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개정 번역과 국어 8 - 부르짖음, 대적, 명하다

이동원 (서울북노회,성광교회,목사) 2018-11-29 (목) 07:40 5년전 1556  

1, 울부짖다과 부르짖다

12;30 .. 큰 호곡 ,,

12:30 그 밤에 바로와 그 모든 신하와 모든 애굽 사람이 일어나고 애굽에 큰 호곡이 있었으니 이는 그 나라에 사망치 아니한 집이 하나도 없었음이었더라

12:30 Pharaoh and all his officials and all the Egyptians got up during the night, and there was loud wailing in Egypt, for there was not a house without someone dead.

( 개정은 부르짖음으로 수정하였는데 이것은 아니다. 부르짖음은 하나님께 신께 부르짖는 것이다. 여기서는 그 고통에 울부짖는 것이다. 적절한 국어 사용인지 보아야 할 것이다. 이 책은 경전이고 전 국민이 볼 수 있는 그리고 초등학생들도 보고 있다. 초등에 배운 단어는 평생 갈 수도 있는 것이다. 정확한 단어를 사용하여야 함은 아무리 강조하여도 지나치지 않다. 더구나 경전 번역에서는 정확한 단어 선택은 필수적이라 할 것이다. 성도의 평생에 그리고 초등학생의 평생에 그 단어는 사용되고 기억되기도 하는 것이라는 것을 알아야 할 것이다. )

(출11:6,)

애굽 전국에 전무후무한 큰 곡성이 있으리라'

There will be loud wailing throughout Egypt--worse than there has ever been or ever will be again.'

개정은 큰 부르짖음 으로 수정하였는데, 여기에서 큰 곡성 , 또는 큰 울부짖음이면 몰라도 어떻게 부르짖음이라는 단어가 나오는가, 더구나 수정까지 하여서, 내용적으로 문맥적으로 큰 곡성 큰 울부짖음이 맞다할 것이다. 누구에게 부르짖었다는 것인가,      

 

(* 울부짖다과 부르짖다.

부르짖는 것은 하나님께 부르짖는 것이고 울부짖는 것은 자신들이 고통을 그냥 울부짖는 것이다. 이것은 일반 상식적인 지식일 것이다. 그런데 경전 개정 번역 팀은 그 단어의 구분을 못하는 것 같다. 더구나 잘 번역된 부분을 부르짖는다고 수정한 것이다. 부르짖는 것은 하나님께 신께 부르짖는 것을 말하는 것이다. 그러한 내용이 아닌데 호곡 곡성 울부짖음의 내용을 부르짖음으로 수정한 것이다. 이것은 그 내용의 이해 그리고 국어가 부족하다고 볼 수 밖에 없을 것이다.

성경을 좀 더 잘 아는 분들이 이것을 보고 읽으면서 어떠한 심정이겠는가, 말로 표현할 수 없을 정도 일 수도 있다


초신자나 초등학생이 그야말로 경전을 읽으면서 정확한 언어를 배울 수 있는데 단어가 적절하지 않다면 그들에게 어떠한 영향을 주겠는가, 이것은 평생갈 수 도 있다. 부르짖는다는 다음에서 정확한 내용을 볼 수 있다.)


1. 부르짖음은 울부짖음과 달리 부르짖는 대상이 있는 것이다.

부르짖음은 하나님께 부르짖는 것이다. 부르짖는 대상이 있다. 다음을 보자. 

3:7,9

여호와께서 가라사대 내가 애굽에 있는 내 백성의 고통을 정녕히 보고 그들이 그 간역자로 인하여 부르짖음듣고 그 우고를 알고'

3:7 The LORD said, "I have indeed seen the misery of my people in Egypt. I have heard them crying out because of their slave drivers, and I am concerned about their suffering. 

3:9 이제 이스라엘 자손의 부르짖음이 내게 달하고 애굽 사람이 그들을 괴롭게 하는 학대도 내가 보았으니 

3:9 And now the cry of the Israelites has reached me, and I have seen the way the Egyptians are oppressing them.

               

22:23

22:23 네가 만일 그들을 해롭게 하므로 그들이 내게 부르짖으면 내가 반드시 그 부르짖음을 들을지라.

22:23 If you do and they cry out to me, I will certainly hear their cry.

 

1. 누가 우리의 원수이고 적군이라는 말인가,

원수를 사랑하라고도 하셨다. 대적이지 원수는 부적절하다. 개역 성경이 잘 번역하였다.

개역의 대적 이라는 말은 적절하게 번역한 것이다. 개역의 대적을 , 개정은 원수 또는 적군으로 수정하였다.

 (출15:9')

대적의 말이 내가 쫓아 미쳐 탈취물을 나누리라, 내가 그들로 인하여 내 마음을 채우리라, 내가 내 칼을 빼리니 내 손이 그들을 멸하리라 하였으나' ( 개정은 대적을 원수로 수정하였다.)

15:9 "The enemy boasted, 'I will pursue, I will overtake them. I will divide the spoils; I will gorge myself on them. I will draw my sword and my hand will destroy them.'

 

(신20:1 )

네가 나가 대적과 싸우려 할 때에 말과 병거와 민중이 너보다 많음을 볼지라도 그들을 두려워 말라 애굽 땅에서 너를 인도하여 내신 네 하나님 여호와께서 너와 함께 하시느니라 ( 개정은 개역의 대적을 적군으로 수정하였다.)

20:1 When you go to war against your enemies and see horses and chariots and an army greater than yours, do not be afraid of them, because the LORD your God, who brought you up out of Egypt, will be with you.

하나님의 구원역사를 방해하고 도전하고 공격하는 대적 하나님의 백성인 우리를 공격하는 대적이라는 단어가 적절하다. 원수가 누구인가 원수를 사랑하라고까지 하지 않으셨는가, 원수라는 단어보다 대적이라는 단어가 당연히 적절하다. 개정 번역은 잘 번역 된 단어를 잘 이해를 못하였는지 수정하였는데 이 부분역시 그러하다.

( 개역의 대적 이라는 말은 적절하게 번역한 것이다.

그러나 개정의 원수는 문제가 있다. 성경은 이웃 사랑은 물론 서로 사랑하라하였다. 그것이 하나님을 사랑하라는 명령과 함께 가장 큰 계명이라고 하셨다. 예수님께서는 심지어 원수를 사랑하라고 하셨다. 이것은 믿지 않은 사람들에게도 놀라움을 주는 계명으로 늘 회자되고 있다.

그런대 본문의 개정은 대적을 원수라는 단어로 바꾸었다. 예수님의 원수를 사랑하라는 말과 일치한다고 보는가.

이렇게 성경은 원문과 성경 전체와 문맥에서의 내용을 보아야 하는데 부분적 구절을 번역자의 자기 수준에서 수정하다보면 성경 전체와 연결이 안되고 내용 전달에 부족함이 있게 되는 것이다. 읽는 분들이 읽다가 얼마나 걸림돌이 될 수 있겠는가,) 


( 개정은 대적을 원수로, 적군으로,

하나님의 백성에게 원수가 누구인가,, 원수를 사랑하라고 하셨다,,

적군은 누구인가, 우리를 공격하는 대적이라야 , 전제 성경과 일치한다. 하나님의 구원역사의 행진을 방해하고 공격하는 대적을 말하는 것이다. 어떤 사람들을 원수 적군이라는 것인가, 성경은 원수를 사랑하라고 하셨다. 원수로 규정된 누가 아니라 하나님의 구원의 행진을 대적하는 대적인 것이다. 원수와 적군으로 수정한 것은 원어와 국어실력 성경이해가 너무나 부족하다 할 것이다.)  

( 그런데 개정은 원수로 수정하였다. 그것은 적절하다 할 수 없다. 예수님은 원수를 사랑하라고 하셨다. 믿는 자에게 누가 원수인가, 그런데 본문의 개정은 대적을 원수라는 단어로 바꾸었다. 예수님의 원수를 사랑하라는 말과 일치한다고 보는가. 개정의 원수는 문제가 있다. 성경은 이웃 사랑은 물론 서로 사랑하라하였다. 그것이 하나님을 사랑하라는 명령과 함께 가장 큰 계명이라고 하셨다. 예수님께서는 심지어 원수를 사랑하라고 하셨다. 이것은 믿지 않은 사람들에게도 놀라움을 주는 계명으로 늘 회자되고 있다. 예수님의 원수를 사랑하라는 말과 일치한다고 보는가, 성경은 원문과 성경 전체와 문맥에서의 내용을 보아야 하는데 부분적 구절을 번역자의 자기 수준에서 수정하다보면 성경 전체와 연결이 안되고 내용 전달에 부족함이 있게 되는 것이다. 읽는 분들이 읽다가 얼마나 걸림돌이 될 수 있겠는가,)


1.명하시는 것 과 말씀 하시는 것,,

말씀하시는 것은 교통하는 뜻이 담겨 있고, 하시는 것은 일방적으로 이고 순종 복종해야 하는 뜻은 상식 일 것이다.

물고기에게 말씀하시고 ,, 물고기가 그 말씀을 듣고 아 제가 토하겠습니다, 하고 토하는 것인가,,

      

명하시매가 적절할 것이다. 말씀하다는 커뮤니케이션 교통의 뜻이 있다할 것이다. 그러므로 사람이 아닌 물고기에게 명하시다가 적절하다 할 것이다. 잘 번역된 개역을 무엇이 어떠하다고 수정하였는지 모른다.

2:10 여호와께서 그 물고기에게 명하시매 요나를 육지에 토하니라 (개역)

2:10 여호와께서 그 물고기에게 말씀하시매 요나를 육지에 토하니라 (개정)

      

이 정도는 한국인의 국어 상식아니겠는가,,어떻게 물고기에게 명한다고 하지 말씀한다고 하는 것인가, 말씀은 교통 ,, 인격적 교통의 뉘앙스가 있다. 물고기와 교통하고 대화하고 기도하고 응답하고 하는 것인가.

그리고 원어 뿐 아니라 문맥에서 그 뜻이 무엇인지 알 수 있다. 즉 단어의 뜻보다 문맥의 흐름에서 정확한 뜻을 알 수 있다.

            

1. 큰 물고기에게 명하시다가 자연스럽고 맞을 것이다. 개정은 물고기에게 말씀하시다 라고 수정하였는데 누구에게 말씀하다는 상호교통의 커뮤니케이션의 성경이 있다. 물고기에게 명하시매를 말씀하시다로 수정한 것은 부자연스럽고 적절하지도 않을 것이다.

사람만이 자유의지를 가지고 있다. 사람이 자유의지를 가지고 있고 하나님이 허락하신 것이 아니라면 성경이해에 많은 어려움이 있을 것이다. 하나님이 사람을 기계적인 존재로 만드신 것이 아니라 자유의지로 선택할 수 있게 하셨다. 선악과는 따먹지 알라는 명령의 예는 자유의지를 주시고 선택하게 하시는 가장 대표적인 예일 것이다. 물론 그 결과도 자기가 책임지는 것이다. 첫 사람 뿐 아니라 바로 왕, 가나안 칠족, 가롯 유다의 경우의 예에서도 인간에게 주시는 자유의지를 가진 선택과 그 책임을 볼 수 있다.하나님께서 선약과를 만드시지 않았거나 따먹을 때 강하고 찌르는 경고음이 들리게 하여 막지 않으셨다는 것이다.

   

전반적으로 이러한 실력을 잘된 참으로 잘 번역된 성경 특히 어려운 구약,, 알고 보니 이렇게 잘 준비된 번역자를 찾기 힘든,, 하나님이 준비시킨 것으로 보는데, 한국 교계는 말씀에 성장보다도 이왕 믿는 성도분들 자신들이 교회로 수평이동 성장에 올인하므로,, 경전이 어떻게 개정이 되었는지도,,

우리가 노래를 부르듯이 그리고 자성하여야 할 것은 한국의  초대교회는 각개교회 수평이동성장을 전혀 생각지도 않았다 온 민족의 복음화를 위하여 모두가 함께 하였다는 것이다. 그 결과가 어떠하였고 수평이동 교회성장에 올인한 이 이후가 어떠하였는가를 보고 깊이 자성하는 바가 있어야 할 것이다.

 

( 개정 번역의 수정은,

원문 이해부족

성경 전체의 연관 이해 부족

국어의 부족 , 별 의미 없는 부분 그리고 문제있는 데 개정을 위한 개정 , 너무나 가볍고 경솔한 모습도 보인다.

잘 번역 된 개정을 통해서 받는 은혜를 생각하며 읽는 중에 어느날 갑자기 단어가 이상하게 바뀐 단어을 읽는 심정이 어떠하겠는가, 국어의 적절한 단어가 아닌 것으로 배우며 평생을 가는 것은, 차라리 어려운 단어는 어휘확장에도 좋을 수 있다. 그러나 공인 된 한권의 경전에서 적절치 않거나 부정확한 용어나 그 이상이라면 이를 어찌하리오.


만약 다시 수정한다면 개역 판을 근거로 극히 일부분 잘 검증하여 번역하여 개정판을 내어놓으면 된다, 찬송가도 마찬가지이다. 가사 중 하나님의 아들이 사람의 몸을 입으사 라는 가사가 있는 듯 하다. 그렇다면 하나님이 두 분으로 오해할 수 있다. 하나님이 사람의 몸을 입으사가 성경적인 정확한 내용이라 할 것이다. 최종 가사를 감수하는 분들이 감수할 때 검토 수정하였어야 할 부분이었을 것이다.)                                                  

 

1. 성경 수정의 몇 군데를 보면 그 번역자의 신앙 신학 국어실력 성경이해 등등에 대해서 알 수 있다. 가령 개역 성경의 소자라는 단어를 작은 자라고 수정을 한 것도 그 한 예에 속한다. 소자가 작은 자라는 뜻도 있겠지만 신약 성경의 내용에서 원문에 아들을 뜻하는 '소자' 까지도 작은 자라는 수정을 보았을 때 원문을 보았을까, 권위있는 번역의 영어성경 번역을 보았을까, 아들을 의미하는 소자가 작은 자로 번역한 아니 수정 한 것을 보며 그 실력을 알 수 있다. 하나를 보면 열을 알 수 있다는 말이 있는데 많은 다른 수정의 부분은 어떠할까, 그러한 내용을 잘 모르고 있는 것인지, 다시 한번 가장 처음 완간 된 전서가 거의 완벽하게 잘 번역이 되었다는 것이다. 물론 극히 일부 수정을 하고 고어가 있으면 그것은 수정을 할 수도 어떤 부분은 어휘력 향상에도 좋다고 이미 언급하였다.

다시 한번, 최초의 한국 개역 성경 전서는 하나님께서 한국인에게 그리고 성도에게 주시는 은총의 선물이 아니었는가 연구해 보아야 할 것이다.

그것은 성경을 읽는 믿는 모든 분들에게는 물론이지만 한국의 역사에서 한글 발전등의 문화적인 면에서도 그 공헌은 말로 다 표현할 수 없을 것이다. 그럼에도 번역자와 번역팀은 드러나지 않고 그 오직  말씀만이 드러나게  것은 깊은 인상을 주고 의미 깊다고 할 것이다.

                                                                                              

                                                           < 성광교회 이동원 목사 드림>

=. 묵상 ( meditation)

하나님은, 하나님의 말씀은

갇히지 않고 매이지 않고 시간과 공간을 초월해서 언제 어디에서나 임하시는 것을 알 수 있다.

다음은 예레미야가 시대적으로 장소적으로 환경적으로 어떠한 상황에서 임하신 말씀인가 생각하며 묵상해 보자.

 

(렘33: 1-3 )

33:1 예레미야가 아직 시위대 뜰에 갇혔을 때에 여호와의 말씀이 그에게 다시 임하니라 가라사대 

33:2 일을 행하는 여호와, 그것을 지어 성취하는 여호와, 그 이름을 여호와라 하는 자가 이같이 이르노라 

33:3 너는 내게 부르짖으라 내가 네게 응답하겠고 네가 알지 못하는 크고 비밀한 일을 네게 보이리라

33:1 While Jeremiah was still confined in the courtyard of the guard,

the word of the LORD came to him a second time: 

33:2 "This is what the LORD says, he who made the earth, the LORD who formed it and established it--the LORD is his name: 

33:3 'Call to me and I will answer you and tell you great and unsearchable things you do not know.'             

                                                                         (  - ing)
    # 줄  간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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