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예수님의 세 제자

이동원 (서울북노회,성광교회,목사) 2018-12-14 (금) 08:43 5년전 2638  

예수님께서는 그의 열 두 제자 중 어떤 곳은 세 사람만 데리고 가실 때가 있었다.

약 성경에 예수님께서 세 번 정도 어떤 곳에 세 제자만 데리고 가신 기록을 볼 수 있다는 것이다. 오히려 그 세 제자들이 어떤 역할을 하였나 본다면  세 제자를 좀 더 특별한 임무를 맡기기 위한 교육을 시키신 것이 아닌가 생각할 수 있다. 그것은  다른 제자보다 더 사랑하거나 특별 대우하려는 목적은 아닌 것이 분명하다. 그들에게 소위 세상 부귀 권력 더 누리게 하시려는 이유가 아닌 것이다. 열 두 제자 중 더 무거운 짐을 맡길 준비 훈련이라고 할 수 있다는 것이다. 세상 군대용어로 말한다면 표현이 좀 그러하지만 특공대 또는 특별교육 훈련이라 할까 하는 것이다. 물론 죽은 소녀에게 일어나라고 하신 곳은 넓지 않은 방이었기에 형편상 그 곳에 제자들이 다 들어갈 수 없었을 수도 있다. 

세 제자들의 좀 더 특별했던 역할을 보자.

 

1. 베드로는 주의 복음을 전하다가 십자가에 달려 순교했다고 알려졌다. 성경에 기록이 된 것은 아니지만 자신은 감히 예수님과 같이 십자가에 매달릴 수가 없다고 거꾸로 매달리겠다고 하여 거꾸로 십자가에 매달려 순교했다는 전해져 내려 온 이야기가 있다.

(요21:19 )

' 이 말씀을 하심은 베드로가 어떠한 죽음으로 하나님께 영광을 돌릴 것을 가리키심이러라 이 말씀을 하시고 베드로에게 이르시되 나를 따르라 하시니'

Jesus said this to indicate the kind of death by which Peter would glorify God. Then he said to him, "Follow me!" (21:19)

한편 그는 복음을 전한 이유로 감옥에 갇혀 순교직전에 초자연적으로 풀려 난 자세하고 생생하고 놀라운 장면도 있다. (12:)

 

예수님의 제자 중 요한의 형제 야고보는 제자 중 최초로 순교를 당하였다. 헤롯이 이 야고보를 죽이니 유대 백성들이 좋아하여 베드로까지 잡아 죽이려고 하였던 것이다. 그러므로 베드로도 이때 백 프로 순교당할 즈음에 참으로 기적적으로 살아났다.


이 세 사람 중 그리고 열두 제자들의 리더라고 할 수 있는 베드로의 복음서는 왜 없고 서신서만 있나 할 것이다. 그러나 거기 서신서에도 알찬 내용이 담겨 있다. 또한 복음서 중 마가복음은 베드로의 영향을 많이 받은 베드로와 함께 기록하였다고 하여도 과언이 아닐 것이다. 왜냐하면 마가는 베드로의 통역자로서 동역을 하였기 때문이다. 또한 베드로는 마가를 내 아들이라고 하기도 하였다. 이러한 점을 볼 때 마가복음은 베드로가 예수님으로부터 보고 듣고 받은 말씀과 내용을 상세하게 들었을 것이다. 통역자는 그 말한 사람을 잘 알아야 한다. 그리고 전하는 메시지를 통역하면서 일심동체가 되었을 것이다. 요즈음도 통역자가 통역할 때 억양과 심지어 제스추어까지 같이 할 정도로 일심동체이어야 그 전하는 분의 말의 내용을 거의 그대로 잘 전할 수 있다는 것이다. 그런데 이 마가가 베드로의 통역자였다는 것이다.

이미 언급한 바 있지만 막1:1절은 베드로의 신앙고백의 내용이다. 그리고 마가복음의 내용이 좀 더 강하고 간결체인데 이것도 베드로의 모습에서 볼 수 있기도 하다. 마가복음은 베드로가 직접 쓴 것은 아니어서 베드로 복음이라고 하기는 그러하지만 베드로와 공저라고 해도 과언이 아닐 것이다. 왜냐햐면 마가복음을 기록한 마가는 베드로의 통역자로서 베드로의 전한 말을 듣고 통역하였기 때문이다. 베드로가 생생하게 전해 준 내용은 마가복음 기록의 가장 중요한 자료이었을 것이다. 베드로는 마가를  내 아들이라고 하였다. 물론 믿음의 아들을 말하는 것이다. 그렇다면 더욱 마가복음은 베드로와 일심동체화한 복음서라는 것을 알 수 있다.

 

1. 예수님의 열 두 제자 중 야고보는 요한의 형제이다.

그 야고보는 열 두 제자들 중 가장 먼저 순교를 당하였다.

이것은 형제인 사도 요한의 아픔이기도 하였을 것이다. 한편 초대교회에선 주님을 위하여 순교를 당하는 것을 가장 영광스럽게 생각하였다는 것이다. 그럼에도 인간적으로는 사도 요한의 아픔이었을 것이다. 그러나 요한이 그 형제의 몫까지 충분히 하였다는 것을 알 수 있다. 교회사에서 순교는 큰 의미를 부여하고 있기도 한다. 예수님의 제자 요한의 형제 야고보는 일찍 순교하므로 주의 일을 많이 못했다고 볼 수도 있으나 한 알의 밀알이 되었다.

( 믿음이 연약한 사람이 어찌 순교를 하겠는가, 야고보는 순교도 할 수 있는 확실한 믿음의 훈련을 배운 것이다

적절한 예일지 모르나 어떤 병사나 장교가 적에게 잡혀 고문과 회유에 바로 조국을 배반 하고 모든 아군의 진지와 군사 고급 정보를 알려주면 아군은 피해는 어떠하겠는가, 그러한 병사와 장교는 아군이 아니라 오히려 적에게 천군만마 일 것이다. 누가 그렇게 훈련을 하겠는가
야고보는 믿음이 특별할 수 있도록 투철한 훈련을 받았기에 죽음의 상황에서도 끝까지 믿음을 지키고 영광스러운 순교를 택할 수 있었던 것이다. 이것은 그 당시 교인들에게 두려움도 주었겠지만 담대한 용기도 주었을 것이다. 순교의 각오로 복음을 전하는 성도들을 세우는 것이다. 한편 바로 이어 거의 똑 같은 상황에서 베드로의 경우, 그 때에는, 주님의 꿈같은 기적 초자연적인 주님의 능력으로 풀려나게 하시기도 하셨다. 행12:)

사람들의 시각으로 볼 때 요한의 형제 야고보는 제자들 중 가장 먼저 순교하였기에 많은 일을 하지 못했다고 할 수도 있으나 한 알의 밀알이 되었던 것이다. 하나님 앞에서는 하나님의 시각으로 평가하실 것이다. 그리고 그 하늘 상은 놀라울 것이다. (12:24 )

이것은 야고보와 요한의 다짐이기도 하였다.

예수님께서 야고보와 요한의 어머니와 함께 경배하였을 때 무엇을 원하느냐고 물었다. 그들은 주님의 나라에서 좌 우편 을 구하였다. 그 때 예수님께서는 너희 구하는 것을 알지 못한다고 하셨다. 잘 구한 것이 아니다 라는 것이다. 이 때는 예수님의 대속의 죽으심 이전 다락방 성령 강림하여 교회 탄생 이전의 모습이었다.

(20:20-23)

(10:35 세베대의 아들 야고보와 요한이 주께 나아와 여짜오되 선생님이여 무엇이든지 우리의 구하는 바를 우리에게 하여 주시기를 원하옵나이다

10:36 이르시되 너희에게 무엇을 하여 주기를 원하느냐

10:37 여짜오되 주의 영광 중에서 우리를 하나는 주의 우편에, 하나는 좌편에 앉게 하여 주옵소서

10:38 예수께서 가라사대 너희 구하는 것을 너희가 알지 못하는도다 너희가 나의 마시는 잔을 마시며 나의 받는 세례를 받을 수 있느냐

10:39 저희가 말하되 할 수 있나이다 예수께서 이르시되 너희가 나의 마시는 잔을 마시며 나의 받는 세례를 받으려니와

10:40 내 좌우편에 앉는 것은 나의 줄 것이 아니라 누구를 위하여 예비되었든지 그들이 얻을 것이니라

10:41 열 제자가 듣고 야고보와 요한에 대하여 분히 여기거늘)

( 야고보와 요한은 제자 누구보다도 권력 명예욕이 강한 모습도 있었다. 주님이 영광을 얻을 때 좌 우의 자리를 원하였다. 예수님께서 무엇이라고 대답하시고 물으셨는가, 잘 구하였다고 하셨는가, 그리고 무엇을 할 수 있겠느냐 물으셨는가, 그리고 그 두 제자의 대답을 보자. 또한 그 두 제자의 대답대로 되었는가를 보자.

과연 야고보는 제자들 중 가장 먼저 순교를 하므로 예수님의 마시는 잔을 가장 먼저 마시게 되었고 요한은 밧모섬에서 누구보다도 힘든 고난의 세례를 받기도 하였다. 물론 그 고난의 상황에서 놀라운 계시를 받기도 하였다. 고난 속에서도 영광을 본 것이다. 그럼에도 야고보와 요한 그들의 다짐 그대로, 예수님 말씀하신 그대로 된 것을 볼 수 있다.

요한의 형제 야고보는 좀 더 많은 주님의 일을 하지 못하고 일찍 순교를 당하였으나 신앙 안에서는 그것 까지도 복되고 결실을 얻기 위한 씨앗일 수 있다는 것을 알 수 있다.)

(12:)

(요12:24)

내가 진실로 진실로 너희에게 이르노니 한 알의 밀이 땅에 떨어져 죽지 아니하면 한 알 그대로 있고 죽으면 많은 열매를 맺느니라

I tell you the truth, unless a kernel of wheat falls to the ground and dies, it remains only a single seed. But if it dies, it produces many seeds.

 

1. 예수님의 제자 중 요한은 이름 대신 별명으로 하였다.

요한복음을 기록하면서도 자신의 이름 대신에 ' 예수께서 사랑하시 자, 주께서 사랑하시는 제자' (요13:23, 19:26, 21:7, 21:20, 비,,요11:3, 설후2:13)로 하였다. 이제 그에게서 명예 권력욕은 사라진 것이다.

또한 예수님의 제자 중 좀 더 젊은 요한이 쓴 요한복음과 요한계시록은 신약 뿐 아니라 전 성경 중 가장 나중에 기록한 책이다. 어떤 면에서 모든 성경을 결론내리는 모습과 과 같이 말이다. 그 당시 기록한 복음서와 서신서들을 정경으로서 사도들이 다 검증하였을 것이다. 사도 요한 또한 그 당시의 서신서와 복음서를 검증하였다 할 것이다.

사도 요한은 예수님으로부터 복음서를 결론적으로 잘 기록하게 준비 된 제자인 것으로 보인다. 제자 들 중 가장 젊었고 예수님의 부활의 빈 무덤을 단지 베드로와 둘이 달려갔고 예수님이 십자가에 죽으신 장면을 보았고 성령의 임재 뿐 아니라 나면서부터 걷지 못하는 사람을 성령의 역사로 걷게 하는 장면을 보았다. 그리고 예수님의 부활 승천 성령 강림 후 오랜 기간 그 복음이 실천을 경험하였다. 요한은 밧모섬에서 받은 계시, 그의 목회 그리고 예수님의 모친을 친히 모심으로 다른 제자들이 듣지 못한 중요한 내용도 들었고 경험하였을 것이다.

복음서의 기록을 하기 위하여서도 이보다 더 잘 준비된 그리고 신뢰할 수 있는 사람을 찾기 힘들 것이다

 

( 바울의 눈의 비늘이 벗겨져 다시 보게 된 것도 바울이 홀로 기도하여 그러한 결과를 가졌다면 과연 믿을 만 할까 할 것이다. 아나니아를 통해서 안수 하므로 이 일이 일어났기에 아나니아가 바울의 증인이 된다. 이 장면을 본 사람들이 당연히 있었을 것이다. 그럼에도 적어도 아나니아라는 분명한 증인이 있었다. 아나니아의 안수를 통해서 바울의 눈에 비늘이 벗겨지고 다시 보게 되었던 껏이다. 물론 다메석 도상에서 그 장소에 같이 있었던 사람들 그리고 다메석에 같이 있었던 사람들도 증인들이었을 것이다. 바울이 갑자기 장님이 되었기에 분명 누군가가 그를 인도하기 위해 그 옆에 있었을 것이다.)

 

1. 두 세 사람의 중인  

 

(신19:15)

 

(고후13:1)

'내가 이제 세 번째 너희에게 갈 터이니 두 세 증인의 입으로 말마다 확정하리라 ' 

This will be my third visit to you. "Every matter must be established by the testimony of two or three witnesses."

구약에서부터 어떤 사건의 사실성에 대하여 두 세 증인의 입으로 확정하리라고 하신 말씀이 있다. 십계명에 거짓 증거를 하지 말라고 하신 말씀을 알고 있는 이스라엘 인들은 하나님 앞에서 거짓 증거를 하지 말라는 말씀을 잘 알고 있을 것이다. 그럼에도 어떤 사건에 대하여 증인들의 증언을 통하여 그 사건을 확정하라고 한 것이다.

 

구약과 신약에서,

구약에서 모세가 손을 들 때 ,, 피곤하여 팔을 계속 높이 들기가 힘들 때 아론과 훌이 돌을 준비하여 모세를 그 위에 앉게 하고 한 한팔씩 붙들어 주어 팔이 내려오지 않게 하여 승리케 하였다. 하나님과 합력하여 승리를 이룬 것이다.

 

신약에서 예수님께서 두 세사람이 내 이름으로 모인 곳에 내가 함께 있겠고 합심하여 기도할 때 무엇이든지 이루어주신다고 하였다. 성도 혼자이면 성전이다. 두 사람이상이면 교회이다. 사람은 홀로이면 약해질 수가 있음을 알 수 있다. 그러나 믿음의 사람 두 세사람이면 그 역사가 크다는 것을 알 수 있다. 실제로 믿음의 사람이 두 세 사람이 합심하면 그 역사가 크다는 것을 알 수 있다. 세상에서 상승효과 시너지 효과라는 말이 있는데 믿음의 사람 두 세 사람 이상의 합심기도의 능력은 놀랍다는 것을 기억하여야 할 것이다.

근래 한국 교회 추구하고 심지어 올인한 수평이동의 교회성장운동이 한국교회에서 가장 반성 자성할 점일 것이다. 한국의 초대교회는 그러한 이기적인 듯한 세상 기업적인 방법이 아니었을 때 오히려 세계가 놀라는 믿는자들의 숫자의 성장을 가져왔던 것을 알 수 있다. 그 당시는 수평이동의 특정교회성장이나 그러한 경쟁은 없었고 이 민족을 예수 그리스도에게 라는 열심이 있었다. 예수 복음 전하고 믿게하는 기대이었다. 그 당시는 초대형교회 성장 개념이나 몇부 예배 목적등의 개념도 없었다. 물론 대형 초대형교회당 그 자체가 안좋다는 것은 전혀 아니고 필요하고 유익한 점도 있겠지만 그것이 목적이 된 근래 한국교계의 십 수년간의 모습은 한국교계가 가장 자성할 점일 것이다. 그것은 세상 기업이 하는 모습일 것이고 성경에서는 그러한 수평이동의 성장론은 말하지도 않았다. 그것은 주님의 몸 된 어떤 교회에 마음 아프게 할 가능성이 있다. 성경 어디에도 그러한 류의 수평이동 교회 성장론을 말한 적이 없고 성경적이지도 않다. 한국교계가 크게 자성 할 점이다.

그러다보니 성경 번역에 대해서도 잘 모르거나 관심이 없고 특정 교회나 목회자가 스타 영웅이 되다가  인생은 누구나 불완전하고 연약하기에 낙상하거나 불필요한 타겟이 되어 교계가 함께 타겟이 되기도하고 비방을 해도 누구도 조용히 침묵을 지키는 듯하다. 그것을 보고 자신은 예외로 생각하며 같이 비방하는 교계 인사들도 적지 않다.

누구나 무엇을 높이고 과시하는 것 보다 오직 예수 높이고 영광을 예수 이름에 돌리고 함께 나아가야 할 것이다.


교회는 오직 예수 이름을 높이고

두 세 사람이 모이는 곳에 주님이 함께 계시고

교회의 권세 교회의 합심하여 하는 기도는 풀고 매는 권세를 가진 것을 알고

오직 예수 이름 높이고 예수 이름으로 모이고  메시야 그리스도 하나님의 아들

오직 예수 이름 이어야 할 것이다. 그 때 진정 모든 것이 가능하고 모두의 기쁨이 되고

또한 그러할 때 주님 기뻐하시는 한국교계가 되고 주님의 은혜 위에 은혜가 가득할 것이다.

 

                                                            < 성광교회 이동원 목사 드림>



=. 한영 본문

(마18:18-20)

진실로 너희에게 이르노니 무엇이든지 너희가 땅에서 매면 하늘에서도 매일 것이요 무엇이든지 땅에서 풀면 하늘에서도 풀리리라 / 진실로 다시 너희에게 이르노니 너희 중에 두 사람이 땅에서 합심하여 무엇이든지 구하면 하늘에 계신 내 아버지께서 저희를 위하여 이루게 하시리라 /

두 세 사람이 내 이름으로 모인 곳에는 나도 그들 중에 있느니라'


"I tell you the truth, whatever you bind on earth will be bound in heaven, and whatever you loose on earth will be loosed in heaven. / "Again, I tell you that if two of you on earth agree about anything you ask for, it will be done for you by my Father in heaven. /


For where two or three come together in my name, there am I with them."


(요12:24)



                                                                                      ( - ing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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