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말씀 묵상 118 – 나의 주 나의 하나님 (요20:28)

이동원 (서울북노회,성광교회,목사) 2021-03-24 (수) 08:26 3년전 1312  

 1. 나의 주시며 나의 하나님이시니이다

(요20:28-30)

28 도마가 대답하여 가로되 나의 주시며 나의 하나님이시니이다
29 예수께서 가라사대 너는 나를 본 고로 믿느냐 보지 못하고 믿는 자들은 복되도다 하시니라

28 Thomas said to him, "My Lord and my God!"
29 Then Jesus told him, "Because you have seen me, you have believed; blessed are those who have not seen and yet have believed."

예수님의 열두 제자 중의 한 사람인 도마는 예수님의 부활을 믿지 못하였다. 그러나 예수님의 부활을 직접 보고 예수님을 나의 주 나의 하나님이라고 선언하고 고백하였다

이것은 도마의 고백이고 선언이며 또한 이 내용을 기록한 요한의 선언이며 고백이다. 이 고백은 또한 교회를 예수님의 몸된 교회를 핍박한 바울의 고백이고 선언이었다. 이것은 이미 베드로를 통해 고백하였고 사람의 혈육이 아닌 성령의 감동으로 할 수 있는 고백이며 이 신앙고백으로 교인이 되는 것이다. 교회의 즉 모든 교인의 신앙고백이며 선언인 것이다.    

1. 나의 주 나의 하나님은 교회의 고백과 일치하는 것이다.

(16:16)에서

예수님께서 제자들에게 너희는 나를 누구라 하느냐 하였을 때

당신은 하나님의 아들이라는 고백은 예수님을 하나님으로 고백하는 놀라운 선언이다.

다른 뜻일 수가 없다. 하나님이 사람도 아닌데 결혼하여 아들을 낳은 것으로 고백하였을 것은 아니기 때문이다. (1:1-18)

     

1. (막1:1 )

1:1 절은 마치 마16:16절을 연상하게 하고 그 복된 신앙고백으로 막 1:1 절을 시작한다.

'하나님의 아들 예수 그리스도 복음의 시작이라'

The beginning of the gospel about Jesus Christ, the Son of God.'


나는 마가가 로마에서 베드로의 통역자(translater)이었고 베드로가 마가를 아들 즉 믿음의 아들로 (벧전5:13)불렀다는 것을 볼 때 베드로의 영향을 많이 받았다고 본다. 그러므로 마가복음은 베드로복음으로 부를 수도 있지 않을까 라고 하였다. 그것은 마가복음이 베드로다운 간결 단문의 문장에서도 그것을 생각해 볼 수 있다는 것이다.

 

1. (행28:31)

사도행전의 마지막 장에 바울이 전하고자 하는 내용이 나온다. 그 내용은 마16:16, 1:1, 20:31 과도 일치한다. 사도행전을 기록한 사람은 바울의 주치의고 동역자인 누가가 기록한 것이다. 바울과 누가는 예수님을 직접 만나거나 보지못하였다. 육신의 예수님으로부터직접 듣거나 그의 행적을 본적이 없다. 예수님의 영 성령으로 부름을 받고 전도활동을 하며 성령의 역사를 보고 기록한 것이다. 그러므로 누가복음을 성령복음 사도행전을 성령행전이라고 부르기도 한다는 것을 통해서도 성령의 역사를 얼마나 강조하였는가를 알 수 있다. 누가는 의사이다. 의사의 눈으로 성령의 역사를 본 것이다. 누가는 역사가 문학가라고도 한다.

다음은 누가가 기록한 행전의 마지막 장 마지막 절이다

'담대히 하나님 나라를 전파하며 주 예수 그리스도께 관한 것을 가르치되 금하는 사람이 없었더라.' (28:31)

Boldly and without hindrance he preached the kingdom of God and taught about the Lord Jesus Christ.

 

기독교 복음 전파의 내용의 핵심이다.

하나님의 나라는 세상 나라가 아니라 하나님의 영적 세계라고 한다면 이해하기가 쉬울 것이다.

여기에서도 바울이 주(, 큐리오스 ,, 히, 아도나이) 라고 하는 것은 하나님이라는 뜻임은 분명하다 할 것이다. 이것은 교회의 탄생 근거이고 교회의 일치된 고백이기 때문이다. (마16:16, 요20:30-31)

 

1. 도마의 이 고백은 쉽게 나온 고백이 아닌 것이었다.

그가 예수님의 열 두 제자 중의 한 사람이었음에도 

제자들이 예수님의 부활의 소식을 전하였음에도 

그가 다른 제자 못지 않게 순교적 열정적이었음에도 (요11:16)

' 디두모라 하는 도마가 다른 제자들에게 말하되 우리도 주와 함께 죽으러 가자 하니라 '(요11:16)

Then Thomas (called Didymus) said to the rest of the disciples, "Let us also go, that we may die with him."

(* 그 ,, 원) 아우토스,, 그, him)


그러했던 도마가,

죽으신 예수님의 부활은 못 믿겠다는 것이다. 그가 그 누구보다도 얼마나 실증주의적 경험주의적 지성주의적 이성주의적 것인가를 잘 알 수 있다.  그러한 그가 보고 고백한 것이다.        

(20:24-29)    

24 열두 제자 중에 하나인 디두모라 하는 도마는 예수 오셨을 때에 함께 있지 아니한지라

25 다른 제자들이 그에게 이르되 우리가 주를 보았노라 하니 도마가 가로되 내가 그 손의 못자국을 보며 내 손가락을 그 못자국에 넣으며 내 손을 그 옆구리에 넣어 보지 않고는 믿지 아니하겠노라 하니라
26 여드레를 지나서 제자들이 다시 집 안에 있을 때에 도마도 함께 있고 문들이 닫혔는데 예수께서 오사 가운데 서서 가라사대 너희에게 평강이 있을지어다 하시고
27 도마에게 이르시되 네 손가락을 이리 내밀어 내 손을 보고 네 손을 내밀어 내 옆구리에 넣어 보라 그리하고 믿음 없는 자가 되지 말고 믿는 자가 되라

24 Now Thomas (called Didymus), one of the Twelve, was not with the disciples when Jesus came.


25 So the other disciples told him, "We have seen the Lord!" But he said to them, "Unless I see the nail marks in his hands and put my finger where the nails were, and put my hand into his side, I will not believe it."
26 A week later his disciples were in the house again, and Thomas was with them. Though the doors were locked, Jesus came and stood among them and said, "Peace be with you!"
27 Then he said to Thomas, "Put your finger here; see my hands. Reach out your hand and put it into my side. Stop doubting and believe."


1. 나의 주 나의 하나님

다음은

예수님의 부활을 누구보다도 철저하게 믿지 못했던 도마가 부활하신 예수님을 보고 믿고 선언한 것이다.


'도마가 대답하여 가로되 나의 주시며 나의 하나님이시니이다' (요20:28)

Thomas said to him, "My Lord and my God!"


예수님을 나의 주 나의 하나님으로 고백한 예수님의 열두 제자 중의 한 사람이었던

도마의 이 신앙고백의 선언은 이것을 기록한 예수님의 제자 사도 요한의 고백이었음을 너무나 당연하다.

이 신앙고백은 이미 베드로가 선언하여 예수님으로부터 이 신앙고백위에 내 교회를 세운다고 하셨고

교회를 열정적으로 핍박하고 살기등등하여 공문을 가지고 외국의 수도까지 가서 결박하여 잡아오려고 하

였던 사도 바울의 신앙고백이다.


1. 우리가 복된 이유,

도마의 이 신앙고백은 예수님의 부활을 의심하고 믿지 못하다가 부활하신 예수님을 직접보고 고백한 신앙의 선언이다. 도마는 부활하신 예수님을 나의 하나님 이라고 선언하였다. 그런데 예수님은 그 신앙고백을 받아드린 것이다.

만약에 예수님이 하나님이 아니시라면 왜 나를 하나님이라고 하느냐라고 하셨을 것이다. 그러므로 예수님은 도마의 나의 하나님이라는 선언을 시인하신 것을 알 수 있다. 그리고 다음과 같이 말씀하신 것이다.

(요20:29)
예수께서 가라사대 너는 나를 본 고로 믿느냐 보지 못하고 믿는 자들은 복되도다 하시니라/

Then Jesus told him, "Because you have seen me, you have believed; blessed are those who have not seen and yet have believed."


1. 오직 이것을 기록함은

예수님은,

하나님의 아들 - 신약에서 예수님을 하나님의 아들이라는 표현이 하나님이 육신으로 오셨다는 것 그리고 하나님과 동일하신 분이라는 뜻인 것을 알 수 있다. 왜냐하면 신약에 그러한 분명한 선언이 있기 때문이다. 하나님이 육신으로 오셨다는 것을 다른 말로 무엇이라고 표현하겠는가, 하나님과 동일한 분이라는 것을 다른 말로 무엇이라고 표현할 수 있겠는가, 그것을 하나님의 아들이라고 선언한 것이다.

그 그리스도 - 구약에서 오시기로(보내시기로) 약속한 그 메시야라는 말을 헬라어로 그 그리스도라고 번역한 것이다.

(요20:30)

예수께서 제자들 앞에서 이 책에 기록되지 아니한 다른 표적도 많이 행하셨으나 /


30 Jesus did many other miraculous signs in the presence of his disciples, which are not recorded in this book.

오직 이것을 기록함은

'너희로 예수께서 하나님의 아들 그리스도이심을 믿게 하려 함이요 또 너희로 믿고 그 이름을 힘입어 생명

을 얻게 하려 함이니라' (요20:31)

But these are written that you may believe that Jesus is the Christ, the Son of God, and that by believing you may have life in his name.'

                                        

=. 부록 (supplement)

나의 주에서 '주' 라는 말은 하나님이라는 뜻이다.

물론 주라는 말은 주인의 뜻도 있어 사람에게 붙일 수도 있다. 성경에서 사람을 주라는 칭호를 사용한 경우도 있다. 사람에게 극존칭으로 부르기도 하는 것이다. 그러나 여기에서 나의 주 나의 하나님이라고 선언한 나의 주라는 말은 하나님이라는 말인 것이다. 나의 주 나의 하나님이라는 칭호를 통해서도 알 수 있다.

구약에서 여호와 라는 말이 나올 때에 하나님의 존귀한 이름이라고 해서 여호와 라고 읽지 않고 주(아도나이) 라고 읽었다는 것이다. 즉 하나님을 주(아도나이) 라고 부르는 것이다

( * 그러므로 도마가 예수님을 아도나이(주)라고 선언했다는 것은 참으로 의미깊다. 한편 신약성경은 헬라어로 기록하였기에 큐리오스(헬라어로 주) 라고 번역하였지만 실제로는 히브리어인 아도나이라고 선언하였을 것이다. 모국어가 히브리어이기에 히브리어를 사용하였다는 것은 너무나 당연하고 분명할 것이기 때문이다. 그것은 마치 베드로가 예수님을  구약에 약속하신 ' 그 메시야'로 선언한 것을 신약성경은 헬라어로 기록하였기에 '그 그리스도' 로 번역하여 기록한 것과 같은 경우라고 할 것이다.)

(* 유대인들은 경전인 구약을 읽을 때에 여호와를 아도나이로 읽었기에 여호와라는 발음이 혹 야웨, 야훼가 아닐까 하기도 하는 이유가 있는 것이다. 히브리어는 자음만을 쓰고 발음하는 언어이기 때문이라는 것이다. 그래 오랜 동안 발음을 하지 않고 글자로만 보았기에 그 정확한 발음이 전해 내려오지 않았기 때문이라는 것이다. 그러나 그것이 큰 문제가 아닌 것은 발음이 중요한 것이 아니라 그 내용이 중요한데 그 내용은 있다, 존재하다, 계시다는 뜻이라는 것이 중요하다.

이것은 마치 옛 한글의 하 ㄴ ` 님을 하나님으로 읽느냐 하느님을 읽느냐 하는 것과 비슷하다 할 것이다. 우리의 신앙의 선조들은 처음에 어떤 발음으로 이 단어를 사용한 것인지는 정확하지 않은 것으로 알려졌을 수도 있다. 그러나 성경 번역 1, 2년 후 하나님으로 하게 되었다는 것이다.

하나님이라는 칭호는 어쩌면 세계에서 가장 적절한 칭호라는 것을 이미 여러 번 말하였다. 온 우주의 절대적 진리 하나 그리고 거기에 존재를 칭하는 인격적인 칭호의 님자를 붙이는 하나님은 신의 칭호로서 가장 의미 깊다는 것이라고 생각한다. 또한 십계명 첫 계명과 신6:4 절등을 통하여 볼 때에도 가장 적절한 의미 깊은 칭호의 단어인 것을 알 수 있다. 그래서 신의 칭호인 하나님은 세계의 어떤 나라에서도 찾아 볼 수 없는 참으로 적절한 칭호라는 것이다. 그런데 다행이 하느님이라는 칭호도 하늘 아버지, 주기도문의 하늘에 계신 우리 아버지을 뜻이 담겨 있다고 한다면 적절하다 할 것이다. 한글 성경의 처음 번역 1년차는 하느님이라고 번역하였다가 바로 하나님으로 하였다는 기록을 본적도 있다. 그러므로 성경에 하나님이라는 칭호로 번역하였고 성경과도 일치하므로 하나님으로 칭하는 것이 좋을 것이다. 그러한 의미는 성경 전체에서 가장 강조한 내용이기도 하다. God bless you,

(출20:1-3, 신6:4, 사44:6, 45:5-6,46:9, 막10:18, 요10:30, 행16:6-10)                       

                            

                                           < 성광교회 이동원 목사 드림>                     

                                                          ( - ing )


hi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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