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엘리야의 업 다운 업 교훈

이동원 (서울북노회,성광교회,목사) 2018-11-08 (목) 07:41 5일전 145  

1. 엘리야의 업 다운 업( up down up) 교훈

엘리야의 우울증이라는 제목을 읽은 적 있다.

우울증은 세계적으로 널리 퍼진 병인 것으로 보인다. 특히 경제적으로 어느 정도 사는 사회에 있는 것 같다. 언젠가 미국에 우울증 통계의 기사를 보았는데 그것이 사실일까 하였다. 한국에도 많다는 기사를 보았다. 또한 세계의 알려진 유명인사 중에 우울증을 가진 인사들을 보았다. 인류에 공헌한 상당한 저명인사들이 있었다.

 

한편으로 그것은 당연한 면도 있다는 생각을 하였다. 현명하고 영적 존재인 인생들이 세상의 그 무엇을 어느 정도 파악하고 안다면 사람들은 누구나 우울증을 당연히 가질 수 있다는 것이다. 인생이 태어나서 무엇 때문에 살며 어디로 가는 것인가, 인생의 부귀영화가 다 무엇인가 인생의 못 다 이룬 꿈 앞에 우울하고,, 또 무엇을 이루었다고 하여도 다 그것을 다 놓고 세상을 떠나가는 것이 허무하고 , 죽기 살기로 뭔가를 이루려고 하다가 세상을 떠나가면서 다 부질 없는 일이라고 하는 사람들은 셀 수도 없을 것이다. 죽음으로 끝이라면 글쎄 인생은 누가 승리자라고 할 수 있을까. 현명한 사람들은 조금 생각해 보면 다 우울할 수 있는 것이다. 그러므로 그것을 해결하는 방법으로 그것을 잊기 위해서 무엇엔가 집중하고 즐기며 또한 인생이 만든 종교가 있지 않겠는가,

한편 우울증은 인생들만이 가진 것이기에 인생들은 영적 존재인 증거이기도 할 것이다.

먹을 것 입을 것만 있고 주인의 사랑을 받는다면 동물들이 어떤 우울증이 있겠는가, 자신의 존재 와 영원과 등등에 관해에 다른 동물들이 생각하고 고민하겠는가, 이것을 생각하고 인생의 어떤 의미를 찾는 것은 인간만이 영적 존재인 증거일 것이다.

 

신학도 시절 목회 심방 실습 중에 우리를 인도하는 그 목사님이 우리를 안내하면서 방문자의 형편을 알려주셨다. 지금 가는 그 분은 아직 젊은 분인데 우울증에 힘들어 한다는 것이다. 그녀는 명문여대에 여러가지 면에서 뛰어난 모습으로 학창시절을 장식하였다는 것이다. 그렇다면 그 얼마나 미래에 대한 기대하 희망차고 컸겠는가, 그런데 결혼하여 살면서 그 모든 이상과 기대가 차지 않으면서 얻은 그 무엇인 듯하다. 아마 결혼 후 밥하고 빨래하고 설거지 청소 등등 반복하며 학창시절의 이상과 기대가 다 사라지지 않았겠는가. 그 꿈과 기대는 다 어디가고 이렇게 사는 것이 꿈 많았던 내가 가는 길인가 하지 않았겠는가, 미래의 기대가 크고 화려하였을 수록 현재를 보며 내가 이러려고 그렇게 공부하였던가 하였을 수도 있을 것이다. 어쨌든 과거를 생각하며 극심한 우울증에 빠진 것으로 보인다. 또한 사실이 그러하다는 것이다. 약간의 우울증이야 정상적인 사람으로서 누가 없겠는가,

한편 그 때 그 시절 이전의 한 사상가는 명문 여대 졸업하고 농촌 계몽을 꿈이었지 농촌에 왔다. 그 때 그 여인에게 학창시절에 배운 철학자들의 이상에 대하여 지금은 어떻게 생각하느냐고 물었다는 것이다. 그 주부 왈 그 철학자들과 그 이상은 지금 다 물속에 빠졌다고 했다던가, 농촌에 시집을 와서 샘물을 두레박으로 긷고 있는데 어떤 저명한 철학자의 이름과 사상이 무슨 소용과 의미가 있고 도움이 되고 관심사가 되겠는가.

그녀에게 지금은 칸트냐 니체냐 물었을 때 그들이 그 학설들이 진즉 다 샘물속에 퐁당 빠졌다고 하였다던가, 물 긷는데는 물세지 않는 튼튼한 두레박과 힘찬 팔뚝 힘 그리고 잡아당기는 숙달된 기술이 필요하지 여러 철학자들의 그 이상과 학설이 별로 도움이 되지 않고 관심 밖일 것이다.

 

1. 엘리야는 우상숭배 가득한 이스라엘 북 왕국의 예언자로서 우상 숭배자 이세벨 왕후의 영향력이 덮고 있는 그 곳에서 고군분투 담대하게 여호와 하나님을 전한 대담한 인물이다. 그 인물은 결코 꺾이지 않은 강인한 신앙의 인물인 것을 볼 수 있다. 그런데 그 엘리야가 바로 절망하고 다운되어 이제 지치고 낙담하여 죽기를 간구하는 모습이다. 엘리야의 열심과 과감한 모습을 볼 때 전혀 그 답지 않은 우울한 마음 가득한 모습이다.

한편 너무나 과도한 과감한 대담한 캐릭터는 역으로 그가 바라는 그것을 이루지 못하였을 때 가장 낙심과 좌절을 하는 캐릭터 인 모습도 본다.

그 우상숭배의 상황에서 어쩌면 홀로 여호와 하나님과 그 살아계심 그 능력을 전하는 사람,

하나님의 약속대로 하늘의 비를 ,, 일곱 번 까지 기다려 ,, 즉 그 약속이 응답될 때 끝까지 엎드리어 기도하고 낙심하지 않은 인물 담대하고 심지어 좀 과격한 캐릭터가 아닌가 할 정도의 이 인물이 절망한 모습이다. 이것이 가장 담대한 사람의 한편의 내적 모습이었다.

 

신약에 변화산에서 모세와 함께 등장한 구약의 인물이기도 하다. 모세는 모세지만 왜 엘리야가 등장하였을까 궁금할 것이다. 율법을 대표하는 모세 그리고 예언자의 대표적 상징으로 엘리야가 나타났다고도 한다. 각각 율법과 예언자를 대표한다고도 한다. 어쨌든 변화산에서 변형된 예수님과 함께 대화 한 구약의 두 인물 중의 한 사람이기도 하다.

                                                               <성광교회 이동원 목사 드림>

 


=. 묵상 (medidation)

다음을 묵상하여 보자.

엘리야의 로뎀나무 아래서의 모습이다.

1. 하나님께서 엘리야의 낙심 혹은 우울증에 어떻게 대우하셨는가,(왕상19:1-8)

 

1. 이스라엘 북 왕국에 우상숭배가 가득찼을 때 참으로 담대한 캐릭터의 엘리야의 모습을 본다. 그러나 그도 놀라운 역사 와 승리 이후에도 계속된 도전 앞에 이제 드디어 자신이 절망하게 된다. 어떻게 보면 전혀 엘리야의 신앙의 캐릭터 답지 않는 모습이다. 오죽하면 이제 족하오니 하늘나라로 부르시기를 간구한다. 엘리야는 특별히 누구보다도 더 담대한 신앙의 보습을 보여주었고 큰 능력과 응답을 체험하였는가 그가 낙심한 것 이다. 그래 어쩌면 이제 모든 것을 체념하고 로뎀나무 밑에서 그대로 하늘나라로 직진하기를 기대하고 누워 잠을 자는 모습이 보인다.

엘리야의 절망과 달리 하나님께서는 그 후 어떻게 역사를 이루어 가셨는가 보자. 사람이 낙심하고 결론 내리기에는 세상 역사가 사람들의 생각이상의 하나님이 역사를 주관 인도하심을 어떻게 알 수 있을를 보자. (왕상19: ,

 

1. 그 후 누구를 통해서 계속 일하셨는가 보자. 예후는 어떤 케릭터 인가, 그는 무엇을 하는가, 그것이 결코 우연이라고 생각하는가, 엘리야는 낙심하였지만 어떠한 역사들이 있었는가 보면 어떤 교훈을 얻을 수 있을까 묵상해 보자.

우울증이 있었다는 링컨, 미국에서 링컨은 예수님 다음으로 존경을 받는다는 이야기도 있었다. 물론 예수님을 존경의 대상으로 보는 것은 그러하지만 세속의 눈으로 판단하는 것이기에 그렇다. 어쨌던 이러한 링컨도 우울증이 있었다는 것이다.

어쩌면 우울증은 인생의 세속적인 의미만 생각하면 누구나 가질 수 있는 현상이다라고 생각할수 있을 것이다. 전무 후무한 지혜자 솔로몬도 전도서 시작에 헛되고 헛되고를 여러번 반복하지 않았던가, 해 아래서는 하나님 신앙의 인생본문이 아니라면 인생은 헛되다고 시작하고 있는 것이다. 이러한 점에서도 인생은 영적 존재 영적인 존재를 찾고 교통하는 존재인 것을 알 수 있다.

                                                                                      ( - ing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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