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thank-God

김창환 (서울남노회,강서교회,목사) 2018-11-07 (수) 15:08 6일전 50  
http://cafe.daum.net/thekingjesus/I1Nl/484 

    이미지를 클릭하면 원본을 보실 수 있습니다. 행복한 예수님의 사람들 칼럼 (484호) 다윗의 신앙고백이 나의 신앙고백 (시 23:1-6) 멕시코 어떤 마을에 온천과 냉천이 옆에서 가지런히 솟아나는 신기한 곳이 있다. 한쪽에는 부글부글 끊는 온천이 땅에서 솟아오르고 그 옆에는 얼음물과 같은 차가 운 냉천이 솟아오릅니다. 그러니까 그 동네 아낙네들은 빨래 광주리를 가지고 와 서 온천에서 빨래를 삶고 냉천에서 헹구어 가지고 깨끗한 옷을 집으로 가져갔습 니다. 그 모습을 본 외국 관광객들이 안내하던 멕시코 사람에게 물었다. "이곳 부인들은 참 좋겠습니다." "왜요?" "찬물과 더운물을 마음대로 거져 쓸 수 있으니까요. 이곳 사람들에게는 온천과 냉천을 주신 하나님께 감사하는 마음이 많겠군요?" 그랬더니 멕시코 안내원의 대답이 "천만에요" "왜요?" "이곳 아낙네들 은 감사하기 보다는 불평이 많습니다." "어떻게요?" "더운물과 찬물이 땅에서 나 는 것은 괜찮은데 빨래하기에 꼭 필요한 것이 나오지 않아서 불평이 많습니다." "그것은 무엇입니까?" "비누가 나오지 않아서 불평입니다." 탈무드에 보며 ‘세상에서 가장 현명한 사람은 배우는 사람이며, 세상에서 가장 강한 사람은 자기를 이기는 사람이며, 세상에서 가장 행복한 사람은 범사에 감사 하는 사람이다’ 라고 했습니다. 신구약 성경 가운데 「감사」라는 단어가 들u어 있는 구절이 약 178개가 됩니다. 그것은 성경은 우리에게 감사의 중요성을 강조 하고 있다는 것 입니다. 성경의 강조점은 하나님께 감사해야 된다는 것입니다. 브라질 사람들은 ‘오브리가도’(감사합니다) 라는 말을 입에 달고 삽니다. 가정이 나 직장에서 틈만 나면 ‘오브리가도’를 외칩니다. 그래서인지 일상에서 가장 많이 사용하는 언어가 ‘오브리가도’라고 합니다. 미국 사람들도 가장 많이 사용하는 말 이 ‘땡큐’(감사합니다)다. 그들은 남녀노소 할 것 없이 생활 속에서 작은 일에도 ‘땡큐’라고 말합니다. 미국에서 가장 많이 사용하는 언어 50개를 선별했는데, 그중에서도 ‘땡큐’가 28퍼센트로 1위를 차지했다. 이것은 감사가 몸에 배어 있음을 느끼게 합니다. 성인이 되면 평균 2만 6,000개의 단어를 알게 된다고 하는데, 그중 에 다른 사람을 가장 기쁘게 하는 최고의 언어가 ‘감사합니다’입니다. 물론 하나님 을 가장 기쁘시게 하는 인간의 언어도 ‘감사합니다’입니다. 그래서 유대인의 격언 중에 “‘감사합니다’라는 말이 혀에 붙기 전까지 아이에게 아무 말도 가르치지 말라 ” 라는 말도 있습니다. 지금으로부터 약 60년 전 지구촌 사람들에게 필요한 생활조건이 72가지가 있었고 절대 필요한 것은 18가지가 있었는데, 지금에 와서 필요한 것은 5백가지이며 절대 필요한 것은 50가지 라고 사회학자들은 분석합니다. 필요한 것과 절대 필요한 것을 더 많이 누리며 사는 현대인들이 과연 60년 전보다 더 행복할까요? 오히려 감사할 줄 모르며 불행하게 사는 것이 아닐까요? ‘시편 23편’ 다윗의 신앙고백이 나의 신앙고백이 되시기를 바랍니다. 1. 과거의 구원을 회상하며 감사하는 삶을 살아가는 성도가 됩시다. “여호와는 나의 목자시니 내게 부족함이 없으리로다. 그가 나를 푸른 풀밭에 누이 시며 쉴 만한 물 가로 인도하시는도다”(시 23:1-2). 2. 현재도 동행해 주심을 감사하는 삶을 살아가는 성도가 됩시다. “내 영혼을 소생시키시고 자기 이름을 위하여 의의 길로 인도하시는도다. 내가 사망의 음침한 골짜기로 다닐지라도 해를 두려워하지 않을 것은 주께서 나와 함께 하심이라 주의 지팡이와 막대기가 나를 안위하시나이다. 주께서 내 원수의 목전에 서 내게 상을 차려 주시고 기름을 내 머리에 부으셨으니 내 잔이 넘치나이다” (시 23:3-5). 3. 미래의 소망을 보며 전천후 감사하는 삶을 살아가는 성도가 됩시다. “내 평생에 선하심과 인자하심이 반드시 나를 따르리니 내가 여호와의 집에 영원히 살리로다”(시 23:6).
    - 많은 사람들은 감사를 모른다.
    문학가 오스카 와일드의 우화적 단편이 있다. 이 이야기는 예수께서 과거에 은혜를 입혀준 몇 종류의 사람을 그 후 다시 만나게 되었다는 이야기를 우화적으로 엮어본 것이다. 처음 예수는 한 주정꾼을 만난다. 그는 거의 폐인과 같이 된 젊은이였다. 예수께서 왜 그런 생활을 하고 있소 하고 물었더니 주정꾼은 이렇게 대답한다. 당신이 내가 절름발이였을 때 나를 일으켜 걷게 만들어 주었습니다. 그러나 걸어 다닌들 무엇을 먹고살라는 말이요, 그동안 직업을 구해 보았으나 만족한 직업 하나도 없었오. 그 다음 예수는 한 여자가 창녀가 되어 남자들 사이에서 희롱받고 있는 장면을 보게 된다. 예수는 여자에게 말한다. 어째서 이런 생활로 되돌아갔오. 창녀는 이렇게 말한다. 당신이 나를 창녀에서 건져 새 사람을 만들어준 것 같았으나, 창녀에서 발을 씻은들 무슨 행복이 있단 말이오. 나는 더욱 고독해서 살 수가 없었기 때문에 다시 창녀의 생활을 시작했오. 그 후 예수는 한 불량자가 정신 없이 이웃과 매질을 하고 있는 장면에 부딪힌다. 예수는 그에게 묻는다. 여보 청년. 어째서 이런 생활을 하고 있소. 불량자는 예수에게 이렇게 대답한다. 나는 당신이 눈을 뜨게 해 준 소경이었소. 그러나 눈을 뜨고 무엇을 보라는 거요. 보이는 것이 모두 신경을 돋구고 귀찮고 화나는 세상이 아니오. 결국 나는 화풀이도 하고, 마구 치고 받고 하는 생활이 나에게 주어진 길이라고 생각하였소. 이 단편은 은총을 은총으로 살려, 빛을 내지 못한 인간상을 그리고 있다. 인간이 하나님으로부터 받은 사랑은 참으로 거대한 것이다. 창녀에게서 구원되거나, 소경이 눈을 뜨는 이상의 큰 은혜를 우리는 입고 있다. 그러나 많은 사람들은 감사를 모른다. 감사란 입술로 하는 것이 아니라 받은 바 은혜를 깨닫고 그 은혜에 보답이 되는 새로운 생활로 자기를 전환시킬 때 감사의 의미가 비로소 살아나는 것이다.
    - 감옥과 수도원의 차이
    감옥과 수도원의 생활은 별로 차이가 없다. 그런데 감옥과 수도원의 차이는 단지 불평을 하느냐 아니면 감사를 하느냐의 차이일 뿐이랍니다. 거친 식사, 험한 잠자리… 환경은 비슷합니다만 감옥에서는 대개 불평만이 가득하고, 수도원은 감사로 하루가 지나간답니다. 사랑과 함께 감사하는 생활 자세는 그리스도인의 최대 덕목입니다.
    매주 14,000 여명의 회원님들에게 한번씩 보내는 칼럼입니다. 서울 강서교회 김창환 목사(문지기) 드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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