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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학교육과 교과 과정 (curriculum) 에 관하여 3

이동원 (서울북노회,성광교회,목사) 2021-03-23 (화) 07:34 8개월전 585  

1. 지금에 와서 왜 신학을 공부하려고 서구로 유학을 가야 하는 것인가, 

성경을 배우는데 왜 서구나 미국에 가야 되는 것일까요.과거에는 몰라도 말이다.

한국에는 한국어로 잘 번역된 성경이 없는가. 혹 학설등 중 꼭 배워야 할 것이 있다면 번역된 책을 읽어보면 될 것이 아닌가. 원문이나 영어 번역을 보면 되는 것 아닌가, 이제는 한국에서 그 만큼 잘 배웠다면 서구에 가서 배울 것이 아니라 서로 배우며 같이 토론하거나 가르치기도 해야 하는 것이 아닌가 말이다. 그들의 언어를 배우는 것은 모르지만 지금에 와서 성경을 그들을 통해서 배워야 할 이유가 무엇인가 말이다. 이제는 인문학을 여기에서 배우면 되는 것이지 무엇이 부족하여 그들에게 배워야 하는가 말이다. 한국에서 잘 배웠다면 구태여 서구에 가서 어떤 누구의 학설을 받아쓰기 해야 하는가 말이다.


지금은 꼭 필요하다면 외국의 어떤 강의를 자신의 서재에서 방에서 거리에서도 들을 수 있는 시대이기도 하다. 

성경의 주석서를 쓴 분들도 외국에 유학 한 분 있기는 하지만 유학을 가서 더 많은 것을 배운 것이라고는 할 것만도 없을 것이다. 그분들은 유학가기 전에 이미 기본 실력이 든든하게 있었기 때문이리라. 

( 다시, 성경을 배우고 연구하는데 인문학을 잘 공부하고 이스라엘의 역사와 지리 문화 전통을 배우고, 과거 이스라엘과 연결된 나라의 관계등 필요한 학문을 배우는데 왜 서구로 가서 배워야 하는 것인가. 한국의 기독교 역사 백년이 넘은 시점에 그 이유가 무엇인가, 이제는 도대체 거기서 무엇을 배워야 한다는 것인가,

물론 배워야 할 것이 있을 것이면 책으로 보면 될 것이다. 왜 서구 사람의 시각으로 본 것만을 혹 우월하게 생각하여 그것을 받아쓰기 하여야 하는 것인가, 그 누구의 학설을 참고하는 것은 모르나 그렇게 열심히 배워야 할 이유가 왜 있는가, 이것도 지적 사대주의로 학문적으로 종속된 것인가,. 인문학도 그렇다. 왜 그들에게 배워야 하는가, 참고하는 것은 좋지만 말이다. 어쩌면 우리가 더 나은 학문인지도 모르는데 그들의 학설을 배워야 한다는 것인가, 왜 우리의 눈이 아니라 그들의 눈으로 보는 것을 받아쓰며 배우고 논문을 쓰고 학위를 얻어야 하는가 말이다. 더구나 혹여 성경은 어디가고 학설 신봉자가 되어서야 주객이 전도된 것이 아니겠는가,

그것은 그동안의 겉멋과 학위 타이틀을 얻으면 실력있는 것으로 인식되는 모습은 이제는 아니어야 할 것이다. 인넷등으로 정보가 공유되어 있기 때문이기도 하다. 한국에서 유학할 정도로 준비하였으면 서로 배우는 것은 줗을 것이다.

1. 물론 외국의 문물을 견학하며 견문을 넓히고 자기의 배운 것을 서로 검증 토론하며 발전하는 것은 좋다. 그런데 대학교에서 학위가 꼭 필요하여 그러하다지만 꼭 실력과 일치하는 것도 전혀 아닐 것이다. 특히 신학교에서 외국의 학위로 판단하는 것은 이제는 아닐 것이다. 개정 성경을 번역한 팀은 다 외국에서 공부하고 외국 신학대의 학위를 가지고 있을 듯 하지만 성경을 개정하기에는 실력이 너무나 빈약함을 볼 수 있다.

개정팀 기준으로 본다면 성경도 잘 모르는 듯 하고 원어와 영어 외 외국어 그리고 국어와 언어 감각도 부족함을 보여주고 있는 것이다. 이것은 한국 교회사에 어떠한 평가를 받을지 담당지 아니 한국 교계의 지도자 모두가 어떤 평가받을지 하는 것이다.  경전개정이기에 좀 더 검증의 기간이 있어야 했는데,, 단 기간에 대부분의 교단에서 공인하여 보게하는 그 방면의 일은 잘 하였다고 할 수 있지만 말이다. 외국의 신학교의 학위 그리고 성경보다 무슨 학설들만 배운 결과가 아닌가 자성하여야 하겠다. 자신들도 잘 알지도 못하는 무슨 20세기 무슨 신학자 운운하며 학설이나 인용하는 것이 교회와 무슨 상관이 있고 유익이 되는가 말이다.)


1. 어떤 신학도가 서구 유학에서 새로운 무엇을 배운듯이 예수님은 가난한 자 불우한 자를 위하여 일하시는 것을 새롭게 배웠다는 것이다. 그런데 그러한 내용은 소위 좀 더 진보적인가 하는 학문적인 분위기에서는 귀가 닳도록 들은 이야기라고 할 것이다. 그것을 구태여 외국에 유학을 가서 배웠다는 것인가,,

그리고 사실 예수님의 첫 계명 중에 이웃을 사랑하라고 하셨지 무슨 약자인 이웃이나 불우이웃을 말하는 것은 아니다. 물론 신구약 전체를 통해서 어려운 자 약자를 돕는 것은 그것대로 말하고 있지만 말이다. 다시 주님의 첫 계명에서의 이웃은 누구도 예외없는 모두의 서로의 이웃을 말하는 것이다. 그런데 외국까지 가서 예수님은 약자만을 돕는 것을 배웠다면 그것도 우습다. 사실 생각해보면 세상에 약자가 아닌 사람이 어디 있겠는가, 모든 인생은 연약한 인생들인 것이다.

특정인만 이웃이인 것이 아니라 모든 사람이 서로에게 이웃인 것이다. 나도 상대방의 이웃인 것이다. 그러므로 모두가 서로 인 것이다.  물론 하나님께서는 경제적 약자를 위한 구제 궁핍자 등등은 도움을 권하신 것도 사실이다. 그러나 구제는 은밀하게 하라고 하셨다. 이것은 구제를 하면서도 서로 존중받고 혹이라도 서로가 정신적 상처받지 않은 것이다. 

( 유학까지 가서 ,, 견문을 넓히는 것은 중요,, 토론하면 되는 것이지 무슨 어려운 소리 ,, 알지도 모르는 소리,, 지금 정도는 한국의 신학도들이 가르칠 정도로 ,, 한국에서 대학 신학교육 ,, 거기에 미국에 외국에 유학까지 가서 무엇을 더 배운다는 것인가, 이른바 이웃사랑 그것이 마치 불우이웃사랑이라는 것으로 배웠다는 것인가 무엇인가. 경제적 약자를 돕는 명령은 성경을 한번만 읽었다면 누구나 알 수 있는 내용이다. 그것을 저 멀리 바다건너까지 거기가서 새롭게 배웠다는 것은 어안벙벙 할 일이다.

그리고 예수님의 가장 크고 첫 계명이 하나님 사랑과 이웃사랑으로 요약하셨는데 여기에서 이웃은 특정대상만 말하는 것이 아니라 모두를 말하는 것이다. 그러므로 새 계명을 주노니 서로 사랑하라고 말씀하셨다는 것이다. 이웃 지리적 경제적 인종적 제한 없이 모두가 이웃이라는 것이다. 눅10:29-38 )  

한국에 나의 사랑하는 책 4.5 는 상 줄일이다.원문 영어 한글 번역 들 ,, 한글 번역들은 일부 는 학문적 교만 성경도 모르고 외국에 학위 실력 있는 줄 알고 ,, 외국 유학 전에 이미 실력은 있었을 것,, 그 노력을 한국에서 했어도 그 이상은 되었을 것,, 

1. 개역 개정을 보라 ,, 성경도 한국어도 잘 모르는 ,, 대부분 외국유학 가서 학위 따면 실력이 있는 것으로 착각,,

예수님의 이웃 사랑은 불우이웃 사랑하라는 뜻이 아닌데 마치 그것이 불우하고 어려운 사람들만 ,, 아니라 모두가 이웃인 것이다. 세리도 제자 이었고 열혈당원도 어부도 ,, 베드로 어부 부자 갈릴리에서 배가지고 있었다면 배웠다면 ,, 예수님 니고데모,, 강도만난 사람 도와준 것은 사마리아인 ,, 무시 천시 멸시 받은 것은 사마리아 인이었고 강도 만난 사람을 도왔다. 그 사람이 부자 나 가난한 자나 누구이든 말이다. 차별하여,, 물론 치료비를 준 것을 보니,,

멸시 받는자 가 도울 수도 있는 것이다. 예수님을 특수층만을 사랑하는 것 배우려 외국까지 갈 필요가 있는지 ,,

이제는 학문적 사대주의 종속주의 에 벗어나냐 할 때이다. 한국인 문맹율 비례 등 수준이 더 높다. 학위 따려고 ,, 외국까지 가서 ,, 한국에서 학사만 석사 되어도 ,, 초등 아니 유치부에서 초등 중등 고등 그리고 대학 ,, 도대체 얼마를 제도권에서 공부 한 것인가,, 자기 공부도 중요 ,, 자기가 공부하면 ,, 외국 신학자 못지 않는 것,, 불트만이 말하면 무엇이 있는 듯 하고 ,,

 

1. 한국인의 어려운숙제 문화 발음 단어 등등 거의 힘든 ,, 이제는 스맛폰 거의 동시 통역으로 ,, 정보 ,, 한영 성경 읽기로 해결할 수 있을 듯 ...

이스라엘 유학 해야 ,, 이어령 최고의 지성 유학파인가,, 너도 나도 인용하는 칼 바르트는 박사 학위 있는가,, 물론 명예박사 학위는 있지만 말이다. 박사는 자격이 있지만 ,, 오히려 갇히게 제한하는 ,, 한국인이 유학 외국에 어학 비용은 상당한 것으로 ,, 견문은 필요,, 그래 수준 높고 ,, 이제 다행 스맛 폰으로 ,, 입시 시험 위주 보다 듣기 말하기 쓰기 등 실용적 발전도 더 가능할 듯, 

어떤 강도 만난 사람을 그 당시 멸시받은 사마리아인이 도왔다. 강도 만난 사람이 소위 사회적 약자인지 모른다. 아닐 수도있다. 가지고 있는 것이 즉 지갑이 두둑하기에 강도 만난 것 일 수도 있다. 그가 어떤 신분이든지 그를 도운 사람이 이웃이라고 하셨다. 

다시, 왜 한국에서 신학을 6년 배우고 서구 유럽으로 미국으로 가서 또 신학을 배워야 하는 것인가, 상호 토론을 하는 과정이면 모르지만 말이다.

과거에 초기는 그러하다지만 ,, 이제 와서 생각하면 왜 유럽이나 서구로 가서 구태여 배워야 하는지,, 세계적으로 책이 많을 것이고 ,, 이제 인넷 스맛 폰은 활용으로 정보는 한국이 세계적일 것이다. 

성경에서 배우면 되는 것이지, 인문학과 이스라엘 문화역사 배우면 되는 것이지, 왜 또 서구 사람을 통해서 ,, 성경을 또는 신학을 배워야 하는 것인가,,

물론 배울 것은 배우는 것이지만 토론을 통해 배워야지만 ,, 주입식으로 그들에게 무엇을 배워야 한다는 것인가,, 그들의 시각으로 ,, 문화로 ,, 대부분 말이 더 어려워지는 것은 ,,

 

1. 좀 특별한 경우이지만 ,,

서구에 가서 더 성경을 넓고 깊이 자세히 배우는 것도 아니라며 ,, 서구 신학 학설이나 배우러 간다고 한다면, 그것은 무슨 이유인가, 거기에서 학설을 배우고 학위를 딴 분들이 개정 성경의 번역 위원으로도 실력보다 그 학위 간판 또는 현 위치 때문에 번역위원 으로 참가하였는데 과연 실력이 있다고 보는 것이다. 성경 이스라엘 문화 역사 원어 언어 국어 등등의 분야에서 말이다. 개정 번역에는 국어실력과 문학적 감각도 너무나 부족하다는 것을 알 수 있다. 그것은 외국어 공부 등만 하여 성경도 그렇다면 외국어도 그리고 이스라엘 문화 지리 역사도 모르고 개정한 것이 아닌가 보아야 하고 그러하다면 한국 교계 교회에 얼마나,, 그러나 개역 성경이 잘 번역이 되었다는 것,, 만약 개정 수정 팀에 최초의 성경 번역을 맡겼다면 ,, 잘 번역된 영어 성경 참고 좋다. 그럼 보면 되는 것이다. 그런데 영어가 원어는 아니다.

원어를 잘 안다고 성경을 잘 아는 것도 아니다. 헬라 그리이스 성경은 헬라어로 그 언어가 모국어인 그리이스,, 말씀 묵상 흥왕하였던가,, 오히려 말씀보다 어떤 종교적인 형상화 상징들이 많은 것을 본다. 예전에 글을 모르는 사람들 헬라나 로마에 많으니 그러할 수도 있을 것이다. 그러나 지금은 문맹율이 거의 없을 것이다. 그럼에도 원어인 모국어로 성경을 읽고 하는 분위기 오히려 그러하고 종교적인 형상물 상징물들이 많다는 것이다.

우리는 말씀에 근거해야지 형상물이나 외국의 신학자의 학설이나 신봉하는 것은 우상숭배의 일종일 수도 ,, 이제는 그 내용을 잘 알거나 큰 감동도 없이 무슨 20, 21세기의 대 신학자 운운하며 그 어려운 소리나 인용하는 것은 지양해야 할 것이다. 세계에서 한국만이 그러할 것이 아닐까,,,어떤 시학자가 어떤 말을 하였다고 하여 어쩌자는 것인가, 성경에 있다면 성경 보면 되는 것이고 성경에 없다면 또 그것을 왜 신봉해야 하는 것인가 말이다 

기독교의 교리와 계명을 알고 실천한다면 되는 것 아닌가, 20, 5:12, 22: , 12: 16:


hi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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