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예수님의 유머 시리이즈 5

이동원 (서울북노회,성광교회,목사) 2021-09-17 (금) 19:23 28일전 353  

예수님께서 많은 무리를 가르치실 때 쉽고 재미있고 집중할 수 있고 기억하게 가르치셨을 것이다.

가르침이 너무 어려우면 들으려고 하지 않을 것이다. 어려운 천국복음도 쉽게 예를 들어 가르치시고 비슷한 예를 반복하여 알기 쉽게 이해하기 쉽게 가르치셨다. 물론 비유의 목적은 하나님의 말씀을 무시하는 사람들에게는 이해할 수 없게 하는 이유도 있었지만 말이다. 

가르치는 사람 전하는 사람에게 유머는 필수적이라고 해도 과언이 아닐 것이다. 어렵고 지루하고 재미없으면 거기에 길기까지 한다면 청중들은 고역이고 괴로움이 될 것이다. 예수님은 그렇게 가르치시지 않으셨다. 장소도 아름다운 자연 산 하늘 공기 호수가 보이는 곳에서 또는 현장에서 직접가르치시고 훈련하셨다 것이다. 표적 후에 교훈하시고 교훈하시는 후 표적의 증거를 보여주시기까지 하였다.

다음 예수님의 깊은 내용을 비록 가르치신 것을 보자. 일부 반복도 있을 것이다. 예수님도 반복하셨고 신앙은 반복해서 읽고 듣고 실천하는 것이리라.

( 하나님께서도 이스라엘 백성을 광야 사십년 동안에 가르치신 한가지 핵심은 사람은 떡으로만 사는 것이 아니라  여호와의 입에서 나오는 모든 말씀으로 사는 것을 알게 하시는 (to teach you) 것이었다.(6: 4- . 8:4 ))

1. 단어의 스펠링 하나를 바꿔썼을 것이라는 설 즉 철자 하나가 바뀌어 밧줄이 낙타가 되었다는 설 둥둥은 없는 실력 과시하려는 자세이거나 무지 무식을 드러내고 하나를 알고 둘은 모르는 일부가 하는 허망한 소리일 것이다. 성경의 기록을 무슨 전보 치듯이 보내는 줄 아는가, 전보는 이미 보냈으면 오타 수정할 수도 없다. 카톡보내듯이 하는 줄 아는가, 경전을 필사할 때는 점 하나 토씨 하나는 더 주의하여 정밀하게 필사 할 수 밖에 없다는 것이다. 경전 필사를 졸면서 하고 검증도 없었겠는가, 내용 파악도 못하고 필사하였겠는가, 필사자가 그 당시의 신앙적 역사적 지리적 문화적 배경도 상황도 모르고 즉 그 시대적 문화적 역사적 분위기도 모르는 사람이 필사하였겠는가, 경전의 필사를 그렇게 글자를 틀리게도 하는 자세로 필사하였겠는가, 최초의 경전의 필사자들의 자세와 과정을 읽으면 감동적이기까지 하다. 최초의 경전 필사자들은 점 하나 토씨 하나라도 틀릴 수가 없었을 것은 너무나 분명하다 할 것이다.

경전 필사 기록을 보면 무슨 철자가 바뀌었다는 등은 말도 안되는 소리이기도 하다. 밧줄 운운하는 인사들은 최초의 경전 필사를 어떻게 하였는가부터 배워보아야 할 것이다. 경전 필사의 사람들이 어떠한 자세와 과정으로 필사하였는가 말이다.

그리고 본질적인 것은 낙타가 아니라 밧줄로 하였을 경우는 사실적 언어표현으로 부자는 천국에 들어가는 것이 불가능하다는 내용이 되고 낙타 일 경우에는 파격적인 유머적 비유표현이 되어 불가능이 아니라 어렵다는 것을 임팩있게 표현하시는 것이 된다. 그러므로 부자를 포함하여 누구나 그 내용을 거부감없이 함께 웃으면서 받아드릴 수 있을 것이다. 부자가 천국에 들어가지 못한다는 것은 성경과 일치한다고 할 수 없다. 그것을 안다면 예수님이 어떠한 의도로 말씀하셨는지는 분명하다 할 것이다.

성경의 지리적 역사적 배경과 내용을 깊히 연구할 생각은 하지 않고 들은풍월이나 어설픈 지식으로 무엇 한 건 한듯 지식을 과장 과시하려는 태도로 신앙에 손해를 끼치는 모습은 연자맷돌을 안고 물에 뛰어들어가는 것이 아닌가 조심하며 그러한 태도는 지양해야 할 것이다.     


1. 다음의 예수님의 깊은 내용을 가르치신 것을 보자. 일부 반복도 있을 것이다. 예수님도 반복하셨고 신앙은 반복해서 읽고 듣고 실천하는 것이리라. (6: 4- . 8:4 ) 하나님께서 광야 사십년 동안에 하나님의 자녀들에게 가르치신 한가지 핵심은, 사람은 떡으로만 사는 것이 아니라 하나님의 말씀으로 사는 것을 알게 하시기 위해서였다. 그 하나님께서 자신의 말씀의  최초의 필사자들이나 최초의 번역에 관여하셨음은 너무나 분명할 것이다. 하나님 자신의 말씀이 최초로 필사가 되고 최초로 번역이 되는데 그 하나님께서 방관하셨을리가 없다는 것이다. 하나님께서 최초의 필사와 번역에 세밀하게 관여하고 인도하셨음은 너무나 당연할 것이다.

서론이 좀 길어졌는데 어서 예수님의 유머적 말씀으로 달려가 보자


1. 약대와 바늘 귀

성경의 기록자가 철자 하나의 차이로 밧줄을 낙타로 기록하였다는 허망한 소리나 하는 학자들도 있는 듯하고 이것을 듣고 무엇 굉장한 것 한건 알았다고 지식자랑 하듯이 하는데, 전혀 그럴 수 없다는 것이다.

[19:24]

다시 너희에게 말하노니 약대가 바늘귀로 들어가는 것이 부자가 하나님의 나라에 들어가는 것보다 쉬우니라 하신대' ( 막10:25, 눅18:25)

Again I tell you, it is easier for a camel to go through the eye of a needle than for a rich man to enter the kingdom of God."

(* 이 말씀을 다시 말씀하셨다면 제자들이 반복하여 들었는데 잘못 들었을리 없을 것이다. 마치 예수님께서 낙타를 밧줄로 잘못 알아듣거나 나중에 그렇게 주상하는 사람이 있을 것을 아신듯이 말이다. 그러므로 이러한 부분의 성경을 알지도 읽지도 못하고 엉뚱한 주장을 하는 인사가 학위 타이틀을 가진 인사들 중에도 있다는 것이다. 이 경우가 학설은 알지만 성경은 잘 모르는 경우 일 것이다. 혹 어떤 권위있는 학자가 주장하였다고 하여도 학설은 단지 지나가는 학설일 뿐이다.)


< 다음을 보면 세례요한의 옷 팻션은 약대 털옷 이라고 하였다. 그 상황을 알면 밧줄 털옷이 아니라 약대 털옷이 분명하다. 약대 낙타는 그 시대 그 지역의 사람들에게 교통수단을 비롯하여 이래 저래 매우 익숙하였던 것을 알 수 있다.

이 요한은 약대 털옷을 입고 허리에 가죽띠를 띠고 음식은 메뚜기와 석청이었더라’.(3:4)

John's clothes were made of camel's hair, and he had a leather belt around his waist. His food was locusts and wild honey.(niv1984)

요한은 약대털을 입고 허리에 가죽띠를 띠고 메뚜기와 석청을 먹더라’.(1:6)

John wore clothing made of camel's hair, with a leather belt around his waist, and he ate locusts and wild honey.(niv1984)>


1. 뭐 눈에 들보가 들어가 있다구요.

( 눈에 들보와 티,, 아니 눈에 들보 라니 조그마한 나무개비 이면 몰라도 뭐 눈에 들보라고 ,, 

[7:3]

찌하여 형제의 눈 속에 있는 티는 보고 네 눈 속에 있는 들보는 깨닫지 못하느냐

"Why do you look at the speck of sawdust in your brother's eye and pay no attention to the plank in your own eye? ' (,, 눅6:41)

예수님, 아니 네 눈에 들보라뇨,, 네 눈에 나무연필이나 빨대(straw) 나 성냥개비라면 몰라도 눈에 들보를요 하겠는가, 아니 사람들이 들기도 힘든 들보가 어떻게 눈에 들어갈 수 있어요. 아무리 유머적 표현이라고 해도 그렇지요 들보는사람 키보다 큰데 어떻게 눈에 들어가요 하고 묻는 사람은 아직까지는 한 사람도 없었다. 그것은 누구나 이 말씀이 비유적 유머적 표현인 것을 알기 때문이다. 한글을 아는 사람은 유머적 표현인 것을 알고 그 의미도 재미있게 듣고 이해 할 것이다. 초등학생들도 유모어는 안다. 초등학생 아니 유치원생도 자린 고비 이야기를 유머로 알고 재미있게 듣고 또 듣는 것이다.  

(아직도 극히 일부의 사람들 중에는  예수님의  낙타와 바늘귀를 부자가 천국에 들어가기가 어렵다는 것을 유머로 과장하여 임팩있게 교훈하려고 하는 것을 깨닫지 못하고 있다.)


1. 약대가 국 그릇에 들어갔다구요

이것이 인상적인 유모어적 표현이 아니라면 하루살이와 낙타 비유는 무엇 표현인가요,

예수님, 예수님,, 약대 낙타가 국 그릇에 들어갔다구요.

거기에 더하여 뭐 누가 약대 낙타를 삼킨다구요, 어이쿠야 이것이 무슨 말씀이에요. 낙타를 삼킨다구요. 아니 이미 낙타를 삼켜버렸나요. 아니 삼킬 것이라구요. 해외토픽감 그 이상이네요. 세상에 어케 이런 일이,,


1. 햐 약대를 통째로 삼키는 사람도 있다는 것인가요,

[23:24]

소경된 인도자여 하루살이는 걸러내고 약대는 삼키는도다 

 24 You blind guides! You strain out a gnat but swallow a camel. 

( 그런데 뭐 국그릇에 약대 낙타가 들어갔다구~ 뭐 약대 약대가 국그릇에 들어가?  참으로 이 힘든 시추에이션에 도대체 이게 무슨 말인가,

그래요 약대 낙타가 들어갔다구요. 뭐 국그릇에 낙타가 어떻게 들어간다는 것이야, 혹 붕어나 송사리는 몰라도 약대는 발 담그기도 어렵겠는데, 누가 국그릇에 낙타가 들어갔다구 그래,  누가 또 그 약대를 삼킨다는 것이예요. 누가 그러한 말을 하였다는 것인가요. 뭐 예수님이요,,

예수님이 그렇게 말씀셨다구요. 그렇다면 그 내용을 자세히 다시 보자. 그 말씀 내용이 어디에 지금도 있는가, 예 성경 신약에 있어요. 그래 그럼 지금 즉시 그곳으로 가서 찾아 함께 읽어보고 토론해 보자.

예수님께서는 참 의미 깊은 내용을 아주 강력한 유머적 비유를 통하여 교훈하신 것이다. 내용은 대단히 의미깊고 강력한데 유머적 표현으로 재미있게 말씀하신 것이다.

성경에 다 기록은 안되었지만 제자들과 따로 있을 때 지루하지 않게 많은 유머를 사용하셨을 듯 하다.


코로19 등등으로 사람들이 다들 어렵다고 하는데

더도 말고 덜도 말고 한가위 같이만 되어라 하는 이 명절에

모두 다들 어렵다고 하는 이 때에 모두가 웃음 가득 넘치시기를,,, God bless you,,

                                    

                                     < 성광교회 이동원 목사 드림>

                                   



=. 묵상 ( meditation)

이 어려운 시기에 눈물겨운 감동의 말씀을 주신 것이다.

천지를 창조하시고 경영하시는 즉 기르시고 입히시는 하나님을

너희의 천부라고 하시며 감동의 문제 해결의 말씀을 실례를 들어 말씀하시기도 하신 것이다.

 

(마6:31-34)

그러므로 염려하여 이르기를 무엇을 먹을까 무엇을 마실까 무엇을 입을까 하지 말라 /이는 다 이방인들이 구하는 것이라 너희 천부께서 이 모든 것이 너희에게 있어야 할 줄을 아시느니라/
너희는 먼저 그의 나라와 그의 의를 구하라 그리하면 이 모든 것을 너희에게 더하시리라 /
그러므로 내일 일을 위하여 염려하지 말라 내일 일은 내일 염려할 것이요 한 날 괴로움은 그 날에 족하니라


31 So do not worry, saying,

'What shall we eat?'

or 'What shall we drink?'

or 'What shall we wear?'


32 For the pagans run after all these things, and your heavenly Father knows that you need them.


33 But seek first his kingdom and his righteousness, and all these things will be given to you as well.


34 Therefore do not worry about tomorrow, for tomorrow will worry about itself. Each day has enough trouble of its own.


1. 부록

(* 낙타와 바늘 귀에 대하여 언급한 바 있지만,,

아직도 기독교를 비판하거나 아는체 하는 사람들 중에 어디에서 들었는지 자기의 지식을 자랑하는 체 하며 이것은 철자 하나가 바뀌어 밧줄이 낙타가 되었을 것이라는 허망한 소리를 하고 있다는 것이다. 어떤 학자가 한번 주장하기에 그럴 듯 한 듯 하여 인용하며 자기 지식을 자랑 한 듯 한데 하나는 알고 둘은 모르는 그리고 별로 성경에 대해서 아는 것은 없으면서 아는체 하는 모습일 것이다.  

이미 언급한 바 낙타가 아니라 밧줄 이라면 아니 더 가는 노끈이라고 하여도 바늘 귀로 들어가는 것은 불가능하다. 그것은 절대 불가능하다. 그렇다면 부자는 천국에 못들어간다는 것인가, 부자라고 천국에 못들어간다는 것은 성경적으로 전혀 맞지 않는 것이다. 부자라고 천국에 못들어간다는 것은 전혀 성경적이지 않고 예수님이 그러한 뜻으로 말씀하신 것이 전혀 아니다. 어렵다는 뜻으로 말씀하신 것이다

그러므로 밧줄이나 노끈이 아니라 낙타로 비유하므로 파격적이고 강조적인 유모어적 표현으로 부자가 천국에 들어가기가 어렵다는 것이다. 낙타에 비유하므로 부자가 천국에 들어가기가 불가능한 것이 아니라 너무 어렵다는 것을 유모어적 표현으로 강조하여 말씀하신 것이다. 지금까지 온 세계인에게 거의 회자될 정도로 임팩있는 표현으로 교훈하신 것이다.  

이것이 인상적인 유머적 표현이 아니라면 하루살이와 낙타 비유도 그렇다. 너무나 엄청난 비교상대이어서 낙타가 아니라 파리 정도이겠지 무슨 낙타이겠나 하겠는가, 하루살이와 파리정도 비교는 몰라도 낙타를 비교하겠는가,, 강조적 인상적 잊지 않게 의미 쏙 임팩 있게 들어오게 졸다가도 잠이 깰 수 있도록 오래 오래 재미있게 기억하도록 하는 표현이 아니겠는가, 예수님은 그러한 유머적 강조적 표현을 종종 사용하셨다.예수님은 청중들을 지루하게 하시는 분이 아니셨던 것이다. 예수님은 유머가 있는 분인 것을 그의 비유적 말씀을 통해서도 잘 알 수 있다

인생의 중요한 내용을 재미있게 생각할수록 웃음이 나오는 포복졸도할 정도는 아니어도 재미있게 가르치셨던 것이다. 예수님은 유머가 있으신 분이시라는 것이다.그렇다면 하나님도 유머가 있으신 분이신 것은 너무나 분명할 것이다. 그렇다면 하나님의 자녀들도 유머가 있는 것이 좋다. 요즈음 아재개그라는 말로 유머감각의 기를 꺽기도 하는데 유머는 상호교통이기에 조금 만 우스워도 또는 상대방이 유머적 의도로 말하는 것을 안다면 먼저 같이 웃어주는 것도 유머감각이 살아있다 하겠다. 아무리 유머를 말하여도 상대방이 무감각이면 말하는 사람이 무안할 수도 있다. 이러한 일이 없도록 서로 노력하는 배려가 필요할 것이다. 내용이 웃기에는 좀 별로여도 웃다보면 함께 즐거워지고 건강에도 좋고 서로 유머가 풍부하게 발전 발휘되게 되는 것이다.)

1.  눈에 티와 들보

예수님, 아니 네 눈에 들보라뇨,, 네 눈에 나무연필이나 빨대(straw) 나 성냥개비라면 몰라도 눈에 들보를요 하겠는가, 아니 사람들이 들기도 힘든 들보가 어떻게 눈에 들어갈 수 있어요. 아무리 유머적 표현이라고 해도 그렇지요 들보는사람 키보다 큰데 어떻게 눈에 들어가요 하고 묻는 사람은 아직까지는 한 사람도 없었다. 그것은 누구나 이 말씀이 비유적 유머적 표현인 것을 알기 때문이다. 한글을 아는 사람은 유머적 표현인 것을 알고 그 의미도 재미있게 듣고 이해 할 것이다. 초등학생들도 유모어는 안다. 초등학생 아니 유치원생도 자린 고비 이야기를 유머로 알고 재미있게 듣고 또 듣는 것이다.  

(아직도 일부는 낙타와 바늘귀를 부자가 천국에 들어가기가 어렵다는 것을 유머로 과장하여 임팩있게 교훈하려고 하는 것을 알지 못하고 있다. 그 내용을 강력하게 전하시고자 하는 비유적 말씀이라는 것이다,)

 

1. 다음의 들보를 보라.

이 들보가 눈에 들어갔다구요? ,,,

     < 그림, 인넷에서 인용>

( - ing)


hi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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