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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 교단에게 주는 글

이동원 (서울북노회,성광교회,목사) 2020-09-25 (금) 07:19 1개월전 435  

어떤 선배 목회자님의 이야기이다. 어떤 교우가 그 교회에 참석하여 예배를 몇 주 잘 드리다가 아 지금 보니 이 교회가 P 교단입니까, 목사님 설교도 참 은혜롭고 설교말씀이나 분위기로 보나 그 교단이 아닌 것 같았는데 그렇군요. 전혀 그 교단 같지 않은데 아 그 교단이군요 아쉬어 하며 그 교회를 떠났단다, 좋은 참 좋은 성도 몇 가정이 그러했단다. 그러한 경우가 몇 번 있었단다.

교단 간판 때문에 좋은 여러 좋은 교인을 잃었다는 것이다. 이러한 경우가 많고 많고 많을 것이다. 그 교단 간판만 아니었으면 교인 수는 적어도 열배는 더 되었을 것이라는 것이 적지 않은 분들의 공통적인 견해이다. 아예 처음에 교단간판을 보고 들어오지 않았을 경우를 생각하면 더 많을 것이라는 것은 당연히 추측할 수 있다.

어떤 교인 모녀가 교회를 출석하여 예배를 잘 드리고 교회에서 은혜받고 따님이, 그 따님은 명문대 대학원 재학 중 인, 바로 이 교회에 등록하자고 하였단다. 회의후 아래에 내려가 식사를 하고 있던 그 신앙의 모녀의 인상이 무거웠다. 나중에 알고 보니 교단이 P 교단인 것을 알고 안색이 무거워 졌다는 것이다. 누군가 힘써 우리 교회의 복음적 전통을 이야기를 하였다지만 그 다음 주일에 물론 볼 수가 없었던 것이다. 그런데 그 교단은 소위 가장 보수적인 교단이라고도 불리운다. 오래 전일이라 그 다음 주 한번 더 나왔는지 모르겠다. 소식통에 의하면 자신들 보다 주위 친척들의 강력 강력한 권고도 있었던 듯 하다
.

신의 목회철학과 관계도 없이 단지 교단의 간판때문에 문제가 많아 교단의 간판을 원래대로 바꾸자는 등의 주장이 일부에서 적지 않게 회자되기도 하였다. 그런데 전통적이고 전형적인 목회자보다 투사적인 어떤 이미지가  대외적으로 교단의 이미지화 되기도 하였다. 교단 대다수의 목회자의 목회적 이미지보다 어떤 다른 이미지가  대외적으로 각인되는 부분이 많았다는 것이다. 이것은 대외적으로 잘못 알려진 것이다. 왜
무엇때문에 그렇게 알려졌을까요,

        

민주화 운동에 무슨 혁혁한 공을 세운 것으로 말하는 인사들이 있다. 그런데 성경적으로 보아도 민주화의 뜻이 무엇인가, 어떤 교단 목회자가 모든 면에서 놀랍게도 어떤 정치성향은 공감할 수 없었는데 민주화는 당연하고 높이 평가하는 듯해서 성경과 민주화와 무슨 관계가 있느냐고 하니 민주화는 너무 당연한 높은 가치로 알았다. 그래 성경을 중심으로 한 참 설명을 하니 공감하고 맞다고 생각했는지 그 주제에 대해서 침묵하였다.

 

민주화 운동하고 어떤 고난을 받았다고 너도 나도 이야기를 하는 어떤 곳의 분위기도 있다. 정치적으로 민주화가 무엇인가, 오십 년 만에 평화적 정권교체를 말하는 것으로도 보인다. 그렇다면 최고의 공헌자들은 누구인가, 우리의 친애하는 이인제 전 지사가최고의 공헌자라 할 수 있을 것이다. 그가 상당한 대중적 지지를 받고 삼자구도가 되고 독자적으로 상당한 표를 얻어 정권교체가 되었던 것이다. 그 당시 상당한 대중적 지지와 참신하고 실력 갖춘 이미지의 이인제 후보의 출마가 없었다면 오십년 만인가 하는 평화적 정권교체는 불가능하였을 것이다. 평화적 정권 교체를 민주화의 완성 과정으로 본다면 최대의 공헌자는 이인제 후보이었다는 것이다. 그런데 몇 십년 만의 평화적 정권교체 이후 그것은 자신들의 민주화 투쟁 덕분인 것으로 과찬하는 것을 보면 웃음이 나온다는 사람들도 적지 않을 것이다. 현대사를 객관적으로 잘 보아야 할 것이다.


교계의 교직자들 중 민주화 투쟁으로 고생했다고 그 관록을 자랑하는 경우도 자주 본다. 그러나 실상은 목회 현장에서 많은 교직자들은 그 시대에 더 고생을 하고 경제적 어려움등을 겪으며 목회 했다고 할 수도 있다. 목회가 십자가를 지는 길이라고 하지 않는가, 많은 목회자들이 실상은 더 어려움 속에서도 이름 없이 목회 현장에서 목회를 하고 있었던 것이다. 그분들에 대해서는 아는 바 없는 듯이 민주투사 이름을 지금도 간혹 신봉하는 듯 하고 있다는 것이다. 예수님과 성경의 말씀은 어디가고 말이다.

 

민* 신학이라는 것도 사실은 성경적으로 보면 그것이 성립될 수 있는지 의문이다. 학위 과정에서 어떤 소위 보수 교단의 목회자가 있었다. 그런데 조금 자유주의적인 듯한 용어에 오히려 관심을 가지고 있는 것이 기이하였다. 너무 보수적인 신학교에서 배우다가 처음 듣는 용어인 듯 좀 신기한 무엇이 있나 하는 것이었다. 그러한 용어나 신학은 신학도시절에 많은 듣고 이제는 대부분 휴지통에 버렸을 무슨 신학들을 이제와서 무엇이 있는가 하는 관심을 오히려 보이는 것이 신기하였다.



신앙 생활을 하면서 교파에 전혀 관심이 없었는데 신학을 졸업 후 목회를 하면서 어떤 교파의 표시를 보면 새삼 생소하고 낯설어 보였다
. 우리가 보아도 너무나 익숙하지 않은 간판이었다. 우리가 보아도 너무나 생소하고 어떤 이방인인 낯선 교단 간판의 모습으로 보였다. 그렇다면 다른 사람이 보기에는 어떠할까 하는 것이다.

   

어떤 대통령은 북방외교를 강조하며 러시아등과 수교하려는 노력이 한창이었을 때 어떤 분이 그 당시로는 실정법 위반인 북한에 들어가 북한 김주석과 상봉을 하였다. 거기에 대해서 교계와 교인들의 반응이 있을 수밖에 없었다. 큰 뉴스였기 때문이다. 일반사회와 교계의 대부분은 부정적 인식을 갖는 것이었다. 그 교단에도 약간의 타격을 주었다는 소식이 있었다. 또 그 당시 정부가 북방외교로 잘 하고 있었는데 구태여 그러한 일이 누구에게 무슨 도움이 되겠는가 하며 부정적 시각이 많았다는 것이다. 단 한 가지 북한에서 다시 기독교를 또는 목회자의 이미지를 좋게 심었다는 것이면 그래도 그것은 긍정적 효과이기는 하다.

 

언젠가 이른 바 보수 교단의 신학교를 방문하게 되었다. 거기의 입구 부근에 성경의 주석서를 쓴 어떤 분의 이름과 그 분을 높이 평가하는 어떤 글 귀가 큰 돌에 새겨 있었다. 그 신학교의 분위기를 느끼며 여기도 약간은 똑 같구나 하였다. 왜냐하면 어떤 교단들도 이러저러한 이유로 사람들을 미화 또는 필요 이상으로 높이는 모습도 보이기 때문이었다. 물론 학생들에게 학교의 긍지와 자부심 그리고 미래에 공헌하기를 기대하는 좋은 의미도 있겠다. 그건 그렇고 어떤 분이 한국에서 성경 전체를 구절 주해하는 주석서(annotation, explanationry notes, commentary) 를 내어 놓았다는 것은 한국 교회사에서 객관적으로 보아도 큰 공헌을 한 것은 분명한 사실이라 할 것이다.


수 이름보다 어떤 외국의 신학자의 이름이 교회 성장의 스타가 되는 인사의 이름이 소위 민주화 투사의 이름 등이 그 자리를 대신하고 있다면 자성해야 할 것이다. 근래에는 어떤 종교인사가 등장하여 정치권과 연합하여 난리법석을 피우며 자기의 이름을 높이며 희한한 언행으로 교만의 극치를 달리다가 지금은 어디에 있는지 하는 것이다.  

예수 이름 존귀한 예수 이름은 어디에 가고 그러한 스타 목회자 신학자의 학설이 투사들이 사람들이 만든 종교영웅들이 그 자리를 차지하고 있기도 하였다. 이제 연약한 인생들의 허상의 우상화를 버리고 영원하신 예수 이름을 높이고 말씀으로 달려가야 할 것이다.  기적을 주신 분은 어디가고 기적을 행하는 사람들이 그 자리를 차지하게 만들기도 하였다.  이것을 보아도 지금은 교계 개혁의 시점인 것이 너무나 분명하다. 예수이름 그리고 하나님의 말씀으로 말이다.


어떤 교단의 게시판은 교단 소속도 아닌 어떤 인사가 마치 장난치듯 기독교 교리를 조롱하는 글을 써도 방관하는지 아니면 무엇이 두려운지 내버려 두는 것을 보고 참 희한한 교단이다 라고 생각하는 사람이 많을 것이다
. 게시판 관리자나 위원회가 조처할 일을 어느 신학교수에게 물었다나 그런데 그 신학교수의 말이 뭐라고 황당하는 말을 한 모양이었다. 그런데 교단에도 두어 사람의 그의 펜이 있는 것 같다. 그 중에 목회자도 있는 것 같다. 누가 보아도 창피할 일이고 희한한 교단의 한 모습이라 할 것이다.

어떤 선배가 하신 말이다. 성경도 모르고 신학교에 들어간 후 어떻게 유학을 가서 신학을 공부하고 와서 성경을 한참 비판하다가 이렇게 세월 다지나갔다고 고백하였다는 것이다. 성경도 교회도 모르고 외국유학가서 공부하고 한국에 와서 어떤 역할도 하였는데 지나고 보니 성경도 교회도 모르고 비판만 하다가 그 귀한 목회일생이 다 갔다고 하더란 것이다.

이러한 글도 쓰는 이유는 동역자 특히 후배 목회자들을 위한 것이기도 하였다. 어떤 교단의 간판으로 어떻게 목회를 하라는 것인가 참으로 안타까웠다. 그것도 자신들의 신앙과 목회철학과 전혀 상관없이 어떤 교단에 덧 입혀진 이미지 때문에 말이다. 물론 사실은 그 교단이 어느 교단 못지 않게 장점과 좋은 점이 있을 수 있다는 것이다. 그러나 어쨌든 몇 사람들이 공헌하여 밖으로 알려진 그러한 이미지 때문에 후배들이 어떻게 목회를 하라는 것이냐 하는 안타까운 이유가 있었던 것이다.

떤 분이 전도지를 만들어 돌리면서 생각하기를 여기에 교단의 이름을 쓰면 교인들을 오라는 것인지 오지 말라는 것인지 고민을 하였다는 이야기도 있다. 이것은 실화이다.

현장의 목회를 하지도 않거나 특수 목회를 하는 경우는 전혀 그것을 못 느낄 수도 있을것이다. 교회 현장에서는 말한마디도 조심하여 얼마나 진지하게 말해야 하는 것을 겪을 것이다. 신앙적으로 성경적으로 일치하지 않은 말을 실언도 아니고 자주 한다면 목회를 할 수 없을 것이다. 그러나 학교에서 가르치는 입장에서는 심지어 성경과 반대되는 학설도 자유스럽게 말 할 수 있을 것이다. 학문이라는 이름으로 말이다. 일리는 있지만 결론은 정확해야 하고 교회신학과 다르다면 가르치지 않거나 말아야 할 것이었다.

P 교단이 너무나 아주 정통 성경적인 내용을 강조하면 타 교단 목회자가 오히려 놀란다는 것이다.

누가 P 교단 이미지를 이렇게 만들었을까, 누가 교단의 이미지를 이렇게 만드는데 역할을 하고 공헌을 하였을까, 참 희한한 일이다. 교계에서 그 이미지를 가지고 어떻게 목회를 하라고, 후배들이 가진 신학과 목회적 내용과 관계없이 무엇이 덧 씌어진 이미지 그것을 누가 그렇게 만들었을까, 그럼에도 똑 같은 가사의 노래만 계속하고 있다면 이제 크게 자성하고 말씀 중심의 교단으로 거듭나야 할 것이다.

교단의 몇 인사 중에는 성경의 교리와 좀 다른 듯한 튀는 말 등을 하므로 자신은 유명인사가 되고 교단에는 막대한 피해를 주는 경우가 있다. 신실하고 귀한 성도님들이 교단 교회를 떠나는 것이다. 교회에서 떠나 간 분들을 숫자로 볼 것이 아니라 신앙인격으로 보아야 했고 그 분들의 행동에서 본 메시지를 교단은 진즉 읽어야 하였다. 

이제 떠나 갈  것이 아니라 그러한 신실한 평신도 분들이 교단의 개혁을 주도하여야 할 것이다. 그 분들이 말씀 중심으로 교단을 개혁하는 역할을 하였어야 할 것이다.



그런데 조용히 떠난 것이다. 떠날때는 말없이 떠나는 것이 미덕으로 알며 떠나는 것이다. 다시, 이분들이 교단 교회 개혁의 역할을 하였어야 할 것이었다.

이러한 의미에서 우리 교단에 평신도 분들이 중심이 되어 말씀 중심의 개혁 운동이 일어난다면 좋을 것이다. 신실하고 성경 말씀에 굳게 선 평신도들이 교단을 개혁하는 역할을 하는 것도 바람직하다는 것이다.

국 교계 교회는 지금은 말씀으로 달려 가는 개혁의 시대이어
야 한다.

그것이 가장 분명하게 그렇다는 것을 알 수 있는 것은 개정 성경의 수정 내용과 찬송가 가사의 수정과 수록등에서 가장 분명하게 볼 수 있다. 찬송가의 가사 수정 부분 그리고 가사보다 교계의 영향력을 의식하는 것도 있고 하는 것이다.

그런가 하면 세상이 성경을 모르고 교회의 체계도 모르고 교회를 비판하면 덩달아 교계안에서도 개혁이라는 미명아래 같은 비판을 하는 경우도 있다. 교회는 교회를 모르는 세상적 시각으로 판단할 수도 없는데 말이다. 세상적 관점으로 개혁하라는 것이 아니다.

씀으로의 개혁의 시대인 것이다.

말씀으로 돌아가는 개혁을 하여야 하는 것이다.

부모들이 어린 자녀에 대한 영향력이 더 가능한 어렸을 때부터 아니면 중등 때부터 아니라면 청년이 되어서도 아니 장년도 가능하면 한글과 세계어 합본 성경 즉 예
전에는 유치부 때부터 서당의 한문공부도 있었지만 이제는 한영 성경을 niv 1984 판이나 일단 쉬운영어 성경을 함께 읽게 한다면 인생 일생에 크게 유익할 것이다.

그 책을(the Bible) 읽는 분들에게는 영력(Spiritual power and english power, ability, capability, competency) 을 줄 것이다. 또한 세계인으로서 세계어를 한다는 것은 너무나 당연하며 국력이 될 것이다. 그 언어를 배우고 실천하는 의미에서도 한영성경은 최고의 교재이기도 하는 것이다.

그리고 인넷이나 스맛폰을 함께 활용하면 상당히 잘 갖추는 것이 될 것이다. God bless you,,

                               < 성광교회 이동원 목사 드림>




=. 묵상(meditation)

1.

(삼상 3:21)

여호와께서 실로에서 다시 나타나시되 여호와께서 실로에서 여호와의 말씀으로 사무엘에게 자기를 나타내시니

The LORD continued to appear at Shiloh, and there he revealed himself to Samuel through his word.'


요1:1

태초에 말씀이 계시니라 이 말씀이 하나님과 함께 계셨으니 이 말씀은 곧 하나님이시니라

In the beginning was the Word, and the Word was with God, and the Word was God.

 

 

(요1:14-16)

14 말씀이 육신이 되어 우리 가운데 거하시매 우리가 그 영광을 보니 아버지의 독생자의 영광이요 은혜와 진리가 충만하더라


15 요한이 그에 대하여 증거하여 외쳐 가로되 내가 전에 말하기를 내 뒤에 오시는 이가 나보다 앞선 것은 나보다 먼저 계심이니라 한 것이 이 사람을 가리킴이라 하니라


16 우리가 다 그의 충만한 데서 받으니 은혜 위에 은혜러라


14 The Word became flesh and made his dwelling among us. We have seen his glory, the glory of the One and Only, who came from the Father, full of grace and truth.
15 John testifies concerning him. He cries out, saying, "This was he of whom I said, 'He who comes after me has surpassed me because he was before me.'" 

 


16 From the fullness of his grace we have all received one blessing after another.


1.

(행9:1-22)

위 구절은 당대의 최고의 대학자

그리고 교회를 가장 열렬히 박해 핍박했던 사람 바울을 통해서 주신 말씀이다. 

그 교회를 핍박하러 이방의 수도로 가다가 예수를 만나고 교회를 예수의 몸이라고 하였다.

( * 한국에서 지식인으로 널리 알려진 어떤 유명인사는 사도 바울이 다메석 도상에서 예수님을 만난 것은 더운 날씨에 헷가닥 하는 것이 아니겠느냐 하는 말을 재미삼아 말하는 것을 들었다. 행 9장을 그리고 그 전후 장을 좀 더 자세히 보았어야 할 것이다. 성경보다 자기의 설을 열심히 풀고 있다. 이 분도 박학다식은 하나 무엇을 말하는지 핵심은 알기쉽지 않다. 너무 박한 다식하여서 인지  하지만 성경에 대해서는 핵심을 찾지 못하고 자신도 헷갈리며 아직 정리가 되지 않는 것 같다.

충고한다면 성경이 성경을 해석하게 하라는 것이다. 성경은 서로 연결되어 있다. 예전에 관주 성경은 성경 연구를 위해서 대단히 유익한데 그러한 성경도 거의 없다는 것는 퇴보하는 면이 있다. 오직 교회 성장론의 신학에 올인하고 한국 교계를 이 삼십년 휩쓿다 보니 정작 경전의 개정이 어떻게 된 줄도 잘 모르고 있다는 것이다.

하나님 자신이기도 한 말씀으로 돌아가는 것이 한국교회의 개혁의 모습이어야 한다.)



1. (딤후 3:14-17)

14 그러나 너는 배우고 확신한 일에 거하라 네가 뉘게서 배운 것을 알며
15 또 네가 어려서부터 성경을 알았나니 성경은 능히 너로 하여금 그리스도 예수 안에 있는 믿음으로 말미암아 구원에 이르는 지혜가 있게 하느니라
16 모든 성경은 하나님의 감동으로 된 것으로 교훈과 책망과 바르게 함과 의로 교육하기에 유익하니
17 이는 하나님의 사람으로 온전케 하며 모든 선한 일을 행하기에 온전케 하려 함이니라
14 But as for you, continue in what you have learned and have become convinced of, because you know those from whom you learned it,
15 and how from infancy you have known the holy Scriptures, which are able to make you wise for salvation through faith in Christ Jesus.
16 All Scripture is God-breathed and is useful for teaching, rebuking, correcting and training in righteousness,
17 so that the man of God may be thoroughly equipped for every good work.

 

                                                     ( - ing )

 


hi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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