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근래 일부 기독교인들의 모습들

이동원 (서울북노회,성광교회,목사) 2019-11-29 (금) 07:38 4년전 1875  

근래에 일부 기독교인들의 모습을 보면 교인으로서 창피하다는 것이다. 그러나 그것이 일부의 모습이기에 다행이다. 그런데 그것이 많은 믿지 않는 사람에게는 기독교 전체로 비춰진다면 그리고 비춰질 수도 있다는 것이 참으로 안타깝다. 그들의 모습은 기독교의 진정한 내용을 잘못 이해하고 현재는 물론 미래의 교회에도 손해를 끼치게 될 수 있을 것이다. 그렇다면 예수님은 그것을 기쁘게 보실 수 없다.

 

기독교의 내용은 교리가 있고 계명이 있다. 교리를 믿고 계명을 실천하는 삶에는 기쁨 감격 품격 아름다움 멋짐 등등의 좋은 단어는 다 있다. 하나님의 속성이기 때문이다. 하나님이 창조한 이 대자연은 모든 좋은 단어를 가지고도 표현이 부족할 것이다. 그러한 기독교가 어찌 그러하지 못한 모습으로 보인다는 것인가,

 

대자연을 아름답고 완벽하고 풍부하고 감탄의 연속을 발하게 창조하신 하나님이다. 하나님이 말씀하시매 그대로 되어 보시기에 좋았더라고 하셨다. 교인들의 모습들이 하나님이 보시기에 신불신자들이 보기에 좋은가 생각해 볼 일이다. 사람들이 보기에 품위 신사적 예술적 등과 거리가 먼 좀 더 광신적으로 보일 정도는 되어야 열렬 신앙인들이라고 규정 할 필요는 전혀 없을 것이다. 근래에 기독교인들이 보아도 그 표현들이 창피하게 느끼는 종교적 표현들이 많은 것이 어떤 이유때문인가 연구해 볼 필요가 있다. 복음을 잘 전달하기 위해서도 필요하다 할 것이다.

그에게 제사를 드리는 제사장의 직임을 감당할 제사장은 아름답고 영화롭고 영광스럽고 귀한 옷을 입고 그 직무에 봉사하라고 하셨다. 하나님은 그렇게 아름답고 영화롭게 디자인의 설계를 주시어 옷 입게 하고 그 직임을 감당하게 하셨다. 그리고 이제 예수 메시야 그리스도 안에서 성도 된 모든 믿는 사람들은 왕 같은 제사장이라고 하셨다. 그렇다면 교인들이 좀 더 멋있고 아름답고 세련되고 품위 있는 모습이어야 하지 않는가,

 

그런데 친애하는 국민이 선출한 대통령이 집무하는 청와대 앞의 어떤 모습들은 어떠한가, 그 주위의 거주자 분들에게 얼마나 민폐를 끼치는가, 기독교가 이래도 되는가 말이다. 기독교 대표는 사과하여야 할 것이다. 안 믿는 사람들이 어떻게 볼 것인가, 누군가는 극단적인 광신도라는 말을 하게 하지 않는가, 전도에 유익이 되겠는가, 다른 사람들에 대한 배려심이 있는가, 예의가 있는가, 품위 있고 아름다운 모습이 있는가, 서로 사랑의 마음이 있는가, 골방에서 기도하라는 말이 들리지 않는가, 사람에게 보이려고 기도하지 말라고 하는 말이 안 들리는가, 정부가 무슨 종교를 탄압하는가, 이렇게 나라의 대통령이 집무하는 곳에서 밤낮으로 이상한 모습을 보이는 종교가 있다면 세상 사람들이 어떻게 생각하겠는가, 그들이 다 복음 전파의 대상이다.

그들의 어떤 모습과 공개된 언행은 예수를 믿으려는 사람을 가로 막지 않는가, 자기만이 무엇을 보았다는 들었다는 소리를 하면서 교만한 모습이 아닌가, 골방에서 기도하라고 하신 이유를 아는가, 사람에게 보이려고 기도하는가. 아니면 청와대 앞이 하나님을 만나는 장소로 변하였는가, 티브이를 향하여 기도하는가, 왜 기독교의 한 모습이 이렇게 되었는가, 불신자들에게 유치 광신 등으로 존중받지 못할 모습으로 보이면 전도에 유익이 될 것인가 가로막는 모습이 될 것인가, 그러한 기본 판단도 안되는가, 비록 극히 일부이겠지만 누가 기독교를 이렇게 보이게 만들었는가, 

티브이 화면에 비추이는 모습은 믿는 사람이 보기에도 민망하다. 왜 기독교가 저러한 식 저러한 모습이어야 하는가, 거기의 소위 종교지도자라는 사람은 심지어 악담까지 하는 것이다. 종교지도자의 입에서 복된 말 기쁜 소식 희망의 말이 전해져야 하는데 말이다. 불신자들이 저 모습이 기독교의 모습인 것으로 안다면 어떠하겠는가, 정치권의 일부 저급한 모습이 드디어 어린이가 배운 것이 아니라 일부 기독교인이 배운 것이 아닌가,

다행히 어린이나 청소년 젊은이들은 정치인들의 저급한 언행을 배우지 않고 비판한 것이 그래도 미래에 희망이다.

 

 

근래에는 보기 힘들어 다행이지만 전철에 역 앞에 전도한다고 노래하고 소리치는 가끔의 모습은 그 종교에 대하여 잘못된 인식을 줄 수 있다. 예전에 한번 어떤 지하절 역 부근에서 어떤 음악을 틀어놓은 것을 들으면서 얼굴이 화끈 거릴 정도이었다. 우리가 저러한 모습의 종교와 같은 종교인가,  근래 일부의 모습은 세상 사람들이 볼 때 이상하거나 광신도로 보여질 수 있다. 그렇다면 그들이 성경에 대한 기독교에 대한 잘 못된 인식으로 전도의 방해가 될 있을 것이다. 비록 극히 특별한 일부이지만 왜 기독교가 이렇게 수준 낮은 모습이 되었을까, 극히 일부지만 믿지 않는 사람들은 그것이 기독교의 내용으로 볼 수 있다는 것이다. 여기에는 말하는 음악 팀은 가끔 거리에서 잘 준비된 젊은이들의 찬양을 말하는 것은 전혀 아니다.

기독교가 신사적이고 세련되고 품위있고 예술적이고 아름다운 모습일 것은 당연하다. 왜냐하면 우리가 믿는 하나님은 전능 좋으시고 예술적인 분이시다. 하나님의 창조하시고 경영하시는 자연을 보라.

또한 하나님은 제사장 직임을 감당하는 직분에 영광스럽고 아름답고 영화스럽고 의미있는 옷을 입게 하였다. 그 옷은 하나님이 아름답고 정밀하게 디자인하고 귀한 보석 류로 의미답아 장식하게 하셨다. 이렇게 제사장들을 존귀하게하여 그 직무를 감당하게 하셨다. 신약 이후로는 예수 믿는 모든 성도들을 왕같은 제사장으로 삼으셨다. 물론 외면만 증요하게 하여야 한다는 것은 아니다.

 

1. 청와대 앞의 마당의 일부 기독교인들의 모습은 신 불신자들에게 어떠한 모습으로 인식될까, 주위에 소음을 주고 민폐를 끼치는 장면을 보고 혹 한 두 번 두세 번을 어떤 이유로 그렇다 해도 불신자들에게 어떤 인식을 주겠는가, 혐오와 거부감과 부정적인 인식을 준다면 전도에 도움이 되겠는가, 아니 얼마나 전도에 방해하고 있는가, 혹 안하무인 배려없음 소음피해 자기중심 광신적 등으로 비춰진다면 접근하려고도 하지 않을 것이다. 서로 사랑 존중 배려 위로 예의 언행 등이 신사적인 모습이 기독교의 모습이 아닌가, 국민이 선출한 대통령을 가장 존중하는 모습을 보여야 하는 것이 기독교인의 당연한 자세이다. 일부의 상식을 능가하는 극단적인 모습은 기독교 전체를 이상한 단체로 볼 수도 있다는 것이다. 인문학적 컨텐츠 부족하고 품격없고 세련되지 못한  교계 지도자들의 선동에 일부 교인들이 따르는 듯 하다. 화면에 비취는 그 들의 모습도 감동적이지 않고 공감 되지 않고 같은 종교인가 할 교인들이 적지 않을 것이다.

성경의 내용은 가장 가치있고 고귀한 내용으로 충만한데 어떻게 그것을 읽고 듣는 사람의 행적이 저 품격이 된다는 것은 문제가 크다 할 것이다. 이것을 보아도 지금은 말씀을 향한 종교개혁이 필요한 시대인 것을 알 수 있다. 근래에 십수년 수십년 동안 수평이동의 교회성장에 올인하다고 보니 지도자와 교인들이 성경의 말씀보다 세상기업적인 교회 성장 방법론에 올인하였다면 그것은 가장 반성하고 자성할 일이다.

 

어떤 야당 정치인 소위 지도급들이 청와대 앞에 무슨 쇼우를 하는데 어쩌나 혹 한 두 번은 그럴 수 있는지 모른다. 자기의 무능을 그것으로 감추고 화제 삼으려고 한다. 그정도 컨텐츠로 정치지도자 되기 힘들다. 자기들은 영원히 정권을 잡을 생각이 없는가, 한달 하루가 멀다고 노숙하며 시위하면 어떠할 것인가, 왜 청와대 앞의 통행을 방해하는 것인지, 정치를 국회와 국민을 위한이 아니라 일부로 노숙 쇼우하며 정치를 그렇게 하는지 누군가 존재 자체가 민폐라는 말은 여기서도 적절하다 할 것이다.

 

본인 자신과 가족을 자신이 믿는 종교와 나라를 위해서 출구 전략 세워서 정계를 은퇴하는 것이 낫지 않을까 한다. 그럼에도 심성과 콘텐츠와 정책 비젼이 있다면 국민이 부를 수도 있다. 물론 그 정도는 전혀 아닌 것 같고 다른 자신이 맞고 잘하는 일로 국민에게 봉사하는 것이 자신과 가족과 그가 믿는 종교와 나라를 위해서 좋다고 생각한다. 그를 비난하면서 그 종교에 대해서도 ,, 왜냐하면 종교를 너무 이용한 모습이었다. 이것은 그 종교에도 좋지 않다. 평생을 공안검사로 살아왔다면 세상 물정을 너무 모를 수 있고 더구나 정치인이 가져야 할 콘텐츠 국제적 안목 국내외적 상황 판단 등등 모든 것이 부족할 수 있다. 더구나 공안검사로서 평생을 보내왔다면 균형감각 없이 한쪽면의 시각에서 세상을 보아왔을 가능성이 많다.

본인과 가족과 그의 종교와 나라를 위해서 정계를 은퇴하는 것이 좋다고 본다. 대통령직을 수행하는 것은 참으로 힘든 것을 볼 수 있다. 최근의 단식을 보아도 건강적으로 전혀 감당하기 어려운 것을 보여준다. 지금까지 정치 신인의 생활에서 나름대로 배운 것을 가지고 정부와 여당에 협력하며 나라를 위하여 일하는 것이 좋다고 본다. 그런데 공안검사의 시각으로 그리고 평화 번영 그리고 평화경제의 비젼과 다른 것 같아 더 이상의 언급은 하고 싶지 않다. 어떤 나름의 경력이 있는 정치인이 어떤 야당의 존재 자체가 민폐라는 말을 완전히 이해하고 공감한다면 그리고 새로운 정치인의 길을 간다고 혹 기대할 수 있을지 모르겠다. 기존 정당을 완전 해산하고 새로운 정당으로 새로운 비젼을 가지고 정치한다면 모르는데 그것은 그 정치인의 캐릭터와 컨텐츠로는 부족할 것 같다. 정당 자체의 존립하는 것 자체가 우리 현대사에 문제가 있다고 생각하기에 더 이상 충고하는 언급은 않을 것이다

 

정치인들이 어떤 정책을 시행할 때 모든 사람을 기쁘게 할 수 없다. 자기의 이해관계에 따라서 당연히 반대할 수 있다. 그렇다면 그 종교도 좋은 인상을 받을 수 없다. 그렇다면 전도에도 방해가 되는 것이다. 종교의 복음은 모든 사람에게 기쁜 소식이고 기쁜 소식이 되어야 하는데 찬반이 있는 정치의 정책의 하부구조가 될 수가 있다. 그렇다면 그 종교에 피해가 될 수 있는 것이다. 최근 종교가 정치를 이용하려면 모습을 보인다. 물론 정치가 종교를 이용하려는 모습도 보인다. 이것은 현명하지 않고 어리석은 모습이다. 정교는 분리되는 것이 현명하다. 종교와 정치가 어떤 면에서 협력하는 모습도 좋은 점이 있다. 그러나 종교는 그 종교의 교리와 계명을 전하며 하나님을 의지하는 것이 가장 우선순위가 되어야 한다. 정교가 서로 이용하려고만 한다면 반드시 서로 손해가 될 수 있다.

 

어떤 야당 정치인들 소위 지도자들의 모습이 가관이다. 어디서 공격이 최선의 방어이다라는 말은 듣고 신봉하는지 매일 정부 여당 비판으로 세월을 보낸다. 자기의 콘텐츠 부족을 그것으로 채운다. 자기의 당 안에서의 대표로서 위치도 불안하고 정치적 콘텐츠도 없는데 상대방 비난으로 그것을 감추고 숨기려는 모습이다. 도대체 무슨 비젼이 있는지 많은 국민을 알 수가 없다. 그러한 정치인이나 정당은 미래의 비젼이 없다. 다행이 젊은이들이 잘 판단하고 있다. 이것은 미래가 암담하지 않고 희망적이라고 할 수 있는 것이다.

 

 

경제 어렵다 어렵다고 일부 야당은 난리인데 미국 대통령 그리고 관리까지 찾아 와서 한국은 부자의 나라라며 자기의 나라의 주둔비를 한국이 부담하는 것도 생각해 보아야 하는데 턱없이 올리고 덮어씌우려고 한다. 일본은 우리와 조금 다르다. 그 나라는 과거에 많은 침략을 했고 지금 중 러 등에 불안감을 느낄 수 있다. 미국을 거의 결사적으로 동맹적으로 붙잡고 있는 듯 하다. 그들의 과거나 현재의 지정학적 위치이다. 한국의 경우는 북한으로부터 방어해 준다는 데 생각해 보면 이것도 무기 팔기 위하여 나라의 국방비 증액 등등의 북한 팔이 인 것을 근래에 많은 국민이 알게 되었다. 북한이 원하는 평화 협정은 이 핑계 저 핑계로 질질 끌고 북한을 자기의 국익에 이용하려고 한다. 북한이 없다면 그리고 북한이 강한 나라 또는 호전적인 나라로 만들어야 국방비 인상 한국 방위비 인상 등등 다목적으로 활용할 수가 있다는 것이다. 기독교 국가인면 교인이면 그러한 자세는 적절하지 않다. 존경 받지 못하고 그것이 기독교인들의 모습이라면 결국 전도에도 방해가 될 수 있다. 그런데 어떤 집회에 태극기에 미국기도 같이 달고 다니는 모습을 보는데 국민의 수준과 너무나 동떨어져 있다고 할 수 있다. 만약 기독교인들이 그러하다면 절대는 아니지만 전혀 바람직하지 않다. 그들이 믿는 하나님을 예수님을 절대적으로 의지하여야 한다. 구약 성경에서도 어떤 위기에 하나님 보다 외국의 강대국을 의지하려는 모습에 강력히 책망하였다. 하나님보다 외국의 나라나 더 의지하는 모습은 신실한 교인의 모습이 아니다. 그런데 혹 그것을 일부 교계 지도자가 가르쳤다면 잘못 가르친 것이다.

                                                    

                                                    ( - ing)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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