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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경의 질문들과 자유의지 2

이동원 (서울북노회,성광교회,목사) 2018-12-07 (금) 08:13 10일전 146  

(9:17)

' 성경이 바로에게 이르시되 내가 이 일을 위하여 너를 세웠으니 곧 너로 말미암아 내 능력을 보이고 내 이름이 온 땅에 전파되게 하려 함이로라 하셨으니 '

 

1. 구약의 애굽 왕 바로는 끝까지 하나님의 명령을 거부하는 강팍으로 온 세상에 하나님의 살아계심과 능력이 전파되었다고 하였다.

그렇다면 바로가 참 좋은 일을 하였다는 것이다. 하나님의 명령을 여러 번 받아드리지 않은 것이 참 잘한 일이라는 것인가, 바로가 선교의 큰일을 하였다고 칭찬할 수 있겠는가, 하나님이 바로의 강퍅을 사용하신 것이지 바로의 강퍅이 칭찬받을 선한 일을 하였다고 말 할 수는 없는 것이다.

한편 개역의 강팍을 개정은 완악이라고 수정하였는데 그렇다면 바로를 완악하게 하신 하나님이 책임이 있다는 것으로 오해 할 수 있다. 하나님이 악하게 하셨다면 바로가 잘못한 것이 아니라 완악하게 하신 하나님이 책임이 있는 것이 아니냐는 오해를 갖을 수 있다. 또한 하나님께서 그의 형상대로 존귀하게 창조하신 인생에게 주신 자유의지를 주신 것을 알지 못한다면 이해가 어려울 수 있다.

하나님게서 존귀하게 창조하신 인생들은 자유의지를 가지고 자신이 판단하여 행하고 그 결실도 자신이 갖는 것이다. (신30:19-20, 32:46-47)

바로를 강팍케 하셨다는 뜻은 그가 하나님을 불순종하고, 하나님 두기를 싫어하매 그 상실한 마음대로 내어 버려 두신 것을 알 수 있다.

(롬1:28) ' 또한 저희가 마음에 하나님 두기를 싫어하매 하나님께서 저희를 그 상실한 마음대로 내어 버려 두사 합당치 못한 일을 하게 하셨으니'

Furthermore, since they did not think it worthwhile to retain the knowledge of God, he gave them over to a depraved mind, to do what ought not to be done.'

(시81:12)
그러므로 내가 그 마음의 강팍한 대로 버려 두어 그 임의대로 행케 하였도다'

So I gave them over to their stubborn hearts to follow their own devices.'


2. 예수님의 제자 중 유다가 예수님을 배반하며 팔므로 하나님의 구원역사에 선한 일을 하였다고 할 수 없다. 유다가 선한 일을 한 것이 아니라 하나님이 그것을 선으로(good) 바꾸신 것이다. 유다가 아니어도 예수님은 메시야 그리스도로서 십자가에 대속의 죽으심을 죽으셔야 하고 죽으실 것이다. 그러나 그 일에 역할을 하는 행동이 결과가 좋다고 선한 행동이 되는 것이 아니다.

(마26:24)

인자는 자기에게 대하여 기록된 대로 가거니와 인자를 파는 그 사람에게는 화가 있으리로다 그 사람은 차라리 나지 아니하였더면 제게 좋을 뻔하였느니라 (비, 막14:21)

' The Son of Man will go just as it is written about him. But woe to that man who betrays the Son of Man! It would be better for him if he had not been born.'

(눅22:22)

인자는 이미 작정된 대로 가거니와 그를 파는 그 사람에게는 화가 있으리로다 하시니'

The Son of Man will go as it has been decreed, but woe to that man who betrays him.'  

 

3. 베드로가 예수님을 세 번이나 부인하였다.

예수님을 이미 그것을 아셨다. 닭 울기 전에 세 번 나를 부인하리라고 하셨다. 예수님이 닭을 울지 않게 하시거나 베드로를 기계적으로 부인하지 않게 하지 않으셨다. 자유의지를 가지고 자신이 선택하고 결단하고 그 책임을 자신이 지는 것이다. 베드로는 그 마음과 달리 연약하여 세 번이나 부인하고 예수님의 말씀이 생각이 나서 통곡한 것이다. 인간의 연약 함 때문이었다. 자신의 연약함을 깨닫고 믿음이 약하여지지 않게 하신 것이다.

예수님은 베드로가 닭이 울기 전에 예수님을 세 번 부인하리라는 것을 아셨다. 하나님 만이 가지고 계시는 전지 모든 것을 아시는 속성을 볼 수 있다. 그렇다면 왜 그것을 미리 막지 않으셨을까, 하나님께서 인간에게 주신 자유의지를 알지 못한다면 이해하기 힘들 것이다. 하나님께서도 인간의 자유의지를 제한하시지 않을 것을 알 수 있다. 만약 하나님께서 자유의지를 제한 통제 한다면 세상은 단지 기계적으로 돌아갈 것이다. 어떤 의지도 의식도 없이 무의미한 기계적인 반복만이 있을 것이다.

 

( 26:33-35)

( 막15:66-72)

한편 마가는 베드로의 통역자이기도 하였기에 이 베드로 자신의 예수님을 세 번이나 부인한 장면을 가슴 아프게 가장 절실하게 마가에게 말하였을 것이고 그것을 가장 정확히 기록하였을 것이다.

부인하고

또 부인하고

저주하며 맹세하며 부인하였다는 것, 그리고 통곡하였다는 것,

마가는 이것을 누구에게 들었겠는가, 베드로가 가슴 아픈 회고의 고백으로 마가에게 들려주었다는 것은 명백하다 할 것이다. 어쩌면 이 장면을 몇 번인가 자책하는 마음으로 마가에게 들려주었을지 모른다. 그 능력을 보고 그렇게 사랑을 받은 자신이 세 번이나 또 또 저주하며 맹세까지 하며 부인하였다는 것을 어쩌면 자주 울면서 통역자이며 아들이라고 까지 한 마가에게 말하여 주었을지도 모른다. 베드로는 마가를 아들이라고도 하였다. 혈통적 아들이 아니라 믿음의 아들이라는 것이다. (벧전5:13)

베드로는 이러한 자신의 모습에 자신의 약함을 통렬하게 알았을 것이고 누구를 의지해야 하는지를 가장 깊게 배웠을 것이다.

 

예수님께서 베드로에게 세 번이나 네가 나를 사랑하느냐 물으시고 세 번이나 내 양을 치라. 명령하셨다.

이러한 물음과 사명 주심에 예수님은 그러한 베드로의 모든 것을 그의 통곡의 울음까지도 이미 아셨던 것을 알 수 있다.

 

4. 바울의 행동에 자신이 자유의지를 가지고 선택하고 결단한 것이다.

주님은 교회 핍박에 여전히 살기 등등한 바울에게도 기계적으로 하시거나 졸도케 하거나 쓰러트려 막지 않았다.

단지 사울아, 사울아 왜 나를 핍박하느냐 하며 말씀하셨다. 그리고 사울 자신이, 하나님이 주신 자유의지를 가지고 알고 선택 결단 행동하게 하신 것이다.

(9:4-6)

 (고전2:9)

예수님께서 제자들에게 자신이 그리스도 즉 메시야라는 것을 밝히면서도

아직은 아무에게도 알리지 말라고 하신 것은 그들이 어떤 메시야인지를 잘 모르고 있기 때문이다. 메시야의 고난 대속의 죽으심 부활 성령강림 영원히 믿는 자 안에 거하시는 메시야 그리스도로 아직 알지 못하기 때문이다.

그러므로 예수님께서 죽으시기 전날 밤에 제자들에게도 아직도 이를 것이 많으나 너희가 감당하지 못할 것이지만 성령이 오시면 모든 것을 알게 될 것이라고 하셨다. 그 시점은 성령이 오시기 전이기에 메시야의 내용에 대해서도 잘 알지 못하고 설명해도 이해하기 힘들었기 때문이었음을 나중에야 알 수 있을 것이다. 이러한 메시야 그리스도 이셨구나를 성령이 오시고 더욱 분명이 모든 것을 알게 되었던 것이다. 제자들까지도 그 놀랍고 엄청난 내용의 메시야 이심을 몰랐던 것이다. 그래서 예수님의 승천 직전까지 제자들은 그들이 알고 있는 메시야 관으로 말하고 있었던 것이다. (행1:4-8, 고전2:9)

 

5. 내어 버려 두사,, 강제적으로 기계적으로 하게 하시지 않으 신다는 것이다.

자유의지를 가지고 자발적으로 감사하고 찬양하는 것을 기뻐하시는 것이다. 그것을 기뻐하시는 것이다. 동사무소에 로봇에 옷 입혀서 인사하는 기계를 보았다. 그것을 보고 그 로봇에게 같이 웃으며 반가워하며 인사하겠는가, 자유의지를 가진 사람들이 자신의 의지를 담아 인사하여야 서로의 기쁨이 되는 것이다. 로봇의 인사를 누가 기뻐하며 같이 인사하겠는가.

하나님과 인생의 관계도 기계적인 교통이 아니라 자유의지를 가진 인생들과의 자발적인 인격적 교통인 것이다.

 

자동적으로 기계적으로 완벽하게 살게 하셨다면 기계나 로봇이 될 것이다.

기계나 로봇은 죄를 짓지 않을 것이다. 기계는 기계에 입력한대로 작동할 것이다. 하나님을 사람을 그렇게 창조하신 것이 아니다.

1:21-22, 25,28,

바로를 강퍅케 한다는 것은 상실한 마음으로 내어버려 두신 것을 알 수 있다. 하나님께서는 불순종한 사람들을 자유의지를 제한하여 기계적으로 어떻게 하신 것이 아니다. 사람을 기계로 로봇으로 창조하지 않으셨다는 것이다. 자유를 주시고 그 자유로 자신이 결단하고 행하게 하신 것이다.

 

1:28 또한 저희가 마음에 하나님 두기를 싫어하매 하나님께서 저희를 그 상실한 마음대로 내어 버려 두사 합당치 못한 일을 하게 하셨으니

1:28 Furthermore, since they did not think it worthwhile to retain the knowledge of God, he gave them over to a depraved mind, to do what ought not to be done.(niv)

1:28 And even as they did not like to retain God in their knowledge, God gave them over to a debased mind, to do those things which are not fitting; (nkj)

 

1:28 And just as they did not see fit to acknowledge God any longer, God gave them over to a depraved mind, to do those things which are not proper,

바로를 강팍케 하신다는 것은 그가 하나님을 불순종하고, 하나님 두기를 싫어하매 그 상실한 마음대로 내어 버려 두신 것을 알 수 있다.


6. 사람을 의심하지도 않고 두려워하지도 않게 죄도 짓지 않게 기계적으로 만드신 것이 아니다. 모든 것이 가하나 모든 것이 유익한 것이 아니라는 것이다. 자발적으로, 자원하여 하나님을 사랑하며 그의 뜻대로 하면 결국에는 모든 것이 합력하여 선을 이루신다는 것이다. 이것이 신앙인의 역사관이다.

( 창50:20, 롬 8:28)

 

7. 무슨 말씀을 하시든지 그대로 하라.

( 요2:1-11)

예수님께서 항아리에 물을 채우라고 하셨을 때

하인들이 포도주가 부족한데 무슨 물을 채웁니까 할 수 있다. 그러나 물을 채우고 연회장에게 갖다 주라 하였을 때 그대로 하였다. 사람은 할 수도 있고 안할 수도 있다.

아 이거 항아리에 채운 것이 맹물인데 갖다 주어도 되겠습니까, 우리는 저는 사양 하겠습니다 하였다면 더 좋은 포도주를 얻을 수 없었을 것은 너무나 분명하다. 그러나 그대로 하므로 더 좋은 결과를 가져오게 한 것이다.

인생은 자유의지를 가지고 할 수도 있고 안 할 수 도 있는 자유의지를 가지고 말씀하신 그대로 하는 순종의 결단이 있을 때 더 좋은 포도주 그리고 다시 잔치 집은 웃음 꽃 가득 하였던 것이다.

하나님의 창조는 혼돈과 공허와 흑암에서 말씀하시매 그대로 되어

날마다 하나님 보시기에 좋은 (good)  심히 좋은 (very good) 모습으로 창조하셨다.

하나님의 이러한 속성은 즐거워야 할 가정에 부족과 문제 있었으나

예수님 초청하여 거기계시고 말씀 그대로 하므로 부족과 문제 속에서도 풍족하고 좋은 결실이 있게 되었다.

오늘도 주님을 초청하여 주님의 말씀 그대로 하므로 우리의 가정 교회 나라 위에 기쁨 가득할 좋은 일이 가득하기를  기원하며,,


(요2:5,10)

' 그 어머니가 하인들에게 이르되 너희에게 무슨 말씀을 하시든지 그대로 하라 하니라 / 말하되

사람마다 먼저 좋은 포도주를 내고 취한 후에 낮은 것을 내거늘 그대는 지금까지 좋은 포도주를 두었도다 하니라'

                                                             < 성광교회 이동원 목사 드림>


=. 묵상 (meditation)

(요2:5-11)

2:5 그 어머니가 하인들에게 이르되 너희에게 무슨 말씀을 하시든지 그대로 하라 하니라

2:6 거기 유대인의 결례를 따라 두 세 통 드는 돌항아리 여섯이 놓였는지라

2:7 예수께서 저희에게 이르시되 항아리에 물을 채우라 하신즉 아구까지 채우니

2:8 이제는 떠서 연회장에게 갖다 주라 하시매 갖다 주었더니

2:9 연회장은 물로 된 포도주를 맛보고 어디서 났는지 알지 못하되 물 떠온 하인들은 알더라 연회장이 신랑을 불러

2:10 말하되 사람마다 먼저 좋은 포도주를 내고 취한 후에 낮은 것을 내거늘 그대는 지금까지 좋은 포도주를 두었도다 하니라

2:11 예수께서 이 처음 표적을 갈릴리 가나에서 행하여 그 영광을 나타내시매 제자들이 그를 믿으니라

2:5 His mother said to the servants, "Do whatever he tells you."

2:6 Nearby stood six stone water jars, the kind used by the Jews for ceremonial washing, each holding from twenty to thirty gallons.

2:7 Jesus said to the servants, "Fill the jars with water"; so they filled them to the brim.

2:8 Then he told them, "Now draw some out and take it to the master of the banquet." They did so,

2:9 and the master of the banquet tasted the water that had been turned into wine. He did not realize where it had come from, though the servants who had drawn the water knew. Then he called the bridegroom aside

2:10 and said, "Everyone brings out the choice wine first and then the cheaper wine after the guests have had too much to drink; but you have saved the best till now."

2:11 This, the first of his miraculous signs, Jesus performed at Cana in Galilee. He thus revealed his glory, and his disciples put their faith in him.

                                                                              ( - ing)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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