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빈궁자의 기도

김창환 (서울남노회,강서교회,목사) 2019-10-05 (토) 12:25 11일전 40  
http://cafe.daum.net/thekingjesus/I1Nl/529 

    이미지를 클릭하면 원본을 보실 수 있습니다. 행복한 예수님의 사람들 칼럼 (528호) 하나님은 빈궁자의 기도를 들으신다(시 102:1-17) “여호와여 내 기도를 들으시고 나의 부르짖음을 주께 상달하게 하소서 나의 괴로운 날에 주의 얼굴을 내게서 숨기지 마소서 주의 귀를 내게 기울이사 내가 부르짖는 날에 속히 내게 응답하소서”(시 102:1-2). 본문은 고난 당한 자가 마음이 상하여 그의 근심을 여호와 앞에 토로 하는 기도이다. 기도하면 응답해 주신다는 확신을 갖고 기도했다. “여호와께서 빈궁한 자의 기도를 돌아보시며 그들의 기도를 멸시하지 아니하셨도다”(시 102:17). 1. 기도는 영적 교제의 통로이다. “너희는 여호와를 만날 만한 때에 찾으라 가까이 계실 때에 그를 부르 라 악인은 그의 길을, 불의한 자는 그의 생각을 버리고 여호와께로 돌 아오라 그리하면 그가 긍휼히 여기시리라 우리 하나님께로 돌아오라 그가 너그럽게 용서하시리라”(사 55:6-7). “하나님이여 내 마음을 정하였사오니 내가 노래하며 나의 마음을 다하 여 찬양하리로다 비파야, 수금아, 깰지어다 내가 새벽을 깨우리로다” (시 108:1-2). “나를 사랑하는 자들이 나의 사랑을 입으며 나를 간절히 찾는 자가 나 를 만날 것이니라 부귀가 내게 있고 장구한 재물과 공의도 그러하니라” (잠 8:17-18). 2. 기도는 소원 간구의 기회이다. “여호와께서 빈궁한 자의 기도를 돌아보시며 그들의 기도를 멸시하지 아니하셨도다”(시 102:17). - 포로말기 해방될 것을 갈망. “매년 한나가 여호와의 집에 올라갈 때마다 남편이 그같이 하매 브닌 나가 그를 격분시키므로 그가 울고 먹지 아니하니 그의 남편 엘가나가 그에게 이르되 한나여 어찌하여 울며 어찌하여 먹지 아니하며 어찌하 여 그대의 마음이 슬프냐 내가 그대에게 열 아들보다 낫지 아니하냐 하니라 그들이 실로에서 먹고 마신 후에 한나가 일어나니 그 때에 제 사장 엘리는 여호와의 전 문설주 곁 의자에 앉아 있었더라 한나가 마음이 괴로워서 여호와께 기도하고 통곡하며 서원하여 이르되 만군 의 여호와여 만일 주의 여종의 고통을 돌보시고 나를 기억하사 주의 여종을 잊지 아니하시고 주의 여종에게 아들을 주시면 내가 그의 평생 에 그를 여호와께 드리고 삭도를 그의 머리에 대지 아니하겠나이다” (삼상 1:7-11). “아무 것도 염려하지 말고 다만 모든 일에 기도와 간구로, 너희 구할 것을 감사함으로 하나님께 아뢰라 그리하면 모든 지각에 뛰어난 하 나님의 평강이 그리스도 예수 안에서 너희 마음과 생각을 지키시리 라”(빌 4:6-7). 3. 기도는 하나님의 능력을 체험하는 기회의 통로이다. “기드온이 하나님께 여쭈되 주께서 이미 말씀하심 같이 내 손으로 이스라엘을 구원하시려거든 보소서 내가 양털 한 뭉치를 타작마당에 두리니 만일 이슬이 양털에만 있고 주변 땅은 마르면 주께서 이미 말씀하심 같이 내 손으로 이스라엘을 구원하실 줄을 내가 알겠나이 다 하였더니 그대로 된지라 이튿날 기드온이 일찍이 일어나서 양털 을 가져다가 그 양털에서 이슬을 짜니 물이 그릇에 가득하더라 기드온이 또 하나님께 여쭈되 주여 내게 노하지 마옵소서 내가 이번 만 말하리이다 구하옵나니 내게 이번만 양털로 시험하게 하소서 원 하건대 양털만 마르고 그 주변 땅에는 다 이슬이 있게 하옵소서 하였 더니 그 밤에 하나님이 그대로 행하시니 곧 양털만 마르고 그 주변 땅에는 다 이슬이 있었더라”(삿 6:36-40). “엘리야는 우리와 성정이 같은 사람이로되 그가 비가 오지 않기를 간절히 기도한즉 삼 년 육 개월 동안 땅에 비가 오지 아니하고 다시 기도하니 하늘이 비를 주고 땅이 열매를 맺었느니라”(약 5:17-18).
    엘리야의 기도
    시편 102편 강해 시편 102편은 7대 회개시중 하나이다(시 6; 31; 32; 38; 102; 130; 143). 구조는 1-2절에 서론적인 기도; 애통(3-11); 약속들(12-22); 애통(23-27); 결론(28)으로 구성되어 있다. 1. 인생이 고난의 날(10절) 1-9절의 탄식은 바로 하나님의 심판 때문이다(10절). 하나님이 심판 하시면 우리의 인생은 고통 중에 살게 된다. 왜 어려움을 당하는가? 말씀의 복을 누리지 못함과 죄악으로 인함이 아닌가? 언약적 신실한 삶이 아니기 때문이 아닌가? 2. 영원하신 주님(12-16절) 이 세우심 주님은 영원하시다(12절). 주님이 회복하게 하시면 된다(13절). 교회 회복(13절), 그리고 하나님의 도성의 회복 역시 하나님이 일어나 시면 된다(13절). 하나님이 시온을 세우시기 때문이다(16절). 이제 남은 사역과 남은 일을 하나님이 세우심으로 소망하고 나아가야 한다. 3. 주님이 들으시는 기도(17절) 개정은 17절에 ‘빈궁한 자’라고 번역한다. 가난한 자를 의미한다. ‘아르아르’(naked)는 ‘벗은 자’라는 의미이다. 모든 것을 감추거나 싸고 있지 않은 하나님 앞에 진솔한 기도를 드리는 이러한 기도를 하나님은 외면하지 않으신다. 인간은 하나님 앞에 벌거벗은 자로 서야 한다. 아무것도 걸칠 수도 없다. 하나님 앞에 늘 서서, 진실한 모습으로 서야 하며, 가면을 다 벗어야 한다. 4. 하나님이 하심(18-28절) 하나님은 내려다 보시고(19절), 어려운 자들을 돌아보신다(20절). 하나님이 영광을 위하여(21절) 하나님의 이름을 선포하신다. 결론. 따라서 우리는 하나님의 도우심과 하나님의 허락을 구하여야 한다 (22-23절). 주님은 동일하시다(27절), 그분이시다(히 13:8). 예수 그리스도는 어제나 오늘이나, 영원토록 변함이 없으시다(히 13:8). 사람은 다 낡아 변한다. 하나님은 영원하시다. 이러한 것을 소망하는 자는 지속될 것이라(28절). - 제공: 말씀사역연구소 / 원문표준번역(이학재 역) -
    설교의 능력은 기도에 있다. - by E.M 바운즈 1. 하나님은 사람을 통해 일하신다. 오늘날의 교회가 필요로 하는 것은 더 많은 혹은 더 나은 기구가 아니다. 새로운 조직이나 혹은 더 뛰어나고 고상한 방법이 아니다. 오히려 성령이 들어 쓰실 수 있는 사람, 기도의 사람, 기도에 능력있는 사람이 필요하다. 성령은 방법을 통해 일하지 않고 사람을 통해 일하신다. 성령은 기구에 임하시는 것이 아니라 사람에게 임하신다. 성령은 계획에 기름 부으시는 것이 아니라 사람, 그것도 기도의 사람에게 기름을 부으신다. 메시지 전달자는 메시지 이상이어야 한다. 설교자의 모든 말에는 그 설교자의 됨됨이가 스며들고 배어난다. 설교 이면에는 그 사람, 그 설교자 의 전 인격이 놓여 있다. 사람이 성장하면 설교도 성장한다. 사람이 힘이 있으면 설교도 힘이 있다. 사람이 거룩하면 설교도 거룩하다. 모든 것이 설교자의 영적인 성품에 달려 있다. 진정한 설교는 골방에서 만들어진다. 사람, 즉 하나님의 사람도 골방에서 만들어진다. 기도가 사람을 만든다. 기도가 설교자를 만든다. 기도가 목회자를 만든다. 2. 설교의 가장 큰 장애 요인은 설교자에게 있다. 가장 큰 장애 요인은 설교자 자신에게 있다. 생명을 주는 설교는 설교자 가 세상에 대해 십자가에 못 박히고 자신의 영혼에 진통을 겪어야만 한다. 십자가에 못 박힌 설교만이 생명을 준다. 십자가에 못 박힌 설교는 오로지 십자가에 못 박힌 사람에게서만 나올 수 있다. 3. 기도가 없는 설교가 영혼을 죽인다. 실패의 원인은 설교자에게 있다. 하나님께서 그 사람을 빚으시지 않았기 때문이다. 그는 토기장이의 손에 있는 진흙처럼 하나님의 손에 내맡겨진 적이 한번도 없었다. 설교와 그 구상, 마무리 그리고 흡인력과 감동적인 힘에 신경 쓰기에는 바빴을지 모른다. 그러나 그는 하나님의 깊은 것들은 결코 구하지도 않았고 연구하지도 않았으며 탐색하거나 경험해 본 바가 없다. 그는 하나님의 제단에 살아 있는 불에 의해 그의 삶이 새로워지거나 그 불이 그의 가슴에 닿아 정결케 되고 불타오르는 경험을 한 적이 결코 없다. 4. 설교자는 기도에 탁월한 사람이어야 한다. 우리는 우리의 연구 속에 자신을 가두어 버리고 있다. 문장과 상상, 설교 로 이름난 학자가 되어 가고 , 책벌레, 성경 벌레, 설교 작성자들이 되어 가고 있다. 기술로서, 의무로서, 일로서, 혹은 자기 만족으로서 끊임없는 부담이 되는 설교 작성은 하나님으로부터 마음을 빼앗고 무감각하게 하며 그 마음이 멀어지게 할 것이다. 기도를 무시하기 때문이다. 모든 장서와 연구들은 우리의 골방과 비교할 때 한낮 공허에 지나지 않는다. 기도의 골방을 연구로 빼앗기거나 목회적인 의무에 속하는 활동들에 잡아먹히게 해서는 안된다. 기도의 골방이 가장 먼저요, 연구와 활동들은 그 다음이어 야 하고, 연구와 활동 모두가 골방에 의해 새롭게 되고 효율적이 되어야 한다는 말이다. 기도에 실패하는 것을 메꾸어 줄 수 있는 지식은 전혀 없다. 어떤 열심도, 부지런함도. 연구도, 은사도 기도의 결핍을 보충할 수는 없을 것이다. 5. 골방의 능력이 강단의 능력이다. 설교자의 연구는 하나의 골방이 되어야 하고 벧엘이 되어야 하고 제단 과 비전, 그리고 사다리가 되어야 한다. 설교자는 자기의 말로써 사람들 을 하나님께 나아가게 하기 이전에 기도를 통해 하나님께서 그 사람들을 향해 나아가시게 해야만 한다. 하나님을 위해 위대한 결과를 이루는 설교 자들은 사람들에게 담대히 간청하기에 앞서 하나님께 간청하는데 뛰어난 사람들이다. 골방에서 하나님과 함께 할 때 가장 능력 있는 설교자가 강단 에서 사람들과 함께 했을때 가장 능력 있는 설교자이다. 6. 목회의 성공은 기도에 있다. 기도가 없이도 매우 사려 깊은 목회를 할 수 있다. 설교자는 기도 없이 도 명성과 인기를 얻을 수 있다. 설교자의 삶과 사역의 전 조직이 기도의 기름 없이도 혹은 겨우 톱니바퀴 하나에 기름을 칠 수 있을 정도의 기도만 으로도 움직일 수 있다. 그러나 기도가 분명하고도 지배적인 힘이 되지 않는 한 어떤 목회도 영적인 목회가 될 수 없으며 설교자와 그의 청중들 에게 거룩함을 심어 줄 수 없다. 많은 목화의 피상적인 결과들, 즉 남을 죽이는 일들은 기도의 결핍에서 비롯된다. 많이 기도하지 않고 성공하는 목회는 결코 있을 수 없다. 기도는 목회에서 필수적이고 늘 있어야 하며, 점점 더 늘어가야만 한다. 설교는 기도의 결과이어야만 한다. 연구는 기도 에 잠기어져야만 하며 목회자의 모든 의무들은 기도를 통해 잉태되어야만 하고 그 모든 정신들은 기도의 정신이어야만 한다. 7. 많은 시간을 하나님과 함께 보내라 하나님과 많은 시간을 보내는 것이 모든 성공적인 기도의 비결이다. 강력한 힘을 지닌 것으로 느껴지는 기도는 직접, 혹은 간접적으로 하나님 과 많은 시간을 함께 보낸 데서 말미암는 결과이다. 하나님과 친숙해지는 것은 어쩌다가 한번 방문하는 것으로 이루어지지 않는다. 하나님은 그냥 바쁘게 왔다갔다 하는 사람에게 은사를 주시지 않는다. 혼자서 하나님과 오랜 시간을 보내는 것이 하나님을 알고 하나님을 움직이는 비결이다. 8. 위대한 기도의 사람들 캐논 리든은 기도에 대해서 이렇게 말했다. ‘참으로 기도해본 사람들에게 대답을 하게 하자. 그들은 때로 족장 야곱의 경우처럼 보이지 않는 능력이 신 하나님과 씨름하는 것이라고 기도를 묘사한다. 성공적인 기도의 전수는 집요함이다. 집요함이란 한결같은 노력을 의미한다.’ 9. 아침 일찍 하나님을 찾아라 이 세상에서 하나님을 위해 가장 위대한 일을 행한 사람들은 아침 일찍 그들의 무릎을 꿇는 사람들이었다. 만일 아침 시간에 우리가 들이는 노력 과 생각에 하나님께서 첫 자리를 차지 하지 않으신다면 그 날의 나머지 시간에서 하나님은 마지막 자리를 차지하시게 될 것이다. 10. 하나님께 헌신된 설교자가 필요하다. 설교자는 하나님께 헌신되어 있어만 한다. 그는 절대로 일반적이고 표피적인 경건의 모습을 지녀서는 안된다. 그가 만일 은혜에 뛰어나지 않다면 그는 전혀 뛰어나지 않은 것이다. 그가 만일 삶과 인격과 행동으 로 설교하지 않는다면, 그는 전혀 설교하지 않는 것이다. 설교자의 인격 과 행동에 있어 하나님께 대한 헌신, 이것을 대신할 만한 것은 전혀 없다. 설교자가 마음에 품을 수 있는 끝없는 목적, 유일한 열망은 늘 하나님을 자기 가까이 모시고자 하는 것이다. 11. 준비된 마음이 준비된 설교를 낳는다. 설교의 준비를 강조하다가 결국 더 중요한 준비, 곧 마음의 준비를 놓치고 있다. 준비된 마음이 준비된 설교보다 훨씬 나은것이며 준비된 마음이 준비 된 설교를 낳는다. 우리의 가장 큰 결핍은 머리의 배양이 아니라 마음의 배양이다. 지식의 결핍이 아니라 거룩의 결핍이 우리의 슬프고도 뚜렷한 결함이다. 너무 많이 아는 것이 문제가 아니고 하나님과 그분의 말씀에 대해 묵상하지 않으며 깨어 금식하며 충분히 기도하지 않는 것이 문제이다. 12. 위대한 마음이 위대한 설교자를 만든다. 오늘날 강단에 있어 심각하고도 가장 보편적인 오류 가운데 하나는 설교 에 기도보다는 사고를, 마음보다는 머리를 더 많이 사용하는 것이다. 골방 은 마음의 서재이다. 우리가 어떻게 설교할 것이며 무엇을 설교할 것인지 에 대해 더 많이 배우는 곳은 우리의 서재보다도 골방에서이다. 골방은 설교자를 위한 완벽한 교사이자 교실이다. 기도 가운데 생각이 밝아지고 분명해질뿐만 아니라 기도 가운데 생각이 태어난다. 13. 설교의 능력은 기름 부으심에 있다. 기름 부으심은 계시된 하나님의 진리를 생명력 있게 하며 살아 움직이고 생명을 주는 진리가 되게 만든다. 아무리 하나님의 진리일지라도 이 기름 부으심 없이 전해진 것은 가볍고 죽어 있고 죽게 만드는 것이다. 진리가 아무리 풍성해도 사상이 아무리 풍성해도 미사여구가 아무리 번득여도 아무리 논리적으로 제시되어도 또 아무리 열심이 충만해 있어도 이 하늘 의 기름 부으심이 없다면 생명이 아니라 죽음을 낳는 설교이다. 14. 기름 부으심이란 무엇인가. 때로 설교를 할 때에 어떤 것이라고 분명하게 표현할 수 없고 무엇인지 또 어디에서 비롯되었는지 설명할 수 없지만 부드러운 힘으로 마음과 생각 을 파고 들어가는 무엇이 있는데 그것은 하나님으로부터 직접 비롯되는 것 이다. 그런데 그것을 얻을 수 있는 어떤 방법이 있다면 그것은 설교자의 ‘거룩한 성향’에 의해서이다. 우리는 그것을 ‘기름 부으심’이라고 부른다. 기름 부으심은 설교를 설교되게 한다. 기름 부으심은 모든 단순한 인간의 연설과 설교를 분리시키고 구별되게 한다. 그것은 설교에 있어서의 신성함 이다. 기름 부으심은 하나님의 선물이다. 오직 그분의 사자들에게만 부여 하는 인장이다. 15. 기름 부으심은 헌신의 능력이다. 기름 부으심은 헌신의 능력이며 이 기름 부으심의 존재는 헌신을 재는 지속적인 척도이다. 설교자가 하나님과 그분의 일에 헌신하도록 해주는 것 이 바로 이 하나님의 기름 부으심이다. 이 기름 부으심은 어디에서 어떻게 말미암는가? 기도에 대한 응답으로 하나님에게서 직접 주어진다. 기도만이, 많이 기도하는 것만이 이 기름 부으심을 유지할 수 있는 유일한 조건이다. 끊임없이 기도하지 않으면 이 기름 부으심이 결코 설교자에게 임하지 않는다. 16. 기도를 최우선 순위에 놓아라 골방에서 하나님으로부터 새로운 메시지를 받지 못한 사람이 어떻게 설교할 수 있겠는가? 하나님과 은밀히 함께 함으로 믿음이 소생되고 비전 이 명료해지며 마음이 뜨거워지지 않는 사람이 어떻게 설교할 수 있겠는가? 골방의 기도가 결여된 강단은 언제나 불모지와 같을 것이다. 기도하지 않는 목사는 결코 하나님의 진리를 가르칠 수가 없다. 17. 기도의 후원을 요청하라 18. 짧은 기도는 경건의 해악이다. 기도를 위해 더 많은 시간, 더 이른 시간을 할애하는 것은 부패한 수많은 영적 생명을 소생시키고 활기를 되찾게 하는 데 마법과 같은 역할을 할 것 이다. 기도를 위해 더 많은 시간, 더 이른 시간을 할애하는 것은 ‘거룩한 삶’ 으로 나타날 것이다. 우리가 골방 안에서 하나님과 함께 얼마나 머무는가 하는 것은 우리가 골방 밖에서 얼마나 하나님과 함께 동행하는가를 재는 척도가 된다. 19. 기도하는 성도를 길러내라 지도자들은 사도들과 같은 노력을 기울여 교회의 심장과 생명 속에 기도 의 진실과 절대적인 중요성을 밝히 비추어야만 한다. 기도하는 지도자들이 아니고는 기도하는 제자들을 얻을 수 없다. 기도하는 사도들이 기도하는 성도들을 낳을 것이다. 기도하는 설교자가 기도하는 청중을 낳을 것이다.
    매주 14,000 여명의 회원님들에게 한번씩 보내는 칼럼입니다. 서울 강서교회 김창환 목사(문지기) 드림 양천구 신정로 11길 63 강서교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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