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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과 진리로(비대면 예배)

김창환 (서울남노회,강서교회,목사) 2020-09-05 (토) 10:07 3년전 1907  
     

    이미지를 클릭하면 원본을 보실 수 있습니다. 행복한 예수님의 사람들 칼럼 (558호) 영과 진리로 드리는 예배 (요 4:23-34) "예수께서 이르시되 여자여 내 말을 믿으라 이 산에서도 말고 예루살렘 에서도 말고 너희가 아버지께 예배할 때가 이르리라 너희는 알지 못하는 것을 예배하고 우리는 아는 것을 예배하노니 이는 구원이 유대인에게서 남이라 아버지께 참되게 예배하는 자들은 영과 진리로 예배할 때가 오나 니 곧 이 때라 아버지께서는 자기에게 이렇게 예배하는 자들을 찾으시느 니라 하나님은 영이시니 예배하는 자가 영과 진리로 예배할지니라" (요 4:21-24). 비대면으로 드릴 수 밖에 없어서 행복한 예수님의 칼럼으로 말씀을 대신합니다. 진정한 예배는 하나님과의 대면 예배입니다.
    1. 하나님은 영이십니다.
    또한 천사들과 하나님의 형상에 따라 지음받은 인간만이 영적 존재 입니다. 특별히 인간을 창조할 때 하나님의 영을 불어 넣어 주셨습니다. 하나님과 교제하게 하셨습니다.그런데 그 영적 교제가 인간의 범죄함 으로 끝어진 것 입니다. 인간은 육신적으로 물질적으로 살아가며 하나님 과 교제를 잃어버린 것입니다. 하나님은 그러한 인간들에게 온전한 예배 를 드릴수있도록 예수 그리스도를 통한 회복을 허락하신 것입니다. 다시금 하나님께서는 인간들과 진정한 교제를 원하시는데 그것이 예배 의 본질입니다. 그러므로 사람들은 영으로 예배를 드려야 하며, 인간의 힘이 아닌 오직 영으로 예배드릴 때만이 하나님은 그 예배를 받으시고, 성령님이 함께하는 예배를 통하여 축복하십니다. 왜 영의 예배를 드려야 합니까? 하나님은 영이시기 때문입니다. 그런데 사람들은 형식을 중요시 여깁니다. 이스라엘 백성들은 신분과 장소를 중요시 여겼습니다. 또한 제사드리는 법을 중요시 여겼습니다. 그래서 많은 사람들이 사마리아에서 드리는 예배는 받지 않는다고 생각 했습니다. 여인이 말합니다. 요 4:20 '우리 조상들은 이 산에서 예배하였는데 당신들의 말은 예배할 곳이 예루살렘에 있다 하더이다" 예수님이 대답하십니다. 21 예수께서 가라사대 여자여 내 말을 믿으라 이 산에서도 말고 예루살렘에서도 말고 너희가 아버지께 예배할 때가 이르리라 24 하나님은 영이시니 예배하는 자가 신령과 진정으로 예배할지니라.' 불행하게도, 인간들은 물질에 속하여 버렸고, 죄아래 속하여 버렸습니다. 우리의 힘으로 온전한 예배를 드릴수가 없습니다. 그러한 인간이 하나님 을 알 수 있고, 하나님께 예배할 수 있는 길은 오직 성령의 인도함을 통해 서만 가능한 것입니다. 성령의 인도함속에서만 신령한 세계를 알 수 있고, 느낄 수 있습니다. 하나님의 인격을 체험할수있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우리들의 예배는 성령님이 주관하시는 예배가 되어야 합니다.
    2. 성령으로 예배드림을 방해하는 요소를 제거해야 합니다.
    1) 예배전 충분한 기도와 찬양을 통하여 준비할 수 있습니다. 세상속에서 살아가고 있던 성도가 하나님께 나아와 예배할 때, 또는 별도 의 시간을 가지고 기도할 때 즉시로 하나님과의 교통을 이루기는 쉽지 않습니다. 왜냐하면, 일주일 동안의 삶이 하나님의 말씀을 이루는 삶, 순종 하는 삶과는 동떨어진 삶을 살았기 때문입니다. 그러나 대부분의 그리스도 인들은 일주일 살아가면서 삶속의 죄악으로 인하여서 영적인 눈이 가리워져 있으며, 심령이 부뎌져 있고, 각질이 끼여 있는 상태입니다. 그러기에 예배 하는 성도는 성령의 온전한 인도함을 받기 위해서는 이러한 방해되는 요소 를 철저히 제거해야 합니다. 이때 충분한 예배전의 기도와 찬양을 통하여 준비하라. 예배전의 충분한 기도와 찬양은 예배를 예배답게 만들며, 성령 께서 주관하시는 예배로 나아가게 합니다. 물론 예배 전의 찬양과 기도도 하나님 보시기에 예배의 일부분입니다. 그러나 또 한면으로 볼 때 예배전의 기도, 예배전의 찬양을 구별할 수 있습 니다. 이시간은 우리의 세상에 찌든 각질을 벗겨 내는 시간입니다. 즉 찬양 을 부를 때, 찬양의 가사를 입술로 반복합니다. 마음으로 부름니다. 심령에 새겨집니다. 이때 우리들을 둘러싸고 있는 영적인 어둠이 떠나가며 찬양은 영적 기도가 되고 회개가 되고 고백이 되며 우리를 참된 예배자의 모습으로 만들어 놓기 때문입니다. 우리에게는 일주일 동안 세상에 살면서 심령을 무디게 만든 것을 온전히 제거하며, 하나님과의 교통을 가지기에 충분한 기도의 시간이 필요한 것 입니다. 이 시간을 가지지 못하면, 허겁지겁 준비되지 않는 예배를 드린다면, 예배 가운데 하나님과의 교제를 기대할 수 없으며, 성령님이 주관하시는 예배를 기대할 수 없는 것입니다. 2) 삶의 예배와 주일 예배를 연결시켜야 한다. 하나님께서는 삶의 예배, 삶의 제사도 강조하셨습니다. 일주일 삶의 예배를 온전히 드린 성도는 주일예배를 통하여 더욱 더 큰 은혜를 누리며, 다시금 일주일의 생활을 예배를 참되게 드릴수있는 힘을 공급받게 됩니다. 축복된 순환 구조입니다. 그런데 일주일 삶의 예배가 엉망이면 주일의 예배도 성공하기 힘듭니다. 하나님을 깊게 만나기 힘듭니다. 성령의 역사를 경험하기 힘듭니다. 다윗은 늘상 하나님과 삶에서 교제하였던 놀라운 사람이었습니다. 그러나 밧세바와 동침후, 그의 남편 우리아를 죽이고 하나님을 속이면서 사는 삶속에서 그는 하나님과의 교제를 잃어버렸습니다. 그래서 그는 어떤 제사를 통해서도 하나님을 만날 수 없었습니다. 물론 주일은 약한 사람, 죄지은 사람이 더욱더 와서 회복하는 곳입니다. 그러나 더 깊은 영적 교제를 위해서는 다윗은 철저히 회개한 후에 하나님 과 다시금 교제가 이루어졌다는 알고 더 깊은 예배를 위해서, 성령이 충만한 예배를 위해서 삶의 예배에 항상 성공하는 믿음의 성도가 되시기 를 축언합니다. 3) 회개는 성령으로 예배드리기에 강력한 축복의 도구입니다 악순환을 끝을 수 있는 길은 예수 그리스도의 보혈을 힘입는 회개를 통해서 입니다. 다윗은 하나님의 마음에 합한 사람이었습니다. 늘상 삶이 예배인 사람이었습니다. 그런 다윗의 제사를 통해서는 더욱더 축복을 누렸습니다. 그런데 강력한 죄가 하나님과 다윗을 가로 막았고, 점점더 하나님과 멀어 지는 결과를 가져왔습니다. 다윗은 회복을 위하여 힘써 보았습니다. 다윗은 제사도 드려봤습니다. 간구도 해보았습니다. 그런데 하나님은 만나 주지 않았습니다. 이때 하니님께서는 나단 선지자를 통하여, 죄를 깨닫게 하고 철저하게 자신의 삶을 돌이킬 때, 다시금 만나주신 것입니다. 즉, 하나님이 받으시는 제사, 성령의 역사가 임하는 예배는 물질적인 것이 아닌, 상한 심령을 내어 놓는 것입니다. 제자들이 하나님을 거역한 이스라엘 백성들에게 외친 것도 회개함으로서 세례를 받고 그리하여 성령의 충만을 받으라는 것입니다. 회개는 예배가운데 풍성한 성령의 역사를 이루게 합니다. 또한 성령의 임재가 임하면, 더욱 더 회개의 역사는 나타납니다. 그리고 더욱 더 거룩한 은혜의 역사가 임하는 것입니다. 회개를 통하여 다윗에게서 떠나셨던 성령님이 함께 하셨습니다. 회개를 통하여 성도에게서 떠나셨던 성령님이 함께 하시는 것입니다. 회개를 통하여 예배가운데 아무런 감동을 받지 못하던 성도들의 심령에 은혜가 임하기 시작하는 것입니다. 회개는 악순환의 고리를 끊고 축복의 순환으로 바꾸는 귀한 방편입니다. 4) 성령님이 싫어하는 행위를 하지 말라. - 성령님을 근심되게 하지 말라. - 성령님을 거절하는 행위 - 성령님의 사역을 훼방하는 행위 - 성령님을 자신의 생각으로 판단하고 잘못 다른 사람에게 전하는 것 - 성령님을 사람의 이성으로 이해하려는 태도를 버려야 합니다. 반대로 성령님의 도구가 되기위해 자신을 내어놓는 것 성령님을 사모하는 것이 우리에게는 필요합니다. 겸손하게 무릎을 꿇고 말씀을 붙들고 기도할 때, 성령님은 놀랍게 우리의 예배가운데 역사하실 것입니다. 3. 성령으로 예배해야 하는 이유를 밝히 알아야 합니다.
    성령님은 예배 가운데 영적 진리를 깨닫게 하여 주시는 분이십니다. 성령님은 진리의 영이십니다. 또한 예수님은 진리이십니다. 즉 하나님 은 진리이십니다. 그 진리를 깨닫게하시는 분은 오직 성령님이십니다. 요일 5:7 "증거하는 이는 성령이시니 성령은 진리니라." 요 16:13 "그러하나 진리의 성령이 오시면 그가 너희를 모든 진리 가운데 로 인도하시리니 그가 자의로 말하지 않고 오직 듣는 것을 말하시며 장래 일을 너희에게 알리시리라." 그 진리의 핵심은 십자가의 복음입니다. 예수님이 나를 위하여 십자가 지셨다는 진리입니다. 베드로의 고백처럼 주는 그리스도라는 고백이며 도마의 고백처럼 예수님 은 주님이시다는 고백입니다. 이것을 깨닫게하여 주시는 분은 예배 가운데 역사하시는 성령님이십니다. 우리의 예배가운데 성령님이 주관하시지 않는다면, 영적 무지에서 벗어 날 수 없으며, 구원의 진리를 깨달을 수 없습니다. 그러므로 하나님을 만날 수 도 없는 것입니다. 고전 12:3 "그러므로 내가 너희에게 알게 하노니 하나님의 영으로 말하는 자는 누구든지 예수를 저주할 자라 하지 않고 또 성령으로 아니하고는 누구든지 예수를 주시라 할 수 없느니라". 진리의 성령이 오시면, 예수님을 부인할 수없는 것입니다. 목숨이 끊어져도, 고난이 있어도... 부인할수 없는 것은 성령님이 가르쳐 주셨기 때문입니다. 말씀가운데 회개의 영을 허락하십니다. 성령께서는 말씀가운데 죄를 발견케 하며, 죽게 된 처지를 발견케 하시며 그리고 회개의 영을 허락하시는 것입니다. 성령님은 믿어지는 축복을 허락 하십니다. 신앙생활 20년을 해도 그리스도인인지, 세상사람인지 분간이 안가는 성도는 하나님이 믿어지지 않기 때문입니다. 하나님이 믿어지면 순종하게 되어있습니다. 그런데 믿어지지 않습니다. 그러나 예배가운데 성령의 역사가 임할 때 목사를 통한 하나님의 말씀이 믿어지기 시작합니다. 예수님이 믿어집니다. 내 죄를 사했다는 사실이 믿어집니다. 동정녀 탄생이 믿어집니다. 즉, 성령이 임하기 시작하면서 육신적인 안목이 벗겨지고 하나님의 눈과 마음이 성도에게 임하는 것입 니다. 이전 것들이 부질없이 보이며, 영적인 보화들이 보이기 시작하는 것입니다. 그래서 자신을 온전히 드려 신앙생활 하기 시작하는 것입니다. 이때부터 진정한 신앙생활이 시작되는 것입니다. 기쁨과 희락을 주십니다. 성령이 예배 가운데 역사하지 않으면 하나님도 만날 수 없습니다. 진리를 깨달음도 없고, 죄에서 자유함을 얻는 회개도 없고, 사죄의 확신도 없습니다. 치유도 없고, 영적인 축복도 없습니다. 이곳에는 진정한 위로보다는 사람들의 위로만을 얻어서 가는 것입니다. 성령의 예배가 아니고는, 그 예배로 말미암아 감화를 얻지 못하고는 일주일 동안 믿음으로 세상을 살 수 없습니다. 그러나 성령께서 주관하 시며, 성령을 사모하는 성도의 예배는 회개가 넘치며 찬양이 넘치며 기쁨 이 넘치며 능력과 비전이 넘치는 것입니다. 영이신 하나님께 우리의 영이, 성령의 인도함을 따라서 예배하는 성도가 되기를 축언합니다.
    4. 하나님을 전심으로 찾는 예배자가 되라. 하나님께서는 죄인들에게 전적인 은혜를 부어 주셨습니다. 어떤 이들은 하나님을 찾는 것을 잘못된 행위라고 비판하기도 합니다. 그러나 하나님께서는 타락한 인간의 마음속에 하나님을 찾는 마음을 가장 큰 선물로 주셨다는 사실을 알아야 합니다. 그래서 세상 그 어느 곳에서도 하나님을 찾는 마음이 인간에게는 있으며 전심으로 인간들이 하나님을 찾을 때 하나님은 만나주시는 것입니다. 찾는 자에게 만나 주시 겠다는 것이 하나님의 약속입니다. 자신의 생각대로 하나님을 찾는 것 을 그만둔다면, 그것이 믿음없는 것입니다. 렘 29:12-14 "너희는 내게 부르짖으며 와서 내게 기도하면 내가 너희를 들을 것이요 너희가 전심으로 나를 찾고 찾으면 나를 만나리라." 이때 어떠한 자세로 하나님을 찾아야 합니까? 전심으로 찾으면 하나님을 만난다는 것입니다. 신령과 진정으로 찾아야 합니다. 사망속에 있는 인간은 하나님을 찾게 되어 있습니다. 기생 라합, 또한 뽕나무에 올라 예수님을 만나기를 구했던 삭개오, 수 많은 병자들이 예수님의 얼굴을 구했고, 만나기를 구했습니다. 왜 구했습니까? 자신이 사망가운데, 불행가운데 있기 때문에 구했습니다. 자식이 귀신들린 수로보니게 여인... 애절하게 예수님의 찾았고, 그 앞에 무릎꿇고, 은혜를 구한것입니다. 눈먼 자... 다윗의 자손이여 불쌍히 여기소서! 만나기를 구했고 은혜를 구한 것입니다. 이때 어떠한 자세로 구했습니까? 전심으로 구했습니다. 전심으로 구할 수 밖에 없었습니다. 왜 하나님을 만나지 못하면 절망에서 벗어날 길이 없기 때문입니다. 이러한 성도는 신령과 진정으로 하나님을 구하는 것입니다. 오늘 예배시간에도 이같은 간절함 속에 영과 진리로 드려야 합니다. 성령의 인도함을 간절히 구하며 예배를 드려야 합니다. 하나님과 함께 할 때만이 참된 평화가 있기 때문에 하나님을 찾아야 합니다. 다윗은 범죄함으로 하나님과 분리되는 아픔을 가졌습니다. 그에게는 권력이 있었습니다. 사랑하는 여인도 있었습니다. 그런데 하나님을 잃어버린 것입니다. 그래서 다윗은 잃어버린 하나님 을 찾는 것입니다. 마찬가지입니다. 우리는 아담의 범죄 후에 그리고 매일 매일의 삶가운데 범죄함으로 하나님과 멀리 떠난 자가 된 것입니다. 그러므로 더욱 더 가까이 가기 위하여 하나님을 구하는 자가 되어야 합니다. 우리는 하나님을 가까이 하고, 죄와 세상은 멀리 해야 합니다. 이때 영과 진리로 드리는 예배자 를 찾으시는 하나님을 만나게 되는 것입니다. 성령의 역사가 사모하는 영혼에게 축복으로 역사하시는 것입니다. 삶을 주님과 함께하는 풍요함을 허락하시는 것입니다.
    돌아보면 혼자인데
    돌아보면 혼자인데 기도하니 하나님께서 동행하십니다. 돌아보면 가진 것 없는데 기도하니 천국이 나의 것입니다. 돌아보면 나약한데 기도하니 하나님의 자녀입니다. 돌아보면 사방이 막혀있는데 기도하니 하늘문이 열려 있습니다. 돌아보니 세상이 막막한데 기도하니 영원한 영생과 생명입니다. 돌아보면 내가 한 것 같은데 알고보니 하나님이 하신 것입니다. - 옮긴 글 - 이미지를 클릭하면 원본을 보실 수 있습니다.
    “오늘 밤, 병원 뒷문을 열어 놓을 테니 살짝 도망치시오.”
    장기려-사랑과 나눔의 정신을 실천한 우리 시대의 진정한 의사 농부는 퇴원날짜가 가까울수록 근심이 많아졌습니다. 곤궁한 형편이라 수술비와 입원비를 낼 수 없었기 때문입니다. 할 수 없이 농부는 부인과 함께 원장실을 찾아갔습니다. “원장님, 원무과에 부족한 입원비를 훗날 갚겠다고 통사정을 해도 안 받아 주네요. 모내기철이라 제가 속히 병원에서 나가도록 사정 좀 봐주십시오.” 생각에 잠겨있던 원장이 입을 열었습니다. “오늘 밤, 병원 뒷문을 열어 놓을 테니 살짝 도망치시오.” 그날 밤, 농부 부부는 입원실 창문 틈 사이로 새어나오는 어스름한 전깃불을 등 뒤로 발뒤꿈치를 들고 살금살금 뒷문 쪽으로 걸어왔습니다. “여기요, 여기!” 어둠 속에서 원장 선생님은 농부의 거친 두 손을 잡고 말했습니다. “잘하셨습니다. 자, 여기 얼마 안 되지만 차비로 쓰십시오. 열심히 살길 바라오.” 다음 날 아침, 환자가 사라졌다는 간호사의 말을 듣고 서무과 직원이 원장실로 뛰어왔습니다. “원장님, 106호 환자가 간밤에 사라졌습니다.” 그 말을 들은 장 박사는 빙그레 웃으며 말했습니다. “사실은 내가 도망치라고 문을 열어주었소. 다 나은 환자를 병원에서 마냥 붙들고 있는 게 온당하지 않아요. 이 과장도 알다시피 지금은 한창 바쁜 농사철 아니오?” - 김준수 에세이 《그래도 감사합니다》 중에서.
    매주 13,000 여명의 회원님들에게 한번씩 보내는 칼럼입니다. 서울 강서교회 김창환 목사(문지기) 드림 양천구 신정로 11길 63 강서교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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