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교단 총무의 역할에 관하여

이동원 (서울북노회,성광교회,목사) 2020-09-17 (목) 07:25 3년전 2049  

1. 근래에 어떤 교회가 교단을 떠난다고 하는 글을 올렸습니다 .

그러한 글은 많은 사람들의 마음 덜컹하게하고 아파할 것이다 . 우리 교계가 언젠가부터 교회 숫자 부흥에 올인을 하였는데 실상은 수평이동의 교인 숫자 성장이라고 하여도 과언이 아닐 것이다.



그런데 우리 한국 초대교회는 남의 교인이동의 교회성장의 개념은 없었다고 할 수 있다
. 오직 예수님에게로 이었다 . 그 때 이후 오히려 모든 교회가 숫자적으로 거의 폭발적으로 성장할 때가 있었다. 그 후 수평이동의 교회 성장론이 교계를 거의 휩쓸었다. 그 이론은 세상 기업의 목표와 영업방식과 비슷하다고 할 수 있다. 수평이동의 성장 그것은 교회의 머리되시고 주인되시는 예수님과는 별 상관이 없다 할 것이었다.

 

어쨌든 이러한 수평이동의 경쟁으로 어떤 교회 목회자는 병들었다는 설이 있었다 . 그 교회의 교인들이 다른 교회로 갑자기 많이 이동하여서 마음의 상처를 깊게 받았기 때문이라는 것이다.

 

교단의 총무는 교단의 모든 교회를 보살피는 교단의 목회자라는 역할도 있을 것이다. 물론 행정적인 실무를 감당하는 면이 많다면 그 역할이 어디까지인지 그 권한이 어디까지 인지는 잘 모르지만 말이다.

 

그럼에도 교단을 떠나려 하는 그 교회로 달려가고 또 다시 달려가고 하여 최선을 다했어야 할 것이다. 총무는 몇 번을 방문하거나 노력하였는지 잘 모르지만 즉 최선의 노력을 다했는지 모르지만 그 역할을 할 직임 중에 하나일 것이다 . 노회와 교회의 형편과 어떤 상황이 있다 하여도 총무가 나서서 최선을 다하는 역할을 해야 할 직임이다.

 

언젠가 교단안에 갑자기 성장하여 일약 약간의 화제가 된 교회와 목회자가 있었다. 언론 등에서도 가끔 볼 수 있었다 . 그런데 어찌된 이유인지 잘 모르나 얼마 후 교단을 떠나 있는 것을 알았다 . 교단에 무엇이 적응이 안되었는지 뭐 그러한 비슷한 이유인 듯 하다 . 역시 그 교회의 상황이나 노회 의견등을 잘 모르나 이러한 부분도 총무가 최선을 다하는 역할을 하는 직임이라고 할 것이다 . 몇 번이든지 찾아가고 호소하고 설득해야 될 분들을 설득하고 필요하면 눈물로 호소하는 심정으로 말이다 .

교단의 총무는 교단의 목회자라는 심정으로

예수님은 메시야 그리스도 하나님이 육신이 되신 하나님의 아들

이 교리에 일치한다면 누구나 모든 교회를 다 품는 심정이어야 할 것이다.

그리고 첫째되고 가장 큰 계명인 이웃 사랑 즉 서로 사랑의 계명을 적용하여야 할 것이다.

 

1. 근래 교단에서 무슨 법을 지지한다는 성명서가 언론에 나왔다 . 그러한 것을 받아드릴 수 없다는 표현 선언을 하는 과정에서 참으로 신실한 존경스러운 많은 성도님들 중직자의 모습을 보았다 . 그것이 당연히 교단의 교회의 본 모습이어야 할 것이다 .
 

그런데 그 과정에서 결과적으로 오보일 수 있는 그 기사의 교단 이름에 괄호하고 총무 이름이 나왔다 . 사실 그것은 있을 수 없는 일이다. 그 교단 총무님이 그것을 아는지 모르는지 모르지만 당연히 그것은 아니라고 공적 조치를 하였어야 할 것이다.  정 어떠하다면 그 직임에 맞는 개인 성명이라도 내야 할 것이다 . 이러한 모습을 보면 많은 분들이 총무가 책임감을 갖고 교단 일을 잘 하고 있는 것인지 할 것이다 . 세상의 단체나 기관도 사실과 다른 이러한 보도를 그냥 지나갔었다면 무책임 한 자세이며 신뢰받지 못할 것이다. 하물며 가장 신뢰 받아야 할 종교 단체의 장이나 괸리 책임자가 그냥 지나간다면 그 책임을 다했다고 할 수 있겠는가 말이다.

전투에서 실패한 지휘관은 용서할 수 있지만, 경계에서 실패하는 지휘관은 용서할 수 없다 는 말이 있다. 우리가 지켜야 할 것은 지켜야 할 것이다. 무슨 놀라운 일을 계획하고 하는 것은 그렇다 하여도 총무가 교단 전체의 의사가 아니고 총회에서 결정 결의 한 것도 아니어서 결과적으로 뻔히 오보인 것을 안다면, 알면서도 그대로 지나가는 것은 책임있는 자세인지 생각해 보아야 할 것이다. 더구나 그 기사에는 교단과 총무 직임과 이름까지 넣어서 기사가 나갔는데도 알고도 방관한다면 책임을 다한 것이라고 할 수는 없을 것이다.

세상 어떤 기관도 개인의 입장에서도 그렇고 그냥 방관하고 지나가지는 않을 것이다. 혹 그 기사를 못보았다면 지금이라도 알고 그 직임자로서 책임있는 적절한 조치를 하여야 할 것이다. 종교단체는 적어도 세상의 어떤 단체 기관보다 신뢰감에 있어서 못하지는 않아야 한다. 종교 단체는 그 신뢰도에서도 당연히 세상단체 그 이상이 되어야 하겠지만 말이다.



혹 놀라운 무엇을 못할지언정 자신의 직임의 이름으로 잘못 나온 교단의 성명서를 알고도 방관하면 될 일인가
, 세상의 기관 단체 영리단체도 이러하지 않을 것이다. 그것은 자신의 단체의 생존이 달려 있는 문제이기도 하기 때문이다. 세상 영리 단체도 신뢰를 잃으면 어떠하겠는가, 그것은 생존의 문제이기도 하기 때문이라는 것이다.



교계 교단은 신뢰와 책임감을 갖는 모습이어야 할 것이다. 적어도 최선을 다하여야 한다.

소위 무슨 성명서를 내는 위원회의 모습도 이렇게 책임감 없고 무책임한 모습을 세상의 공적 단체에서 찾아보기 힘들 것이다.

 

더구나 가장 신뢰를 그리고 존중까지 받아야 할 교계의 기관장이나 부서장 책임자들이 이렇게 책임감이 없이 지나가는 것에 큰 반성이 있어야 할 것이다. 글쎄 어떤 교단이 이렇게 무책임한 모습 어떤 세상의 단체가 이렇게 무책임한 모습을 가지고 견뎌 낼 수 있을까,  그것은 어떤 세상 기관과 단체도 생존과 연결된 문제이기도 하기 때문이다. 불신 받고 신뢰받지 못한 회사는 단체는 결국 어떠하겠는가.

 

종교 기관 부서는 화려하고 거창한 구호적인 말보다도 아주 소소한 일에도 신뢰와 존중을 받아야 말에 권위가 있다. 신뢰받지 못하는 단체 기관 부서 위원회의 말은 하나마나 하는 말일 것이다. 아니 오히려 소음만 주고 심지어 손해나 피해를 줄 수도 있다는 것을 명심하여야 할 것이다.



시대적으로 지금은 모든 단체의 장이 예전보다 힘들다고 한다
.
그럼에도 이제 새로 총회장 총무가 선임이 될 것인데 좀 더 책임감을 갖고 교단을 위해 일하여야 할 것이다. 많은 교회의 격려와 신뢰를 받으면서 말이다. 교단의 총무는 교단의 목회자라는 심정으로 거창한 구호보다 실제 각 교회에 관심을 가지고 목양하는 심정으로 최선을 다해야 할 것이다. 교단에 좋은 내용 잘 갖추어졌다면 대외적으로도 좋은 이미지를 가지게 하여야 할 것이다. 어떤 교단은 특히 그것을 위해 필사적으로 모든 노력을 다하는 일에도 총무가 일정부분을 감당해 주면 좋을 것이다. 혹 이러한 역할을 하는데 더 권한이 필요하면 총회는 그것도 고려해 보아야 할 것이다.

    


 

 

< 부록>

교단 총무의 역할과 그 방향성 - 개혁2

이동원 (서울북노회,성광교회,목사) 2020-07-24 (금) 07:51 1개월전 525  


   

( 교단의 총무에 대하여 언급한다면 그 역할과 그 비젼을 실천할 수 있는 권한을 주었는지, 실제적으로는 총회의 실무적 사무를 집행하는 것인지 하는 것이다. 만약 총회 총무에게 좀 더 권한을 갖고 일할 수 있어야 다음이 내용이 더 설득력이 있을 것이다.)

 

1. 언젠가 어느 교회에 평일에 방문하게 되었다. 조금 연세가 많은 동년배의 여성분들이 교회 친교실에 모여 있었다. 다들 상당히 지성적인 분위기의 모습을 볼 수 있었다. 그런데 그 분들이 그 교회의 교우 분은 아닌 느낌이었다. 그래 저 분들이 누구냐고 물었다. 그러니 이북의 모 여고의 동문들의 모임이라는 것이다. 그리고 그 분들이 교단의 상당한 중직의 사모님들인 것을 알게 되었다. 그 때 약간 허탈한 생각이 스쳐갔다.

 

그렇게 누군가는 교단의 무엇에 대해서 자찬하며 외치는 어떤 구호와 내용들이 순간 오버랩 되면서 말이다. 그러한 자찬의 구호는 구호이고 어떤 교파 교단들이 실제적으로는 지역적인 이유에서 탄생된 것 이었구나 하는 생각이 스쳐갔기에 허탈하기까지 한 것이다. 물론 교단의 고상한 가치와 무엇을 꼭 낮게 볼 필요는 없을 수도 있겠지만 말이다. 사실 루터의 종교 개혁도 필요 이상 미화하는지 모르지만 그 개혁은 그 시대상과 맞물려 있다는 것이 역사적 사실이다. 루 터는 그 개혁을 지지하는 일부의 농민의 세력인가가 자신의 의도와 달리 좀 더 과격하게 되었을 때 그것을 동의하지 않았던 것이다. 이렇게 어떤 시대적인 상황에서 종교개혁이 성공할 수 있었다는 점도 있다는 것이다. 그럼에도 말씀으로 만의 그 종교개혁이 하나님의 역사가 아니라고 할 수는 없을 것이다. 하나님께서는 지리적 시대적 모든 상황을 합력하여 그 뜻을 이루시기 때문이다.



교회는 기독교회는 개신교 교단은 지금도 말씀에 근거해서 끊임없이 실천해 나아가야 할 것이다
.

어떤 세상의 풍조나 갑작스럽게 등장한 어떤 유행 신학 학설이 아니라 말씀에 굳게서는 신학이 필요하다. 간혹 근본주의 신학을 너도 나도 비판하는 것이 유행이기도 하였는데 교회는 말씀에 근거한 진정한 근본주의 신학이 필요한 것은 상식인 것이다. 이러한 근본주의 신학이 없으면 너도 나도 저마다 자기 소견이 옳다는 사사기 시대의 혼돈의 어떤 모습이 될 것이다.

 

한편 대략은 알았지만 언젠가 각 교파 교단의 교세를 정리해 둔 내용을 시각적으로 보았을 때 허탈함 그 이상이었다. 최근 다시 한번 각 교단의 그 교세의 현황을 보았을 때 어떤 절망감이라고 까지 표현한다면 지나친 표현이겠지만 마음이 그러하였다.

 

 

그렇다면 그럼에도 교단의 누군가가 역할을 하여야 할 것이다. 개혁교단에 또 한번의 진정한 의미의 개혁적 영향력 있는 인물의 역할이 교단에 필요하다고 본다. 어쩌면 어떤 목소리 큰 소수에 흐름에 늘 따라가지 말고 말이다.

 

좀 더 젊은 시절에 어떤 분이 총회장이 되었다. 무엇이라고 표현할까 특별히 더 목회적 영적이라고 할까 하는 분이었다. 그래 교단의 영향력과 분위기가 조금 바뀔 수 있을까 하는 생각도 하였다. 그런데 그 뒤 교단의 무슨 성명서 등이 나온 것을 보고 약간 깜짝 놀랐다. 대부분이 아는 그 총회장의 목회적 캐릭터의 내용과 전혀 다른 것이 었다. 오나전 따로 국밥이었다. 총회장은 총회장이고 누군가 그 분의 목회적 내용과 전혀 다른 교단의 성명서가 나오는 것이었다. 총회장은 그러한 부분에서 할 수 있는 아무 영향력이 없구나. 단지 총회장 이름에 무사고 하게만 감당하면 무난하다고 할 수 있다는 문화 분위기도 있을 것이다. 그리고 그것이 현실일 것이다.

렇다면 교단의 총회장은 교단 안에서는 누가 감당하여도 별 차이가 없을 듯 하고 다른 교단에 대하여 주는 상징적 이미지가 중요할 수도 있을 것이다. 교단의 총회장이 주는 목회자의 이미지가 다른 교단에 주는 역할만 하여도 상당하다 할 것이다. 실제적으로 총회장 후보에 대항 정견 공청회 등등도 사실은 그렇게 필요한지 모르겠다. 전혀 모르는 분들을 위해 어느정도는 알리는 기회만 있으면 될 것이다. 그것은 교단의 교회의 이미지와 활성화와는 관계없이 단지 무난하다는 것일 뿐이다. 총회장의 말미암아 교단의 내용과 인식과 이미지를 새롭게 하는 것은 매우 좋지만 그게 쉽지 않은 듯 하다.

 

한편 실제적으로 일하는 분은 그 임기도 그러하고 총무라고도 하는데 총무의 무엇에 대하여 공청회와 정책등등 많은 것을 요구하는 것에 대하여 한편으로 좀 그러하다. 총무에게 그러한 많을 일을 할 수 있는 역할과 권한을 주었는가 하는 것이다.

 

그럼에도 중요한 몇 질문 단지 두 세  질문의 응답을 보고도 총무후보의 지향성을 알 수 있을 것이다.

 

1. 교단의 현재의 교세에 대하여 어떠한 생각을 가지고 있고 어떤 계획을 가지고 있는가, 지금까지의 교단의 역사에 긍정하고 미화할 것만이 가득한 것인지 뼈 아픈 자성을 하며 새로운 정책 또는 비젼을 세우려고 하는 계획이 있다면 동의하시거나 실천하는 일에 대한 입장은,

 

2. 어떤 사회적 민감한 이슈에 대하여 목회적 소신을 갖고 교단의 전 교회를 위하는 담대한 자세를 가지고 있는가, 아니면 지금까지 교단의 어떤 일부의 목소리 큰 무엇에 어떤 사고에 갇혀 연연하겠는가,그러한 교단의 모습이 교회에 공감된 내용도 전혀 아니고 많은 손해를 끼치고 있어도 아직도 그러한 전통에 안주하고 있을 것인가, 교단의 많은 교회와 교계에 공감되는 신선한 새로운 모습을 실천할 것인가,

 

3. 교단 목회자의 성장을 위하여 목회자 교육을 이스라엘 탐방과 연구를 통해 목회자들의 목회적 인재를 키우는 방안에 대한 견해와 혹 어떤 계획을 가지고 있는가,

 

4. 교파를 초월하여 연합 목회 협력에 관하여

 

5. 이상의 몇 가지만 질문하여, 공식 질문하여 답변을 들으면 총무의 신학과 방향성을 알 수 있을 것이다. 총무 후보자가 자신의 교단을 위한 바람직한 비젼과 목적을 잘 전달하였다면 그리고 그것이 교단에 유익이 되었다면 후보로 출마한 그 자체만으로도 상당한 공헌이고 보람이라 할 것이다,

 

6. 이왕 총무에 출마하여 수고를 할 계획을 가지고 있으면 총무가 되는 것도 중요하지만 내가 무엇을 할 수 있을까 하는 고민과 비젼이 클 것으로 생각된다. 그것을 핵심적으로 잘 밝혀 자신을 정확히 알리는 것도 중요할 것이다.

 

7. 그런데 우리 교단이 총무가 교단을 위하여 계획과 비젼을 실천 할 수 있는 많은 권한을 주었는지 하는 것이다. 잘 갖추고 선출된 총무가 교단을 위하야 자신의 비젼을 계획하고 실천 할 수 있는 여러 역할이 있는지 이것은 현실이든지 숙제일 것이다.



그 제한된 권한의 한계 때문에 누가 총무를 해도 비슷할 것이라고 생각할 수도 있다. 그래도 총무가 하기에 따라서 교단에 주는 역할과 이미지는 적지 않을 것이다. 그러므로 가장 중요한 주제 몇 가지 정도의 질문의 응답을 보면 그 총무 후보자의 철학과 지향성을 총무가 되고자 아는 이유를 알 수도 있을 것이다. 거기에 특별히 자신만의 특성과 그 무엇을 덧붙이면 될 것이다.)



hi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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