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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느 서구 신학자의 허망 학설

이동원 (서울북노회,성광교회,목사) 2018-09-12 (수) 07:32 13일전 193  

1. 어느 서구 신학자의 허망 학설

나는 많고 많은 책을 읽었다. 특히 이십 대 때에는 더욱 많고 많은 책을 읽었다. 의도적으로 무신론자들의 비 종교인 심지어 반기독교의 주장이 있다면 그것도 읽어보고 싶었고 실제로 가능하면 찾아 읽었다. 어떤 논리로 그들이 이론을 주장하는가 하며 말이다. 그런데 그러한 무신론자 비종교인 심지어 반 기독교인들의 이론이 설득력이 없고 오히려 신앙의 이론을 든든하게 하고 견고하게 하기도 하였다.

 

그런데 서구의 어떤 신학자의 아주 짧은 불과 백 페이지 내외 정도의 두 세권의 소책자가 한국어로 번역되어 있다. 그 중에 한권은 비 성경적이고 정통적인 부활 신앙론이 아닌데 내가 순간 설득을 당할 뻔하였다. 이 학설이 맞는 것 아닌가 하며 말이다. 지금까지 읽은 어떤 책보다 신앙을 떨어트리기 가장 설득력이 있는 책이라는 할 정도로 말이다. 결과적으로 서구 어떤 신학자의 글이 그 어떤 글보다 신앙의 어떤 내용을 무너트리는데 순간이나마 설득력을 준 것이다.  정확한 내용은 기억을 다 못하지만 내용인즉슨 이러하다.

예수님의 부활이 실제 있었던 것이 아니라 그 당시 사람들이 제자들이 부활의 이론을 만들었다는 그러한 내용인 것 같다. 그런데 그 이론을 상당히 설득력 있게 쓴 것 같았다. 그래서 다른 어떤 책들 보다도 이 신학자의 책이 신앙을 떨어트리게 하는 교묘한 책이라고도 볼 수 있겠다.

 

그래 그 분은 교회는 다닐까 하였는데 교회에 잘 출석하고 헌금위원으로도 봉사한다는 이야기도 들은 듯 한다. 그런데 듣는 바에 의하면 말년에 자기의 그러한 학설이 틀렸다고 했다는 말도 들었다. 어쨌든 나는 그 당시 생각하기를 세상의 많은 책 기독교 비판 부정 그리고 무신론자의 그 어떤 논리보다 이 신학자가 신앙을 떨어트리고 헷갈리게 한다는 생각을 하게 된 것이다.

 

1. 그 이후에도 나는 많고 많은 책을 읽은 이것은 한편 별 자랑하려는 것 보다 어리석은 것이 아닌가 생각을 하기도 하였다. 그 많은 책을 읽고 무슨 유익을 얻었다는 것인가 , 그것이 부귀영화 명예 권력을 가져다 주는 것도 아니고 무슨 학위 타이틀을 여럿 가져다 주는 것도 아니고 누가 어떤 학문의 명예를 주는 것도 아니었기에 그 많은 책을 열심을 다해 읽은 것이 무엇에 유익하였던가 하는 생각도 들었다는 것이다. 그 많은 독서가 어리석었던 것 같은 느낌이 스치기도 하여 그것에 대하여 별로 언급하고 싶지 않다. 목회자들은 그 직무상 많은 책을 읽기도 한다. 나도 목회하는 중에 그 다음은 무엇에 관한 책을 누가 지시하는 것 같이 연속적으로 구입하여 읽었다.

(이십 대 때에는 문학의 깊이를 새롭게 알고,읽고 ,읽었다. 어떤 절대적인 진리를 찾을 수 있을까 하며 전력을 다하여 읽은 것이다.  일평생의 목회에 후회 없는 무엇인가 정확히 알기 위해 문학작품 외에 역사 철학 그리고 도전적 반항적 주장 사상 등등도 찾아 읽어 보았다. 무엇이 절대적인 진리이고 , 인생의 영원한 그 무엇인가, 오히려 이십대 초반에는 성경 읽고 연구에 집중한 것은 아니었다. 성경이야 당연히 하나님의 말씀 하나님 잘 믿으라는 신앙적인 이야기 예수 잘 믿으라는 이야기를 일방적으로 기록하였을 것이지 라는 생각도 있었기 때문이다. 부정적 반대적 비판적 무신론적 책을 읽어 보았다. 그러면서 절대진리 그리고 절대적인 사상이랄까 일생에 후회 없는 무엇을 확실히 객관적으로 찾으려고 하였다.

 

그런데 심지어 무신론적 책들도 그렇게 공감을 주지 못하였다. 오히려 신앙을 더 견고하게도 하였다. 거기서 배운 결론은 역사에서 가장 큰 힘은 사랑이라는 것이다. 그리고 군대 생활을 하면서도 그것은 확증할 수 있었다. 어떤 강한 무기보다도 사랑은 가장 강한 힘이라는 확고한 결론을 내린 것이다. 그래 군대에서 공병대에서 전설적일 수 있는 어떤 힘들고 반복적인 인내의 한계 상황이 무엇일까 하는 견디기 힘든 고된 일들도 해 보았지만 교육 행정병으로 있을 때 나의 사인 란에 하나님의 사랑을 의미하는 헬라어 원어로 아가페를 사용하였을 정도였다. 하나님은 사랑이시다라는 것을 더욱 더 견고하게 하였다. 역사에 그만큼 사랑의 힘이 크다는 것을 군대까지 가서 보아도 변함이 없었다. 군대가기 전에에 군대는 고되고 거칠고 엄하고 군기 등등이었는데 군대생활을 통해서도 그 결론은 더욱 확증하였다. 과연 하나님은 사랑이시다. 그러므로 인생에서 역사에서 우주에서 사랑은 가장 큰 힘일 것이다.

한편 군대 생활의 어떤 때는 강훈련 고된노동 후에도 매일 거의 매일 단잠을 깨어 불침번 보초를 서는 것등등이 어렵지만 그 보다 오히려 반복된 생활의 지루함이 가장 어려움이 아닐까, 더구나 무슨 의미를 찾지 못한다면 말이다.

나는 군 생활 중 약 삼개월 중 노동 같은 어떤 반복적인 노동을 하였는데 어쩌면 그것은 세상에서 가장 힘든 일이 아니었을까, 그리고 그 당시 덤프 추럭에 모래 싣는 삽질도 짧은 시간에 아마 수 천번은 더하였을 것이다. 그 때 그러한 일을 포함하여 평생 할 일을 다 한 것이 아닌가 생각할 정도 이었다. 사실은 잠깐 당번 병도 하였다. 나의 체질에 썩 맞는 것은 아닐 수 있는데 어떻게 하였다. 그 때 나를 추천해 준 지휘부의 약간 고참은 참 좋은 사람이었다. 그 병사는 높은 분들 모시는 것이 심리적 긴장 심적 스트레스가 대단히 크다고 하다고 하였다. 어디 출신의 이름까지 기억하는데 참 좋은 사람이었다. 군대에서 서로 모르는 청춘들인데 참 선량한 사람들도 많다. 전혀 모르는 사람들과 어울리면서 서로 이해하고 배운바도 많을 것이다. 그렇게 힘들고 체질에 극단적으로 맞지 않는다고 생각한 군생활이 어는 덧 어느 때인가는 체질에 맞는 것 아닌가 생각할 때가 한 두번 있었을 것이다. 생활이 단순하고 등등 때문이다. 한편 힘든 군생활에서 조기 조퇴한 어떤 정치인이 있다면 군 복무자들은 아마 그 이유를 직감적으로 감 잡을 것이다. 어쩌면 그 시기가 가장 어려울 것이다. 전역까지 긴 시간이 남아있다고 생각되고 말이다.

홀로 툭하면 북한에 강경발언 하는 사람들 중 군대를 갔다 오지 않은 사람이라면 철부지 유치한 인생이라고 군복무자들은 말할 것이다. 군 삼년 복무 이야기 하려면 삼년 걸린다는 이야기 있다. 전설적인 군기의 고된 시절을 말할 것이다. 입대시작에 오리걸음으로 군기잡혀 걸어가면서 보는 병사들 그리고 전역한 병사들 영웅같이 생각이 되었을 것이다. 정치인 중에 턱없이 북한에 강경발언만 일삼는 특별히 면제자 중에 그러하다면 참 철딱서니 철부지 인생이 후방에서 큰 소리 치는구나 할 것이다.

그들은 지금이라도 즉 사십대 오십대에도 아니 삼십대에도 다시 속성과로 복무케 하는 기회를 주면 어떨까 한다. 그렇게 애국적이면 말로만이 아니라 실제로 기회를 주는 방법은 없겠는가, 매일 밤 자다가 깨어 보초 불침번을 서고 말이다. 석달 아니 한달만 하여도 죽을 지경이라고 할 것이다. 아니 별 생각을 다할 것이다. 그래 전역한 사람들은 역전의 용사라 하지 않는가, 아주 오래전 어떤 분은 군 기피자 되어 평생에 그 닉네임이 따라 붙었다. 그들도 한편 안쓰럽고 안타까운 일인데 요즈음은 어떤 정치인들은 시대착오적인 이념의 말로 더 용감 더 강경 홀로 애국자인 듯 큰소리는 다 치고 있다.

 

어쨌든 군 전역 후에 전혀 자랑스럽지 않지만 밥먹는 시간 잠자는 시간들을 제외하고 절대 진리 그리고 영원히 가치 있는 무엇인가를 찾기 위해도 책을 그렇게 많이 읽은 듯 하다. 목회자이기에 또 책을 많이 읽을 수 밖에 없다. 인생을 다 살아보지 않았는데 간접경험을 책을 통해서 알 수 밖에 없기 때문이다. 그리고 다른 이유도 있었다. 그런데 그것이 무엇을 그렇게 크게 준 것이 있는가 할 때 자괴감까지는 아니지만 누구에게 밝히고 싶지 않은 것은 좀 어리석은 것 아니었던가 하는 생각이 들기 때문이기도 하다.)

 

이렇게 많은 심지어 비판적 부정적 책을 많이 읽었어도 신앙에 손해 없고 , 사실 나는 그러한 책을 읽는 중에 성경이 주님이 절대 진리가 아니면 가는 길을 바꾸어야 하지 않겠는가 하는 생각도 하였는데 어떤 책도 나의 그것을 바꾸게 하지 못했고 오히려 성경과 진리를 확고하게 하였다고 할 수 있다.

 

1. 그런데 서구의 어떤 교수의 아주 짤막한 책을 읽었던 것이다.

한국에 번역 된 두 세권이 있다. 그 중 한 내용인 즉슨 예수님의 부활을 좀 과장해 표현하자면 그 당시 무지몽매한 사람들 또는 제자들이 만들어낸 이야기 인 듯이 말한 것으로 기억하고 있다. 그 당시로서는 어 이 주장이 맞는 것  같기도 할 정도로 순간적으로 아주 설득력이 있었다.

그 당시 많고 많은 무신론 반기독교 타종교 타 사상등의 책을 읽고도 신앙에 무익을 주지 않고 오히려 신앙을 더 확고하게 하는 면이 있었는데 책을 보고 순간 아니 이 책의 주장이 맞는 것이 아닌가 할 정도라는 것이다.  

심지어 무신론자나 반기독교인의 글을 포함하여 그 많은 책 중에서 가장 신앙을 떨어트리는 책, 그리고 순간 그 주장이 맞는 것 갖기도 한, 순간적으로나마 믿음을 가장 떨어트리는 책이 서구 어떤 신학자의 주장이었다. 그 말이 더 맞는 것 같았기 때문이다. 그 사람은 그것은 비신화화하여 이성적으로 더 잘 믿자고 하는 것 이었인지 모른다.

그런데 그러한 주장을 하는 그 분은 무슨 신앙으로 교회에 다니고 신앙생활을 할까 하였는데 그 당시 듣는 바로는 교회에서 집사로서 헌금 위원으로 봉사도 하며 신앙생활 한다는 이야기도 들었다. 말년엔가는 그의 학설이 잘못되었다고 주장하였다는 이야기도 있다. 이것은 마치 미국의 신학자 하비 콕스가 나중에 자기의 초기의 주장의 학설이 성령의 역사를 미처 모르고 강조하지 못한 것에 대해서 자신의 미스를 언급하였다고 하였던 말과 비슷하다.)



1. 예
수님의 부활이 없었다면 교회는 어떻게 탄생된 것인가,

이 답을 해야 할 것이다. 부활이 없었다면 승천이 없었을 것이고 성령의 임재도 없었을 것이고 교회 탄생도 없을 것이다. 소급해서 검산으로 논리를 전개하여 보자. 성령이 오셨고 교회가 탄생이 되었고 성령과 동행하고 있다면 그것이 어떻게 되어서 이루어진 것인가, 그것이 사실임을 증명하려면 소급해서 검산 식으로 즉 역으로 추적하여 보아야 할 것이다. 

그것도 제자들이 허무하고 아쉬운 마음에 세웠다고 한다면 이것은 초등학생들도 설득할 수 없는 설득력이 없는 이유는 무엇일까요,

 

예수님의 제자들 ,, 그 당시 유대교의 모든 신앙인들은 구약의 십계명 언약 믿고 암송하고 기억할 것이다.

1) 나외에 다른신을 섬기지 말라, 그런데 예수님이 나 외에 다른신이면 그들은 사실은 죄를짓는 것이 된다. 무엇 때문에 그들로서는 가장 큰 죄에 해당하는 일을 하겠는가, 이 가능할까요, 죄를 짓고 그 보응을 받을 수도 있다고 하셨는데, 자원하여 심판받기 위해 거짓을 증거한다는 있을 수 없다 할 것이다. 돌 판에 새겨주신 분는 거짓 증거하지 말라고 하셨다. 그런데 그러한 죄를 자원해서 짓는 격인이다. 불섶으로 들어가는 ,, 불속으로 달려들어가는 어리석은 ,, 무엇을 위해서,, 예수님이 좋은 선생님 그 이상도 충분히 그렇게 주장하먼면되지. 사실 하나님의 다들이라고하느냐. 문에  ,, 하나님이 육신이 된 하나님의 아들이라고 선언,, 그것이 아니면 자신들은 거짓 증거로 그 하나님께 죄를 짓는 것,,

 

그리고 교회 탄생,,

그리고 성령의 동행,,

두 어번 예를 들었지만 비행기 타고 창공을 나르고 있는데 거기

앉아서 누가 아마 이 비행기가 활주로를 통과하지 않았을 것이야 하며 바퀴가 너무 약하고 아니 바퀴를 볼 수도 없었어,, 이 무거운 쇠덩어리에 많은 사람들이 타고 있는데 어떻게 땅에서 공중으로 뜨겠는가, 그것은 상당히 일리 있는 그리고 많은 사람이 그렇게 생각할 수 있었을 것이다. 그런데 비행기를 타고 있으면서 그 안에서 창공을 날아가면서 그렇게 말한다면 적절한 말이라 할 수 없을 것이다.

 

비행기를 만들기 전에는 그렇다. 그리고 바퀴자국도 없어 그래 다시 돌아와서 보니 바퀴자국을 찾을 수 없어 증명이 안 되는 것이야,, 활주로 통과 장담할 수 없어,,등등 자신이 비행기를 창고에 타고 있으면 활주로 통과 당연,,

교회 탄생 성령 임재는 ,,, 부활 승천이 있기에,

그래 부활장은 부활하시 예수님을 만난 제자들 사도 바울이 부활하신 예수님을 성령으로 만난 바울이 쓰다.

 

친애하는 그 신학자 교회 탄생 성령 동행 비행기 타고 있는 성도들 앞에,,

비행장에서 활주로 찾는 연구하며 아무리 보아도 바퀴자국도 없고 비행기가 새도 아니고 쇠덩어리 인데 홀주로에서 붕 튀어올라 날아갈 수 없다는 것 ,, 이론적으로 일방 일리 있는 듯 할지 모른다.

바로 서구 어떤 신학 교수의 주장이 그렇듯 어리석을 주장이었는데 그 때는 순간 그것을 생각하지 못했기에 그 주장이 맞는가 하였다. 그 주장이 이치적으로 더 믿기 힘들다.

 

1. 예수님의 제자들은 유대인이었다.

유대인은 기본적으로 누구나 여호와 하나님의 절대 신앙이고 십계명을 거의 암송하다시피 할 것이다. 하나님이 손수 돌 판에 새겨주신 율법의 요약이기 때문이다. 그 십계명 안에는 거짓 증거 하지 말라고 하였다. 그 신앙을 가진 사람이 증거하고 기록한 것이다. 더욱이 십계명 첫 계명에는 나 외에 다른 신을 섬기지 날라고 하였다. 그렇다면 여호와 하나님 외에 예수 신을 섬긴다는 것 유대인의 사고에서는 결코 간단한 문제가 아니다. 그것은 생명을 건 결단이라고 할 수 있다. 그들은 우상숭배에 대한 경고를 너무나 잘 알고 있을 것이다.

그러므로 그들은 예수님이 하나님과 동일한 즉 하나님이 육신이 되어 오신 하나님의 아들이신 것 그리고 여호와 하나님께서 약속하신 기름 부음 받은 자 즉 메시야 그리스도 이신 것을 알았기에 예수님을 주님으로 믿은 것이다. 유대인들은 여호와께서 약속한 메시야의 오심을 신앙적으로 기다리고 있었다.

그러므로 마16:의 예수님께서 너희는 나를 누구라 하느냐의 베드로의 고백선언이 그렇게 중요한 것이다. 그것은 성경의 요약이라고 할 수 있다. 그것을 좀 더 설명한 것이 사도신경 신앙고백 이라고 할 수 있다.

만약 예수님이 메시야 그리고 하나님이 육신으로 오신 하나님의 아들이 확실치 않는데 그것을 전했다면 십계명을 정면으로 도전하는 아니 구약의 하나님을 정면으로 도전하는 일로서 구약의 하나님을 철저하게 믿는 제자들로서는 상상할 수 없는 일이다. 그 경고의 내용을 아는 유대인들이 무슨 판단을 받으려고 그렇게 거짓을 말하며 도전하겠는가,

( 사도 바울은 신앙이 없어서 살기등등하여 열렬히 교회를 핍박한 것이 아니라  가장 신실한 여호와 하나님의 신앙을 가졌기에 교회가 여호와 하나님을 이탈하는 단체인줄 알고 열심히 박해한 것이다. 그러는 과정에서 다베것 도상에서 여호와 하나님이 예수 이름으로 나타나셨고 왜 나를 핍박하느냐 하였을 때 예수님 누구이신가를 즉 하나님에게서 나오신 하나님의 아들 그리고 그가 약속한 메시야  그리스도 인 것을 알 게 된 것이다. )

( 예수님께서 하나님과 동일하신 분이 아니고 메시야가 아니면 그들은 결단코 누구보다도 예수님을 쉽게 믿을 수 없을 것이다. 그러므로 예수님이 구약에 약속한 메시야 시오 하나님이 육신으로 오신 하나님의 아들이요 라는 고백이 성경의 핵심 우리의 신앙고백의 핵심인 것이다.)

 

1. 예수님의 제자들은 부활을 쉽게 믿었는가,

부활의 아침에 여인들이 뜻 밖에 빈무덤을 발견하고 부활을 소식을 사도들에게 전하였을 때 사도들의 반응은 어떠했는가, 할렐루야 주님을 찬양합니다. 우리 함께 기쁘게 빈무덤을 가봅시다 하였는가, 아니다. 그 여인들의 말이 헌탄한 듯 넌센스로 받아드린 것이다. 단지 베드로와 요한 만 달려가서 그 빈 무덤을 보았다. 그리고 거기서 그리고 돌아오면서 부활의 주님을 찬양하며 기뻐 춤추며 돌아왔는가. 기이히 여기며 돌아왔다고 하였다. 이해할 수 없는 마음으로 여러생각을 하며 돌아오는 느낌이 생생하다.

그 날 저녁에는 일부 제자들이 그 다락방에서 유대인이 두려워서 문을 닫고 잠그고 모여 있었다. 거기에 예수님이 나타나신 것이다. 그 소식을 들은 도마는 어떠하였는가, 그가 많은 능력을 본 제자였을 지라도 내 눈으로 보고 내 손가락으로 내 손으로 그러고 믿겠노라 하였다. 사실 부활은 이렇게 이성적으로 믿기 힘든 것이다. 오죽하면 부활하신 예수님을 두 번 만나고도 제자들은 원 직업인 물고기 잡으로 갈릴리 바닷가로 갔다.

그들이 예수님의 부활이 없었는데 부활을 창작하였다는 것은 너무나 신학자가 경전인 택스트인 성경을 몰랐다는 것을 알 수 있다. 그것을 유학가서 듣고 뭐 신기한 학설인양 소개한다면 우스운 일이다. 하나의 허망한 튀는 학설일 뿐이다.

1. 다시 생각해 보자.

자주 이 예를 드는데, 비행기가 창공을 날아가고 있는데 그 안에서 어떤 사람이 이 비행기는 활주로를 통과하지 않을 것 같다. 그것이 분명할 이유를 말하며. 공항에 활주로 바퀴를 잘 볼 수 없다는 것 그리고 상식적으로 생각하며 그 무거운 쇠덩어리가 어떻게 공중으로 뜨겠는가, 더더구나 수십명 수백명이 그 안에 타고 그리고 짐까지 있다면 말이다. 그 말을 듣고 있는 사람들이 글쎄 그 말을 듣고 보니 이 비행기는 활주로 통과를 하지 않았을거야 라고 한다면 얼마나 우습겠는가,

부활이 있었기에  승천이 있고 부활이 있었기에 약속대로 성령의 임재가 있는 것 아니겠는가. 성령의 임재가 있었기에 약속대로 교회가 탄생이 된 것 아니겠는가. 교회에 다니며 성령과 동행하며 신앙생활을 하면서 부활을 의심하는 것은 비행기 타고 창공을 가면서 활주로 통과 했나 의심하는 것과 같은 넌센스 일 것이다. 창공을 나는 비행기 안에서 목적이 향해 기대감을 갖고 가듯이 이제 성령과 동행하며 풍성한 생명을 얻는 신앙생활을 해야 할 것이다.)

   

1.  학문적으로도 성경을 잘 배워 뜨거운 가슴으로 전할 수 있는 학문으로 정립하여야 할 것이다.

신학은 신학이고 신앙은 신앙 이다 라며 신학은 학문적으로는 어렵게 무엇 배우는 것이고 목회는 목회이다라는 말은 적절하다고 할 수 없다. 검증 안된 어설 픈 비판적 학설을 전하는 것으로 학문의 권위 세우겠다는 것은 적절치 않다할 것이다.

서구의 신학이 르네상스 문예부흥 인본주의 사상을 신학에도 도입하여 비판적이고 튀는 학설이나 말한다면 죽도 밥도 아닌 학문이 될 것이다. 물론 인문학 이스라엘 역사 문화 지리 전통 등등을 배우고 성경을 연구하며 더욱 폭 넓고 깊게 간동받을 수도 있을 것이다. 성경은 지적 역사적 영적 넓이 높이 길이 깊이가 측량할 수 없기 때문이다.

오늘 한국교회가 개정 판이 나왔는데 너무나 실력 없이 개정이 되었어도 거의 학자들이 침묵이다. 이것이 한국교회의 성경에 대한 수준이다. 외국에 가서 학위을 따오고,, 하면 되는 ,, 그 신학은 문혜부흥 르네상의 시대의 인본중의 사상이 가득한 시대의 일시적인 일시적으로 부는 유행의 바람으로 인본주의 신양의 영향이 상당히 있지 않았을까 한다, 최근 외국의 어떤 분야의 무슨 세계적인 신학자 무슨 학설에 대한 권위자 그런데 알맹이는 내용은 언급이 없다. 내용보다 그 화려한 타이틀로 무엇이 대단히 있는 듯 하게 하는 것이다. 그렇다면 그것도 하나의 학문계의 상술이 아닌가 볼 수도 있다. 그러한 권위자라면 감동적인 뜨거운 감동을 주는 내용이어야 하는데..

                                                                                         ( - ing ) 


hi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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