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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학 교과 과정 (curriculum) 에 관하여 2

이동원 (서울북노회,성광교회,목사) 2020-06-04 (목) 07:23 2개월전 299  

1. 신학교육의 문제점

다음의 내용을 어디에서 배워야 하는 것인가요,,



1.
가이샤라 빌립보

예수님의 제자들에게 너희는 나를 누구라 하느냐 물으셨고

베드로의 정확하고 놀라운 고백 후에 예수님께서는 이 반석(신앙고백)위에 내 교회를 세우리가 하셨고 교회에(교인들) 천국열쇠를 천국 열쇠를 주시겠다고 약속하신 것이다. 그대로 성취되었음은 물론이다. 내 교회를 세우리라고 말씀하시기 전에 네가 복이 있다고 하시고 이것을 알게 한 것은 혈육이 아니라 하늘에 계신 내 아버지라고 하셨다. 성령의 감동으로만 알 수 있고 고백할 수 있다는 것이다.

이 역사적인 가이사랴 빌립보의 언덕을 보았는가,

헬몬산에서 내려오는 그 물 줄기는 생동감이 있다. 과연 시내와 분천과 샘이 흐르는 곳이었다. 광야에서 상상 할 수 없는 그 약속의 말씀이 성취된 곳에서 예수님이 물으시고 제자들이 이 교회 탄생의 신앙고백을 하는 곳이다.

가이사랴 빌립보의 지역의 이러한 모습을 배웠는가, 보았는가, 이것을 알고 배웠다면 그 감격 감동과 그 하나님의 약속의 말씀이 생동감 있게 살아 용솟음치며 철철 흐르고 있는 장면을 본다면 하나님의 말씀이 지금도 살아 역사하는 감격을 볼 것이다.

 

2. 가이샤라 빌립보와 다른 지역 즉 로마 군대가 주둔해 있는 지중해 해변에 있는 가이사랴라는 곳이 있다.

그 곳에서 보는 지중해의 모습의 참으로 시원하고 평화롭고 가슴 확 트이게 하는 장면이다. 바울이 로마로 가이사 황제에게 재판받기 위해 가기 전에 머물렀던 것이다.

바울이 거기에서 왕과 왕비 그리고 로마(유대)총독 천부장 등 최고의 지도자들이 모인가운데 자신에 대해서 변명하는 것이었다. 그것은 다시 말하면 간증적 복음 전파였다. 비록 죄수의 몸이었지만 그 아름다운 배경의 지역에 왕과 총독 그리고 최고위 지도자들에게 재판받기 위해 가는 미결수로서 자신에 대하여 변호하는 내용은 최고의 복음 간증인 것이다, 그 아름다움 배경의 장소에서 왕과 총독과 최고의 고위 권력자 앞에서 복음을 전파하고 있었다는 것을 상상한다면 그 지중해의 아름다운 모습까지 더욱 의미 있게 보일 것이다.

 

3. 엘리야가 기도한 갈멜산상에서 보면 한쪽은 물이 풍부한 지중해의 평화롭고 잔잔한 파아란 바닷물이 보이고

그 맞은 편 한쪽에서는 3년여 가뭄으로 식물들이 타 들어가고 있는 이스르엘 평야가 보인 다는 것이다.

이러한 지리적 공부를 어디에서 하였는가, 신학교에서 하였는가, 무슨 서구의 어떤 신학자의 학설이 어떻고 저떻고 하며 잘 이해할 수도 없는 내용을 배우는데 시간을 보낸 것은 아닌가, 그 신학자의 학설이 그렇다면 어떻다는 것인가, 성경을 연구하면 되는 것 아닌가, 더구나 검증안된 유행 신학이 허다하다면 말이다. 그 신학자를 신봉하는 학도가 그것을 자기의 본국에 무슨 굉장한 신학이라고 가르친다면 성경은 언제 배우는가 말이다. 더구나 소위 그 저명 또는 세계적 신학자는 모르기에 전달자의 주장이 곧 그 학자의 학설이 되는 것이다. 그런데 그 전달자가 그 신학자의 본래의 학설을 전하는 것인지 아무도 모른다. 홀로 전공하였기 때문이다. 글쎄 그러한 교육이 신학도들에게 무엇이 얼마나 유익했는지 한번 검토해 보았어야 할 것이었다.

 

4. 스라엘의 네게브 (Negev)는 어떠한 곳인가,

이 곳을 잘 안다면 시126:4 절의 남방시내들 같이 (like streams in the Negev) 라는 말씀이 더욱 감동적일 것이다. 전하는 분이나 듣는 분들에게 말이다.

 

5. 어떤 목회자가 갈릴리를 보고 자기가 배우고 안 갈릴리와 전혀 다르다고 하며 놀랐다. 십 수년 전에 처음 와서 보고 놀란 것과 거의 같은 내용이었다. 우리는 갈릴리 지역에 전혀 다르게 이해할 수 있도록 배웠다. 우리가 배운 그러한 갈릴리가 아니었다는 것이다. 가르치는 분은 왜 그렇게 이해하도록 가르쳤을까, 과연 갈릴리 지역을 방문해 보았을까 하는 것이었다.

내가 처음 갈릴리를 가 보았을 때 아, 지역이 관광지 라고해도 좋을 지역이네 하며 놀랐다는 것이다. 갈릴리 호수는 바다라고 부르기도할 만큼 넓고 보통 때는 평온하고 잔잔한 모습이었다. 물론 계절에 따라 자연의 모습이 좀 다를 수 있을 것이다. 우리 한국의 어떤 지역도 겨울에 방문하여 본 것과 봄이나 여름 가을이 모습이 다르듯이 말이다.

 

6. 사마리아는 땅 끝으로 알려져 있다. 그런데 갈릴리는 더 북쪽에 있다는 것이다. 즉 사마리아는 유대와 갈릴리 사이에 있다는 것이다. 예루살렘이 있는 유대와 갈릴리 지역의 중간에 있다는 것이다. 갈릴 리가 사마리아 지역보다 더 북쪽에 있다는 것이 좀 이상하지 않는가, 그렇다면 왜 좀 이상하다고 생각하는가요,

 


7. 유월절이 이스라엘 달력의 첫 달이라면 우리가 사용하는 태양력으로 어느 달인가, 그리고 계절적으로 어떤 계절인가,

 

8. 맥추절의 내용은 무엇인가,

보리와 밀의 추수기가 이스라엘에서 언제이며 한국에서는 언제이고 어떻게 다른가,


9. 이스라엘의 수장절은 시기적으로 어느 때인가, 성경에 년말이라고 하였다. 그렇다면 우리가 사용하는 달력인 태양력으로는 언제이며 계절적으로는 언제 인가, 그리고 그 수확물은 어더한 종류인가,

 

10. 자주 등장하고 의미 있는 이스라엘의 살구나무(아몬드) 꽃은 언제 싹이 나며 꽃이 피는가,

열매는 언제 맺는가, 서적을 참고하면 살구나무 꽃은 봄의 전령으로 봄에 가장 먼저 핀다고 한다. 그러나 어떤 자료를 참고하면 겨울의 끝자락에 피는 것 같기도 한다. 싹이 나고 쫓이 피고 만개 만발 할 때는 언제인가,

 

이러한 모든 사실을 잘 안다면 이스라엘을 지리적 역사적 문화적 안다면 하나님의 말씀을 전하는 사람이나 듣는 사람에게 더욱 감동을 줄 수 있다. 감동을 더 줄 뿐 아니라 팩트에 근거한 설교라는 것이다.

하나님이 창조하고 경영하시는 것이기에 감동이고 예술이고 아름다움을 줄 수 있다. 우리가 다 표현하기 힘들 정도 일 것이다. 조금도 과장할 것이 없이 그대로 만 잘 전한다 해도 아니 그 백분의 일 천분의 일 정도만 만분의 일 정도만 표현할 수 있다 해도 더욱 감동일 수가 있는 것이다.


그럼에도 그 동안 무슨 서구에 신학을 배우면 되는 줄 알고 그간은 그러하였다. 신학교만의 책임만이라고는 할 수 없지만 유럽의 서구의 신학교를 졸업하고 목회를 하는 서구의 교회가 어떠하고 있는가, 물론 이것은 시대적 상황의 이유가 많을 것이다. 그러나 신학교육의 책임이 전무하다고는 할 수 없을 것이다. 서구의 그 신학 내용과 그 교육과정을 그대로 답습한다는 것을 검토해 보아야 할 것이다. 왜 지금까지 신학 공부한다고 성경보다 서구로 달려갔는지 그것도 지금 생각해 보면 이상하다 할 것이다.

한마디로 왜 신학을 아니 성경을 공부하러 그 지리적 문화적 역사적 배경이 되는 이스라엘로 가지 않고 서구로 갔는지 그것부터가 좀 이상했다고 할 수 있지 않을까 한다.

 

이러한 교육을 위해서 이스라엘에서 이 부분을 연구한 이스라엘 출신의 교수나 한국인으로서 이스라엘에서 이스라엘의 역사 지리 전통 문화 절기 제사예식을 공부하고 온 교수가 적어도 신학교에 한 분 이상은 있어야 할 것이다. 지금까지 서구에 가서 이상한 유행신학이나 학설을 배우는 것이 신학 학문의 목적인 듯이 하였다는 것이면 크게 문제가 있었다는 것이다.

 

( 상당히 오래 전에 어떤 신학도 서구 신학자의 신학인지 학설이지의 방대하고 방대한 책을 펴낸 것을 보았다. 과연 누가 그 책을 읽을 것이며 누가 그 책을 이해할 것이며 혹 이해한다고 해도 그것이 무슨 의미가 있으며 하는 것이다. 서구의 책이 문화적 차이 언어적 차이 때문에 번역도 쉽지 않을 것이다. 잘 번역이 되었는지 잘 해설이 되었는지는 거의 아무도 모른다. 그 번역자나 소개자가 최고의 전문가이기 때문이다. 그 신학자의 신학이 잘 전달되었는지 역시 아무도 모른다. 그러한 신학설과 비교할 수 없는 성경이 있는데 왜 ,, 이하 생략 .)

 

한국 교계는  수평이동의 교회성장론보다 지금이라도 성경으로 돌아가야 한다.

그러므로 가장 잘 번역된 한글 개역 성경과

그리고 세계어이기도 한, 지금 세계어를 다시 만들 수도 없고 가장 많은 나라에서 사용하는 언어를 세계어라고 한다면, 그러므로 영어는 특정 나라의 언어일 수만은 없다 할 것이다. 세계인의 언어라는 것이다. 다행히 또는 감사하게도 잘 번역된 영어성경은 어쩌면 원어 못지 않게 그 내용을 감동적으로 정확히 생생하게 전달하고 있다고 본다. 하나님께서 번역 보급에도 관여하시고 인도하신다고 하는 것은 당연할 것이다. 그러므로 가장 잘 번역되고 검증되고 신뢰감 있는 영어 성경을 세계인으로서 일고 배우는 것은 지극히 당연할 것이다. 왜 누구나 할 수 있는 말을 외국의 신학자의 이름을 빌려야 하는지 모르지만 누군가 성경과 신문이라고 하였다는데 요즈음은 성경과 스맛폰(인넷) 이라는 말이 적절할 듯하다.

 

( 그 동안 아니 근래 십 수년 수십년 교인의 성장 보다 수평이동의 교인 숫자 성장을 위한, 마치 세상 기업에서 하는, 자기 회사나 기업 이익적 성장론으로 한국교회가 나아간 것을 크게 자성하고 교인성장을 위한 말씀으로 달려가야 한다. 이것이 오늘의 종교개혁이라 할 수 있을 것이다.)                                            

                                                            < 성광교회 이동원 목사 드림>                                                         

                                                                                       ( - img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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