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교회의 교리와 학설

이동원 (서울북노회,성광교회,목사) 2021-01-05 (화) 07:25 3년전 1299  

1. 교회의 교리와 계명 그리고 학설

교회의 교리와 계명은 성경을 통해서 알 수 있다. 하나님께서 계시해 주셨기 때문이다. 그러나 학설이란 인생들이 저마다 만든 어떤 주장 또는 이론들이다. 그러므로 이러한 학설들은 절대적인 진리라고 할 수 없다. 단지 절대진리를 찾아가는 과정에서의 한 이론은 될 수도 있을 것이다.

떤 유명한 교수 분은 많은 영향력이 있는지는 모르나 많은 독자가 있는 있는 듯 하다. 여러 사상에 박학다식으로 여러 분야에에 관하여 말하지만 그 말하고자 하는 핵심이 무엇인지는 잘 알 수가 없다. 다른 종교나 사상에 대해서는 그렇다하여도 기독교에 대해서 많은 강연을 하는데 기독교를 믿으라는 것인지 믿지 말라는 것인지 성경의 내용을 일치하는 것인지 자신의 학설을 받아드리라는 것인지 잘 알 수가 없을 때가 많다. 기독교에 대해서만 언급을 하겠다.

 

예수님을 메시야 즉 그리스도 하나님의 아들이라는 신앙고백 그리고 예수님 주시는 첫째되고 가장 큰 계명을 전하고 있는지도 잘 알 수가 없다. 여러 가지로 받아드리기 어려운 면이 있다. 그건 그렇고 십계명에 대해서도 말하는 것을 잠깐 들었다. 십계명 일 계명에 대해서도 말이다. 하나님이 독선적인 의미가 담긴 것이라는 내용으로 열강을 하는 것을 보았다.

 

십계명은 하나님의 돌판에 직접 새겨 주신 말씀이다. 그런데 그것도 자기 방식의 해석을 하고 그 내용을 공감하지도 않고 받아들이지 않은 것 같다. 많은 내용을 십계명 1 계명에 대해서는 자주 말하는 것 같아 궁금하고 의아하다는 것이다. 그러므로 성경 그대로가 아니라 자기식으로 해석하는 것이다. 그렇다면 성경의 그 계명을 받아들이라는 것인지 받아들이지 말라는 것인지 알 수가 없다. 자기식으로 해석해서 받아드리라는 것인지. 하나님의 계명을 인간의 지식의 수준에서 자기식으로 판단하고 있는 것으로 보인다.

 

하나님께서 나외에 다른 신을 두지 말라는 것에 독선적이고 배타적인 듯한 내용이라는 듯이 말하고 있는 것이다. 그렇다면 십계명을 받아들이지 않는다는 것인가, 그것도 알 수가 없다. 자기식으로 해석해서 받아드리라는 것인가, 하나님의 선포적 계시의 말씀에 대한 그러한 자세는 신앙인으로서 적절하다 할 수 없을 것이다.

 

좀 더 생각해 볼 수 있다.

기독교에서 믿는 살아계신 여호와 하나님이 천지를 창조하시고 사랑의 대상 교통의 대상으로 사람을 창조하셨다고 하셨다. 그것을 받아들이고 믿는다면 십계명 일 계명 일 이 계명은 너무나 당연하다.

 

천지를 창조하시고 살아계셔서 사랑의 대상으로 창조한 하나님께서 자신의 백성들 사람들에게 나외에 다른 신을 있게 말라고하는 것은 자기 백성을 자신이 창조한 사람들에 대한 사랑의 다른 표현인 것이다.

 

자신이 존귀하게 창조한 사람들이 실제로 존재하지도 않은 우상들을 만들고 거기에 절하면 예배하는 어리석음과 무가치함을 방관하라는 것인가. 그러고도 하나님의 약속한 사랑과 복을 받을 수 있다고 생각하는가, 하나님은 자신이 존귀하게 창조한 사랑의 대상 사람과의 교통과 행복을 위해서 너무나 당연한 것 아닌가, 살아계신 창조주 하나님의 사랑의 다른 표현인 것이다. 너무나 당연하다. 인간적인 표현으로 질투하시기까지 사랑하신다고 하시지 않았는가. 기독교는 그것을 알고 믿고 받아드린다는 것이다. 성경 전체 신구약 전체를 통해서 왜 그렇게 우상숭배에 대하여 경고 진노 심판하시는 것인가도 살아계신 창조주 하나님 그리고 존귀하게 창조한 인간에 대한 사랑의 다른 표현인 것을 알아야 할 것이다.  

 

 

(* 가령 어떤 부모가 자기의 자녀들이 혹 무슨 인형을 만들어 거기 절하고 숭배하면 그것을 본 부모는 어떠하겠는가, 가령 부모가 아이에게 그 인형은 공경의 대상이 아니란다 하면 우리 부모는 왜 그렇게 독선적 배타적이야 한다면 어떠하겠는가. 아이가 사람이 만든 인형을 진짜 사람으로 알고 혹 거기에 절하고 빈다면 부모는 내버려 둘 것인가, 이 비유가 좀 지나친 점도 있지만 대략 그러하다. 신구약 전체를 통해서 우상 숭배를 경고 혐오 심판하시고, 하나님 입장에서는 사람을 창조한 의미가 없어지고 사람들은 허무하고 무가치한 것에 절하며 예배하면, 하나님은 무엇이라고 하시겠는가,, )

 

 

성경의 구약과 신약에 사람으로서는 믿을 수 없는 놀라운 일들이 많이 있다. 이것을 혹 사람들이 지어서 만든 이야기가 아닌가 할 수도 있고 할 정도의 놀라운 일들이 많이 있다. 그런데 우리가 한가지 알아야 할 것인 이스라엘 유대인들은 구약의 선지자나 신약의 사도들 제자들 포함하여 그 누구도 구약의 십계명을 가장 철저하게 받아들일 것이다. 구약의 약속을 받아드리는 믿는 사람이라면 말이다.

십계명을 받아들이고 하나님이 손수 돌판에 새겨 써 주신 십계명에 네 이웃에 대하여 거짓 증거하지 말라는 말씀을 거의 매일 읽고 듣고 날마다 마음에 새기고 있을 그들이 하나님에 대하여 하나님의 역사에 대하여 거짓 증거한다는 것은 상상할 수 없는 일이라 할 것이다.

 

그런데 하나님이 손수 돌판에 새겨주신 그 십계명에 이웃에 대하여 거짓 증거하지 말라고 하였다. 기본적으로 이스라엘은 사건의 전파에 거짓증거하지 않아야 한다는 것이 머릿속 뼈속까지 박혀 있을 것이다. 이웃에 대하여 거짓 증거하지 말라는 것을 십계명에 새겨 주셨기 때문이다. 이스라엘 백성들은  누구나 십계명 중 이 계명도 기억하고 있을 것이다. 그러한 그들이 하나님의 역사나 일들에 거짓으로 만들어 증거하는 것은 없거나 특별한 어떤 경우가 아니면 거의 없다고 할 것이다. 어쩌면 전무하다고 할 것이다. 그들의 신앙 생활의 핵심이기도 한 십계명에 거짓 증거하지 말라고 하였는데 그것을 아는 선지자 사도들이 제자들이 믿는 하나님의 백성들이 거짓증거하겠는가 말이다. 하나님의 심판이 있을 것이라고 생각할 수 있는 거짓을 누구를 위하여 무엇을 위하여 증거하겠는가 말이다. 하나님께서 십계명 돌판에 새겨 써 주신 내용인데 말이다. 그것은 구약의 선지자나 신약의 사도들 제자들 신앙인들 누구도 거짓을 전하지 않을 것이라는 전제라고 볼 수 있는 것이다.

 

사람들이 하나님을 부정할 수 있다. 하나님은 보이지 않기 때문이다. 하나님은 보이지 않는 영이시기 때문이다. 오죽하면 예수님의 제자 빌립이 하나님을 보여주시면 우리가 족하겠나이다 하고 예수님이 죽으시기 직전에 하신 말씀을 붙잡고 요구 하였을까 하는 것이다. 이것은 어쩌면 모든 인생이 한번 이상은 요구하는 질문일 것이다. 예수님은 거기에 대답을 회피하셨는가 분명히 무엇이라고 그 어려운 질문에 말씀하셨는가,

 

강한 부정은 긍정으로 가는 길일 수도 있다. 그래서 고전 명작소설 죄와 벌을 쓴 문호 도스토옙스키는 가장 철저한 열렬 무신론자는 가장 열렬 유신론자에 가장 가까이에 있다고도 하였다. 진리는 검증할수록 더욱 분명하게 드러나는 것이다. 진짜는 검증할 수록 더욱 진짜인 것이 드러나는 것과 같다 할 것이다.

 

벤허를 쓴 작가는 기독교의 예수를 공허한 인물 허상의 인물로 생각하고 예수믿는 사람들의 어리석음을 알리기 위한 역사적 사명을 갖고 그것을 전하기 위하여 그 증거들을 찾기 위해 노력 한 것이다. 그는 그 증거들을 찾고 찾는 과정에서 오히려 예수를 나의 주 나의 하나님이심을 알고 이 신앙적 책을 썼다는 것이다. 기독교의 허상과 예수 믿는 어리석음을 알리기 위하여 그렇게 노력하며 찾다가 오히려 예수를 기독교를 증거하는 소설 벤허를 썼다는 것은 잘 알려진 사실이다. 진리는 검증하면 할수록 진리임이 더욱 확고히 드러나는 것이다. 진리는 진짜이기 때문이다.

 

세계적으로 유명한 수학자 철학자로 알려진 알려진 버트란트 럿셀이 있다. 그는 박학다식하고 뛰어난 학자로 알려져 있다. 그러므로 그의 글은 많은 사람들에게 영향을 주었고 줄 수 있을 것이다. 서구의 사상에 영향을 받는 사람들은 더욱 그러하다. 그는 나는 왜 기독교인이 아닌가 ( Why I am not a Christian,1927) 라는 강연을 하였다는 것이다. 그런데 언젠가 그의 책들을 보고 그 후 어떤 책을 보았는데 그가 성경을 잘 몰랐다는 것을 알 수 있다. 기독교 문화에서 자라나 자신이 성경을 잘 아는 것으로 착각을 하였지 성경을 잘 몰랐다는 것을 알게 되었다. 내가 목회를 하며 성경을 더 잘 알게 된 후 알게 된 것이다. 그가 세계적 수학자 철학자로서 그 분야에 그렇게 지식을 갖게 되었다면 막상 성경은 언제 읽고 연구하였겠는가 생각하면 이해할 수 있을 것이다. 그가 성경에 대해서는 생각보다 너무 잘 알지 못하였다 할 것이다. 그럼에도 성경을 잘 알지 못하면서도 기독교에 대한 그의 발언은 그의 명성 때문에 상당한 영향을 줄 수도 있을 것이다.

( 그런데 럿셀은 다음과 같은 말도 하였다는 것이다.

'난 절대로 내 믿음을 위해 죽지는 않을 것이다.내가 틀렸을 수도 있으니까"

'I would never die for my beliefs because I might be wrong"

그는 반전 평화주의자로 열렬 평화운동을 하였다는데 다음과 같은 말도 하였다.

' 전쟁은 누가 옳은지 결정하는 것이 아닌 누가 남을지만을 결정한다.'

'War does not determine who is right - only who is left.'

이것은 전쟁의 실상을 한마디로 표현한 반전 평화운동가다운 말이고 명언이다.)

   

기독교인 지식인 학자 또는 신학자라 불리우는 인사들이 성경의 권위를 가장 떨어트릴 수도 있다는 것이다. 나는 신학도 시절에 많은 세상의 서적과 특히 무신론적 이론과 주장들의 책들을 읽었다. 그런데 그 무신론적인 책들이 나에게 별로 공감을 주지 못하였다. 신학도로서 신학을 공부하는 과정이라 최대한 객관적으로 심지어 마음 문을 열고 보려고도 하였다. 그것도 공감하기에 문제가 많고 허점이 많았다. 그런데 신학자라고 하는 불트만의 어떤 소책자 그 제목이 기독교의 비신화화인가 하는 소책자의 책인 듯 하다. 그것을 읽고 마치 그것이 사실인 듯하다는 공감할 정도이었다. 세상의 그 어떤 책보다 나의 신앙을 떨어트릴 수 있는 아니 많은 사람의 정통적인 신앙을 떨어트릴 수 있는 책이 아닌가 하 정도이었다. 그것이 일 이주일 맴돌지 않았나 한다. 그러나 그것도 공감할 수 없는 내용인 것을 알 수 있는 것이다. 누구나 젊은 시절 또는 신앙의 성장 발전의 과정에서 의심과 회의의 과정을 겪을 것이다. 열렬한 예수님의 제자 도마가 그러하지 않았는가, 그리고 언제 어디에서 무엇을 보고 그는 예수님을 나의 주 나의 하나님이라고 하였는가,

 

사람들은 헤겔의 정반합이라는 변증법적 철학적 용어를 모른다 하여도 어떤 진리에 대한 믿음에도 이러한 과정을 겪으며 정립하고 발전하고 성장할 것이다.

 

세상의 남녀노유 아니 어린이는 예외 일 것이지만 인생의 많은 과정에서 회의와 의심과 불신을 갖기도 할 것이다. 이스라엘 백성들도 예수님의 제자들도 그러하였다. 이 과정을 겪으며 성장해 갈 것이다. 누구나 정반합의 과정을 겪으며 믿음을 갖게 되고 신앙의 발전과 성장을 하게 된다는 것이다. 어떤 경우 한 인생이 그 진리를 하나님을 찾고 믿고 경험하고 발전 성장하는 과정에서 자주 회의와 감동과 감격의 과정을 겪으며 발전 성장하기도 하는 것이다. 이렇게 해서 세워진 신앙을 어떤 세상의 지식이나 학위를 가지고 결코 가볍게 평가해서는 안 될 것이다. 각 개인에게는 생각보다 깊은 탐구와 경험을 통해 결단하고 찾고 만나고 얻은 것이기 때문이다.

 

세상의 이 책들 저 책들 많이 보고 무슨 학위를 얻고 자신의 지식의 기준에서 신앙인들을 보고 평가하지 않아야 할 것이다. 그것은 지적 교만함이라 할 것이다.

 

언젠가부터 너도 나도 입 가진 자들이 종교적인 신앙과 신앙인들에 대하여 함부로 말하는 것이 부쩍 늘게 되었는데 좀 더 진지하게 검증하고 말하여야 할 것이다. 오히려 신앙인들은 그들이 알지못한 것을 알고 얻은 것이라는 것도 생각해 보아야 할 것이다. 세상의 어떤 지식의 결과 뿐 아니라 자신의 깊은 경험론적 과정의 결단이기도 하기 때문이다. 경험이 선생이다 경험이 최고의 스승이라는 말도 있다. 뿐만아니라 경험론 ( empiricism, experimentalism,experiential philosophy) 경험론자(an empiricist)라는 철학적 용어도 있다는 것이다.

그런데 성경 시편의 절반을 기록한 다윗은 수천년전에 이미 하나님의 선하심(good)을 경험론적으로 알 수 있다고 간증하며 노래하고 있다는 것이다. ('Taste and see that the LORD is good; blessed is the man who takes refuge in him.'시34:8 )

 

1. 세상을 살면서 인생사 자연 우주 등등 이해하기 어려운 부분이 일들이 많다. 세상을 살면서 너무나 확실하게 알 수 있고 이해할 수 있는 일들이 많지만 이해하기 어려운 인생사에서의 일들도 많다는 것이다. 인생사 세상사에 하나님의 감동적인 놀라운 일들이 많지만 인생사 세상사에 이해할 수 없는 일들도 있다는 것이다.

인생사와 하늘과 땅의 모든 일을 다 알려고 하면 일평생이 걸려도 다 알기가 힘들 수도 있으며 우리의 머리의 이해의 한계가 있을 것이며 두뇌의 용량이 감당하기도 힘들 것이다. 그러나 우리가 알아야 할 것은 우리에게 유익하고 필요할 것이다. 하나님께서 그것들을 나타내 보여 주셨다는 것이다. 그렇다면 그것들로 충분하다는 것도 알 수 있다. 


( 29:29)

오묘한 일은 우리 하나님 여호와께 속하였거니와 나타난 일은 영구히 우리와 우리 자손에게 속하였나니 이는 우리로 이 율법의 모든 말씀을 행하게 하심이니라

The secret things belong to the LORD our God, but the things revealed belong to us and to our children forever, that we may follow all the words of this law.


                                           < 성광교회 이동원 목사 드림>


 

 

=. 묵상 (meditation)

1. 교리

기독교의 믿음의 핵심이라고 할 수 있다.

이 근거에 의해서 성경을 읽고 해석하여야 할 것이다. 이 근거에 의하여 읽지 않으면 저마다 다른 해석을 할 수 있을 것이다. 이 신앙고백이 없다면 기독교인이라고 할 수 없을 것이다. 교회는 이 신앙고백의 반석 위에 세우셨고 세워졌기 때문이다.

(16:13-21)

 

 


1.계명

22:

34 예수께서 사두개인들로 대답할 수 없게 하셨다 함을 바리새인들이 듣고 모였는데

35 그 중에 한 율법사가 예수를 시험하여 묻되

36 선생님이여 율법 중에 어느 계명이 크니이까

37 예수께서 가라사대 네 마음을 다하고 목숨을 다하고 뜻을 다하여 주 너의 하나님을 사랑하라 하셨으니

38 이것이 크고 첫째 되는 계명이요

39 둘째는 그와 같으니 네 이웃을 네 몸과 같이 사랑하라 하셨으니

40 이 두 계명이 온 율법과 선지자의 강령이니라

 

34 Hearing that Jesus had silenced the Sadducees, the Pharisees got together.

35 One of them, an expert in the law, tested him with this question:

36 "Teacher, which is the greatest commandment in the Law?"

37 Jesus replied: "'Love the Lord your God with all your heart and with all your soul and with all your mind.'

38 This is the first and greatest commandment.

39 And the second is like it: 'Love your neighbor as yourself.'

40 All the Law and the Prophets hang on these two commandments."

 

        

(막12:28-31)

28 서기관 중 한 사람이 저희의 변론하는 것을 듣고 예수께서 대답 잘하신 줄을 알고 나아와 묻되 모든 계명 중에 첫째가 무엇이니이까

29 예수께서 대답하시되 첫째는 이것이니 이스라엘아 들으라 주 곧 우리 하나님은 유일한 주시라

30 네 마음을 다하고 목숨을 다하고 뜻을 다하고 힘을 다하여 주 너의 하나님을 사랑하라 하신 것이요

31 둘째는 이것이니 네 이웃을 네 몸과 같이 사랑하라 하신 것이라 이에서 더 큰 계명이 없느니라

28 One of the teachers of the law came and heard them debating. Noticing that Jesus had given them a good answer, he asked him, "Of all the commandments, which is the most important?"
29 "The most important one," answered Jesus, "is this: 'Hear, O Israel, the Lord our God, the Lord is one.
30 Love the Lord your God with all your heart and with all your soul and with all your mind and with all your strength.'
31 The second is this: 'Love your neighbor as yourself.' There is no commandment greater than these."
 ( * 여기에서의 이웃은 불우이웃을 말하는 것이 아니라 모든 사람들의 서로를 말하는 것이다.)

그러므로 예수님은 말씀 하셨다.

(요13:34)새 계명을 너희에게 주노니 서로 사랑하라 내가 너희를 사랑한 것같이 너희도 서로 사랑하라

"A new command I give you: Love one another. As I have loved you, so you must love one another.

 

 

1. 교리와 계명은

기독교의 교리는 믿음의 대상과 내용에 관한 것이고

기독교의 계명은 신앙인들이 실천하는 내용이다. 예수님이 율법학자의 질문에 주신 율법과 선지서의 내용의 핵심을 알려 주셨다. 이것은 인류가 추구하고 받아드려야 할 가장 첫째 되고 큰 계명이라는 것이다. 인류가 그것을 실천한다면 서로에게 유익이기에 누구도 거부할 이유가 없는 인류에게 주신 복된 계명일 것이다.

   

                                                        (- ing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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