롭고 선교적인 방법일 것이다. 어느지역이나 그 지역의 토착의 문화와 기독교의 문화가 부딪친다면 정작 중요한 기독교 복음의 전파에 방해가 된다면 깊이 고려해 보아야 할 것이다.  

                                                                 < 성광교회 이동원 목사 드림>

                                                                             


hi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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