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평화 번영 메시지 65 - 진보와 보수

이동원 (서울북노회,성광교회,목사) 2020-09-10 (목) 07:23 3년전 1456  

최근 한국에서 사용되고 있는 보수와 진보라는 개념

북한을 동포와 또는 적으로 보는 것으로 구분하고 있다는 것이다.  ,, 즉 있어서는 안될 대립과 ,,, 공멸을 가지고 오는 내용을 노래 부르는 부류를 보수라기보다는 극보수 수구 * 통 이라고 하는 듯 하다. 그것이 좀 너무 과도한 표현인 것으로 생각하였으나 근래에 보면 그 그 말은 그 구도는 맞은 것 같다는 것이다.

그리고 남북을 서로 동포로 보고 평화 공존 협력의 방향을 진보라고 부르는 듯 하다는 것이다. 원래의 보수와 진보의 뜻이 어떠하든 원래의 뜻과 맞든 맞지 않든 그렇다는 것이다. 그런데 그 말이 서로 바뀐 것이라고 할 수는 없겠지만 남북을 동포 형제애 평화 공존 협력의 인류애적 당연하고 이상적 가치를 실현하려는 태도가 보수라고 할 것이다. 보수라는 것은 현실성과 좀 더 멀지만 이상적인 것 가장 가치 있는 것을 지키는 자세가 아니겠는가, 그러므로 지금 보수라고 부르는 세력을 차라리 냉전 수구 또는 다른 이름으로 부르는 것이 적절하다 할 것이다.


런데 재미 있는 것은 지금은 보수라기보다 극보수 수구라고 불리울 수 있는 일부 알려진 인사들을 보면 몇 십년 전에 소위 운동권이나 반정부 또는 정부 비판을 그리고 심지어 감옥에 갔다 온 사람들도 있다는 것이다. 아주 젊었을 때 부텨 극단적인 정부 비판과 감옥에도 갔다 왔을 듯한 인사들이 전혀 그 사고를 실현하는 가치와 반대되는 당으로 가서 가장 극성적으로 활동하는 사람도,,

심지어 기독교의 어떤 기관에서 늘 정부의 반대적 입장에 있는 직임자가 그 반대당을 지지하고 활동,, 많은 사람보기에는 어쨌든 권력만을 추구하는 모습으로 ,,

 

그런데 기이한 것은 이십대에 그렇게 극성적으로 요즈음으로 말하면 좌파 또는 급진적 사고로 특별히 투쟁하는 사람들이 어쩌면 그 가장 반대적입 입장에 서있거나 투쟁하는 것일까,

거기에는 두어가지 이유가 있다고 본다.

 

어떤 이념이나 사상은 절대적이 아니다. 젊은 시기 이십대 때에 누구나 그러하듯이 좀 더 이상적인 정의감에 불타서 ,, 어떤 이념에 올인 ,, 그런데 그곳에 가보니 그 이념 사상도 한계가 있고 실망도 하게 되었을 것이다.

그 사상 뿐 아니라 거기에 사람들에 대해서도 완벽하지 못하고 불완전 하고 허물 많은 것이 피차 보게 될 것이다. 자기가 생각한 절대적인 이상적 이론과 사상도 아니어서 실망하고

그렇게 기대하였던 그러한 일을 한 사람들에 대해서도 실망할 수 있었다는 것이다. 그래 좀 더 과장하여 말하자면 별개 아니구먼 별거 아닌 것을 이제 나는 알겠구먼 하고 거기에서 나온다는 것이다.

동서남북과 좌우를 다 보고 경험하지 못하고 단지 열정적인 일방적 정의감에 불타있던 젊은 시절에 절대 진리로 알았던 사상 이념에 실망하고 완벽한 사람들로 알았던 사람들에 실망할 수 있었을 것은 너무나 당연하다는 것이다.

 

그것을 깨닫고 그리고 나서 이제는 정반대로 가서 내가 거기 있어봐서 아는데 그 사상 이념 별거 아니야

내가 거기 있어 보아서 아는데 그 사람들도 별거아니야 ,, 당연히 부족함과 허물은 많은데 너무 기대하고 절대적인 기대를 가지고 갔다가 너무 실망하였을 것이다. 물론 상대는 상대대로 자신에 대해서 서로가 실망하였을 것이다. 이러한 과정을 누구나 겪는다. 그런데 좀 더 강력하게 그것을 우상시하고 참여한 기대한 사람들은 더 실망이 더 클 수가 있다.

그러한 모습이 몇 몇 의 인사들에게서 훤히 보인다. 아니 그 당시에 누구보다도 반정부 투사 같은 사람이 어찌 또 이제는 그 반대적 사고로 말하는가, 자신들이 너무 기대하였다가 그 사상과 사람들에게 실망하였기 때문이다.

그리고 거기에 더하여 정권이 바뀌었으면 이제 나에게도 한 자리 떡고물이 돌아왔어야 하는데 그것도 없고 하는 이유도 있을 것이다. 왕년에 내가 앞장서고 했는데 그 쪽의 사람들이 특히 무슨 이익을 주는 것도 아니고 그들을 내가 잘 아는데 하며, 그러한 사람들이 많다

대부분 인생사의 여정은 정반합의 발전의 과정으로 나아가기도 한다는 데 그들에게서는 그러한 모습도 아니라는 것이다. 뒤늦게 무슨 이유인가 하는 것이다. 늦바람이 더 무섭다는데 그것도 아니고 말이다.

 

(펼벅의 대지,,

십 대 때에 펄벅의 대지를 읽고 느낀 점이다.

메뚜기 때가 하늘을 덮은 모습으로 공격해 오는 장면 그리고 

그리고 그 소설에서 인상적인 것은 거기에 등장한 어느 가정의 한 젊은이 대략 십대 후반의 청춘이 새 시대를 위하여 투쟁하겠다며 뭐 혁명하겠다며 외치며 열성을 다하는 것이다. 그러다가 어느 덧 세월이 가고 자기의 혁명 투쟁적 젊음의 열정에 별로 한 것은 없고 나이가 들고 ,,

그런데 이제 그 아들이 젊은 청년의 시기에 똑같은 어떤 이상 세계 건설을 위한 혁명적 투쟁적 활동을 하는 것을 말하고 있다. 그 아버지의 그 때 그 시절의 모습인 것이다. 그런데 이 아들도 그러다가 나이가 들고 ,, 이제 이 아들의 아들이 그 때 그 시절에 똑 같은 열정을 가지고 나라를 위해 혁명을 해야되 하면 열정을 불태우는 것이었던 것이다. 할아버지의 아버지의 그 때 그시절의 모습 그대로 말이다. 삼 사대가 이렇게 그 때 그 시절이 되어 이상사회를 위해서 열정을 불태워며 세상을 바꾼다고 세상을 바뀌겠다고 열심을 다하는 장면이 인상적이었다는 것이다. 이것은 한 인생의 대체적인 흐름이기도 할 것이다.

 

그래 일반적으로 소위 이십대 시절에 극단적인 어떤 편에 있던 사람이 중도적으로 즉 균형감각을 갖게 되기도 하고 한편 정 반대적 편으로 가는 있다.

사람이 만든 사상 이론에 대한 실망

그러한 일을 하는 사람들의 기대에 실망

절대 진리가 아닌 이상 사람이 만든 사상 이론이 절대적으로 옳은 것이 아닌 것에 대한 실망

 

내가 거기 있어봐서 아는데 그 사상이나 이론이  절대적이 아니며

내가 거기 참여해 봐서 아는데 그 사람들도 절대적이 아니며 실망스러운 모습도 보였고

그러한 차에 그 다른 편에 권력과 무엇을 준다는데 하며 그곳으로 가서 심지어 열열 투사가 되는 것이다.  

 

이러한 역사는 반복된다, 오래 전에 사일구 의거에 참여 했던 사람들이 그 정권에 또는 정보부 직원으로 가기도 하였다. 정보기관이 어떻다는 것이 아니라 자기가 절대적인 이념으로 생각하고 올인하였던 사상과 사람들에 대해 기대가 깨어지고 내가 올인하여야 그 정도는 아니더라는 실망등이 겹쳤던 것이다.

 

특히 정치권에는 이익을 얻기 위하여 많이 몰리는 대중들에게 정치권에서 그러한 모습을 많이 볼 수 있다. 저 사람이 왜 거기서 나와 ,, 저 사람이 왜 저기에 있어,, 인간이 만든 불완전한 사상과 그 사람들에 대한 실망이 겹쳤던 것이다. 그러한 차에 소위 극보수권에서 명예와 무엇을 얻을 수 있다는데 하며 그들이 거의 맹목적으로 비판했던 세력에 달려간 것이다. 지금 소위 극보수에 있는 정치인 소위 지식인 심지어 지식인들의 모습을 볼 수 있다는 것이다.

특히 알려진 극보수 유투버 중에선 왕년에 진보적이란 이름으로 정권을 비판하였던 사람들이 있다. 소위 지식인 뮤명인사 중에서도 말이다. 그것은 내가 있어봐서 아는데 그 사상과 이론의 불완전함 그 때 그 사람들에 대한 실망 그리고 소위 진보에 있어보아야 명예와 권력 등을 얻을 것도 인정해 주지도 않고 해서 그렇게 빨리 그렇게 열심히 자신들이 비판했던 그곳에 몸을 담고 자리를 잡고 이제 가기들이 좀 더 젊은 시절에 비판하며 명성을 얻은 그들이 이제 자신들이 비판한 그 자리에 자리를 잡고 투사가 된 것이다. 지금 소위 알려진 인물중에 그러한 인사들이 많다.

결론적으로 사람이 만든 사상이나 이론 그리고 사람들은 누구나 불완전하고 부족함이 많은 이유인 것이다.

저 사람이 왜 거기서 나와

저사람이 왜 저기에서 이저 저러한 말을 해 라고 평할 왕년의 유명인사들이 있다는 것이다.

알려지지 않는 많은 사람들도 정반합 보수 진보등을 거치며 중도 균형감각을 찾고 살아가는 것이 거의 대부분의 사람일 것이다. 정치권에 있는 사람들은 어쨌든 사람들게 좀 더 잘 알려져서 저 사람이 왕년에 하는 언행을 알기에 ,, 저 사람이 왜 거기서 나와,,

그런데 근래의 인사들 중에 보수라고는 할 수 없은 극보수 수구 또는 다른 이름으로 불리울 사람은 뒤 늦게 사고의 늦 바람 낫다고 할까 욕하면서 배운 것이라고 할까 늦 바람이 더 무섭다고 하는 말도 있는데 말이다. 그들 중에 무슨 품격 언변 등등이 거의 막가파를 방불케 하는 사람들도 있거나 적지 않다는 것이다. 뒤늦게 늦 바람 난 모습이라고나 할까, 욕하면서 배운모습이라고 할까, 어쨌든 그들은 지정의의 면에서 잘 배우고 잘 훈련된 잘 정립된 모습이라고는 할 수가 없다는 것이다. 그리고 실소를 금하지 못하게 하는 모습으로 보이기도 한다는 것이다.

                                                             ( - ing )


hi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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