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찬송가 가사와 한국교계

이동원 (서울북노회,성광교회,목사) 2018-06-27 (수) 07:26 2개월전 287  

1. 오래전 누군가 수정된 찬송가 가사에 문제가 좀 있는 것 같다는 말을 하였다.

그렇게 생각을 하고 있구나 동감을 하면서도 가능하면 경전이 아닌 찬송가까지 언급하기는 그러하였다.

물론 수정 보완의 새 찬송가를 보면서 느끼는 바가 있었다. 기존의 가사를 여러 군데 수정하였다. 구태여 수정할 이유가 없는데 그리고 수정한 부분이 더 나을 것이 없고 그대로 두는 것이 더 좋을 듯한데 수정한 부분이 의외로 많았다. 더 잘 수정했다고 보이는 부분은 거의 없었다.

그리고 새로운 곡을 넣은 부분을 보면 감수를 좀 더 잘하였으면 할 정도이다. 신학적인 면에서도 문제가 있고 여러 가지로 빈약하다 그러나 정경이 아니기에 찬송가까지 언급하고 싶지는 않았다. 그러나 성도님이 매일 매일 불러야 하는 찬송가 가사라는 것이다. 그럼에도 부족함이 많았다면 그것은 우리의 한국교계의 성경수준의 현주소일 것이다.성경과 일치하고 영리와 그 무엇이 전혀 개입이 없었어야 할 것이다.

 

그간 한국 교계는 수평이동의 교회 성장론으로 교인 수 경쟁 건물 크게 잘 짓고 등이 최대의 목표이었지 성경연구와 묵상 교인들 한사람 한 사람의 말씀으로 성장에는 등한한 것이 아니었는지 자성하여야 할 것이다.

외국에서 학위를 받아와야 성경학자인 것으로 오해 착각도 하였다. 성경의 실력은 성경을 많이 읽고 연구 묵상하여야 하는데 외국의 무슨 학설을 배우는 데 전력하였다면 성경을 잘 모를 수 있을 것이다.

외국어로 강의 듣고 말하고 소통이 어느 정도 자유롭게 되려면 무엇보다 어학에 좀 더 올인 할 수 밖에 없을 것이다. 그러기 위해서 성경과 인문학에 좀 더 많이 깊이 연구할 시간이 부족할 것이다. 어학에 집중한 후에 외국의 학교에 유학을 갈 수 밖에 없을 것이다. 그러므로 사람은 다 한계가 있는데 모든 것을 다 잘 할 수 없을 것이다.

그래 어학과 학설에 집중하다보면 성경을 좀 더 잘 모르고 전임 목회를 하지 않았다면 목회 현장 그 애환을 잘 모를 수 있다. 그럼에도 우리는 잘 모르기에 어떤 나라에서 어떤 학위 타이틀을 따 가지고 오면 대단한 실력이 있는 것으로 알고 있었다. 아주 오래 전에 어느 지방에서 대화를 하다가 서울 에서는 이 한마디에 잠잠하였다. 그 당시 만 하드래도 외국의 이름만 갖다대면 무엇이 있는듯한 그 분위기 였다. 지금은 인넷 유투브 스맛폰으로 세상의 정보를 손바닥 안에서 거의 다 알 수 있다고도 할 세상이다. 신학계에도 마찬가지 일 것이다. 이러한 점에서 오히려 말씀으로만 하는 자세가 더 유익한 것이 아닌가 한다. 어느 분이 외국 유학 위해 공부하여 가서 학설 배우고 하다보니 성경도 모르고 교회현장도 잘 모르고 하다가 세월 다갔다는 말은 절실한 회고의 말일지 모른다.

 

1. 그 결과 한국의 개정 번역 그리고 언급을 별로 하고 싶지 않았지만 찬송가 가사의 수정에서 한국교계의 현주소를 볼 수 있을 것이다. 우리는 우리의 선배 목회자 더욱이 무명의 선배 목회자분들보다 더 많은 지식 더 성경을 잘 아는 것은 아니라는 것을 겸손히 갖고 성경 묵상 연구에 한국교계가 더 최선을 다하여야 할 것이다. 교인들 학생들에게는 가능하면 잘 번역된 세계어로 읽고 들을 수 있게 한다면 더 유익할 것이다. 드디어 찬송가 가사의 한 두 부분을 보자.

정성스럽게 새로운 가사를 쓰신 분에게 혹 누가 되지 않을까 하기도 하지만 그러한 의도는 전혀 없고 충분히 수긍하며 문제는 가사의 감수자가 더 문제이거나 교계 신학의 현주소를 볼 수 있다. 물론 어떤 가사가 좀 그러해도 성경 전체와 연관해서 좋은 방향으로 이해하고 부를 수도 있을 것이다. 그러나 감수자는 철저해야 했을 것이다. 그 실력이 못미쳤다면 어찌하겠는가 하지만 그렇다. 한 예로 다음을 검토해 보자.

 

1. 하나님이 사람 몸을 입으사 이어야 한다.

하나님의 아들이 사람 몸을 입으사, (137)

이 가사는 하나님이 사람 몸을 입으사 라고 하여야 하였을 것이다.

성경에는 말씀이 육신이 되어, 즉 하나님이 사람이 되어라고 하였다.

그렇다면 하나님이 사람의 몸을 입으사 가 아니라 하나님의 아들이 사람의 몸을 입으사 이면 하나님을 두 분으로 생각할 수 있다. 기독교의 복음을 이방에게 전할 때 이 하나님의 아들이라는 말을 이해하지 못하고 오해하고 받아들이지 못하고 받아들일 수 없다했다는 교회사의 역사가 있다.

하나님의 아들이 있다는 것 그렇다면 왜 또 외아들이냐는 것이다. 이것은 이해할 수 없고 도저히 받아들일 수 없다는 것이다. 그런데 기독교에서 말하는 하나님의 아들이라는 뜻은 하나님이 육신이 되었다는 것이다. 그러므로 하나님의 아들이 사람의 몸을 입으사 는 하나님이 사람의 몸을 입으사 가 그 내용이 정확히 강렬하게 전달 될 것이고 사실이다. 하나님이 육신이 되시므로 우리는 그를 하나님의 아들이라 부른다 할 것이다.

 

그러므로 한국어로 번역된 사도신경도 독생자를 외아들로 수정한 것은 원문을 잘 번역한 것이 아닐 것이며 더구나 외 아들을 또 수정하여 유일하신 아들이라는 말은 생각해 보면 더 오리무중 일 것이다. 혹 그것이 더 유식한 용어로 보일 수 있지만 그 뜻이 무엇일까 생각해 보면 더 오리무중의 단어가 아닌가 할 것이다.

개역성경의 독생자 (the only begotten of the Father. 요3:16 ) 는 참으로 정확하게 잘 번역하였다.

새 찬송가의 어떤 장의 가사에 독생성자를 독생자로 수정하였으면 좋겠다고 이미 언급한 바도 있다. 혹 독생성자가 더 그럴듯 해 보일 수도 있을지 모르지만 독생자가 정확하고 개역성경에도 독생자로 되어있다. 대단히 깊이 있는 정확한 번역이다. 이러한 몇 부분의 정확한 번역을 보고 많은 사람들이 오랜 기간 읽고 검중하여 드디어 권위 있는 성경이라고 인정하는 것이다.

영원히 살아있는 하나님의 말씀은

하나님 자신과 같이 마음에 거하게 하고 적용하고 실천하여야 하기에

찬송가에도 그 내용을 정확히하여 반복하여 노래하며 찬양하여야 할 것이다.

   

(사40:8)

풀은 마르고 꽃은 시드나 우리 하나님의 말씀은 영영히 서리라 하라

The grass withers and the flowers fall, but the word of our God stands forever."

    
                                                           < 성광교회 이동원 목사 드림>

 

 

=. 말씀 탐구 (Bible investigation)

(1:1)

1:1 태초에 말씀이 계시니라 이 말씀이 하나님과 함께 계셨으니 이 말씀은 곧 하나님이시니라

1:1 In the beginning was the Word, and the Word was with God, and the Word was God. (niv1984)

 

(1:14 말씀이 육신이 되어 우리 가운데 거하시매 우리가 그 영광을 보니 아버지의 독생자의 영광이요 은혜와 진리가 충만하더라

1:14 And the Word was made flesh, and dwelt among us, (and we beheld his glory, the glory as of the only begotten of the Father,) full of grace and truth. (kj)

1:14 And the Word became flesh and dwelt among us, and we beheld His glory, the glory as of the only begotten of the Father, full of grace and truth. (nkj)

1:14 And the Word became flesh, and dwelt among us, and we beheld His glory, glory as of the only begotten from the Father, full of grace and truth. (nas)

1:14 The Word became flesh and made his dwelling among us. We have seen his glory, the glory of the One and Only, who came from the Father, full of grace and truth. (niv)

 

(1:18)

1:18 본래 하나님을 본 사람이 없으되 아버지 품속에 있는 독생하신 하나님이 나타내셨느니라

1:18 No man hath seen God at any time; the only begotten Son, which is in the bosom of the Father, he hath declared [him]. (kj)

1:18 No one has seen God at any time. The only begotten Son, who is in the bosom of the Father, He has declared Him. (nkj)

1:18 No man has seen God at any time; the only begotten God, who is in the bosom of the Father, He has explained [Him.] (nas)

1:18 No one has ever seen God, but God the One and Only, who is at the Father's side, has made him known. (niv)

 

(3:16)

3:16 하나님이 세상을 이처럼 사랑하사 독생자를 주셨으니 이는 저를 믿는 자마다 멸망치 않고 영생을 얻게 하려 하심이니라

3:16 "For God so loved the world that He gave His only begotten Son, that whoever believes in Him should not perish but have everlasting life. (nkj)

3:16 "For God so loved the world, that He gave His only begotten Son, that whoever believes in Him should not perish, but have eternal life.(nas)

3:16 "For God so loved the world that he gave his one and only Son, that whoever believes in him shall not perish but have eternal life.( niv)

 

(2:6)

그는 근본 하나님의 본체시나 하나님과 동등됨을 취할 것으로 여기지 아니하시고

Who, being in the form of God, thought it not robbery to be equal with God: (kj)

who, being in the form of God, did not consider it robbery to be equal with God, (nkj)

who, although He existed in the form of God, did not regard equality with God a thing to be grasped,(nas)

Who, being in very nature God, did not consider equality with God something to be grasped, (niv1984)   

                                                                                      

                                                                                                      ( - ing)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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