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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의 근대 현대사와 기독교 2

이동원 (서울북노회,성광교회,목사) 2021-08-18 (수) 07:46 2년전 1015  

한국에 기독교가 들어오지 않았다면 한국의 근현대 역사는 어떠하였을까, 연구하여 볼 필요가 있을 것이다. 한국에 기독교가 들어오고 한글 성경이 번역이 되어 한국의 문화 발전과 오늘의 세계적 선진국이 되는 데도 가장 결정적인 역할을 하였다 할 것이다.

한글 성경은 하나님이 한국을 사랑하여 한국에 주신 사랑의 선물이라 할 것이다. 하나님의 말씀은 하나님 자신이라고 할 때 전능하신 사랑의 하나님은 한국에 자기 자신을 성경을 통하여 주셨다고 하여도 과언이 아닐 것이다. 

오늘 기독교를 비방하는 것이 일부의 세력에게는 하나의 유행병처럼 되어 있고 심지어 기독교인들 조차도 같이 여기에 동조하기까지 하고 있다. 기독교를 비방하는 사람들은 한국의 근현대사를 모르는 무지몽매하고 무지한 인물임을 한국의 근현대사와 한글에 주신 성경을 안다면 그러할 수 없을 것이다.

한국의 근현대사를 배우고 공부하여야 할 것이다. 그렇다면 기독교와 한국의 근현대사는 땔레야 뗄레야 뗄수가 없고 하나님의 은혜와 역사를 감사하지 않을 수 없을 것이다. 하나님의 많은 역사는 말로 다 기록할 수 없지만 한국에 한글 성경을 번역케 하여 주신 한 가지만을 통해서도 알 수 있다.

그런데 한가지 이상한 것은 국내외에서 신학을 무엇을 배웠다는 인사들 중에 기독교를 심지어 성경을 비판적으로 보고 자기의 이론을 합리화하기 위해 기이한 해석을 하는 경우도 종종 본다는 것이다. 물론 사물이나 무엇을 비판적으로 보는 것은 헤겔의 정반합의 변증법적인 철학을 인용하지 않아도 진리의 진리됨을 발견하는 방법도 될 것이다. 그런데 그러한 목적도 아니고 단지 기독교을 비판하므로 성경을 비판적으로 봄의 자기의 지식을 과시하려는 위선의 모습이라고 할 수 있을 것이다.

그러므로 기독교 지식인들 또는 신학을 공부한 일부인사들은 맹목적 비판적으로 말하므로 자기의 존재의 과시를 목적으로 하는 인사들이 꽤 있다는 것이다. 그것이 이상하다는 것이다. 그것이 지식인의 위선이라 할 수도 있을 것이다.

 

그러므로 다시 말하지만 그런데 지금 기독교를 재미삼아 또는 지식인인체 비방하는 인사들은 한국의 근현대사를 모르는 무지몽매하고 자신이 한국의 역사 문화에 무지함을 온천하에 드러내는 것이라고 할 수도 있을 것이다 특히 지식인이랍시고 하면서 기독교를 비방하는 인사들은 지식의 천박함을 드러내는 것이라고 하겠다. 한국의 근현대사를 안다면 그러할 수가 없다. 기독교를 비방하는 인생들 진정한 지식인이라고 할 수는 없을 것이다. 그리고 심지어 은혜를 모는인생들이라고 할 수도 있지 않을까 한국근현대사를 보며 검토해 보아야 할 것이다.

한국의 기독교인들은 한국에 들어온 기독교와 한국역사에 어떻게 영향을 주었는가 하는 것을 보는 것은 중요하다고 본다. 그것은 하나님의 역사를 객관적으로 사실적으로 볼 수 있기 때문이기도 하다.


다음의 해에 한국 역사에서 일어난 중요한 일이 무엇일까요.

1905 년

1910년 한일 합병


다음의 해에 교회사에서 일어난 큰 일이 무엇일까요

1907년 평양 장대현교회 심령 부흥의 역사와 그 이후

1910년 한글 성경으로 신약에 이어 구약을 번역 완간

1911 년 한글 성경 전서 완간 

 

1. 갇히고 닫힌 곳에서 갇힌 곳에서 하나님의 말씀 읽고 또 읽고 ,, 하나님의 말씀은 갇히지 않고 매이지 않고 역사하는 것이다.

 최초의 한글 성경 예수교 ‘셩경젼셔’가 1910년 1911년 출간된 후 성경의 보급은 교회의 발전뿐 아니라 한국 문화와 역사에 어떠한 영향을 끼쳤는가 연구해 보아야 할 것이다.

신약 성경은 스코틀랜드의 선교사 존 로스 (John Ross) 목사가 1880년대 중국 심양에서 최초 번역하였다고 한다. 그렇다면 구약은, 

기록에 의하면: 구약 성경의 최초의 한글 번역은 알렉산더 알버트 피터스 목사이다. 한국명으로는 피득이라고 부른다. 그가 1895년 한국에 와서 3년간 한국말을 배운 후 1898년 시편의 일부를 우리말로 번역해서 시편 촬요를 출간 한 것이다. 역사상 최초의 한글 구약성경 번역이 된다.

그는 당시 구약성경번역 위원회의 위원으로 뛰어난 히브리어 실력을 발휘해서 구약성경번역의 중추적 역할을 했고 1910년 마침내 최초의 한글 구약성경 번역을 완료했다.  그 후 개역 작업은 1938년에 끝이 났고 그 해에 개역성경전서가 출판되었다. 1910년에 번역되고 1938년에 개역성경전서가 완성된 것이다.  

한글 개역 성경을 읽기전에 이 번역이 어떻게 되어왔나를 읽어본다면 누구나 이 최초의 개역완간 번역이 하나님께서 한국에 주신 특별한 은총의 선물임을 깨달을 수 있을 것이다

 

기록에 의하면  

성경이 우리나라에 소개된 것은 1832년 네덜란드 선교사 귀츨라프 선교사를 통해서이다. 그는 얼마동안 머물면서 주기도문을 한글로 번역했다. 그 후에 1865년 토마스 목사는 황해도 해안지방에서 대동강을 따라 평양 근처에서 순교하기까지 한문성경을 전해 주었다

우리말 성경을 최초로 번역한 것은 중국에서 영국인 선교사 존 로스(John Ross, 1842-1915)이다. 당시 쇄국정책으로 인해 조선에 들어오지 못한 로스 목사는 만주에 머물면서 그곳에서 만난 서상륜에게 한글을 배우며 함께 한문성경을 한글로 번역하기 시작, 그 때 서상륜 이외에도 이응찬, 백홍준 두 사람이 협조, 1882년 말에 최초로 번역된 우리말 성경이 누가복음이었다. 로스 목사는 같은 선교회에서 파송한 매킨타예수셩교젼서(1887)예수셩교젼서(1887)이어와 합작, 1887년에 예수성교전서라는 이름으로 신약을 완역하였다

한편 18834월 일본에서는 미국성서공회가 한문으로 된 4복음서(마태복음, 마가복음, 누가복음, 요한복음)와 사도행전에 이두로 토를 달아 3천부를 인쇄했는데, 토를 다는 작업을 맡았던 관비 유학생 이수정이 1884년 마가복음을 한글로 번역, 1885년 언더우드 목사와 아펜젤러 목사가 그 성경을 가지고 한국에 들어왔다.     


개역개정 성경 2035년까지 재개정 추진 보도가 사실이라면 이것은..

보도에 의하면 개역개정 성경 재개정 작업은 오는 2035년까지 마무리할 계획이라는 것이다. 

잘못 번역을 또 개정하면 진짜 이것은 ,, 한국 교회사에 정말 성도님들에게 너무나 큰 손해의 혼란의 문제가 될 수 있다. 

재개정 무슨 이권이나 무슨 등등 ,, 관주 ,, 하단 주석 ,,


개역 성경과 한국 문화 역사 근대사 를 좀 더 연구해 본다면 놀라운 감동이 있을 것이다. 하나님의 역사를 볼 수 있기 때문이다.

그런데 안약 2035까지 개정을 새로 번역하려 한다면 오히려 번역의 너무나 큰 문제가 될 가능성이 많다 할 것이다.

다시 개역 중심으로 극히 적은 부분만 정밀 검증하여 번역한다면 좋은 번역이 될 것이다. 다시 잘 번역된 개역 번역 그대로 돌아가는 정도로 가는 것이 유익이다. 개역이 너무나 잘 번역이 되었기 때문이다. 잘 번역하여 목회자 성경주석가 학자 성도님들을 통해서 수십 년 동안에 검증되었기 때문이다.

< 개정 번역 이후 성경 전권의 주석가 한분도 없을 것이며 한국의 목회자와 성도님들의 어떤  평가를 받고 있는 가를 보라! 과연 개역을 수정한 개정번역을 격찬한 분이 많은가. 몇 분이라고 있는가, 물론 두어 분 이상이 광고를 한 것으로 아는데 잘 검토 검증도 없이 선전한 것은 아닌가 하는 것이다. 그리고 주석가 중에 혹 격찬 한 분이 몇 분 또는 한분이라도 계신가 말이다.

그리고 성도님들이 읽어 보면 문장과 내용을 통해서도 알 수 있다. 원어들을 모른다 해도 말이다. 그런데 성도님들도 훨씬 쉽고 정확하게 감동적으로 내용이 들어온다는 반응들을 보았는가 말이다. 이것은 성서공회는 검토 검증해 보는 것도 좋을 것이다. 무조건 새로나온 번역이니까 좋다고 할 것이 전혀 아니라는 말이다.>


 (  * 개정 또 2035년 완간 예정 그것은 안될 일 ,, 아서라 아서라 제발 아서라 ,, 표현이 적절할지 모르지만 ,, 문제 있는 집을 다시 짓기는 더 어렵고 ,, 지금은 개역판을 ,, 대략 100 군데 내외 수정하면 될 것이고 그리고 부분 수정하면 될 것이다,, 상권이 문제였다면 문제 였다고 하여도 ,, 100 군데 내외 수정하고 ,, 지정판이라고 했었도 되었을 것 ,, 무슨 외국에서 학위 받아오면 다 실력 있는 줄 알고 ,, 주석서를 쓰신 분이 감수를 하는 것이 아닌다면,, 외국의 학위 공부하는 사람들은 ,, 오히려 성경을 잘 모를 수 있다,, 사람은 다 한계가 있는데 소위 외국 신학자의 신학을 공부하면서 어떻게 성경을 번역할 정도로 잘 읽었겠는가,,  

교회 수평성장과 학위과 무슨 민주화 운동과 이러한 것에 집중하다가 정작 성경을 오히려 우리 선조보다 ,, 관주 성경도 거의 다 사라지고 ,, 한글 한문 혼용이면 뜻이라도 잘 알지 ,, 감사 한 것은 하단에 주석 성경이 많이 나왔다는 것이다. 그렇다면 깊은 검증 없이 쉬운 단어로 바꾸지 않는 것이 오히려 어휘력 풍부함에도 좋았을 것을 ,,, )



=. 인용 / 한글 성경사 

1832- 네덜란드 선교사 구츨라프에 의해 처음 성경이 한국에 알려짐.

1865- 토마스 목사가 한문 성경을 전하고 순교함.

1873- 스코틀랜드 연합 장로회 선교사 로스가 성경 번역을 시작.

1875- 서상륜, 이응찬, 백홍준 등이 로스의 성경번역에 동참.

1882- 로스 누가복음 번역 1883년 출간.

( 죤 로스,, 스코틀랜드 연합장로회의 영국 선교사. 만주에서 홍삼장수를 하던 서상륜의 도움으로 요한복음과 누가복음을 한글로 번역하는 일에 매진함. 조선의 육로와 기선을 이용하여 쪽복음서와 사도행전, 소책자 등을 전달하는 등 복음에 힘씀)

1883- 이수정 미국성서공회에서 한문 사복음서와 사도행전에 이두로 토를 달아 인쇄하는 일을 도움.

1884- 이수정 한국어로 마가복음 번역.

1885- 이수정이 번역한 복음서를 언더우드 목사와 아펜젤러 목사가 가지고 입국.

1887- 로스와 매킨타이어 목사 공동으로 신약전서 번역. 선교사들 한국성서위원회를 조직.

            언더우드, 아펜셀러 공역 "마가가 전한 복음서" 번역.

1890- 아펜셀러 "누가복음전""보라달라마인서(로마서)" 번역.

1893- 공선번역위원회를 조직하고 언더우드, 아펜셀러, 스크렌톤, 트롤로프, 게일, 레이놀즈 등이 위원에 선정됨.

1895- 위원회 역 사복음서와 사도행전 합본인 "신약젼서" 번역.

1897- 위원회 역 골로새서와 베드로전후서 번역.

1898- 위원회 역 계시록을 제외한 신약 번역. 피터스 목사 "시편촬요" 출간.

<* 구약 성경의 최초의 한글 번역은 알렉산더 알버트 피터스목사. 한국명 피득. 1895년 한국에 와서 3년간 한국말을 배운 후 1898년 시편의 일부를 우리말로 번역해서 시편 촬요를 출간. 역사상 최초의 한글 구약성경 번역.

알렉산더 피터스는 1871년 러시아의 정통파 유대인 가정에서 태어났다. 그는 어려서부터 가정에서 히브리어를 배웠고 히브리어로 된 기도문과 시편을 낭송하며 성장했다.

그는 기독교로 개종하여 기독교인이 됨. 피터스는 어학에 특출한 재능을 타고 났다. 히브리어는 물론 라틴어 희랍어와 같은 고전어, 독어, 불어, 영어, 이디쉬어(독일어와 히브리어 합성어)까지 구사하는 어학의 귀재였다.

그가 서울에 온 후 3년 만에 구약성경 중에서 번역하기가 가장 어려운 책으로 알려진 시편을 번역했다. 그가 한국어 운율에 맞은 유려한 우리말로 시편을 번역했다는 것은 그의 천부적인 어학적 재능을 잘 말해준다.

1900년 피터스는 미국으로 가서 신학 수업을 받은 후 목사안수를 받고 한국으로 돌아왔다. 그는 당시 구약성경번역 위원회의 위원으로 뛰어난 히브리어 실력을 발휘해서 구약성경번역의 중추적 역할을 했고 1910년 마침내 최초의 한글 구약성경 번역을 완료했다.

그 후 출간된 한글 성경을 가다듬고 손질하고 오류가 있는 곳을 수정하는 작업을 계속 했다. 피터스 목사는 구약성경 개역위원회의 평생위원으로 위촉되어 한글 성경 개역작업에 주도적 역할을 감당했다. 개역 작업은 1938년에 끝이 났고 그 해에 개역성경전서가 출판되었다. 1910년에 번역되고 1938년에 개정된 구약성경은 대단히 잘된 훌륭한 번역이라는 것을 말한다. 특히 소리 내어 읽으면 우리말의 운율이 잘 들어맞어 감탄이 나올 정도라는 것이다. < > 부분은 박준서 명예교수 기고문 중>


1900- 5월 피터스 목사 신약전서를 완간하여 정동감리교회에서 축하예배를 드림.

1904- 신약전서 개역 완료.

1906- 공인 역 출간과 유성준 장로의 "국한문신약전서"가 간행되어 고종 황제에게도 헌상됨.

1910- 관주 성경의 효시인 신약전서를 동양선교회 선교사 카우만에 의해 공인 역본으로 간행됨.

1911-191042일 완역된 구약이 신약성경과 함께 성경젼서로 간행됨.

1912- 남궁혁, 김인준, 김관식, 이원모 등을 위원으로 개역위원회가 조직됨.

1937- 개역위원회 역 개역 성경이 완성됨.

1938년 - (기록에 의하면, 1910년 최초의 한국에 구약 성경이 완성되었고 1911년 구약 전체가 한글로 번역된 구약성경 '구약젼셔'가 출간되었다는 것이다. 1931년 부터 개역 작업은 피터스 목사의 주도하에 진행되어 1938년 '개역 구약성경'이 출간. )


(그후 한국교회가 사용하고 있는 '개역구약성경은 - 1938년 피터스 목사의 주도로 완성된 '개역구약성경'을 표준 맞춘법에 따라 일부 개정작업. 즉 한국교회가 그 후 사용한 개역성경은 표준 맞춘법에 따라 고치고 고어 문체등을 수정. )

1952년 - 한글 맞춘법에 따른 현대 한글로 수정에 이어 1957년 출판을 최종 판이라고도 함

  

=. 질문 (a question and  a correct answer )

기독교가 어떤 나라에 전파되어 이렇게 많은 분들이 믿게 된 경우가 세계 역사상에 있었는가,

그렇다면 한국에서 예수교의 기독교의 복음전파 그 이후의 결실의 이 역사는 무엇을 의미하는 것일까요,,

( what is the History? 

Please, ask seek and knock and give you an answer in viewpoint of religious faith,, of, by, for History .)


< 성광교회 이동원 목사 드림>

                                               ( - ing)


hi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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