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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 시대 젊은이들이 왜 교회를 찾았는가

이동원 (서울북노회,성광교회,목사) 2019-11-20 (수) 07:17 7개월전 474  

1. 신앙과 젊은 청년들,,

한국의 어려운 시절에 민족적 기독교 젊은이들이 있었다.

나라의 독립을 위한 그 시대에는 젊은이라고 할 수 있는 이승만 김구 안창호 이상재 등등의 민족적 인물들은 그 당시에는 기독교 청년들이었을 것이다. 우리는 그들의 나이든 모습을 보았지만 젊은 날의 그들은 신앙적 열정이 있었다고 본다. 나라의 독립과 이상적인 나라를 위해 그들의 젊었을 때는 기독교 신앙을 가지고 성경을 많이 읽었을 것은 물론일 것이다. 그들은 기독교 신앙을 가지고 민족을 위한 이상을 펼쳤다는 것을 알 수 있다. 한국의 많은 사람들이 존경하는 김구 선생도 교회의 모임에서 사진을 볼 수 있다. 그것은 손양원 목사님의 기념관의 사진에서도 볼 수 있었던 것이다.

과연 그 당시 많은 독립운동가들이 나라를 독립하고 이상적인 나라를 세우는데 기독교 신앙을 가지고 있었다는 알 수 있는 것이다. 초대 국회를 어떤 나라를 의지하는 자세가 아니라 역사를 주관하시고 도우시고 인도하시는 하나님께 기도로 시작하였다는 것은 놀라울 일이지만 이러한 사실 또한  놀라운 일이다. 조선의 독립과 해방의 지점에서의 민족적 지도자들이 기독교 신앙을 가졌다는 것에 새삼 놀라움을 가질 수 있다는 것이다. 그들이 어떻게해서 왜 교회에 출석하고 신앙생활을 하였는지를 연구하여 볼 필요가 있을 것이다. 그렇다면 우리는 많은 것을 그리고 깊은 의미와 도전을 받을 것이다.

이것은 역사가들이 진지하게 연구해 볼 필요가 있다. 이것을 연구한다면 우리는 근현대사에서 진정 좀 더 많은 것을 배우며 우리가 미처 몰랐던 깊은 의미를 배울 것이 분명할 것으로 보인다.

그 시대의 젊은 기독교 청년들이 왜 기독교 신앙을 갖게 되었는가 보아야 할 것이다. 그 한 가지 이유는 그 시대에 깨어 젊은이들 중에 그 당시 세계사 속에서 미국의 발전상을 보고 도대체 무엇이 이 나라를 이렇게 발전하게 하였는가 하는 것을 연구하다가 기독교을 받아드린 청년도 있었다는 기록을 보았다. 그 당시도 의식있는 청년들은 조선의 발전을 위한 열정으로 가득하였다는 것을 알 수 있다. 그런데 그 당시 조선의, 한국의 현실에서 미국은 대단한 선진국이었고 그 모습을 본 것이다. 조선의 깨어있는 젊은 청년들은 그 이유를 찾으려고 하였고 찾은 것이다. 물론 그 당시의 미국은 지금의 미국과 여러가지로 좀 다를 수도 있을 것이다.

 

( * 항일 독립 운동가들 중 교회를 찾고 신앙을 가진 무명의 인사들도 많고 많았겠지만 위의 인물들은 잘 알려진 인물들이다. 이상재 선생은 우리가 교과서에서도 배웠다. 그 일제시대의 어려운 상황에서도 유머가 많은 분으로 소개되기도 하였다. 그는 조선기독교회 청년회장을 하며 그 시대에 역할을 했다. 한편 이상재 선생에 관한 신앙여정의 기록을 보면 모든 신앙인들이 믿음 영접 의심 확증의 등의 과정을 거쳐서 좀 더 확실한 신앙인이 된다는 것을 볼 수 있다. 이상재 선생도 그러했다는 것이다.우리 안에는 누구나 도마의 의심의 마음이 있다는 것을 알 수 있다. 하나님은 보이지 않으신 영이시기 때문이다. 다음은 인용이다.

이상재는 자신의 생애에 낯선 체험을 했다고 한다. 이상재의 주님 영접을 기록한 선교사 브로크만의 글이다.

' 1904년 감옥에서 석방된 이상재는 이유없이 재차 투옥 됐다. 그는 그리스도의 신성에 대해 의문을 가졌다. 그러던 중 감방 멍석 밑에 한문으로 된 요한복음이 눈에 띄었다는 것이다. 그는 그 책을 모두 읽고 하나님께 자기의 눈을 열어 달라고 기도하였다.

1928년 게일 선교사가 '미셔너리 리뷰 오브 더 월드' 에 쓴 재 수감 후 이상재의 영적 체험담에서 ,,

' 믿을 수가 있겠는가 내가 책을 읽고 있는데 예수께서 내 앞에 서셨다.

 거룩하고 위대한 구세주 였다. 나는 지금까지 완전히 그를 잘못 알고 있었다.

 그는 바로 하나님 이셨다,,'

성경에 보면 가장 어려운 시대에 기적들이 많았다는 것을 볼 수 있다. 광야 사십 년, 바벨론 칠십년에 기적이 많았던 것이다. 이스라엘의 분열 왕국 중 우상숭배로 더 어려웠던 북왕국에 오히려 하나님의 큰 기적들이 더 많았다.
하나님은 동일하신 하나님이시다. 광야 사십 년에, 바벨론 칠십년에 특별한 기적이 많았다.

우리의 각 개인의 신앙여정에도 어려운 시기에 오히려 기적과 신비한 영적 체험이 많은 것을 알 수 있다. 하나님은 하나님의 말씀은 갇히지 않고 매이지 않으시기 때문이다. 우리 모두는 도마의 의심을 마음이 한 구석에 잠재해 있다. 그것을 진리는 내 영안에서 진실하게 사실적으로 밝혀준다는 것이다. 신앙인 한 사람 한 사람이 믿음 의심 경험 확신 성장 이러한 과정을 거치고 반복하면서 신앙생활하고 있는 것을 이상재 선생의 간증의 기록을 통해서도 알 수 있다. 놀랍게도 보통의 모든 거의 모든 신앙인들에게 이러한 개인적 간증이 있다는 것이다. 물론 그러한 간증을 체험하고도 깨닫지 못하는 경우도 있을 것이다. 이상재 선생의 간증 체험을 통해서 이성을 가진 사람들의 마음 속에는 보이지 않는 영이신 하나님을 믿는다는 것이, 더욱이 예수님이 하나님이 육신이 오신 분이라는 것이 믿기가 쉽지가 않은데 구하고 찾는 어떤 과정을 통해서 검증되기도 한다는 것이다. 진리이기 때문이다.)

 

시대에 따라 어떤 존경 받는 인기 인사들을 통하여 젊은이들에게 기독교를 전하는 것을 보았다. 그런데 지금은 그러한 지도자들이 거의 없는 듯 하다는 것이다. 그것이 좀 이상하다. 시대마다 청년들을 리더하는 기독교 지도자가 있었는데 말이다. 아니 그렇다면 무슨 뜻이 있을까, 그것은,

청년이여,

예수 그 분에게 직접 달려가라는 뜻일 것이다.

오늘의 시대상황에서 누구를 어떤 나라를 의지할 것인가, 그들이 자기 나라의 이익을 위해서 한국을 이용하려고 하는 모습을 보는 현실에서 ,

우리가 만든 남북교류 금강산 관광의 위대한 결실, 개성 공단의 작은 통일의 모습들, 남북의 철도 연결의 준비와 기대가 좀 더 잘 진전을 보지 못하고 심지어 유엔의 허락이나 갑질을 보면 우리의 선조들이 어느 누구를 의지했던가 보아야 한다는 것이다. 마냥 어떤 나라 만을 의지하는 것이 아니라 세계 역사를 주관하시는 하나님을 의지 하지 않았던가 말이다. 애국가의 가사는 애절함과 절규가 담겨 있다고 볼 수도 있다. 약육강식의 세계 각 나라의 이익 추구에 과연 누구를 의지하였던가, 하나님이 보우하사는 어떤 간절함과 절규 그리고 진정한 세계 역사의 주관자 인도자 하나님이 보우하사 를 가슴 속으로 의지하고 기대하고 외쳤던 것이 아니겠는가, 세상의 어느 나라에 이러한 가사가 있다는 것인가, 심지어 기독교가 국가인 나라에도 이러한 가사는 없을 것이다. 세상의 어떤 나라를 의지하겠다는 사대주의 정신이 없다. 

동해 물과 백두산이 마르고 닳도록 ,, 어찌 동해 물과 백두 산이 마르고 닳겠는가,

영원토록 영원까지 하나님이 이 나라를 보우하사 우리나라 만세로 결론을 내리는 것이다.

이러한 애국가를 부르는 나라는 영원할 수 있다. 하나님이 영원하시기 때문이다.

이러한 애국가를 부르는 나라는 남북이 사랑하며 평화 번영을 누릴 수 밖에 없을 것이다.

우리가 그렇게 믿으면 그렇게 될 것이다. 하나님의 약속이고 뜻이기 때문이다. 우리가 그 약속의 말씀을 굳게 믿고 붙잡으면 그렇게 된다. 우리의 믿음대로 된다는 것이다. 우리의 믿음의 대상이 실제적으로 살아계시고 영원하시고 신실하시고 전능하시고 도우시고 좋으신 분이기 때문이다. 세상을 창조하시고 경영하시는 그 하나님의 그 성품과 능력이 영원이 동일하신 분이시이시라는 것이다. 이 한가지만 알아도 우리는 소망을 가지고 담대할 수 있다.


1. 기독교에 일부 젊은이들이 떠난다는 이야기도 있다.

젊은이들이 교회에 찾아오기는 고사하고 떠나간다면 마음 무거운 일이다.

그런데 상당히 오래 전에 어떤 이슈 즉 사학법에 대하여 기독교와 어떤 정당과 시청 앞에서 집회를 하였다. 이른바 대형 교회들 인 것 같았다. 그 정당을 도저히 지지할 수 없은 젊은이들을 어떻게 하자는 것인가, 우연인지 그 집회 이후에 기독교를 비방하는 글들이 있게 되었다. 기독교가 아니 일부 대형 교회 목회자들이 정치성향이 다른 그들을 젊은이들을 적으로 삼는 듯이 하였다. 어처구니 없는 일이었다. 젊은 세대를 적으로 대한다면 도대체 어떻게 그들을 전도한다는 말인가, 일부 교계 지도자들이 자기들을 제외한 다른 정당을 지지하는 사람들을 다 적으로 삼고 있는 것이었다. 그 당의 관계자가 오히려 젊은이들의 지지하지 않는 모습 등을 보고 지금 그 정당의 존재 자체가 적폐라고까지 하며 자성하는 모습을 보이고 있는데 말이다.

한편 일부 기독교 일부 세력은 국민이 선출한 대통령 님을 존경하는 언어는 고사하고 세상의 사람들도 사용하지 않는 거의 막말 수준의 언어를 사용하고 있다. 이러한 일부 교계 지도자들의 언행은 있을 수 없는 일이다. 그 현명하고 총명하고 수준 높은 젊은이들이 기독교를 어떻게 평가하겠는가, 최고의 신사적이고 정중한 언어를 사용하여도 얼마든지 가능한 의사 표현을 거의 *** 수준의 언어를 목회자가 사용하고 있다는 것이다. 기독교의 수준을 떨어트리고 심지어 모든 젊은이들을 또는 많은 젊은이들을 적으로 만드는 언어를 내용을 말하고 있다. 이러한 행태를 보고 의식 있는 젊은이들을 교회에 호감을 갖겠는가, 교회를 쉽게 찾아오겠는가, 그렇다면 예수님이 기뻐하시겠는가,교회를 찾아오려는 젊은이들을 일부 교계 지도자의 이념의 노예가 된 언행은 전도를 막고 있는 것이다. 오호 통재라,, 사랑의 예수님은 모든 사람을 부르고 있는데 일부 교계 지도자가 가로 막고 있는 격이 되는 것이다.

그들이 다 전도의 대상이 아닌가 말이다. 젊은이들이 미래이고 현재인데, 내일의 주역이 되는데 그 젊은이들의 기대와 거리가 너무나 먼 신앙인들이 신앙인들의 지도자들이 세상 사람보다 더한 극한 말을 사용하는 것을 보고 기독교에 어떤 이미지를 가지고 있겠는가. 어떻게 젊은이들이 교회에 호감을 갖고 달려 오겠느냐 말이다. 이렇게 전도의 길을 막아버린다면 예수님의 심정은 어떠하겠는가,,

일부 교계 인사가 거리에서 기쁜 소식인 복음을 전하지 않고 세상의 무슨 이념이나 자기의 무슨 적대적인 주관적 이론을 가지고 무엇을 전하고 있는 것인가, 참으로 전도의 길을 다 막고 있는 것이 아닌가 할 것이다. 이것이 도대체 이 시대의 무슨 현상인가, 일부 교인들의 청와대 앞의 어떤 모습은 적지 않은 세상 사람들 젊은이들이 볼 때 참 가관이라고 할 것이다.자기 의에 도취된 모습이 아닌가 진지하게 자성하여야 할 것이다. 예수님은 그러한 모습을 보고 무엇이라고 할 것인가, 주님이 주신 계명은 어디로 가고 무엇을 하고 있는지,,

다시, 일부 교계지도자들이나 어떤 단체들이 청년들을 적으로 만드는 시대착오적인 용어를 사용하다면 기독교 전도의 길을 막고 있는 것이다. 예수님이 과연 기뻐하실까 예수님이 마음 아파 하시지 않을까,일부 교계지도자들은 깊이 생각하여야 할 것이다.

1. 일부 이념의 노예된 듯한 기독교 지도자들도 자기의 목회적 직무에 충실하여야 할 것이다 그들이 많은 사람들을 적어도 많은 젊은이들을 모두 적으로 만들어 놓는다면 누구를 전도한다는 것인가, 미래의 주역의 젊은이들이 이러한 종교지도자들을 보고 그 종교를 호감있게 보겠는가, 전도의 길을 막는 이러한 목회자들을 보고 예수님의 심정은 어떠하실까 생각해 보아야 할 것이다. 세상 사람들도 쉽게 하지 않는 막말 한심한 인품 존경받지 못한 이러한 사람들이 혹기독교계 지도자인줄 잘못 안다면 기독교를 어떻게 보겠는가,기독교에 대하여 호감을 갖겠는가, 전도가 되겠는가, 전도에 도움이 되겠는가,

그들이 어려울 때 사람이 감당 못할 어려움을 당하였을 때 영혼이 갈급할 때 죽음이 문제 내세의 문제 영원의 문제에 해결을 찾기 위해 방황하다가 종교를 찾을 때 그 해결과 구원을 주는 교회를 찾겠는가, 교계 지도자들이 그들을 다 적 만들어 놓고 비호감을 갖게 하면 말이다. 예수님이 기뻐하실까 말이다. 자신들이 옳다고 거리에서 외치는 소리가 주님의 사랑의 말씀과 일치한 것이 아니라 세상의 이념에 세뇌 된 것이 아닌가 보고 주님의 말씀으로 달려가야 할 것이다. God bless you.



=. 묵상 (meditation)

(행17:11)

베뢰아 사람은 데살로니가에 있는 사람보다 더 신사적이어서

간절한 마음으로 말씀을 받고 이것이 그러한가 하여 날마다 성경을 상고하므로'

Now the Bereans (the Bereans jews) were of more noble character than the Thessalonians,

for they received the message with great eagerness and

examined the Scriptures every day to see if what Paul said was true.'

(* 여기에서 베뢰아 사람과 데살로니가 사람들을 비교하여 말하는 것이 아니라 각각의 거기에 거하는 유대인을 말하는 것이다.)

연약한 우리 인생은 완전하지 못하다. 우리의 언어와 행위 그리고 생각에서도 그렇다. 그렇기때문에도 구세주 메시야 그리스도가 필요하기도 하다. 그러므로 예수님께 달려갈 수 밖에 없는 것이다. 우리 안에 예수님을 그의 성령을 영접하고 동행해야 하는 것이다.

그렇다면 성경을 연구하고 과연 그 분이 창조주이신가, 하나님이신가, 역사를 주관하신 분인가, 이 역사는 어떤 방향으로 가고 우리는 무엇을 하여야 하는가, 인생에 자연에 역사에 삶은 문제에 해답을 찾기 위해 말씀으로 달려가고 답을 찾아야 한다. 내 안에 거하시는가, 지금 그러면 무엇을 하여야 하는가, 인생의 의문에 그 분께 달려가고 정답을 찾아야 한다.

그러한 답을 성경에서 찾아보려는 사람이 고상한사람 신사적인사람이라 할 것이다. 또한 그 결과 고상한사람 신사적인사람이 되고 되어 갈 것이다.

                                                            ( - ing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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