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현대 설교학 3 - 내 양을 먹이라.

이동원 (서울북노회,성광교회,목사) 2019-11-12 (화) 08:34 4년전 1919  

목회자에게 주신 가장 큰 사명은 

주님이 주신 내 양을 먹이라는 명령을 실천하는 것일 것이다.

그렇다면 그 양식은 하나님의 주님의 말씀일 것이고 그 말씀에 오늘 감동을 받고 그것을 전하여야 할 것이다.

 

1. 성경 중심의 설교

이미 언급한 예이다.

언젠가 한 중국인 학자가 삼국지의 내용을 가지고 강의를 하는 것을 티브이로 잠깐 스쳐 보았다. 무슨 내용인지는 잘 모르나 인민복을 입은 그 분은 대단히 진지하게 강의를 하였다. 거기에 청중을 보이지 않아 그대상이 누구인지 모르나 주로 젊은 층 즉 대학생들을 대상으로 하는 강의 일 수 있다. 고전 역사소설을 가지고 그렇게 진지하게 하는 강의를 본국은 물론 다른 나라의 티브이에서도 볼 수 있다는 것이다. 나는 그 때 우리가 더 자성해야 하겠다 는 생각이 스쳐갔다는 것이다.
 
저 분은 고전 역사소설을 가지고도 저렇게 진지한 모습으로 많은 사람을 가르치고 그것이 외국나라에 텔레비젼까지 방영되는 것을 보며 말이다. 그런데 사실에 근거한 그리고 그 내용의 풍부함에도 어떤 책과도 비교할 수 없는 풍부한 성경책을 가지고 그렇게 하지 못한다면 말이다.


근래에 갑자기 젊은이들이 많이 모여 이른바 대형교회에 진입한 듯한 교회가 있었다. 나는 몇 번 보고 좀 의아하였다. 어떻게 보면 젊은이들이 그렇게 특별히 많이 모일 이유가 없을 것 같았다. 젊은이들은 좀 더 자유스러운 그리고 막연히 진보적인 것 최신 유행을 좋아하지 않을까 하는 기존 생각이 있다면 말이다.

주로 성경 강해의 설교이다. 성경 강해의 설교인데 오히려 젊은이들이 많다는 것이다. 그리고 그 내용이 윤리 도덕적 교훈적 내용이 많은 듯하였다. 그런데 비교적 젊은 목회자가 자신이 그렇게 완벽하게 살 수 있을까 부담스러울 정도의 도덕 교훈적 설교를 한다는 것이다. 그런데 젊은이들이 그러한 설교를 듣고자 그렇게 많이 모이는 것이다. 물론 젊은이들이 많이 모인다고 소문이 나서 그 교회를 찾아가고 또 그것이 반복되어 대형교회가 되었을 것이다.

 

한국 교회가 근래 교인 숫자가즐어들도 젊은들이 떠난다며 미래에 대해서 너도 나도 한 마디씩 하는 경우가 많다.

그러나 말씀을 잘 전하면 되는 것이다. 교회가 사람에게 보여 주기식 내용이나 세상기업식 방법 그리고 그 내용이 사람들을 모으기 위한 세상 기업적 내용이라면 구태여 교회의 역할이 필요하겠는가, 무슨 신학을 공부 했다고 성경보다 외국의 신학자들이나 나열하며 그 신학자를 무슨 세기적인 신학자로 높여놓고 그 신학자를 빌어 자기 소리나 한다면 우습다. 혹 그 신학자 그 학설을 듣고 내가 말한 것은 그것이 아니었는데 할 수도 있다. 어렵게 말하면 우리가 모르는 것을 알고 있구나 할 수도 있다. 사람들은 그 신학자를 모르기에 마음껏 그 신학자 빌어 자기 소리를 한다면 그 신학자나 그 신학자를 빌어 말하는 사람이나 그것을 듣는 사람들은 그 어려운 말들에 함께 오리무중에 빠질 수 있다. 그러한 것은 무익하다. 신학설은 참고로 공부해 보는 것이 중요하지 그 이상이 뭐 필요하겠는가,

사실은 외국의 학자들의 성경 지식이 우리보다 꼭 나을 것이라는 보장도 없다. 요즈음 소위 정치평론가들이 보통 사람들보다 낫지 못하는 경우와 비슷하다. 보통사람들은 좀 더 객관적으로 보는데 정치인이나 평론가들은 어떤 자기 정당의 이익의 관점에서 결론을 내놓고 그 그것을 합리화하는 경향이 많기 때문이다.

 

1. 성경을 잘 연구해야 하는데 무슨 신학을 공부했다고 성경의 홍해바다는 갈대바다 였을 것이라는 가설이나 말하면서 유식한 체 한다면 우습다, 실제로 홍해나 갈대 바다의 발음은 같거나 비슷하다며 말이다. 이러한 식이라면 성경은 좀 더 많이 얇아질 것이다. 그 역사적 사실이 서로 연결되어 있고 인용한 부분들이 있기 때문이다.


오병이어는 어떤 아이가 도시락을 내어 놓으니 사람들이 다 감동받아 자기의 것도 내어 놓아 다 배불리 먹고 열두 광주리나 남았다고 한다면 이것도 우스꽝스러운 언어도단이다. 이 놀라운 표적을 믿지 못하고 말이다. 사실은 그 당시 분들도 우리 못지않게 합리적이고 어떤 놀라운 사실을 믿기 위해 검증이 많고 많았다. 성경안에서 보아도 그들도 역시 철저하게 의심하고 검증하고 확인하고 하는 모습이 많고 많았다는 것을 볼 수 있다. 예수님의 제자들도 마찬가지였고 바울 된 사울은 어떠하였는가,


예수님의 말씀 중 낙타와 바늘귀 에 대해서도 아는 체 한다. 뭐 밧줄이지 낙타이겠는가 하며 뭐 신학을 공부했기에 성경을 더 많이 아는 듯 티내는 소리나 하는 것이다. 이 말씀은 예수님의 비유적 표현이다. 강조하기 위해서 그리고잊지 않기 위해서 유모어적 비유법을 사용한 것이다. 그런데 낙타 대신에 밧줄이라 한다면 누가 웃겠는가, 이왕가정법을 사용하려면 유모어적 표현이 좋을 것이다. 어차피 불가능한 이야기인데 밧줄을 사용하면 불가능이 되고 낙타를 사용하면 유모어가 되는 것이다. 아 예수님이 유모어로 말씀하신 것이다. 더 연구해 보면 그렇다는 것이다. 그런데 구태여 낙타대신 밧줄일 것이라며 성경보다 자기 이성이나 판단을 다 믿고 있다면 우습다.


다시, 바늘 귀와 낙타 예는 그 내용을 강조한 유모어이며 밧줄이라면 유모어가 아니라 어렵다는 것을 넘어 불가능이라는 내용이 된다. 신학을 배우고 이렇게 아는체 하려고 한다면 성경을 잘 가르치는 것 보다 자기 지식과시를 보이려는 모습들이 있다.

 

목회자는 오직 성경 말씀 만으로 그대로 라고  해야 할 것이다. 그런데 아이러니칼하게도 세상의 많은 인문학책들을 읽고 많은 인생경험등을 거쳐야 성경의 중요성을 비로서 더 잘 알 수 있다는 것이다. 오직 성경만 이것은 좋은데 그럼에도 많은 독서가 있어야 한다는 것이다. 다른 책을 모르니 성경과 비교할 수도 없고 상대적 평가도 어려울 수 있다. 성경이 귀한 줄도 모르고 말이다. 세상의 많은 책을 읽어야 더욱 성경의 위대성을 알 수 있다는 것이다. 그러므로 오직 성경만은 오히려 다른 많을 책을 읽어야 알 수 있다는 아이러니가 있을 수 있다.

 

 

 1. 초대교회사에서의 설교

초대 교회사는 사도행전에서 사도들이 전하는 것은 무엇인가, 사도들에게 배운 초대교회 집사인 스데반, 빌립이 전한 전한 것은 무엇인가,


그 내용은 예수님이 메시야 그리스도 이시다.
그 기름 부음 받은 자로 오시는 이유은 고난 대속의 죽으심,,
이 일을 감당하기 위하여 하나님 자신이 육신으로 오셨다. 그러므로 하나님의 아들이라 고백한 것이다.
이 내용을 사도들이 가르친 것이다.


그리고 베드로는 구약 성경을 꿰뚫으며 하나님의 구원사를 증거하였기에 사람들이 놀랐다는 것이다. 사람들은 많이 공부하지 않는 보통사람인 줄 알았는데 어디에서 이것을 배웠냐고 놀랐던 것이다. 그렇다면 베드로 서신서는 있지만 베드로 복음서가 없다는 것이 이상할 수 있을 것이다. 그것을 이상하게 볼지 모르지만 사실은 마가복음이 베드로의 영향이 컸을 것이다.


마가는 베드로의 통역자 이었고, 베드로는 마가를 내 아들이라고 부를 정도 이었다. 그것은 혈육적으로가 아니가 믿음 안에서 부르는 것이다. 마가복음의 문체가 간결한데 그것도 베드르의 성격 케릭터와 비슷한 면이 있다. 혹, 이것은 가정이지만 베드로가 복음서를 쓸 수도 있지만 마가가 쓴 내용이 자신이 전하는 내용이었기에 쓰지 않았을 수도 있지 않을까 생각해 본다. 막 1:1절은 베드로가 가이사랴 빌립보에서 너희는 나를 누구라 하느냐 하였을 때 고백한 주는 그리스도시요 살아계신 하나님의 아들이라는 신앙고백의 내용으로 시작한다. 마가복음은 베드로의 영향을 많이 받았을 것은 분명하다 할 것이다. 마가는 베드로의 통역자이었고, 베드로는 마가를 내 아들이라고 하였다는 것을 생각한다면 어떤 면에서 마가복음을  베드로 복음 이라고 해도 일리가 있을 것이다.

 

1. 초대교회에서 전한 복음의 내용은 베드로의 설교에서 가장 잘 나타나 있다고 할 것이다. (행3:-4:)

그 내용은 하나님의 구원의 역사가 현재 진행되고 있다는 것을 베드로의 설교에서 잘 보여주고 있다. 나면서부터 걷지 못한 사람을 걷게하고 그 사건을 통해 하나님의 구원의 역사가 하나님의 영 예수님의 영이신 성령을 통해 여기 그 표적을 통해 증거하고 있다는 것이다, 베드로는 그 표적을 근거로  구약역사를 관통하며 여기 지금 증명되고 있다는 것이다.


사도 바울도 전도의 내용이 예수 그리스도 하나님의 아들 이다.
사도 바울이 전한 복음의 내용은 하나님의 나라이다. 하나님의 나라란 세상나라가 아니라 즉 하나님의 권세 주권 통치 경영 약속 섭리 이루심 등의 영적세계 영적나라인 것이다. 이것인 바을이 그렇게 열심히 전한 하나님의 나라인 것이다.

 

예수님의 비유의 핵심도 하나님의 나라이다. 잠시 있다 갈 세상이 아니라 영원한 하나님을 나라를 그렇게 열심히 반복하여 비유를 통하여 가르쳤던 것이다. 그 하나님의 나라는 어떤 지역에 있는 세상 나라를 초월한다. 하나님의 권세 주권 능력 경영 역사 교통 약속의 성취 역사가 담긴 것을 알 수 있다. 세상 나라가 아니라 하나님의 나라 즉 영적세계를 가르치는 것이다. 물론 그것은 죽음이후에만이 아니라 현재의 내 안에 거하신 성령께서 이 역사 속에서 이루시는 하나님의 역사 주권 능력 경영도 다 포함 되었다 할 것이다.

 

초대교회에서 전하는 주님의 이름의 증거의 내용은  

즉 예수님은 메시야 그리스도 이시고 하나님의 아들이시라는 내용을 전하는 것이다. 이것은 세상 나라의 영역이 아니라 하나님 나라의 영역이라 할 것이다. 한편 성도님들은 설교의 말씀을 듣기 위해서만이 아니라 예배를 드리기 위해서 교회에 나오는 것을 알게 된다. 그런데 그 예배는 하나님을 사랑하는 표현이고 그 예배안에 하나님의 말씀이 있다는 것이다.  교회의 설교가 시대적 유행만 따라가는 포퓰리즘 (populism) 이 아니라 하나님을 말씀을 전하는 것이어야 할 것이다. 하나님은 영원하고 하나님의 말씀도 영원하시기 때문이다. 즉 하나님은, 하나님의 말씀은  언제나 현재이기 때문이다.현대에도 그렇다. 그래서 복음은 언제나 새소식인 뉴스이고 더욱이 굿 뉴스라고 한다. 그러므로 설교자가 언제나 굿 뉴스의 하나님의 나라의 복음을 전한다면 그 이상은 주님이 하실 것이다.

 

현대 설교학의 말씀 전파도 시대와 유행에 따라가 아니라

주님이 명하신 내 양을 치라는 말씀에 따라 영의 양식인 하나님의 말씀을 먹이는 것이어야 할 것이다.

 

                       

사본 - 크기변환_IMG_1066.jpg

                         <  어느 교회 예배에 초청받아 설교하는 한 장면이다.>

 

 

 

 

=. 묵상(meditation)

<2019. 12. 16 , 264,추가>      

  

(요21:10 -17)

 '예수께서 가라사대 지금 잡은 생선을 좀 가져오라 하신대 / 시몬 베드로가 올라가서 그물을 육지에 끌어올리니 가득히 찬 큰 고기가 일백쉰세 마리라 이같이 많으나 그물이 찢어지지 아니하였더라/ 예수께서 가라사대 와서 조반을 먹으라 하시니 제자들이 주신 줄 아는 고로 당신이 누구냐 감히 묻는 자가 없더라/ 예수께서 가셔서 떡을 가져다가 저희에게 주시고 생선도 그와 같이 하시니라 / 이것은 예수께서 죽은 자 가운데서 살아나신 후에 세 번째로 제자들에게 나타나신 것이라/


저희가 조반 먹은 후에 예수께서 시몬 베드로에게 이르시되

요한의 아들 시몬아 네가 이 사람들보다 나를 더 사랑하느냐 하시니

가로되 주여 그러하외다 내가 주를 사랑하는 줄 주께서 아시나이다 가

라사대 내 어린 양을 먹이라 하시고 /


또 두 번째 가라사대 요한의 아들 시몬아 네가 나를 사랑하느냐 하시니

가로되 주여 그러하외다 내가 주를 사랑하는 줄 주께서 아시나이다

가라사대 내 양을 치라 하시고/


세 번째 가라사대 요한의 아들 시몬아 네가 나를 사랑하느냐 하시니


주께서 세 번째 네가 나를 사랑하느냐 하시므로

베드로가 근심하여 가로되 주여 모든 것을 아시오매

내가 주를 사랑하는 줄을 주께서 아시나이다


예수께서 가라사대 내 양을 먹이라.'


Jesus said to them, "Bring some of the fish you have just caught."/

Simon Peter climbed aboard and dragged the net ashore. It was full of large fish, 153, but even with so many the net was not torn./ Jesus said to them, "Come and have breakfast." None of the disciples dared ask him, "Who are you?" They knew it was the Lord./ Jesus came, took the bread and gave it to them, and did the same with the fish./


This was now the third time Jesus appeared to his disciples after he was raised from the dead./


When they had finished eating, Jesus said to Simon Peter,

"Simon son of John, do you truly love me more than these?"

"Yes, Lord," he said, "you know that I love you." Jesus said, "Feed my lambs."/


Again Jesus said,

"Simon son of John, do you truly love me?"

He answered, "Yes, Lord, you know that I love you."

Jesus said, "Take care of my sheep." /


The third time he said to him,

"Simon son of John, do you love me?"

Peter was hurt because Jesus asked him the third time,


"Do you love me?" He said,

"Lord, you know all things; you know that I love you.

" Jesus said, "Feed my sheep.                                                                                                       

                                                            ( - ing )


hi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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