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평화 번영 메시지 51 - 방어군사력과 평화

이동원 (서울북노회,성광교회,목사) 2020-06-12 (금) 07:18 3년전 2004  

1. 군사력과 평화

1. 나라의 군사력이 강해야 평화가 있다는 이론도 절대적인 것은 아니지만 충분히 설득력이 있는 이론이기도 하다.

한국이 어떤 상황에서도 방어할 군사력이 있어야 평화로울 수 있다는 것이다.

북한의 군사력도 마찬가지 이다. 북한이 자신들을 방어할 충분한 군사력을 갖지 못하였을 때 평화의 위협이 될 수도 있다. 이것은 북한 뿐 아니라 한반도 평화의 위협이 있을 수도 있다는 것이다. 북한이 군사적으로 방어력이 부족하다면 그러므로 어떤 나라가 그들을 공격한다면 북한 뿐 아니라 남한 포함 한반도는 초토화에 이어 공멸로 가는 것이다. 이것은 가능성이 전무해야 하고 전무할 것이다. 그러한 공격세력은 그들 자신이 패망할 수도 있다는 것도 알아야 한다. 어떤 나라가 상대를 얕보고 공격하다가 그 공격의 나라가 망할 수 있다는 것을 명심하여야 할 것이다. 이것은 세계사에서 역사적으로 실례를 적지 않게 찾을 수 있는 교휸이라는 것이다. 이러한 교훈은 성경역사에서도 볼 수 있다.

 

2. 핵는 방어무기라고 여러 차례 강조한 바 있다. 현대에 핵을 사용한다면 그 지역 나아가서는 세계는 공멸 초토화 되는 것이기 때문이다. 아인슈타인이 그랬던가 만약 삼차 전쟁이 일어난다면 그 때의 무기는 모르나 그 이후의 무기는 돌멩이가 될 것이라고 말이다.

 

그러므로 세계의 몇 나라가 가지고 있는 핵에 대해서도 방어무기이다. 그 핵을 한반도에서 사라지게 하려 한다면 완전 평화 보장 체제가 선언되고 보장되어야 할 것이다. 세계에서 말로만이 아니라 실제적으로 평화체제가 되도록 하여야 한다. 그것이 아니라면 누군가 만들어 놓은 프레임을 구태여 한국인이 너도 나도 사용하여 말할 필요는 없을 것이다. 비핵화를 어떤나라에서 그렇게 노래 부르는 것은 그들의 상술 전략이었다는 것을 알게 되었다는 것이다. 진정성이 없는 그들의 다른 의도의 노래의 가사를 우리가 덩달아 노래 부른 면이 있다는 것이다. 한반도에서 비핵화는 누구나 바라며 바람직할 할 일이다. 그러나 한반도를 무기력화해서 거져 먹겠다는 외세의 전략에 말려들어서는 안된다.

 

3. 남북이 군사적으로도 방어할 수 충분한 군사력이 있어야 한반도의 평화가 든든하다는 것을 알아야 한다.

남북은 지리적으로도 붙어있기 때문이다. 공중으로 땅속으로도 한 지역으로 다 연결되어 있다. 바람과 물이 땅이 연결되어 있다는 것이다. 그러한 이유에서도 한반도에 핵이 사용된다면 남북은 공멸이라는 것은 삼척동자도 알 것이다. 그러므로 혹 남북의 어느 곳에 핵이 있다하여도 한반도에 사용할 수는 없다. 한반도에서 한반도에 사용하는 것은 자기에게 사용하는 가장 어리석은 일이다. 이것은 한반도의 삼척동자도 알 수 있는 이론일 것이다.

 

그런데 극히 일부 치인이나 권력자 어떤 이들은 이것을 모르는지 알고도 그러하는지 마치 남한 뿐 아니라 북한의 군사력이 약하면 평화에 유익일 것으로만 당연히 생각한다면 그것은 전혀 반대 일 수도 있다는 것을 알아야 한다. 만약 북한의 군사력이 자체 방어할 수 없이 약하다면 한반도에서 또한 외세에서 거져 먹으려는 세력이 있고 넘치기도 할 것이다. 그렇게 되면 혈통적 역사적으로 뿐 아니라 지리적으로 붙어있는 남한은 어떠하겠는가. 남북이 바다 건너 저 멀리 떨어져 있는 것이 아니라 지역적으로 한 덩어리라는 것이다. 이것을 알아야 한다.

 

남북은 지리적 뿐 만 아니라 혈통적으로 언어적으로 역사적으로도 동일한 역사를 가지고 있다는 것이다. 또한 남북이 정서도 같다는 것이다. 그러므로 남북은 기계적 통역으로 전달하기 어려운 서로의 언어를 이해할 수 있다. 이러한 것들을 알지 못하는 한반도 밖의 사람들이 한반도의 남북을 논한다는 것은 그렇게 적절하지도 않다. 더구나 한반도의 평화 공존 협력 번영을 방해 훼방하거나 막는다면 우리의 자주 주권의 침해가 되는 것이다. 이것을 모르거나 몰랐다면 사대주의나 식민사관에 갇혀있었다 할 것이다.

 

한국의 적지 않는 일부의 언론 치인 권력층에서 알고 그러하는지 모르고 그러하는지 자주주권국가의 세계관에서 세상을 보고 판단하는 것이 아니라 사대주의 주의적 사고와 식민지사고에 갇혀 세상을 보고 전했다는 것이다.

 

그런데 그것을 그들이 알고 그러하였는지 자기도 모르고 그러하였는지 그것은 좀 더 판단해 보아야 할 것이다.

 

한반도의 평화는 남북이 방어할 수 있는 충분한 군사력이 있어야 한다는 전제로 토론하고 이론화 할 필요가 있다고 본다. 지금까지는 이와 반대적 사고에서만 판단하였다. 이 양면을 토론해 볼 빌요가 있는 것이다.

 

주제 토론 1

한반도 남북의 강력한 군사력과 평화

한반도의 남북의 흡수통일이나 적화통일은 가능성이 전무하다 할 것이다. 북한은 남침을 하여 적화통일을 하려는 의사 자체가 전무하다 할 것이다. 그것이 가능하려면 그러한 의사가 있어야 하는데 전무하다 할 것이다. 남한보다 몇 배 몇 십배의 군사적 우위에 있다면 모르되 그것도 아니고 국제 이해관계의 외세가 그것을 보고만 있지 않을 것이다. 자기들의 이해관계 때문이다. 흡수 통일 역시 불가능하다.  그럼에도 그것을시도한다면 한반도는 초토화 공멸로 갈 수 있고 최소한 판도라 상자 여는 것이 될 것이다. 남북은 강력한 서로의 군사력을 근거로 평화 공존 번영의 길 이외에는 다른 길이 있겠는가,

남북의 무력의 충돌은 한반도가 초토화 또한 공멸 후 어떤 외세가 이 땅을 차지하려는 계획에 말려드는 것이 된다. 남북의 무력 충돌은 한반도를 어떤 외세에 바치는 결과 외에 아무 유익이 있을 수 없다. 평화 공존 협력 번영의 길 외에 다른 방법이 없다는 것이다.

 

주제 토론 2

현대에서의 사대주의적 사고와 식민지적 사고 연유와 그 청산

국방의 의무로 군 복무도 하지 않은 사람이 사대주의와 식민지적 사고를 가지고 군 통수권자가 되었다는 것이 한 문제였다는 것을 이제 알아야 할 것이다.

 

 

=. 묵상 (meditation)

(사2:4 )

그가  - 역사를 주관하시며 인도하시어  결국은 그의 뜻을 성취하시는 전능하신 하나님을 말하는 것이다.

 

열방 사이에 판단하시며 - 열방은 여러나라를 말하는 것이므로 세계  역사에서 주목하시고 판단하신다는 것이다.

 

많은 백성을 판결하시리니 - 하나님은 공의로 세계의 사람들을 세계사를 판결하신다는 것이다.

 

무리가

 

그 칼을 쳐서 보습을 만들고  - 사람을 해하는 무기에서 사람의 의식주를 위한 생산활동 즉 경제를 위하여 일하라는 것이다.

 

그 창을 쳐서 낫을 만들 것이며 - 역시 사람을 해하는 무익하고 자신들이 그대로 당할 수가 있다. 더욱 크게 망할 수가 있다. 예수님께서는 예수님을 보호하기 위해서 말고의 귀를 친 베드로에게 검을 다시 검집에 넣으라 검을 가진자는 검으로 망한다고 하셨다. 그것은 역사에서 증명되고 있다. 2차 세계대전 결말을 보라. 인류의 영원한 교훈을 삼아야 할 것이다.

 

이 나라와 저 나라가 다시는 칼을 들고 서로 치지 아니하며 다시는 전쟁을 연습지 아니하리라 - 이 나라와 저 나라가 서로 치는 것은 공멸을 가져온다. 그것을 처절하게 경험하고 깨달은 세계인은 인류의 평화를 위한 단체로 세계가 참여한 국제연합 유엔을 만들었다.

 

칼을 들고 서로 치지 아니하며 - 이것을 긍정적으로 말하면 서로 사랑하라는 것이다.

 

기독교의 교리는 -  예수님은 하나님이 육신으로 오신 '하나님의 아들'이시오

기독교의 계명은 인류의 죄를 대속해 죽으신 '그 메시야 (그 그리스도)' 이시라는 것이다.

 

주님의 피로 세우신 교회는 이 교리를 믿고  계명을 지켜야 하는 것이다.

한반도에서 그의 계명의 실천은 남북의 평화 공존 협력 번영으로 가는 행진이다.

                                 

                                           < 성광교회 이동원 목사 드림 >

                                                                         ( - ing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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