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교회의 개혁이 필요한 때 - 이 한가지만이라도....

김석태 (경기노회,필리핀 선교사,목사) 2018-10-10 (수) 20:15 5년전 1612  

 

제목 : 교회의 개혁이 필요한 때....

본문 : 고전 6 : 1 ~ 10.

 

 

오늘 우리에게는 무엇보다 개혁이 필요하다. 지금 우리 나라는 개혁의 바람으로 인하여 몸살을 앓고 있는 중이다. 우리 교회에도 개혁이 일어나야 한다는 외침은 있으나, 방향조차 잡기가 어려운 상황이라 여겨진다.

 

나는 우리 교회의 개혁을 아주 작은 일로부터 시작 해 보았으면 한다. 하나님의 말씀대로 [ 네 시작은 미약하나 네 나중은 심히 창대하리라 ] 하신 말씀대로 반드시 좋은 개혁이 일어 나리라 여겨 진다.

 

이것은 교회 회의하는 방법을 중심으로 개혁 해 보자는 것이다. 교회 회의 법 하나를 중심으로 개혁하여 교회가 올바른 위치에 세워지게 된다면, 이를 희생하는 마음으로 해보아야 하지 않을 가 ? 그래서 교회 회의 진행 법을 함께 고찰 해 보았으면 하여 제안을 한다.

 

1.현재 우리 한국 교회의 회의 진행 상황 :

 

교회나 노회나 총회 등 모두가 회의에서 결정됨에 따라 집행하고 있다. 여기에는 절대적인 원칙이 있다. 이는 민주주의에 입각하여 다수결에 의하여 결정 하는 것이다. 여기에서는 언제나 회원의 뜻을 묻게 되어 있다. 회원들의 뜻이 무엇에 결집 되어 있는 가를 확인 하고 결정하게 된다.

 

2. 문제 제기 :

 

일반 사회에서는 현재의 회의 방법이 최선의 회의 진행 방법이라 여겨진다. 그러나 교회에서는 아니라고 여겨진다. 우리는 교회가 그리스도의 몸이라 말하고 있다. 그리고 교회의 머리는 예수 그리스도란 사실을 모르는 사람이 없다.

 

그러나 사실 교회와 노회 총회 안에서 회의 하는 모습은 예수님이 없으신 사실을 직감하게 된다. 그래서 교회나, 노회나, 총회가 회의 도중에 참사가 일어 나는 것은 물론 회의를 마친 뒤에도 문제가 꼬리를 물게 된다.

 

그러다가 결국에는 사회 법정을 찾게 된다. 그러기에 우리는 교단에서는 헌법에 사회법정에 고소를 못 하도록 해 놓고 있지만, 피할 수 없는 상황으로 안다. 여전히 사회 법정에 고소하는 모습을 보게 된다. 이런 현상은 초대 교회에서도 찾아 볼 수 있다.

 

고전 6:1 너희 중에 누가 다른 이로 더불어 일이 있는데 구태여 불의한 자들 앞에서 송사하고 성도 앞에서 하지 아니하느냐

고전 6:2 성도가 세상을 판단할 것을 너희가 알지 못하느냐 세상도 너희에게 판단을 받겠거든 지극히 작은 일 판단하기를 감당치 못하겠느냐

고전 6:3 우리가 천사를 판단할 것을 너희가 알지 못하느냐 그러하거든 하물며 세상 일이랴

고전 6:4 그런즉 너희가 세상 사건이 있을 때에 교회에서 경히 여김을 받는 자들을 세우느냐

고전 6:5 내가 너희를 부끄럽게 하려 하여 이 말을 하노니 너희 가운데 그 형제간 일을 판단할 만한 지혜있는 자가 이같이 하나도 없느냐

고전 6:6 형제가 형제로 더불어 송사할 뿐더러 믿지 아니하는 자들 앞에서 하느냐

고전 6:7 너희가 피차 송사함으로 너희 가운데 이미 완연한 허물이 있나니 차라리 불의를 당하는 것이 낫지 아니하며 차라리 속는 것이 낫지 아니하냐

고전 6:8 너희는 불의를 행하고 속이는 구나 저는 너희 형제로다

고전 6:9 불의한 자가 하나님의 나라를 유업으로 받지 못할 줄을 알지 못하느냐 미혹을 받지 말라 음란하는 자나 우상 숭배하는 자나 간음 하는 자나 탐색하는 자나 남색하는 자나

고전 6:10 도적이나 탐람하는 자나 술취하는 자나 후욕하는 자나 토색하는 자들은 하나님의 나라를 유업으로 받지 못하리라

 

2:12 너희는 자유의 율법대로 심판받을 자처럼 말도 하고 행하기도 하라

4:11 형제들아 피차에 비방하지 말라 형제를 비방하는 자나 형제를 판단하는 자는 곧 율법을 비방하고 율법을 판단하는 것이라 네가 만일 율법을 판단하면 율법의 준행자가 아니요 재판자로다

4:12 입법자와 재판자는 오직 하나이시니 능히 구원하기도 하시며 멸하기도 하시느니라 너는 누구관대 이웃을 판단하느냐

 

고전 1:20 지혜 있는 자가 어디 있느뇨 선비가 어디 있느뇨 이 세대에 변사가 어디 있느뇨 하나님께서 이 세상의 지혜를 미련케 하신 것이 아니뇨

고전 1:21 하나님의 지혜에 있어서는 이 세상이 자기 지혜로 하나님을 알지 못하는고로 하나님께서 전도의 미련한 것으로 믿는 자들을 구원 하시기를 기뻐하셨도다

고전 1:27 러나 하나님께서 세상의 미련한 것들을 택하사 지혜 있는 자들을 부끄럽게 하려 하시고 세상의 약한 것들을 택하사 강한 것들 을 부끄럽게 하려 하시며

고전 1:28 하나님께서 세상의 천한 것들과 멸시 받는 것들과 없는 것들을 택하사 있는 것들을 폐하려 하시나니

 

현재도 교회는 문제가 발생하게 될 때에 법정으로 향하게 되는 데, 이는 교회 스스로가 교회의 기능과 지위를 스스로가 잃었다는 점을 보여주는 일이라 여겨진다. 이유가 무엇일가 ? 교회의 머리는 예수님이심을 서슴없이 고백한다. 참 심판자는 하나님이심을 잘 알고 있다.

 

그런데 왜 교회는 스스로의 권위를 져버리는 존재가 되었을 가 ? 이는 우리 교회가 거짓에 합류되어 있음을 부인 할 수 없는 모습이다. 진정 교회의 머리가 예수님이시고, 심판자가 하나님이시라면, 세상 법정이나 사람(판검사)에 의존하기보다, 예수님을 의존하며, 예수님께 묻고 하나님의 판단을 기다릴 줄 아는 자가 되어야 하지 않나 하는 생각이다.

 

그렇다면 왜 오늘의 교회는 이렇게 왜곡된 존재가 되어 있을 가 ? 오히려 세상과 사람들이 교회로 가져와 판단을 받게 하지는 못할지언정 교회가 세상과 사람에게 판단을 요구하는 존재가 되었을 가 ?

 

나는 우리 교회가 잘 못된 습관에서 비롯 된 일이라 여겨진다. 교회는 그리스도의 몸이면서도 사람들이 모여 생활하는 공동체이기도 하다. 그러기에 우리는 무슨 일이든 뜻과 생각을 하나로 모으기 위하여 회의(會議)를 하게 되었다.

 

회의(會議)를 집행하는 데는 민주주의에 입각하여 많은 대중의 뜻을 따르게 되어있고, 모든 문제는 대중(大衆)의 뜻을 알기 위하여 대중(大衆)에게 물어서 결정 하게 된다. 그러기에 대중(大衆)은 각 자가 자신의 견해를 말 할 수 밖에 없다. 교회도 이 방법을 사용하고 있다. 이런 교육과 제도에 따라 교회를 운영하기에 교회의 문제가 있는 것이다.

 

실상 교회의 머리는 주님이 아니라, 사람인 것이다. 심판자도 사람인 것이다. 그러기에 하나님의 권위가 존재 할 수가 없다. 말로만 교회는 하나님이시고 실제는 인간 중심의 교회가 될 수 밖에 없는 것이다. 알고보면, 교회안에서도 세상과 다를 바가 없이 목소리가 크고, 말을 잘하며, 표현력이 뛰어나고, 수단을 잘 부릴 줄 아는 자에 의해 교회가 굴러 갈 수밖에 없는 것이다.

 

이것은 나의 지난 날의 나의 잘 못된 목회 고백이기도 하다. 이것은 참으로 웃어 넘길 작은 일로 취급할 수가 있다. 그러나 이런 말이 있다. 방죽 뚝의 작은 구멍이 후일에는 커져서 빵죽 뚝이 무너져 큰 피해를 당 할 수가 있다고....

 

그렇다면 문제 해결 점이 무엇일가 ? 잘 못 된 점을 시정하고 회복시키는 일이라 여겨 진다. 그것이 무엇일가 ? 우리는 교회의 모든 결정을 성부 성자 성령 하나님께 기도하여 그 대답을 듣고 결정케 하는 일이라 여겨진다. 그래서 그 대안을 말하고져 한다.

3. 교회의 머리가 되시는 예수님의 뜻과 생각을 묻도록

 

우리는 회의를 진행할 때 회원의 뜻과 생각을 묻게 된다. [ 여러분의 생각은 어떠합니까 ? ] 그리고 나중에 거수하여 많은 사람의 뜻으로 결정하고 가결되었음을 선포한다. 그러나 여기에 불평 불만이 생기고, 다툼이 일어나 법정에까지 가게 된다. 이것은 있을 수 없는 일이다. 만일 이 일이 옳다면, 교회의 머리가 되시는 예수님이 세상 법정에서 사람에게 재판을 받아야 할 가 ?

 

이것은 아니다. 교회의 머리는 예수님이시기에 예수님의 뜻과 생각을 찾아서 결정을 해야 한다. 그러기에 이렇게 질문을 해야 한다고 본다. [ 주님의 뜻과 생각은 무엇이라 생각 하십니까 ? ] 이때 자기 주장이나 견해가 아니다. 자기 상식을 말 하게 하는 것도 아니다. 물론 회원 여러분이 자기 나름대로 개개인이 발표를 하겠으나, 발표하는 자가 주님께 묻고 대답 할 수가 있게 하는 것이다.

 

이렇게 훈련이 되면 주님의 뜻을 분별하는 능력을 갖추게 될 것이고, 주님의 이름을 빙자한 거짓이 아니라, 참으로 주님의 뜻과 생각으로 결정하기 마련일 것이다. 이것은 신앙 훈련이기도 한 것이다.

 

모든 일을 자기 감정과 생각을 따라, 자기 멋대로 결정 하며 살아가는 것이 아니라, 예수님께 묻고, 기다리는 과정을 통해 생각하여 실수함이 없는 삶을 살아가게 될 것이고, 신앙생활과 교회생활도 흔들림이 없기 마련이라 여겨진다.

 

그러기에 주님께서 기도방법을 가르쳐 주신 주기도문을 보면,

 

6:09 하늘에 계신 우리 아버지여 이름이 거룩히 여김을 받으시오며,

6:10 나라이 임하옵시며 뜻이 하늘에서 이룬 것같이 땅에서도 이루어지이다

 

첫째가 하나님의 이름이 거룩히 여김을 받게 하는 일이고,

둘째가 하나님의 나라가 이루어지게 하고, 하나님의 뜻이 하늘에서처럼 땅에서도 이루어지게 하는 일이다. 교회가 하는 일이 무엇일가 ? 다시 말해서 하나님의 나라가 이루어지고, 하나님의 뜻이 천국과 동일하게 이 땅에 이루는 일이다.

 

이 일을 사람인 우리가 어떻게 이룰수 가 있을 가 ? 사실 우리가 아는 바도 없기에 언제나 주님께 물어서 마음으로든지, 감동으로든지, 주님이 주시는 생각으로든지, 주님으로부터 받은바 되었다는 신앙 고백에서 해야만 하는 것이다. 이런 고백은 각 사람이 다르게 발표 할 수가 있다. 그러나 그 모든 발언을 수용하여 최종의 결론 안을 만들어 최상의 뜻을 결정 하도록 할 것이다.

 

여기에는 개인의 사심이나, 개인의 주장을 내 세울 필요가 없는 것이다. 왜냐하면, 하나님의 뜻과 생각과 목적이 핵심이 되기 때문이다. 설혹 개인적인 사견이나, 주장이 발생 할 수가 있으나, 회중에서 용납될 수가 없기 때문이다.

 

예수님도 겟세마네 동산에서 십자가의 고난과 죽음을 앞에 놓고 기도 하실 때 본을 보여 주신 모습을 읽을 수가 있다.

 

22:42 가라사대 아버지여 만일 아버지의 뜻이어든 이 잔을 내게서 옮기시옵소서 그러나 내 원대로 마옵시고 아버지의 원대로 되기를 원하나이다 하시니

 

이 모습이 우리가 본 받아야 할 모습이다. 주님이 엄청난 안건을 두고 결정을 하시게 될 때 기도하셨고, 기도를 하시되 하나님 아버지의 뜻을 두고 기도하며 그 결정권을 하나님께 전적으로 맡기셨다. 이것이 우리가 주님으로부터 본 받아야 할 자세라고 생각한다.

 

7:21 나더러 주여 주여 하는 자마다 천국에 다 들어갈 것이 아니요 다만 하늘에 계신 내 아버지의 뜻대로 행하는 자라야 들어가리라

 

 

결론

 

교회는 언제나 사람의 뜻이 아니라, 아버지의 뜻이 결정 지어 지도록 해야 한다. 그리고 아버지의 뜻이 이루어지고 하나님의 나라가 세워짐으로 하나님께서 기뻐하시도록 해야만 할 것이다. 그래서 음부의 권세가 이기지 못하도록 해야 할 것이다.

 

16:18 또 내가 네게 이르노니 너는 베드로라 내가 이 반석 위에 내 교회를 세우리니 음부의 권세가 이기지 못하리라

 

교회의 사명은 예수님께서 [ 내가 주는 그리스도이시오, 살아계신 하나님의 아들이니이다. ] 라는 신앙 고백의 반석위에 예수님의 교회가 세워지기를 원하시는 것이다. 다시 말 해서 내 안에 이 신앙의 고백으로 주님의 교회가 세워짐으로 우리의 신앙공동체인 교회가 주님의 몸된 교회 즉 내 교회(주님의 교회)가 되기를 원하시는 것이다. 교회는 누구의 교회가 아니라, 예수님의 교회가 되어야 한다.

 

 

 

 

 


hi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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