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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경을 어떻게 읽을 것인가 - 교리와 계명

이동원 (서울북노회,성광교회,목사) 2019-12-31 (화) 08:28 6개월전 419  

1. 많은 사람들이 성경을 읽고 꿀송이 같다며 격찬한다.

또한 많은 사람들이 성경이 너무 어렵다고 하며 처음 읽다가 너무 어려워서 더 읽지 못하고 중단하였다고도 한다. 성경을 어떻게 읽을 것인가,

 

먼저 성경을 기록한 목적이 핵심이 무엇인가를 알아야 한다.

성경의 구약은 하나님의 창조와 미래에 메시야가 오시겠다는 약속의 내용 그리고 그것을 이루어 가는 과정에서 보아야 한다. 그리고 그 약속하신 메시야가 예수라는 것이다. 그런데 구약에 약속하신 메시야 그리스도 그 오시는 기름 부은 받은 자가 사람이 생각한 그 이상의 놀라운 메시야로 오셨다는 것이다. 그 메시야의 내용는 신약에 좀 더 풍부하게 기록이 되어있다.

 

그러므로 성경을 읽을 때 예수님이 메시야 우리의 죄를 대속에 죽으시고 내세의 소방이 부활과 영생을 주시는 분이심을 믿는 것이다. 이 믿음의 고백에서 성경을 읽고 그 믿음으로 기도하는 가운데 더 많은 깨달음과 영적체험 응답을 받고 풍부한 신앙생활을 할 수 있을 것이다.

만약에 자신은 도저히 하나님이 육신으로 오신다는 것 그 분이 예수이시라는 것을 믿지 못하겠다면 과연 그러한가 탐구하는 마음을 가지고 읽을 수도 있다는 것이다. 예수님의 제자이면서도 다른 제자들의 예수님의 부활으르 이야기 했을 때 믿을 수 없다고 한 도마도 부활하신 예수님을 만나고 나의 주 나의 하나님이라고 간증하였던 것이다. 그러므로 예수님이 과연 우리의 죄를 대속해 죽으시기 위해 오신 하나님의 아들 메시야인가 하는 것을 탐구하는 자세로 읽을 수도 있다는 것이다. 그럼에도 큰 유익이 될 수 있는 것은 성경이 역사적 문학적 교훈적 언어적 등의 어떤 책과도 비교할 수 없는 탁월한 내용이 담겨 있기 때문이다. 신앙 외에 부수적으로 배울 수 있는 유익도 가히 최고라 할 수 있을 것이다. 그러한 이유에서도 세상에서 가장 많이 읽히게 될 것이다. 동양인들은 서양인들의 가치관과 삶의 문화의 바탕인 성경을 읽을 때 좀 더 잘 이해하여 교통 소통하는데 유익할 것이다.

교리는 예수님은 메시야 그리스도 그 기름부음을 받은 자로 하나님이 육신이 되어 오셨다는 것이다. 그 믿음 안에 출발한다. 이 믿음의 고백에 교회를 세우시겠다고 약속하시고 교회를 세우신 것이다.

 

1. 계명은 하나님을 사랑하고 이웃을 사랑하라는 것이다. 이웃은 거리적 혈통적인 의미 이상이기에 예수님께서는 서로 사랑하라고 해석해 주셨다. 이것이 모든 사람들의 인간관계의 기본일 것이다. 국제관계도 이러한 서로 사랑 윈윈의 근거에서 출발하는 것이 승리의 자세이고 승리가 따라올 것이다.

구약 경전의 전문가 율법학자가 가장 크고 첫째 되는 계명이 무엇이냐고 예수님께 물었을 때 대답해 주신 것이다. 율법학자가 질문한 것이다. 그만큼 어려운 질문이다. 가장 크고 첫째 되는 계명이 무엇인가 말이다. 그런데 예수님은 하늘과 땅의 그리로 미래의 내세의 인생의 모든 질문에 대해 대답을 막힘없이 해주셨는데 이 율법학자의 질문도 대답해 주신 것이다.

가장 크고 첫째 되는 계명이기에 그 계명대로 사는 것이 가장 첫째 되고 큰 사람이라는 것을 알 수 있다.

 

1.어떤 신학도가 외국에 가서 신학을 공부하며 얼마나 어려운 학설을 공부하였는지 하며 그 학설을 쓰고 있는 글을 보았다. 그가 전문적으로 공부하고 외국에까지 가서 그 어려운 공부의 내용이라면 일반 보통 사람들 누가 그 학설을 알겠는가, 이해하겠는가, 성경을 더 어렵게 그리고 이상한 학설로 오리무중에 빠지게 할 수 있다. 자기도 그리고 듣는 사람들도 무슨 말을 하는지 알지 못하는 말을 하면서 무슨 대단한 것을 공부하는 착각을 할 수 있다. 성경을 일어야 하는 것이지 무슨 신학자의 학설에 연연할 것이 없다. 유익한 내용도 있겠지만 무익한 학설들도 없지 않다고 하겠다. 그럼에도 무슨 신학자 또는 누가 붙여주었는지 모르지만 유명한 신학자라는 타이틀로 많은 사람들을 성경보다 그 학설을 신봉한다면 적절할 수 없다.

성경을 읽게 하는 안내자 또한 성경을 성경대로 잘 해석하는 내용이 되어야지 자기의 학설을 주장하거나 선한하여 그 학설의 신봉자가 생긴다면 그것은 바람직하다 할 수 없다. 직접 성경으로 달려가서 교리와 계명에 근거해서 성령의 감동을 구하며 읽어야 한다는 것이다. 만약 믿지 못하겠다면 그러한 자세로 자세하고 진지하게 탐구한다면 오히려 도마와 같은 고백이 나올 수 있을 것이다. 사람들이 만든 신학설들은 오히려 더 어렵고 혼돈만을 주는 경우가 많다 한 것이다. 그러므로 경전은 국어의 잘 번역된 경전과 세계어의 잘 번역된 경전이 중요하다. 성도는 국민으로서 또한 세계인으로서 국어와 세계어로 같이 읽으면 유익하고 좋다 할 것이다. 영력 뿐 아니라 국력이라는 것은 반복하였다. 가능하다면 이것을 어렸을 때부터 교회적 국가적으로 하여도 좋을 것이다.

 

성경의 핵심은 예수님 메시야 그리스도 기르므 부음을 받은자로 하나님이 육신으로 오셔서 그 일을 이루셨고 부활 승천하시고 성령으로 임하여서 교회를 약속대로 세우시고 그 믿음으로 우리가 교인으로 여기 있다는 것이다. 그러므로 이제 하나님의 영 예수의 영 성령과 교통하며 그 은혜를 누린다는 것이다.

오히려 신학자들이 외국에서 성경이 아니라 신학자들의 무슨 어려운 이해할 수 없는 학설을 배우고 전하는 것은 생산적이라 할 수 없을 것이다. 그리고 유익한 신학자의 학설도 있지만 무익한 유행학설도 있을 것이다. 가령 교과서가 있는데 수많은 참고서가 있다면가 많은 참고서가 다 최상이라고 할 수 없을 것이다. 성경은 교과서와도 비교할 수 없는 성령의 강동으로 씌어진 책이다. 이 책을 중심으로 읽어야 하며 그 책을 기록한 교리와 계명을 근거로 읽어야 한다. 만약 혹 그 교리와 계명을 받아드릴 수 없다면 과연 그러한가 하는 자세로 읽을 수도 있다. 그럼에도 유익은 크고 많을 것이다. 그 내용이 너무나 탁월하기 때문이다. 그리고 진리는 언제인가 찾고 밝혀질 것이다. 영원한 진리라면 더욱 그렇다.

 

1. 파스칼은 천재 수학자 철학자로 알려진 사람이다.

그런데 그가 예수님을 영접한 것은 수학적 철학적 접근을 하여서가 아니었다. 그의 손위 누이가 죽어가는 모습을 보고서였다. 알려진 바로는 파스칼은 일찍 부모님을 잃게 되어 그의 누나가 어머니같이 의지하는 것이었다는 것이다. 그런데 그 누나가 죽어가는 모습을 보고 간절히 기도했다는 것이다. 이 죽어가는 누나를 살려주시기를 이 누나를 살려주시기만 하면 나의 배운 학문을 주님을 위하여 사용하겠습니다. 간절히 간절히 기도했는데 기적적으로 그 누나의 병이 호전되어 건강을 갖게 되었다는 것이다.

그래서 그는 내가 믿는 하나님은 수학자 철학자의 하나님을 말한 것이 아니라 아브라함과 이삭과 야곱의 하나님 하면 그의 간증서를 기록하여 옷의 팔부분의 저고리 안에 넣어 간직하고 다녔다는 것이다. 그는 그의 서원대로 팡세라는 글을 써서 신앙을 전파하였던 것이다. 그는 하나님을 수학이나 과학으로 만난 것이 아니라 경험으로 초자연적인 경험으로 초자연적인 하나님의 도우심으로 만난 것이다.

( 이것을 생각하면 북한의 누구를 비방하는 교인들이나 소위 기독교 지도자들이 있는데 그들을 사랑하고 기도하여야 하는 것이 교인들의 자세이다. 하나님의 역사는 놀랍기 때문이다. 북한의 누구를 비방하거나 혹 누구를 무슨 파 운운하면서 비방하는 사람들은 전도의 문을 막는 것이다. 자기도 하나님 보시기에 올바르지 않고 남까지 못 믿게 훼방하고 가로막고 있는 것이 아닌가 보아야 할 것이다. 자신들이 이념의 노예가 되어 자신도 그렇고 타인의 믿는 것까지 가로막는 이상한 이념의 노예자들이 아닌지 보아야 할 것이다.)

성경보다 이상한 그리고 여러 신학자의 학설들이 성경을 읽는데 어떤 다른 선입견을 갖게하고 어렵게 하고 방해할 수 있다는 것이다.)

 

어려운 법보다 법조문의 해석이 더 어렵다는 말도 있는데

성경을 성령의 감동을 간구하며 기본에 근거해 읽으면 되는데

신학자의 어떤 학설들을 보면 그 학설이 더 어렵고 선입견으로 성경을 해석할 수 있어 유익하다 할 수 없을 것이다.

 

성경을 읽을 때는 예수님은 하나님이 육신으로 오신 메시야 그리스도 기름 부음을 받은 자로

우리의 나의 죄를 대신해서 죽으시고 부활 승천하시어 그의 성령으로 믿는 내 안에 나와 함께 계심을 믿고 행진하며 영적 창공을 나를 수 있는 것이다. 이것은 지성 이성 이상의 성령의 감동으로 알게 하시는 것이라는 것이다.

만약 이것을 믿을 수 없다면 과연 그러한다 탐구하며 읽어 볼 것이다. 인생의 영원과 현재와 연관된 가장 중요한 찾아야 할 내용이기도 하기 때문이다.

 

이 근거에서 성경을 읽어야 하며 성경의 역사가 일어난 지명의 역사와 문화 지리를 더 잘 안다면 더 유익이 되고 더 놀랍게 체험할 수 있을 것이다. 그런데 구약 그리고 신약의 역사가 일어난 이스라엘의 역사 지리 문화 등의 배경보다 신학자들의 무슨 이상한 학설에 또 학설의 학설과 논쟁은 유익하다 할 것이 아닐 것이다. 성경을 국어와 잘 번역된 세계어로 읽는다면 크게 유익할 것이라는 것이다.


3:15

16:

12:

20

(행17:11)

베뢰아 사람은 데살로니가에 있는 사람보다 더 신사적이어서 간절한 마음으로 말씀을 받고

이것이 그러한가 하여날마다 성경을 상고하므로

Now the Bereans were of more noble character than the Thessalonians,

for they received the message with great eagerness and examined the Scriptures every day

to see if what Paul said was true.


질문1. 과연 기독교의 교리가 그러한가 기독교의 계명이 그러한가,

진리이고 세상에 실천하므로 증명이 되고 그 은혜가 경험이 되는가 아닌가 하며 읽고 실천해 보는 것도 좋을 것이다. 진리는 현장에서 검증 증명되어야 하고 되기 때문이다.

                                                                               ( - ing )


hi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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