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무명한 사람들의 이야기

이동원 (서울북노회,성광교회,목사) 2019-01-21 (월) 08:36 5년전 1858  

 

1. 무명한 사람들의 이야기

역사에서 무명의 탁월한 인사들은 셀 수 없이 많을 것이다. 가까이 보는 중에도 그것을 알 수가 있다. 목회 중에도 누구나 인상적인 무명 인사를 보았을 것이다. 이것을 평소 생각은 하였지만 이 글을 쓴 직접적이 이유가 있다. 거의 모든 분들이 그러하지만 얼마 전까지 여성분들은 무명인사가 더 많다. 아마 대부분 내조로 그 역할을 감당하였기 때문이다. 지금은 많이 달라졌지만 말이다. 목회 중 몇 분의 무명의 인상적인 분들이 계셨다. 생각해 보면 그래도 그분들도 어느 정도는 유명할지도 모른다. 그 분들에 대해서 써 보고 싶었다. 그러나 저의 모친에 대해서는 구태여 언급을 하고 싶지 않았다. 가족의 이야기이기 때문이다. 그런데 좀 더 객관적인 역사적인 기록일 수 있다는 생각에서 쓰게 된다.

그것은 근래에 저의 모친의 아마 이십대 청춘 시절의 일기의 몇 문장을 보면서 참 무명한 자 같으나 하나님이 알아주실 유명한 분들이 많구나 하는 생각을 갖게 되어 이 글을 쓰게 되었다. 그 시대의 상황과 역사라는 생각이 들었다. 저의 모친의 일기의 두세 문장을 보고 이 글을 쓰게 된 것이다. 그 일기의 내용은 오래 되었고 낡고 흘려 쓴 글씨라 정확한 이해인지는 모르지만 대략 이러한 내용의 몇 줄의 글을 읽었다.

 

그 당시 지방에서 아니 저 멀고 먼 지방이라고 이라고 할 수도 있겠다. 멀고 먼 지방에서 서울에 유학을 오신 것 같다. 그리고 일평생 오직 주님을 위해 일하리라는 각오로 신학을 공부하러 서울에 오신 것 같다. 이 글을 보고 처음 알게 되고 추측하였는데 신학을 공부하러 올라온 이유는 일생을 독신으로 오직 주님만을 위해 헌신하겠다는 비장한 결심을 하고 서울 유학을 오신 것 그 일기를 보고 안 것이다.

 

그것은 아마 그 당시 열심의 신앙인들에게서 볼 수 있는 모습으로 주님을 위해 독신으로 살려고 하지 않았나 하는 것이다. 주님을 위해서 일평생 독신으로 살려하고 오직 주님을 위해 신학을 공부하러 오신 것을 알 수 있었던 것이다. 그러한 이야기를 분명하게 들은 기억이 없기에 확실하지는 않지만 그 일기의 단지 몇 문장을 보고 알게 된 것이다. 나의 추측이지만 그러한 헌신적인 목적으로 신학교에 와서 학업을 하는 중에 그 당시 존경하는 신학교 교장의 중매와 권고로 결혼을 하려는 상황에서 어떤 마음의 갈등을 표현하신 것이 아닌가 하였다.

그런데 그 내용은 결혼을 앞두고 글을 쓰신 것 같다. 정확하게 이해했는지 모르지만 어떤 아쉬움 또는 탄식도 섞여 있는 것 같았다. 오직 주님을 위해 헌신하기 위해 신학을 시작하였다는 것을 생각하면 그 심정과 그 무엇을 이해할 수 있을 같았다.

그런데 그 일기 뿐 아니라 편지들이 있는데 그 시대의 민족의 계몽주의적 선각자로 보였을 함선생과도 편지 왕래가 있었던 것을 볼 수 있다. 젊은 여학도로서 시대의 멘토라고 할수 있었던 함선생에게 이 나라를 위하여 무엇을 어떻게 하여야 하는 것을 묻는 내용들의 답장인 듯한 글들을 보았다. 젊은 그 시절에 나라를 위해서 무엇을 해야 할 것인가하는 것을 고민하는 뜨거운 열정을 가진 그 시대적 이상적 사명을 찾고자 하였던 헌신적 열성학도였던 것이다.

이러한 일기의  몇줄을 읽고 세상에는 보통 사람들의 어떤 진지하고 열열한 많은 분들이 있었겠다는 마음이 다시 한번 와 닿아서 이 글을 쓰게 된 것이다.

( 나의 어린 시절에 그 분의 어떤 성경의 뒷면에 혈로 십자가를 그려둔 것도 본 기억이 있다. 그렇게 열열 신앙의 청춘께서 평범하게 아니 아주 이름 없이 대부분 그러하듯 살아가신 것이다. 참 열혈 신앙이 담겨있는 분이시다. 어렸을 때 추운 겨울에 무슨 팥죽이나 하였다면 그 아침에 좀 더 멀리 떨어진 곳의 할머니들에게 그것을 갖다 드리는 것이 가끔 우리의 임무이기도 하였다. 이러한 일도 있었다. 어느 지역에 거기에 음성 나환자 자매 한 분이 살았다. 거기를 꼭 찾아가신 것이다. 나를 데리고 가셨기에 나도 두어 번 같이 갔었다. 그 후 나는 얼마동안 괜찮을까 하는 생각도 하였다. 그 정도이시었다. 그 분은 목회를 내조하고 봉사하시면서 가족보다 교회를 더 생각하셨고 그러한 모습을 보았다. 물론 그렇지 않을 수도 있다. 교회를 개척하시면서 너무나 고생을 많이 하셨고 그러하였다. 돌이켜 보면 그 당시는 다 고생을 하였고 나중에 보니 오히려 나는 보통이었고 그 당시에 더 고생한 사람들도 많고 많았던 것 같다.

참으로 무명인사이지만 어떻게 보면 대단한 면이 많은 분이었다. 평범한 많은 그러한 분이 있는 것으로 안다. 가장 어려운 시절에 청소년기를 맞으면서 나는 어머님께 잘 하였다는 것과는 너무나 멀었다고 할 수 있다. 그 때 나는 나대로 청소년기에 너무나 어려워서였기 때문인 이유도 있었을 것이다. 다 그러하겠지만 어머니를 생각하면 웬지 눈물이 난다. 그래서 의도적으로 생각을 하지 않으려고 한다. 무엇이라 표현 할 수 없다. 단지 꿈에 한번 뵌 적이 있다. 모든 면에서 완전할 수는 없으나 그래도 무명한자 같으나 하나님께는 유명한 자라고 확신한다.

저의 모친은 명실공히 무명한 자라고 할 수 있다. 그럼에도 그 젊은 시절에 열정과 헌신의 모습 가득했던 것을 알 수 있다. 그렇다면 얼마나 많은 무명의 보통사람들이 그러하겠는가, 그런데 그 무명자가 하나님께는 아시는 바 된다면 하나님이 아시고 인정하시는 유명한 자라는 것이다. 어느 대학에 보통 사람은 위대하다라는 글을 읽어 본듯하다.  사실은 이렇게 무명의 대단한 보통 분들이 많고 많은 것 같다. 진정 높일 분만 높이면 되는 것 아니겠는가,

 

1. 삼천 예화사전 이라는 것이 있었다. 그 책을 가끔 읽었다. 수 많은 주제에 간단하고 쉽고 인상적인 유익한 내용이 담겨져 있었다. 초 중 시절에 아버님의 서재에 있던 책 중에서 읽었다. 그 후에도 가끔 읽었다. 참 좋은 책이라는 생각이었다. 그 후 그 이름으로 두 세권의 좀 더 방대한 책을 내었다. 참 유익하고 목회자들에게 도움을 많이 줄 수 있는 책이었다.

그런데 한 가지 궁금한 것이 있었다. 이 책을 편집한 이 분이 누구일까, 그리고 이 분이 평신도일까 목회자일까, 그 분 이름 석자 뿐이지 직임 학력 경력 아무것도 알 수 없었다. 그 출간의 책에서도 직임 학력 경력 사진 등도 없었기 때문이다. 이 분이 도대체 어떤 분일까, 많은 시간이 지난 후 나중에야 겨우 어디에서 우연히 읽고 알게 되었다.

이 분은 목회자인데 그 당시 경제적으로도 어려운 많은 목회자들에게 도움을 주기 위해서 이 책을 출간하였다는 것이다. 그리고 그 당시 실력 있는 대학생들의 헌신적인 협력으로 그 책을 출간하였던 것 같다. 그리고 그 당시 경제적으로 어려운 목회자들도 누구나 구입할 수 있게 가능하면 활자를 작게하여 페이지를 줄이는 노력까지 하여 그 책을 출간하였다는 것이다. 그런데 그 책을 보면서 유난히도 자신을 드러내지 않으려는 모습을 볼 수 있다. 이것이 한국의 초대교회의 모습의 하나이기도 하였던 것 같다.

참 한국교계의 목회자들에게 그렇게 유익한 일을 하면서도 가능하면 무명인사로 그 이름 석자외에 아무것도 알 수 없을 정도로 묵묵히 일하는 한 무명 인사를 본다. 물론 이러한 자세가 반드시 좋다고 한 것을 말하고자 하는 것은 아니다. 한국 교회사에 알려지지 않은 이러한 분들이 많고 많을 것이다.

 

1. 목회 중 어떤 선배 목사님이 어떤 분의 강해 설교집을 새벽기도회에는 자주 참고한다는 이야기를 들었다. 나도 전집으로 나온 그 제목과 그 저자의 이름을 서점에서 본 듯하다. 그래 단지 그 분의 이름만을 기억하고 있다. 그런데 어느 지역 목회를 하는 중에 지역 교회의 교회 표시판에 담임목사에 그 분이 성함이 있었다.

어 동명이인일까 그 분일까. 성경 전체를 대상을 강해 설교집을 내 분이 이 약간 산 밑에 지역의 이 교회에 목회를 하는 분과 동일 한 분일까, 그래 언젠가 찾아가 만났다. 그 분이었다. 해맑은 분이고 풍채가 좋은 분을 그렇게 많은 글을 쓰는 분의 상상한 인상과는 달랐다. 아주 호탕해 보이는 인상이었다. 좀 더 젊은 시절이었기에 무엇인가도 배울 겸 찾아뵈었다. 현실적인 삶에서 누구나 겪는 이야기도 해 주었다. 그런데 이야기를 듣는데 역사 등등 여러 가지 이야기를 압축하여 들으면 좋을 것 같았다. 그런데 그러한 내용은 아니고 무척 지루하였다. 너무나 박학다식하여 그러할까 하는 생각이었다. 너무나 지루하였던 것이다. 그럼에도 성경 전체를 대상으로 처음부터 주해 설교를 쓰신 이러한 분이라면 좀 더 들으면 배울 것이 많겠다고 생각하며 두어번 더 들으려고 방문하였다. 역시 내가 듣고자 하는 내용과 다르며 대단한 인내심을 가지고 들어야 할 정도로 지루하였다. 너무 아는 것이 많으셔서 두서없이 압축하여 말하신 것 때문인지 그것보다 오로지 성경만 연구하셨기에 때문인지 이유인지도 모른다. 그 당시에도 무엇을 들었는지 잡히는 것이 없는 듯 하였다.

그런데 의외로 이러한 이야기를 하셨다. 그 분의 말뜻은 정확히 모르지만 앞으로 자신의 아들이 가정교회적 목회하게 하고 자신은 거기의 사찰관리인으로 종도 치며 봉사할 것이라는 것이다. 아마 목회하시면서 마음에 많은 상처가 크셨기 때문인지도 모른다. 아닌게 아니라 그 사모님은 몸이 안좋아서 여기에 내려온 것이 그러한 점에서는 좋다는 이야기를 한 것 같다. 그러면서 거실 쪽의 물이 깊은 샘에서 나오는데 돌을 뚫고 나와 그 물이 좋다는 것이다. 그러면서 가래떡 모양의 옥돌 같은 돌을 보여주었다.

그 분은 호탕한 모습에 순박해 보이고 풍채도 좋고 젊은 시절 한 풍채 할 분 같은 유난히 건강한 분 같았는데, 그 후 언젠가 들으니 하나님의 부르심을 받았다는 것이다. 이 분도 상당한 일을 한 무명인사로 볼 수 있을 것이다. 성경전체의 강해 설교를 냈다는 것은 주님 보시기에 잘한 일을 한 것이 아니겠는가. 이 분 역시 무명한 자 같으나 유명한 자로 볼 수 있을 것이다.

 

1. 저의 부친도 목회적으로 무명의 인물로 볼 수 있을 것이다.

이것은 나의 이야기만 아니고 자라면서 많이 들었다. 처음에는 집에서 매일 뵌 분이기에 하기도 하였다. 그런데 어느 순간에 객관적으로 본다면 목회자로서는 이 분 만큼 잘 갖춘 분도 할 정도도 참 잘 갖춘 분이라는 것이다. 그것은 먼저 주위에서 많이 들었다. 나는 그 때 별 생각이 없었다. 그런데 그 후 좀 더 객관적으로 보고 말하는 것이다. 부친으로서보다 목회자로서 말하는 것이다. 인품과 설교와 인간관계의 삼박자를 참 잘 갖춘 분으로 다시 태어나도 목회가 가장 적합한 분이라는 생각이 든다. 인품이란 그 안에 담겨진 뛰어난 그 무엇이 꼭 남보다 더 그러하다는 것이 아니라 마스크가 그러하다는 것이다. 나는 자라 오면서 그러한 이야기를 많고 많이 들었다. 또 사실이 그러하였다. 설교 또한 그러하였다. 너무나 평범하고 자연스러우면서도 거부감 없이 끌리는 어떤 권위라고 할까 참 독특한 달란트를 가지신 것 같다. 특히 강단에서는 자연스러우면서도 거부감 없이 듣게 하는 독특한 음성을 가지신 듯 하다.

 

그런데 어느 정도 세월이 지나고 목회자로서 전문가적 입장에서 보아도 그러하다. 보통 듣는 분들에 따라 어떤 경쟁감이나 거부감이 있을 수도 있는데 특별히 그러한 것이 없는 자연스러우면서도 어떤 권위가 있는 독특한 은사를 가지고 계시다. 그것은 자라면서 객관적으로 많은 분들에게 들어왔다. 물론 일 년 삼백육십오일 오 십이주 항상 그렇게 느낄 수는 없을 것이다. 저의 부친으로서보다도 목회자로서 소위 대형교회나 아니면 좀 더 널리 알려지셨다면 설교가로서 한 연구의 대상이 되지 않으셨을까 하는 아쉬움도 없지 않다. 설교에 관해서는 좀 더 젊은 시절에는 거의 알려지지 않은 전설적일 정도의 은혜의 반응을 들었다. 거기에다 겉으로 보이는 외모의 마스크가 상당하였으니 어떠하였겠는가, 그러나 비교적 거의 무명인사 이셨다는 것이 오히려 주님 앞에는 혹 나은 것일지도 모른다. 예수 이름 높였으면 그것이 제일 중요한 것이 아니겠는가, 부친은 우리 가문의 모계 아닌 부계 쪽으로는 신앙을 시작한 가문의 아브라함이라고 할 수도 있을 것이다.

 

( 이 분은 지방에서 어쩌다 읍내의 큰 교회에 가서 설교하면 그렇게도 좋아하셨다는 이야기, 그리고 설교 준비는 읍내를까지 걸어서 오고 가는 중에 묵상하며 많은 영감을 얻으셨다는 이야기, 언젠가 일주일 기도원에 가서 성경이 꿀맛 같으셨다는 그 후 영적 문이 더욱 열린 것 같다는 이야기를 들었다. 그 후 설교에 대하여는 전설적인 이야기를 많이 들었고 그러한 일도 있었다. 한편 어린 시절에 보면 저의 부친이신 이 설교자 분은 초저녁 잠이 많으셔서 일찍 주무시고 새벽 두시 전후에 일어나셔서 꼭 성경 설교 준비를 하는 것을 자주 보았다. 그 시대의 분들은 일본어는 다 하셨기에 일본어와 한학을 하셨기에 기본 학문은 잘 되신 기초 위에 연구를 하신 것이다. 신약인가를 영어로 독파를 하셨는데 영어는 어려운 언어라는 것이다. 영어는 우리나라 말과 거의 모든 것이 다르거나 반대이기에 참 어려운 언어이다. 그리고 배워도 사용할 곳이 없기에 더욱 그러하였다.

( 천성적으로 성품 자체가 온순한 유순한 것 같다. 본인 자신은 이것을 오히려 한하신 것을 들었다. 어디 가서도 사람들 앞에 우렁차고 대담 과감하게 외치지를 못하신다는 것이다. 자신은 그것이 부럽다는 것이다. 나는 천성적으로 유순하고 부드러운 것 그것이 오히려 강한데 하였던 것이다. 목회자에게 좋다 아니다가 아니라 온순하고 부드러운 유순한 성품은 바람직 할 것이다. 꼭 어떤 성품이 더 좋다는 것은 아니다. 베드로와 요한 바울은 꼭 유순하였다 할 수 있을까 할 때 각자의 성격 기질을 잘 사용하면 다 장점이며 좋을 것이다. 그런데 목회는 다양하고 많은 다른 캐릭터와 만나기에 스트레스도 많을 수 있는데 천성적으로 유순하다면 그것도 좋을 것으로 본다. 이 점에서도 본인은 한하지만 전형적인 목회자로서 잘 갖춘 듯 하다는 것이다. 목회자로서 삼박자를 잘 갖춘 분이신데 어쩌면 생각보다 아쉬운 무명인사이다. 아니 아주 무영인사 인 것도 아니다.)

( 저의 부친께서 참 감명적으로 설교를 하시는 어떤 여전도사님을 포함하여 두어분에 대해서 말씀하시는 것을 들었다. 그 할머니 여전도사님은 이십대 신학도 시절에 한번 방문하였는데 나를 앞에 두고 말씀을 하셨다, 그때 나는 그 분이 연세가 많기에 고루한 내용의 말씀을 하시지 않을까 하였다. 그런데 그것이 전혀 아니었다. 처음부터 독신인 듯한  이 할머니 전도사님도 담임목회자를 도와 교인들에게 많은 유익을 준 숨은 무명의 인사였다. 이렇게 사람들에게 널리 알려지지 않는 많은 일꾼들이 주님의 일을 감당했던 것이다.)

다시 한번 사실은 무명의 뛰어나고 탁월한 수 많은 인사들이 있었다는 것을 기억해야 할 것이다. 사실은 이렇게 무명의 분들이 세상에서 보이지 않게 더 크고 유익한 많은 역할을 하였을 것은 분명한 것 같다.

그리고 그 무명 인사들은 하나님의 아신 바 인정 하신 바 되는 무명한 자 같으나 가장 복된 유명한 자들일 것이다.)


다시 저의 가족 이야기로 간다면 이 분은 남한에 유학하러 잠시 왔다가 돌아가려는 마음이었던 것이다. 그 당시 삼팔선으로는 이북이고 지금의 휴전선으로는 이남이 된 지역에서 홀로 월남하신 것이다. 그런데 이제 그 선친에 대한 그리움이 갈수록 많으신 것 같다. 그 당시 그 누가 이렇게 오랜동안 분단된 상태로 있을 것은 아무도 생각지 않았다는 것이다. 오늘 내일 하는 중에 무려 칠십여년이 지난 것이다. 이북은 이북이지만 먼 곳이 아니라 경기도 북쪽지역이다. 삼팔선으로는 이북이었지만 이제는 이남인 그 가까운 지역이다. 이렇게 지척에 두고 칠십여년이 지나간 것이이다. 그런데 이외에도 이러한 이산가족의 아픔과 동족상쟁의 비극의 아픔들은 책 수백권을 써도 부족할 만큼 남북동포들에게 많고 많은 슬픈 사연들이 있었고 더 있었을 것은 너무나도 분명하다는 것이다. 이것이 한국의 근현대사의 한 모습이다.)

이것을 모르고 또는 모르는지 정치인들이 아직도 지역 팔이나 철 지난 이념 팔이를 한다면 역사의 어떠한 평가를 받겠는가, 역사의 준엄한 평가 그 이상을 받지 않겠는가. 아니 이러한 정치인들이라면 평가 받기에는 이 한반도의 근현대사 상황의 역사 앞에 너무나 역사의식이 없다하지 아니겠는가, 물론 이제 국민의 현명한 판단으로 평가할 것으로 보인다.

 

이러한 점에서도 남북 평화 공존의 방향으로 나아가고

평화 번영을 위해 이 한해에도 전심전력을 다하여야 할 때이다

이제 한반도에서 영적세계의 일인 하나님의 나라와

하나님이 보시기게 기뻐하실 평화와 번영의 일에  기도하며 함께 어깨 동무하며 나아가야 할 것이다.

 

                                                     < 성광교회 이동원 목사 드림>

 

 

=. 묵상 (meditation)

(고전8:3)

또 누구든지 하나님을 사랑하면 이 사람은 하나님의 아시는 바 되었느니라

 But the man who loves God is known by God.

(고후6:9)

무명한 자 같으나 유명한 자요 죽는 자 같으나 보라 우리가 살고 징계를 받는 자 같으나 죽임을 당하지 아니하고

known, yet regarded as unknown; dying, and yet we live on; beaten, and yet not killed;

 

(마6:33)

너희는 먼저 그의 나라와 그의 의를 구하라 그리하면 이 모든 것을 너희에게 더하시리라'

But seek first his kingdom and his righteousness, and all these things will be given to you as well.'

                                                                                    ( - ing )


이혜신(서울동노회,무임,목사) 2019-02-13 (수) 16:13 5년전
아버지와 어머니가 다니셨던  '삼열신학교'
지금의 ‘감리교 신학교’와 ‘조선신학교’ 그리고 ‘삼열신학교’
그중에서도
다른 사람들이 가지 않는 곳에서 목회를 한다는 의미에서는 더욱 복음적이고 성서적인
‘삼열신학교’
하지만  학장인 조기선목사님이 일본으로 돌아가는 바람에 학교는 문을 닫았고....
그리하여, 삼열신학교 학생들이 다른 신학교로 많이들 가셨다는데
그중에서도 유명하신 목사님은 고 김형태 목사(연동교회)님~

아버지는 지금도 감리교회 여러 목사님들이 감리교로 오라고 간곡히 부탁하셨던
편지를 지금도  종종 보시면서 못내 아쉬어  하십니다.
‘그때 감리교로 갔으면 니 엄마와 너희들을 그렇게 고생시키지 않았어도 되었을 터인데....’
‘내가 너무 어리석었다’

말이 길어졌지만
함석헌 선생님이 YMCA강당에서 강의하시면서 어느 날인가
“이곳에 참 사람이 한 사람 있는데 바로 ‘조성심’”이라고 하셨던 유명한 일화가 있지요.

이동원목사님 이야기하신 어머니 曺誠心과 아버지 李世鎭 목사님에 대한 이야기는 끝이 없을 것입니다.

무명으로 ~ 하나님의 뜻대로 살아가신 귀하신 분들 덕분에
이나마 우리나라와 교회가 망하지 않고 있다는 생각에 감사를 드립니다.

3.1운동 100주년 기념사업추진위원회를 중심으로 무명인듯 하였던 애국지사들을 이제라도 찾아내어 기억하게 되니 감사할 뿐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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