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메시야 와 그리스도 3

이동원 (서울북노회,성광교회,목사) 2020-08-31 (월) 08:40 3년전 1810  

아, 그 메시야가 우리가 생각한 내용의 그 메시야가 아니었구나

자신이 직접오신 메시아

자신이 죽으시는 메시야

 

그 누구도 생각하지 못한 메시야 이셨다.

제사장들도 서기관과 율법학자도 장로들과 백성들도

그리고 예수님의 제자들까지

심지어 예수님을 메시야 그리스도 하나님의 아들이라고 고백 선언한 베드로까지도

 

그러한 메시야의 내용은 생각하지 못하였다.

그러므로 예수님을 메시야 하나님의 아들로 고백하고

예수님으로부터 복된 칭찬받고 이 반석의 고백위에 내 교회를 세우시고 천국 열쇠를 약속을 들었던 것이다.

 

그러나 예수님은 메시야로서 고난 받고 죽으신다는 말씀에

베드로는 그리마옵소서 라고 하였던 것이다. 베드로도 예수님을 메시야로서 알고 고백하였지만

고난받고 죽으시는 메시야, 우리의 허물과 죄를 대신해서 고난받고 죽으시는 메시야는 꿈에도 몰랐던 것이다.

 

 

우리를 로마 식민지에서 해방 시켜주신 메시야

그 당시 모든 사람들이 생각하였듯이 우리의 현재의 모든 문제를 해결해 주시는 메시야를 생각하였던 것이다.

 

예수님이 오시고,,

사도행전 시대는 이스라엘이 로마 식민지이고 로마 제국의 시대이었던 것이다. 언어가 헬라어 (또는 로마어 라틴어) 그러므로 메시야라고 말하여도 너무나 생소하였을 것이다. 이스라엘을 제외하고 말이다.

 

오늘은 마치 이방인 믿지 않는 분들은 말할 것도 없고 헬라 문화권이 아닌 이 시대에 그리스도라는 용오 칭호는 너무나 생소하다. 뜻은 잘 모르지만 어떤 종교적인 칭호 거룩한 칭호 무엇인가 신앙적이고 있는 듯한 칭호로 알지 정확하게 그 개념이 안들어 온다. 마치 약속대련 하듯이 잘 알지는 못하지만 거룩하고 놀라운 내용이 있는 어떤 용어로만 알기 쉽다.

 

마치 그것은 초대교회에 메시야라는 이름을 로마제국의 세계의 나라에 전했을 때 그 이상이었을 것이다. 너무나 생소한 단어일 것이다. 그러므로 이방세계에 전도할 때 그리스도라는 그 세계의 언어인 헬라어(로마어 라틴어)를 사용한 것이다. 마치 게바가 로마로 건너가서 피터 (베드로) (헬라어 또는 로마어) 이름이 바뀐 것과 비슷하다.

 

지금은 메시야라는 이름이 익숙하고 메시야는 어떤 구세주 이라는 것은 거의 모든 사람이 안다.

 

그런데 아 그 메시야가 내가 생각한 정치적 등등 문제 해결하기 위해 오신 분이 아니라

 

나를 위해 죽으시고

하나님이 직접 육신을 입고 오시고

죄사함 하나님의 자녀 성령 거하심 직접교통

아 그러한 메시야 였구나 ,, 여기에 감격 감동이 있는 것이다.

 

그래 그것을 알고 사울이 바울이 감격 감동하여 목숨을 걸고

예수님이 그 메시야라는 것을 알고 전하고 감격하며 전하였던 아닌가,

 

차라리 그리스도 라는 칭호보다 메시야라는 칭호를 사용하였을 때 더 쉽게 깨닫고 이해하고 가슴 깊이 감동이 더 클 것이다. 우리에게 그리스도는 너무나 생소한 용어 어떤 종교적인 거룩한 용어 정도로만 알기 쉽다. 그런데 지금 메시야교 라고 하는 용어도 좀 그러한 듯 하고 예수 메시야라는 용어를 사용한다면 좀 생소하고 그러하기도 하는 듯 하다. 그러나 마음 속으로는 그메시야를 생갹하는 것이 깊은 이해에 쉬울 것이다.

 

아 그 메시야가 그러한 뜻의 메시야 이셨구나.

내가 생각한 이상의 그 메시야 이셨구나,

아 하나님의 사랑과 지혜 방법이 그렇게 놀라울 수 밖에 없을 것이다.

 

한번쯤은 아니 마음속으로는 메시야를 생각할 때 더 실감있게 감동으로 올 수도 있을 것이다. 그리스도는 그 용어의 뜻을 모르기에 무엇인가 종교적인 어떤 거룩한 이름으로만 알기 쉽다. 실제로 감동이 강하게 오는 것보다 감동받기 약속하고 감동 받으려는 약속대련 같이 말이다.

 

(롬5:8)

우리가 아직 죄인 되었을 때에 그리스도께서 우리를 위하여 죽으심으로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대한 자기의 사랑을 확증하셨느니라

But God demonstrates his own love for us in this: While we were still sinners, Christ died for us.

(* 위 구절에서 헬라어에 익숙한 그리스도라는 칭호보다 우리에게 좀 더 익숙한 메시야라는 칭호로 묵상해 보자.

아, 구약에서 약속한 이스라엘 백성이 기대한 메시야갸 이스라엘을 로마 식민지에서 해방하기 위해 오신 것이 아니라 우리를 나를 위해 죽으시기 위해 오셨구나, 아 그러한 메시야 이셨구나,,)

 

(* 그러므로 온 인류가 기다리고 기대하였던 메시야가 우리를 위해 우리의 죄를 대신하여 죽으시는 하나님의 어린 양으로 오신 메시야 이셨구나.

다시, 그 당시 온 이스라엘이 기대하였던 이스라엘을 로마의 식민지에서 해방하고 큰 나라를 만들기 위한 메시야가 아니라 우리의 죄를 대신해서 죽으시기 위해 오셔서 우리를 위하여 죽으시기 오셔서 우리의 죄를 대신해 나의 죄를 대신해 죽으시므로 하나님의 사랑을 확증하셨구나. 그리고 그 메시야는 놀랍게도 하나님 자신이 육신을 입고 오신 분이시구나, 하나님 자신이 오신 것이구나. 그래서 하나님의 아들이시라는 것이구나 하는 것을 알 수 있다.

 

지금 믿지 않은 이방인을 물론이고 믿는 사람들도 그리스도라는 말이 너무나 생소하여 그 뜻을 모르고 어떤 종교적인 거룩한 칭호로만 알 수 있다. 그리스도라는 말은 그 당시 세계어라 할 수 있는 헬라 문화권에서만 익숙한 단어이다. 그 당시 로마제국에서는 메시야라는 말이 너무 생소하고 그리스도가 기름 부음을 받은 자 라는 뜻으로 그 당시에는 누구나 이해할 수 있었던 시대였다. 헬라제국을 지나 로마제국에서도 헬라어가 그 당시 세계어로 로마제국에 익숙하였다는 것이다. 지금의 세계에서는 그리스도라는 칭호보다 메시야라는 칭호가 세계인들에게 익숙할 것이다. 메시야나 그리스도는 내용상으로는 구세주라고 할 수 있다. 그렇다면 이제 그 구세주가 어떤 구세주인가 하는 것을 아는 것이 중요하다.


(고전2:8-9)

이 지혜는 이 세대의 관원이 하나도 알지 못하였나니 만일 알았더면 영광의 주를 십자가에 못 박지 아니하였으리라/

기록된 바 하나님이 자기를 사랑하는 자들을 위하여 예비하신 모든 것은 눈으로 보지 못하고 귀로도 듣지 못하고 사람의 마음으로도 생각지 못하였다 함과 같으니라

None of the rulers of this age understood it, for if they had, they would not have crucified the Lord of glory.

9 However, as it is written: "No eye has seen, no ear has heard, no mind has conceived what God has prepared for those who love him"--

                                                       


1. 베드로가 예수님을 메시야 그리스도라고 사람의 혈육으로는 알 수 없는 놀라운 고백을 하였지만  어떤 메시야인지 그 내용은 잘 알지 못하였다. 예수님이 죽으시고 부활하신 후 성령이 임하신 후 어떤 메시야인지를 분명히 알게 된 것이다. 사도 바울은 부활하신 예수님을 다메석 도상에서 만나고야 어떤 메시야 인 것을 알게 되었고 예수님이 바로 그 메시야인 것을 온 이방인에게 전한 것이다. 로마서는 그 메시야에 대한 메시야론 그리스도론이라 할 수 있다.

 

그러므로 이 로마서는 하마터면 쓸 수 없을 뻔 하였는데 여러번 로마에 갈 길이 막혀서 어쩌면 로마에 갈 수 없을지 모른다고 생각하고 로마서를 쓴 것이다. 하나님께서는 그러한 과정을 통해서 로마서를 쓰게 하셔서 인류에게 전하신 것이다. 그리고 로마를 가게 된 것이다. 하나님의 역사는 측량할 수 없는 오묘한 방법으로도 전개되는 것이다. )


( * 로마서는 그 메시야론 그리스도론을 즉 예수 이름을 이방사람들에게 전하기 위하여 서신으로 써서 오고 오는 이방의 사람들에게 전하게 하신 방법이다. 하나님께서는 오묘한 방법으로 이 로마서를 성경책에 두어 이방의 사람들에게 예수이름을 전하게 하신 것이다. 이방인들에게 말로 복음을 전하는 것 뿐 아니라 그 내용을 서신서로 써서 성경안에 두어 전하게도 하신 것이다. 이 서신서를 쓸 수 밖에 없는 상황과 말로서 뿐 아니라 서신서로 오고 오는 이방인들에게 복음을 전하게 하신 것이다. 하나님의 방법은 참으로 오묘하고 측량할 수 없다는 것이다.)


(행9:15)
주께서 가라사대 가라 이 사람은 내 이름을 이방인과 임금들과 이스라엘 자손들 앞에 전하기 위하여 택한 나의 그릇이라'

But the Lord said to Ananias, "Go! This man is my chosen instrument to carry my name before the Gentiles and their kings and before the people of Israel.'

 

                                                < 성광교회 이동원 목사 드림>

                                                            (- ing)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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