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용기와 헌신

김창환 (서울남노회,강서교회,목사) 2021-09-03 (금) 11:00 2년전 584  


행복한 예수님의 사람들 칼럼(603호)


아라마대 요셉의 용기와 헌신(마 27:57-60)
 
“저물었을 때에 아리마대의 부자 요셉이라
하는 사람이 왔으니 그도 예수의 제자라
빌라도에게 가서 예수의 시체를 달라 하니
이에 빌라도가 내주라 명령하거늘 요셉이
시체를 가져다가 깨끗한 세마포로 싸서
바위 속에 판 자기 새 무덤에 넣어 두고
큰 돌을 굴려 무덤 문에 놓고 가니”
(마 27:57-60).
“아리마대 사람 요셉은 예수의 제자이나
유대인이 두려워 그것을 숨기더니 이 일
후에 빌라도에게 예수의 시체를 가져가기
를 구하매 빌라도가 허락하는지라 이에
가서 예수의 시체를 가져가니라 일찍이
예수께 밤에 찾아왔던 니고데모도 몰약과
침향 섞은 것을 백 리트라쯤 가지고 온지
라 이에 예수의 시체를 가져다가 유대인의
장례 법대로 그 향품과 함께 세마포로 쌌
더라 예수께서 십자가에 못 박히신 곳에
동산이 있고 동산 안에 아직 사람을 장사
한 일이 없는 새 무덤이 있는지라”
(요 19:38-41).
 
1. 그는 존경받는 공회원으로 하나님의
 나라를 기다리는 자였다.
“아리마대 사람 요셉이 와서 당돌히 빌라도
에게 들어가 예수의 시체를 달라 하니 이
사람은 존경 받는 공회원이요 하나님의 
라를 기다리는 자라”(막 15:43).
“공회 의원으로 선하고 의로운 요셉이라
하는 사람이 있으니(그들의 결의와 행사
에 찬성하지아니한 자라)그는 유대인의
동네 아리마대 사람이요 하나님의 나라를
기다리는 자라”(눅 23:51).  그는 시류나
당파나 이권에 개입하지 않고, 휩쓸리지
않고, 자신을 잘 지켰던 지도자였다.
 *산헤드린(Sanhedrin 공회,공의회)
- 유대 최고법원, 통치단체 - 예수 그리스
도께서도 이 공회 앞에 세워지고, 베드로,
요한, 바울도 여기서 심문을 받았다(71인).
 
2. 그는 예수님의 제자로서 당돌히 빌라도
 에게 예수의 시체를 달라고 요청한 용기
있는 제자였다. 당돌히 란 ‘꺼리거나 어려
워함이 없이 다부지고 씩씩하다’ 는 뜻이
다. “저물었을 때에 아리마대의 부자 요셉
이라 하는 사람이 왔으니 그도 예수의 제자
라 빌라도에게 가서 예수의 시체를 달라
하니 이에 빌라도가 내주라 명령하거늘”
(마 27:57-58).
 그는 예수님의 열두 제자는 아니지만 부
로서 숨겨진 예수님의 제자라고 했다. 그는
선하고 의로운 자다. 특히 예수님이 십자가
에 죽은 후, 그 시체를 빌라도에게 당돌하게
달라고 요구한 인물이었다. 당시 역적으로
몰린 자의 시체를 달라고 하는 것은 상당한
부담이 된다. 그렇지만 그의 투명한 삶이 
수님의 시체를 달라는 용기가 났을 것이다.
 
3. 그는 예수님의 죽음과 장례에서 중요한
 역할을 감당했다.
“이에 예수의 시체를 가져다가 유대인의
장례 법대로 그 향품과 함께 세마포로 쌌더
라 예수께서 십자가에 못 박히신 곳에 동산
이 있고 동산 안에 아직 사람을 장사한 일
이 없는 새 무덤이 있는지라”(요 19:40-41).
 1) 그는 예수님의 시체를 가져다가 유대인
   의 장례 법대로 그 향품과 함께 세마포로
   쌌다.
 2) 한 번도 사용하지 않는 자신의 돌무덤에
  시신을 안치했다. 그렇게 하는 이유는 그가
 하나님의 나라를 기다리는 자였기 때문이다.
  이 땅을 사모하지 않고, 오직 의와 희락과
 화평의 나라, 곧 그리스도의 나라를 기다리
 는 자였다(막 15:43).
 
4. 그가 드린 돌무덤이 오늘날 성묘교회당이
  되었다.
​ 현재, 아리마대 요셉의 돌무덤이 있던 장
에 예배당이 있다. 과거 콘스탄틴 황제의 어
니인 헬레나가 신학자, 역사학자를 동원
여 그 무덤을 찾아서 교회당을 만들었다.
 그 예배당이 성묘교회이다. 성경에 기록된
그의 귀한 헌신은 영원히 기억을 될 것이다.
 아무도 관심이 없는 예수님의 시체를 믿음
으로 감당한 그의 헌신은 우리의 귀감이 되
었으며, 우리 또한 그런 헌신의 삶을 살자.


                       

*  성묘교회
 
 "저희가 예수를 맡으매 예수께서 자기의
가를 지시고 해골(히브리말로 골고다)
라 하는 곳에 나오시니"(요 19:17).
 기독교의 가장 성스러운 곳. 예수가 십자가
에 못 박힌 장소 그리고 그의 무덤이 있는
골고다 언덕에 위치한다. 십자가의 사건은
성 밖에서 행해졌다. 성에서 가까운 고로
(요 19:20). 324년에 첫번째로 건축된 후
성벽으로 둘러싼 시의 거의 중앙에 위치하
게 되었다. 예수가 십자가에 못 박힌 11년
후에 골고다 언덕은 주후 44년에 헤롯 아
그립바에 의해 새롭게 새운 성벽으로 인하
여 성 안에 위치하게 된다.
 20세기 중반에 러시아 호스피스 부근, 교회
의 동쪽과 북쪽에서 고대 성벽의 유적을 발
견하였다. 교회 안에서 발견된 유대인의 무
덤은 이 지역이 당시 성 밖이었다는 중요한
증거인데, 유대인의 법으로는 성스러운 성
안에는 아무도 매장될 수 없었다.


 십자가에 못 박힌 장소는 다음의 이유로
1세기 크리스찬들에게 경건히 모셔졌을 것
이다. 주후 135년 하드리안 황제가 유대교
와 기독교의 흔적을 말살시키기 위하여
골고다 언덕과 예수의 무덤에 쥬피터를
위한 로마 신전을 세웠다(베들레헴의 예수
탄생 장소에도 똑같이 하였다). 이것은
오히려 좋은 결과를 낳았다. 2세기 후에
콘스탄틴 황제가 정권을 차지 하기 전까지
이 장소들은 잘 보존이 되었기 때문이다.
 326년에 헬레나 모후에 의하여 하드리안
신전은 파괴되고 성서에 서술된 골고다
무덤이 잘 보존되어 발견 되었다.
 콘스탄틴의 명령과 그의 모후 헬레나 여
왕의 감독 하에 갈보리와 무덤 위에 바실
리카식 교회당이 세워졌다.
 이 위대한 콘스탄틴 건물들은 614년
페르시아인들에 의하여 파괴 됐다.
 그리고 아봇 모데스토스에 의하여 전보다
는 작게 건축 됐다. 다시, 1009년에 칼리프
하켐에 의하여 파괴되고 이것을 이유로
십자군이 역사에 등장한다.
 1048년에 콘스탄틴 모노모쿠스에 의하
재건 되었다. 1149년 십자군이 예루
을 정복한 후 현재까지 보존된 성묘
를 세웠다. 여러 번의 증축을 번복하
만 교회는 십자군의 기초 모형을 그대
보존하고 있다.
 1852년의 터키시대에 정해진 6개의 교단
에 의하여 성묘교회는 관리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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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 13,000여 명의 회원님들에게 한 번씩 보내는 칼럼입니다.

서울 강서교회 김창환 목사(문지기) 드림
양천구 신정로 11길 63 강서교회 


hi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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