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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치권에서 야당의 역할

이동원 (서울북노회,성광교회,목사) 2019-08-30 (금) 07:28 4년전 2148  

1. 야당의 역할

어린 시절 어깨 너머로 신문에서 여야라는 기사를 보고 물었다.

여야가 뭐예요. 여당 야당이 뭐예요. 야당의 역할이 뭐예요 물은 기억이 있다. 그때 어떠한 설명을 들었는지

세세하고 정확한 기억이 없다. 그러나 야당은 여당을 비판하고 반대하는 당이라고 하였던가라고 들은 듯하다.

그 때 생각하기를 협력하고 합심하여야 좋을 것인데 왜 반대하는 당이 있는 것인가 하며 조금 의아해 한 것으로 기억한다. 그러나 세상의 인생의 불확실성과 많은 이슈들에 대해서 다른 입장에서도 보고 견제하는 것은 필요하고 유익할 것이다. 철학적으로 거창하게 말한다면 헤겔의 정반합의 과정으로 보는 면도 있을 수 있겠다.지금 어떤 어린아이가 야당에 대해서 물으면 어떻게 정확하고 간단히 쉽게 설명하여야 할 것인가 쉽지만은 않을 듯하다.

 

그런데 근래에 특히 야당에서 일부인들의 소위 언어사용들을 보면서 스쳐가는 그 모습들을 새삼 생각해 본다. 생각해 보면 그래 지금까지 이러한 야당이 있었는가 하는 생각까지 들게 된다.

사람들의 보는 입장에서 다르게 볼 수도 있지만 자고 나면 일부 야당 정치인들의 비방과 막말들 국회의 패스트 트랙에 관한 모습, 강원도 산불 추경 예산 위한 회의가 그렇게 어려웠고, 동포와 선량한 세계시민들이 격려한 남북 동포의 평화 번영 협력의 판문점 회담의 그 이후인가 미국에 가서 남북의 평화 공존 협력을 반대하는 듯한 모습, 국회의원이 국회에서 일을 해야지 상당한 세비받고  대우받고 누군가들은 그렇게 그리고 그리던 국민의 대표로 선출되니 국회보다 장외집회에서 더 자주 보는 그 모습들이라면 이것은 생방송으로 매스컴 타는 맛에 상당히 재미 붙은 듯하다. 이것은 국민이 기대하는 정치인이나 정치지도자의 모습이 전혀 아니다.

지금같이 언론의 자유가 있는데 왜 국회보다 장외로 나가는지도 의아할 것이다. 최근에 그들이 만든 청문회 법을 실천 하는 것에 대해서도 절차대로 바로 열어 자신들의 역할을 하려고 하는 것인지 마는 것인지, 이렇게 국민을 피곤하게 하는 리더쉽을보고 국민이 무엇을 기대하겠는가는 생각치도 않은 듯 하다. 그리고 거의 날마다 쏟아내는 그들의 말들과 모습들을 보며 드디어 국민들은 무엇을 생각하겠는가. 광화문에서의 모습은 정치인가 소음인가 자기 드라마 찍는 것인가, 그것도 도를 넘으면 역효과일 것이다. 세계를 놀라게 한 촛불평화집회도 이제는 촛불로 장사하는 세력들이 우후죽순처럼 등장하고 있다. 심지어 종교계 일부에서도 년전에 자신들의 무슨 문제를 가지고 촛불들고 집회하기까지 하였다. 촛불이 우상화 되는 것은 적절치 않고 이제는 촛불도 식상일 수 있다. 색깔팔이 지역팔이 이제는 촛불팔이까지 등장하는 것이 아닌가 할 것이다.

시간이 조금 지나면 그 야당의 리더쉽에 대해서 평가할 것이다. 야당의 지도자도 그 인성 심성과 정책 비젼이 뛰어나면 세칭 중도의 국민들도 호감을 가질 수 있을 것이다. 전혀 알지도 못하는 지난 미국의 대선 후보 샌더스를 보라. 한국의 사이다로 등장한 누구를 보라. 현명한 국민들은 그의 무엇인가를 보았기 때문인 것이다. 지금 야당의 지도자들도 주위의 누구의 이 소리에 저 소리에 휘둘리지 말고 진정 나라를 위해서 협력하여 일하는 모습을 보이면 좋을텐데 그렇다. 최근 국민들에게 각인 된 모습은 주로 과격한 비방 막말 장외집회 국회의원의 직무인 등원 거부 자기들이 만든 청문회를 미루거나 하니 마니 하는 일 등등 말고 무엇을 국민에게 주고 있는지 생각해 보아야 할 것이다.

사실 이것은 야당을 위해서 진정 잘되기를 바란다면 더 비판할 수도 있는데, 지금의 어떤 야당은 그 과정에서 어떤 창당이 국민에게 긍지를 주지 못한 어떤 치명적인 문제점이 있다고 보는 시각이 있다는 것이다. 이것을 오히려 그 시대를 경험하지 못했던 젊은이들이 정확히 알고 판단하는 것에 놀라울 정도이다. 이것을 보면 시간이 문제이지 미래도 기대할 수 있다고도 본다. 한편 최근 일본의 수출규제와 지소미아 종료에 대한 우리나라 국민의 모습은 대단히 현명하고 수준 높은 것을 알 수 있다. 이것은 이러한 모습은 얼마전 지방에서 사드 철회 집회에서 보여주었고 촛불평화집회를 통해서 우리 모두가 놀랄 정도로 우리 국민의 수준이 높아졌다는 것을 알 수 있다

 

지금의 소위 어떤 촛불집회로 무슨 자기이익의 장사를 하려 사용하는 모습을 보기도 하는데 이른 바 사람들이 말하는 촛불평화집회는 역사에 기록될 만큼 놀라웠다. 처음 일이차 집회에서부터 그러했다. 그 집회를 보고 세상이 달라졌구나 세상이 완전 달라졌네 할 정도로 신선하고 평화롭고 놀라웠다. 그 평화롭고 신선한 장면을 특히 일 이차 삼차는 역사의 기록으로 되어도 될 것이다. 자발적인 의식높은 국민들의 모습이었다. 그 후 퍽하면 너도 나도 촛불이름 빌어 정략적으로 하는 듯한 촛불집회와는 차원이 달랐다. 이제 최초의 그 때의 이름만 고유명사일지 모른다.

 

국민의 대표라는 국회의원이 되었으면 국회에서 품위있고 수준있는 언어와 태도 자신의 이익 뿐 아니라 아니 자신의 이익보다 국민을 위한, 자신도 국민이니까 자기를 위한 것도 되는, 모습을 보여주어야 할 것이다. 지금의 국민의 대표라는 더욱이 지도자라는 일부 정치인들은 국민들을 창피하게 하고 뭐가 뭔지도 모르고 막무가네 설치는 모습으로까지 보인다. 그들의 언어와 행동 그리고 판단이 적어도 국민의 보통수준은 되어야 할 것이다.

지금은 한국인들이 세계적으로 대단히 품위와 수준이 높다는 것이다. 외세에 대해서도 교만이 아니라  자주국민 자존심 자긍심을 가져야 한다고 본다. 그러므로 한일 지소미아 협정 종결은 상당이 많은 전문가들을 포함한 국민들이 사이다같은 시원한 결정으로 보고 있는 듯 하다. 이 협정은 한국이 한반도가 어떤 함정에 덫에 갇히고 걸린 것이라고 생각하였다. 한국을 앞세워 최전방의 방패막이 삼고 자신들의 나라는 바다 건너에 있다는 것이다. 혹 언젠가라도, 불가능하고 없어야 되고 전무하여야 하겠지만 이론적으로 생각해 보면, 만약  분쟁이 생기고 충돌하면 가장 큰 피해는 한국이 한반도가 본다는 것이다. 이러한 와중에 누군가는 어떤 나라는 자기만의 이익을 챙길 수도 있는 것이다. 또한  인류 평화 번영의 정신적 가치로도 이러한 협정은 바람직하지 않다. 차라리 동북아 평화협정이라면 거의 모든 나라에게 환영받을 것이다.

그런데 최근 지소미아 협정은 종결할 수밖에 없는 여러 여건에서의 이러한 결정하게 된 것은 하나님의 특별한 섭리와 간섭이 아닐까 할 정도로 우리의 지정학적 위치에서 잘 된 것이라 할 것이다. 누구에 대하여 평화협정도 아닌 군사협정을 한다는 것인가, 동북아에서 한일은 지정학적 역사적 입장을 안다면 지소미아 협정은 세상적으로 보아도 바람직하지도 않고 좋은 것도 아니며 성경적으로 보아도 그러 할 것이다. 세계는 누구를 서로를 적으로 상정하거나 만들 것이 아니어야 할 것이다. 지소미아 협정보다 차라리 동북아 평화협정 나아가서는 세계 평화협정이 바람직하고 하나님의 뜻에도 일치하는 것이다.

국내외 문제가 쉽지만은 않다. 신앙인들은 우리의 한반도는 이 지정학적 위치에서 외세보다 하나님을 의지하고 나라를 위하여서도 기도하여야 할 것이다. 환경과 사람의 도움이 없을 때 신앙인들은 하나님을 더욱 의지하고 기도한다면 사람이 상상하지 못할 정도의 좋은 일 꿈 같은 좋은 일이 일어나며 모든 것이 합력하여 좋게 하시는 좋으신 하나님을 믿고 사는 것이다. 상황이 그러하면 더욱 그러할 수 밖에 없는데 우리 한국이 지정학적으로 그러하다고 할 수도 있다. 이러한 지정학적 환경과 역사가 한반도가 세계사에서 평화 번영의 크고 귀한 일을 할 수 있는 또는 할 수 밖에 없는 한 이유이기도 할 것이다.

 

                                                           < 성광교회 이동원 목사 드림>




=. 묵상 (meditation)

' 우리가 알거니와 하나님을 사랑하는 자 곧 그 뜻대로 부르심을 입은 자들에게는 모든 것이 합력하여 선을 이루느니라' (롬8:28)

And we know that all things work together for good to them that love God, to them who are the called according to [his] purpose.(kj)
And we know that all things work together for good to those who love God, to those who are the called according to His purpose.(nkj)

And we know that God causes all things to work together for good to those who love God, to those who are called according to [His] purpose.(nas)

And  we know that in all things God works for the good of those who love him, who have been called according to his purpose. (niv1984)

         

하나님을 사랑하는 것은 그 믿음의 교리를 받아드린 신앙인들이 예배등으로 표현하는 영적 영역이라 할 수 있다.

그러나 그의 뜻인 사랑의 계명을 실천하는 것은 세상 사람들도 공감하고 받아드릴 수 있을 것이다. 그리고 그 결과는 좋은 굿 good 이라는 것이다.

그러므로 어떠한 외세를 우정 이상으로 과도하게 의지하는 것보다 우리 한반도의 동포가 평화와 번영의 정도를 갈 때 모든 것이 합력하여 좋게 된다는 성경의 교훈 또는 역사의 교훈을 보고 담대하게 나아가면 평화 번영의 강국이되어 세계사에 더욱 공헌할 것이다.              

                                   

                                                                      ( - ing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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