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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초대교회사 그리고 3.1절 독립선언문

이동원 (서울북노회,성광교회,목사) 2021-03-01 (월) 21:37 9개월전 828  

1. 1907년 평양 장대현 교회에서 일어난 놀라운 일

평양 장대현교회 심령부흥 집회는 한국 초대교회사에 기록 된 놀라운 일이었다.

1907 1 14 , 15 일 양 이틀간에 놀랍게 임한 성령의 역사는 단지 시작에 불과했다. 그 일 후 장대현교회는 날마다 신도들이 모여들었다고 한다. 그 성령의 불길은 이윽고 평양 시내 전역으로 확산되었다는 것이다. 그리고 그 심령부흥의 역사는 전국의 여러 곳으로 확산되었다는 기록이 있다. 그런데 바로 그 즈음 한국역사에는 무슨 비통한 일이 있었는가,

1907년 바로 직전인 1905년에, 기록에 의하면,,

'시일야방성대곡 (是日也放聲大哭).' 장지연 주필이 1905년 11월 20일 《황성신문》에 올린 글이다. 시일야방성대곡이란 "이 날에 목놓아 통곡하노라"라는 의미다. 그는 이 글에서 황제의 승인을 받지 않은 을사조약의 부당함을 알리고 이토 히로부미와 을사오적을 규탄했다.

1. 한일 합병 1910년 인데 평양 장대현교회의 심령 부흥 운동의 역사가 1907년에 있었고 전국으로 퍼져 나가는 것과 연결하여 연구하여 볼 필요가 있을 것이다. 한편 한국의 초대교회사에서는 평양 장대현교회 부흥의 불길 뿐 아니라

신구약 성경이 이 즈음에 완간 되다.

이미 완간된 신약 성경에 이어 구약 성경이 1910년 완전 번역 완간되고 이어 신구약 한권의 단권 성경이 1911년 출판되었다는 것이다. 이것은 한국사에서 역사적으로 연구해 볼 만하다 할 것이다. 완간된 성경의 하나님의 말씀으로 일제 강점기에도 신앙을 지키며 성경을 읽을 수 있으며 영적 훈련과 발전의 기회도 될 수 있었기 때문이다. 그렇지 않았다면 많은 사람들이 이 암담한 시절에 누구를 의지하고 찾을 수 있었겠는가,

이스라엘의 사람 살기 힘든 광야 사십 년 바벨론의 풀무불 같은 칠십 년은 하나님의 표적들을 더 많이 목도할 수 있었고 영적 훈련의 장소도 되었다는 점과 연결하여 탐구하여 볼 수도 있다는 것이다.  

이처럼 1907년 겨울에 장대현교회에서 일어난 평양 대부흥운동의 역사는 평양 전역으로 확산되어 평양 시내 남녀노소 모두가 은혜를 체험했다. 조선 땅에서 가장 희망 없고 장망성 같았던 평양 도성이 이같이 끊임없는 기도와 찬송과 말씀 선포로 거룩한 도성으로, 신앙의 백성으로 변화된 한 계기가 된 것이다.

1. 한국에서 신약 성경에 이어 1910년 마침내 최초의 한글 구약성경 번역을 완료했다는 것은 한국 교회사에 뿐 만 아니라 한국역사에 너무나 의미 있는 일이라 할 것이다. 그것은 풀무불같은 일제 강점기에서도 하나님의 생명의 말씀을 읽을 수 있었다는 것이다. 1910년에 번역되고 1938년에 개정된 개역 구약성경은 대단히 잘된 훌륭한 번역의 하나님의 말씀이 있었다는 것이다.

그것은 일제의 침략으로 한일합병이 1910년에 있었다는 것과 연관시켜 볼 일이다. 일제 강점기에도 한국어로 성경을 읽을 수 있었던 것이다. 심지어 감옥에서도 이 하나님의 말씀인 성경을 수없이 읽은 분도 계시다는 것이다.

1. 기록에 의하면 한국에서 19112<구약젼셔><신약젼셔>, 그리고 최초로 신구약을 합친 단권 <성경젼셔>를 한글 성경을 번역 완간하였다고 한다. 일제강점기에 기독교인들이 성경을 읽을 수 있다는 것이다. 그 갇히지 않고 매이지 않는 하나님의 말씀을 읽고 하나님의 크신 은혜를 체험할 수 있다. 이스라엘의 바벨론 포로 풀무불 같은 기간은 하나님의 크신 은혜를 체험하고 훈련할 기회도 되었다는 것을 연관하여 볼 수 있다 할 것이다.

삼일 독립선언서의 33인중 16 명이 기독교인 이었다는 것이다. 기록에 의하면 그 당시 기독교인은 약 1.3 -1.5 퍼센트였다고 다. 그럼에도 그 일제 강점기에 독립선언문 33인중 기독교인이 16명이 되었다는 것은 초대교회 기독교인들의 역사의식과 일제 강점기의 민족사에서 기독교인들의 역할을 알 수 있는 것이다.

( 한편 일제침략과 한일 합병 조약이 1910년 한일합병조약이 체결되었다는 것이다.)

 1. 기독교와 삼일 독립선언서

삼일 독립선언서를 읽어 보자.

 

( 삼일절 백 주년 이었을 때였다. 한국에서 그 역사적 의미를 담아 행사를 하려고 한 것으로 보도 된 듯 하였다. 그런데 그 때 미국이 한미 회담을 하자고 그 날에 오라는 것이다. 무엇이 그렇게 급하다고 하필 그 날을 맞추어 한미 정상회담을 하자는 것인가, 무슨 중요한 선물이라도 있다는 것인가, 나중에 알고 보니 미일간에 삼일 기념을 방해하려는 전략이 담겨 있다고 추측할 수 있었다. 한미 회담의 결과 특별한 알맹이 있는 그렇게 급할 정도의 그 무엇이 없었다는 것이다. 가치를 모르는 장삿꾼의 트럼프 씨의 모습을 뒤늦게 보는 것이다. 트럼프 씨가 세계 평화와 번영의 세계사적 고상한 가치에 근거해서 한반도의 남북 관계에 공헌하였다면 역사 발전의 큰 일을 하였을 것이고 노벨 평화상도 수상했을 기회를 가졌을 것이다. 그런데 지금 그 개인에게도 그렇게 되었고 다음 대선에 또 출마한다고 등 현실감 없은 허풍같은 말도 하는 것으로 보인다면 어안벙벙할 일이다.

차라리 지금의 그러한 자세였다면 한반도 평화 번영에서 역할을 하였으면 노벨 평화상은 수상했을 가능성이 많았을 것이다. 한반도 역사에 기리기리 남았을 정도 이었을 것이고 혹 이번 재선에 성공하지 못했다 해도 세계인들의 지지에 다시 대선에 출마 권유가 있었을 정도 이었을 것이다. 그는 흔히 장사꾼이라고 불리우기도 하는데 참으로 가치를 추구하고 사람의 마음을 얻는 일류 장사꾼의 모습이 아니라 자기의 눈 앞의 이익만을 위해 사는 삼류 장사꾼으로 이제 평가 받을 듯 하다. 북미관계에서도 북한은 아무 조건 없이 누군가를 석방하고 또 미국에 무엇을 준 것으로 안다. 보통의 선량한 세계 시민들은 그 상황을 잘 보았다면 좀 더 객관적으로 정당하고 합리적으로 평가할 것이다.

(나는 친미주의자라고 할 수 있고 앞으로도 미국이 진정 잘되고 잘되기를 바라서 이러한 말을 하는 것이다.)

그러나 오히려 미국은 북한 관리를 초청해서 미국의 무엇을 보여주며 쇼잉을하고 무엇을 줄듯하며 과시하였지 실제로 립서비스 외에 준 것이 없는 것으로 보인다. 그것은 세계시민이 다 보고 판단하였을 것이다. 그것은 한국에 대해서도 진정성을 보여주지 않고 개성 금강산 관광 등등에 대해서 물 수도 있는 듯 거부하지은 않고 그것들을 인질 삼아 무엇인가를 요구하는 즉 방위비 인상듣등 말이다. 이러한 점에서도 금강산과 개성공단의 민족이 이룬 성업을 하루 아침에 차례로 무너뜨린 두 대통령의 어떤 민족사적 비젼과 이상이 없는 대통령들이었다고 볼 수 있을 것이다.

하나님이 보우하사 우리 나라 만세의 선조들이 만든 가사를 기억하게 한다.

그 당시에도 외세의 그 무엇이 그 어느 나라도 자기의 이익이 먼저이었지 그 당시 약한 나라 조선 한국  사람이 전적으로 의지할 대상은 아니라는 것을 뼈저리게 마음 속 깊이 알았을 것이다.

그래 애국가는 민족의 혼이 담기고 선조들의 신앙과 절규가 담긴 노래라고 할 수 있다. 하나님이, 하나님이 보우해 주셔야 한다는 것이다. 그것이 우리나라의 독립과 자주 주권국가를 바라는 선조들의 혼이 담긴 가사요 노래요 외침이요 기대이었을 것이다.


1. 그들에게 성경을 보라고 하여야 할 것이다.

그들에게 우리의 선조들의 3.1 독립선언서를 읽어보라고 하여야 할 것이다.

아직도 사대주의적 식민주의적 사고에 잡혀있고 갇혀있는 사람들에게 일부 정치인들 기성세대들에게 국민의 대표라는 국의원들에게 선조들의 3.1 독립선언서를 읽어 보라고 하여야 할 것이다. 애국가의 가사에 자주 주권국가의 민족 혼이 담겨 있는 선조들이 만들고 부른 노래를 음미하여 보라고 하여야 할 것이다. 한국의 국의원이라는 국민의 대표라는 인사들이 미국에 가서 판문점 선언을 방해 반대하는 국민대표 라는 국회의원들 등등은 시대착오적이고 사대주위적이고 식민지적 사고를 가진 모습을 보여주고 있었다. 아직도 이러한 사대주의적 피식민지적 사고에 젖어 활동한 국의원은 극히 일부를 제외하고 대부분 다시 뻿지 달지 못한 것으로 보인다.

덧붙이자면 남북의 인접지역에 전달 살포등 방지는 너무나 당연하고 잘한 일인데, 미국 국회인가 가서 어떤 의원의 행동은 사대주의적 식민지사고의 시대착오적인 국의원으로 한반도의 평화 번영을 가로 막는 듯한 행동으로 한국민을 부끄럽게 하는 것이다. 지금도 미국만 의지하면 하는 거의 노예근성적 국적이 어디인지 하는 국의원이라 할 수도 있을 것이다. 참으로 국민을 부끄럽게 하는 대표인 것이다. 이러한 인사들은 이번 기회에 삼일 독립선언서를 반드시 다시 한 번 이상 정도는 정독하여야 할 것이다.

1. 한편 미국의 한국계 관리 또는 정치인이 오히려 한국에 완장차고 갑질하는 모습도 보이고 있다. 지금 한국의 수준이 어떠한지를 모르고 있는 것이다. 지금의 한국 국민은 객관적으로 볼때 평균적으로 미국보다 더 교육 수준 높은 나라일 수도 있는데 말이다. 객관적으로 문맹율을 포함하여 여러가지를 보아도 우리가 어떤 나라를 맹목적으로 의지 할 이유도 없고 그러한 자긍심없는 국민들이 아니었다. 개인이나 민족이나 교만은 패망의 선봉이 될 수 있기에 겸손하여야 할 것이지만 이제 우리 국민은 우리가 놀랄정도의 모습이 있는 것도 객관적 사실인 것이다. 그것은 삼일 독립선언문을 본다면 과거에도 우리의 선조들은 자주적 무엇이 없는 그러한 모습이 아니었고 인류 보편적 고상한 가치를 주구하는 자랑스러운 모습이었던 것이다.

1. 삼일 독립선언서는 종교인이 주도하였고 기독교 지도자들이 있었다는 것이다.

독립선언의 33인 중 기독교인이 길선주 목사님을 비롯하여 16인이라는 것이다. 다른 종교도 인류의 보편적이 고상한 가치를 추구하고 있지만 기독교 역시 그것이 분명한 것이다. 그것은 세계인 모두가 추구해야 하고 거부할 수 없는 가치 인 것이다.


                                            < 성광교회 이동원 목사 드림>



=. 묵상 (meditation)

이스라엘이 바벨론 70년 만에 다시 돌아올 때에 그들이 부른 노래를 보자. 역사를 주관 인도하신 여호와 하나님께서 다시 고국으로 돌아오게 하셨다는 것이다. 하나님께서 세계사 민족사 교회사 가정 개인의 역사의 주관자 인도자 임은 또한 분명하게 알 수 있는 것이다.

조선의 한국의 일제 강점 시대에 한국의 유명인사가 조선의 한국의  독립보다 오히려 친일적 언행을 한 것은 잘 알려진 것이다. 그 어떤 유명인사에게 물었다는 것이다. 그의 대답은 이렇게 빨리 조선이 한국이 독립이 될 줄 몰랐다는 것이다. 아니 영영 독립이 될 줄 몰랐을 것으로 생각하였든 듯 하다. 이렇듯 세상 역사는 인간의 생각을 뛰어 넘는 것을 알 수 있다.

1. 여호와께서!

(시126:)

1 여호와께서 시온의 포로를 돌리실 때에 우리가 꿈꾸는 것 같았도다
2 그 때에 우리 입에는 웃음이 가득하고 우리 혀에는 찬양이 찼었도다 열방 중에서 말하기를 여호와께서 저희를 위하여 대사를 행하셨다 하였도다
3 여호와께서 우리를 위하여 대사를 행하셨으니 우리는 기쁘도다
4 여호와여 우리의 포로를 남방 시내들같이 돌리소서
5 눈물을 흘리며 씨를 뿌리는 자는 기쁨으로 거두리로다
6 울며 씨를 뿌리러 나가는 자는 정녕 기쁨으로 그 단을 가지고 돌아오리로다

(A song of ascents.)

1. When the LORD brought back the captives to Zion, we were like men who dreamed.
2 Our mouths were filled with laughter, our tongues with songs of joy. Then it was said among the nations, "The LORD has done great things for them."
3 The LORD has done great things for us, and we are filled with joy.
4 Restore our fortunes, O LORD, like streams in the Negev.
5 Those who sow in tears will reap with songs of joy.
6 He who goes out weeping, carrying seed to sow, will return with songs of joy, carrying sheaves with him.


(* 기독교 교리와 계명

1. 기독교의 교리는 예수님이 구약에 약속된 그 메시야 그 그리스도 이시라는 것

그리고 그러므로 예수님은 하나님이 육신을 입고 오셨다는 것이다. 하나님이 육신이 되셨다는 것이다. 이 교리를 알고 믿는 것이다. 이것은 알기 쉽지만은 않고 믿기 쉽지 만은 않다. 그래 이것을 알게 한 것은 인간의 혈육이 아니라 하늘에 계신 내 아버지라고 하셨다. 이것은 이성의 영역 이상의 영적 영역인 것을 알 수 있다. 그럼에도 배드로도 그 이후 여러 번 불완전 하였다. 고난 받고 죽으신다는 것을 말리는 것. 예수님을 세 번이나 부인 하는 것 등등 ,, 그럼에도 이 고백은 믿음의 기초이다. 기독교인의 정체성인 것이다.


2. 기독교의 계명은 하나님 사랑 이웃 사랑이다.

이것은 기독교인의 최고의 계명이고 최고의 가치라고도 할 수 있을 것이다. 하나님 사랑은 영적 영역으로 예배 등 종교적 행위 실천인 것이다

기독교 교리는 기독교인 만이 가지고 있는 것이라 할 수 있지만 기독교의 계명은 세계 시민 그 누구도 거부하거나 반대할 이유가 없을 것이다. '서로 사랑' 은 공동의 유익을 위한 최고의 가치의 계명이기 때문이다.  

이웃 사랑은 흔히 특정 불우이웃을 말하는 것으로 오해할 수 있으나 서로 이기에 모두를 말하는 것이다. 그래 예수님께서 이웃 사랑을 세 계명 서로 사랑하라고 말씀하셨다. 세상적 용어 외교적 용어로 윈윈이라고 할 수 있는 것이다. 불우이웃 돕기는 어떤 구제의 차원에서 하나님께서는 강조하고 명하셨다. 그러나 가장 큰 계명에서의 이웃 사랑은 특정 불우이웃을 말하는 것이 아니라 모두의 서로를 말하는 것이다. 사실 불우 이웃을 너무 외치는 것도 상대방의 자존을 무시하는 것이 될 수 있고 위선과 교만이 될 수도 있다. 그러므로 구제는 왼손이 하는 것 오른 손이 모르게 하라고 하였다. 물질을 주면서 그것을 과시 자랑하는 것은 물질로 그들의 자긍심을 무너뜨릴 수 있다.  

(마6:3) 너는 구제할 때에 오른손의 하는 것을 왼손이 모르게 하여 

(마6:4) 네 구제함이 은밀하게 하라 은밀한 중에 보시는 너의 아버지가 갚으시리라

서로 사랑은 인생사의 최고의 추구해야 할 가치이며 평범하면서도 고상한 가치인 것이다. 이것은 세상에서 외교적으로 말하면 윈윈이라고도 할 수 있는 거부할 수 없는 함께 실천할 내용일 것이다.

기독교의 가장 크고 첫째되는 계명을 안다면 민족 대표 33인 독립선언문에 많은 기독교인들이 참여한 이유는 너무나 당연하다 할 것이다. 그 계명의 내용은 누구에게도 전혀 배타적이 아니었다. 그 당시 기독교인이 전체 인구 비례 1.3프로 이었다면 그시대의 기독교인들의 역사적 책임의식을 알 수 있을 것이다. )

                                                      ( - ing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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